양주시민축구단 팬이 K3리그 장내 아나운서가 된 사연

[스포츠니어스 | 양주=김현회 기자] 2022년 6월 12일 경기도 양주시 양구고덕구장에서 양주시민축구단과 부산교통공사의 2022 K3리그 경기가 열렸다. 오후 5시에 열리는 이 경기를 앞두고 오후 3시부터 한 여성이 본부석에 앉아 무언가를 계속 읽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그녀는 한참 동안 준비한 종이를 들여다보며 또박 또박 읽어 나갔다. 양주시민축구단 팬인 심희정(44세) 씨였다. 순수한 양주 팬인 그녀는 왜 일찌감치 경기장에 와 발성 연습을 한 것일까.

그녀는 2018년부터 양주시민축구단을 응원한 팬이다. 양주시축구협회 김동일 부회장의 아내다. 남편을 따라 양주시민축구단 경기를 지켜보다가 열정적인 팬이 됐다. 지방 원정경기도 빠지지 않는다. 선수단 격려를 위해 남편이 지방으로 향하면 동행해 응원하기를 5년째다. 양주시축구협회 회장과 부회장 등은 체면(?)을 생각해 원정경기를 가도 대놓고 응원을 하지 못하지만 심희정 씨는 대놓고 열정적인 응원을 펼친다. 특히나 울산시민축구단과의 원정경기에서는 일당백으로 상대팀을 압도하기도 했다.

그런 심희정 씨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게 됐다. 기존에 양주시민축구단 홈 경기를 진행하던 장내 아나운서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2주간 자리를 비우게 된 가운데 양주시민축구단에서는 2주 동안 임시로 일 할 장내 아나운서를 찾고 있었다. 이런 소식이 심희정 씨에게 전달이 됐고 심희정 씨는 “그렇다면 내가 한 번 해보겠다”고 장내 아나운서를 자청했다. 오랜 시간 양주 선수들을 응원해 온 심희정 씨가 제대로 열정적인 응원을 마이크를 통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양주시축구협회와 구단에서도 심희정 씨의 열정을 잘 알고 있어 흔쾌히 이를 허가했다.

심희정 씨는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경기장을 찾아 빼곡이 메모를 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전문 장내 아나운서가 아닌 터라 또박 또박 선수 이름을 외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애를 먹은 건 상대팀 감독인 ‘김귀화 감독’을 발음하는 것이었다. 심희정 씨는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신난다”면서 “평소에 응원을 할 때면 큰 소리를 질러도 앰프를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은 나에게 공식적으로 마이크가 주어졌다. 우리 선수들이 골을 넣으면 목청이 터져라 ‘골’을 외쳐보고 싶다. 쩌렁쩌렁한 소리로 우리 선수들의 이름도 외쳐 주고 싶다”고 웃었다. 심희정 씨는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구단과 양주시축구협회에서는 심희정 씨의 편파(?) 아나운시을 극구 말렸다. 남편이자 부회장인 김동일 씨는 심희정 씨 바로 뒤에 앉아 심희정 씨가 흥분할 때마다 자제를 시켰다. 심희정 씨는 “나는 괜찮은데 오히려 회장님과 남편, 관계자들이 청심환을 두 알씩 먹었다”면서 “나보다 이분들이 더 긴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단에서는 심희정 씨에게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해달라”고 연신 자제를 촉구했다. 우스갯소리로 경기 전 관계자들은 “김동일 부회장이 다 수습할 거니까 마음대로 하라”거나 “대형 사고를 한 번 쳐달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심희정 씨가 경기를 앞두고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마이크 없이 선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자 선수들이 몸을 풀다가 이를 지켜볼 정도로 그녀는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심희정 씨는 취재를 온 기자에게도 “다른 팀에서는 장내 아나운서가 어떤 멘트를 하느냐”면서 “나는 좀 더 편파적으로 하고 싶은데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말려서 자제를 하려고 한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K리그에서도 다소 편파적으로 한다. 괜찮다”고 응원하자 “기자님 말을 믿고 조금 더 편파적으로 해보겠다”며 웃었다.

이날 경기가 시작되자 경기 전과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장내 아나운서 역할을 했다. 심희정 씨는 침착한 말투로 장내 아나운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는 양주시민축구단의 열정적인 팬으로 박수를 치며 응원하다가도 마이크를 손에 쥐고는 제3자가 돼 차분한 말투로 선수 교체와 경기 안내 등의 일을 했다. 그녀는 후반 30분 김석진의 빨래줄 같은 동점골이 터지자 감격적인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하더니 마이크를 잡고는 곧바로 장내 아나운서다운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기자에게 “봤어요? 죽였죠?”라고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선수 교체가 있을 때마다 대기심에게까지 달려가 일일이 확인을 하며 본업에 최선을 다했다.

심희정 씨에게 양주시민축구단은 어떤 존재일까. 그녀는 “우리 팀은 젊은 ‘삼촌’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면서 “선수들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면 우리 아들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엄마의 마음으로 응원한다. 우리 선수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희정 씨는 “며칠 전 파라과이가 우리 대표팀과 경기를 할 때 경기력이 좋던데 내 눈에는 우리 팀 임창석이 파라과이 선수들보다 더 잘한다”면서 “손흥민의 골도 멋지지만 나는 손흥민보다 우리 팀 유연승이 골 넣을 때 더 기분이 좋다”고 밝게 웃었다.

이날 양주시민축구단은 전반 부산교통공사 이민우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김석진의 환상적인 중거리 슛에 힘입어 1-1 무승부를 거뒀다. 이날 무승부로 양주시민축구단은 7승 2무 7패 승점 23점으로 8위를 이어가게 됐고 부산교통공사는 5승 8무 3패 승점 23점으로 6위를 유지했다. 장내 아나운서 데뷔전을 치른 심희정 씨는 다음 주 시흥시민축구단과의 홈 경기에서 장내 아나운서 고별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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