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치만은 않았던 ‘2년 차 부주장’ FC안양 홍창범 이야기

ⓒ프로축구연맹제공

[스포츠니어스 | 김귀혁 기자] 2015년 당시 울산현대 산하 유소년 팀인 현대고등학교는 고등 무대를 호령했다. 제48회 부산 MBC배 전국 고등학교 축구대회를 포함해 3관왕을 달성했다. 당시 구성원이었던 설영우, 오인표, 최지묵, 이동경, 오세훈 등은 현재 프로 무대에서도 맹활약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이런 화려한 틈바구니 속에는 홍창범도 자리해 있었다.

그러나 홍창범은 이들과는 달리 프로 무대에서의 데뷔가 늦었다. 성균관대학교로 진학하며 대학 무대를 먼저 경험했다. 보통 대학 무대를 거친 선수들은 프로에 입성할 시 늦어도 3학년에 입성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홍창범은 4년을 모두 채운 뒤에야 지난해 FC안양에 입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홍창범의 우여곡절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프로 2년 차만에 부주장으로서 활약하고 계십니다. 부주장으로서 지금까지의 시즌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라커 안에서의 영향력을 포함해서 선수단 내에서 무언가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어렵더라고요. 아직 연차도 조금 적은 감이 있거든요. 물론 운동장에서 나이가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형들이 제법 많기도 하고 22세 이하 선수들을 제외하면 제가 거의 막내입니다. 이런 상황 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영향력은 주로 (백)동규형과 (김)경중이형이 발휘하나요.
그런 부분은 동규 형이 가장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경중이 형도 그런 동규 형을 도와서 역할을 잘해주고 계십니다. 여기에 (이)창용이 형, (주)현우 형, (정)준연이 형 등 많은 형님들도 그런 역할을 해주고 계세요. 그러다 보니 저는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죠.

전체를 아우르기보다는 22세 이하 선수들을 중심으로 많이 이야기해주시는 거군요.
네. 그런 역할입니다.

그러면 22세 이하 선수들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나요.
우리 22세 이하 선수들은 굉장히 열심히 하고 능력 있는 선수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가진 능력에 비해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거든요. 그런 선수들에게는 항상 준비를 잘하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테니 그때 기회를 잡으면 된다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경기에 뛰는 선수들도 어린 선수로서 따로 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거든요. 좀 더 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발로 나섰다가 30분 만에 나오는 선수들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그 30분이 팀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시간은 점점 늘려가면 되니 실망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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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력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와 질문드립니다. 백동규 선수가 부산전 끝나고 라커룸에서 이야기한 것이 화제가 됐거든요. 그런데 그 영상이 나오고 오히려 카메라를 의식했다면서 백동규 선수를 놀렸다는 선수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저는 절대 놀릴 수 없습니다. 절대 건드릴 수 없는 형이에요. 아마 형들끼리 놀렸을 것 같은데요. 경중이 형 같이 장난기 많은 형들이 있습니다.

김경중 선수가 장난기가 많나 보네요.
팀에서 장난기 제일 많은 형을 물어본다면 무조건 경중이 형입니다. 경중이 형이 거의 모든 분위기를 잡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장난도 많고 재미도 있는 형이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구단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재계약 당시 인터뷰를 보니까 경중이 형이 밖에서 도움도 많이 주고 밥도 사줬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많이 얻어먹었어요. 경중이 형이 숙소 인원들도 정말 많이 챙겨주시거든요.

주로 어떤 음식을 사줬나요.
야식을 먹더라도 샐러드, 회 같은 음식을 주로 사주셨습니다. 선수들이기 때문에 영양을 생각하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치킨이나 햄버거 같은 기름진 것들보다는 밤늦게 먹더라도 무겁지 않고 몸을 생각할 수 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추천해주셨습니다.

김경중 선수는 밖에 나가서 생활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주로 숙소에 음식을 들고 오시는 건가요.
시켜 주실 때도 있고 아니면 같이 드시고 갈 때도 있습니다. 신인 선수들도 경중이 형이라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경중이 형은 아무리 어리고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정말 친구처럼 대해 주시거든요.

김경중 선수가 홍창범 선수에게도 장난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장난이 가장 기억에 남나요.
작년에 경기를 뛰고 나니까 “경기장에 들어간다고 어깨 좀 많이 올라온 것 같다”라고 농담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래도 나름 뿌듯한 장난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때 당시에는 부끄러움이 있어서 잘 몰랐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뿌듯했던 것 같습니다.

김경중 선수가 장난도 많이 하면서 다가가는 스타일이라면 백동규 선수는 어떤가요.
별명이 ‘무사 백동규’잖아요. 그 무사라는 이름답게 앞 뒤 가리지 않고 오로지 경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강하게 이야기하십니다. 경기장 안에서는 저에게 욕도 가끔 하세요. 이번에 경남전 때도 교체로 들어와서 엄청 짧게 뛰었거든요. 그런데 수비할 때 한 번 정도 위치 선정을 잘 못 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엄청 소리 지르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배울 게 정말 많은 형인 것 같아요.

처음에 데뷔하셨을 때는 그런 외침이 조금 무섭게 다가왔을 것 같은데요.
저는 오히려 되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솔직하고 직선적인 피드백을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말해주는 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면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형이거든요.

그렇다면 경기장 안이 아닌 평소의 백동규 선수는 어떤가요.
평소에는 장난도 가끔 치십니다. 경기 때만큼의 무사다운 모습은 크게 없어요. 그리고 동규 형하고 경중이 형이 엄청 친하거든요. 경중이 형이 먼저 장난치면 그 옆에서 한 마디 툭 던지고 가시는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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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대학교 때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오인표, 김민덕 등 현대고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도 성균관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더라고요. 신입생 때 홍창범 선수는 어땠나요.
사실 대학교 1학년 때는 초반에 춘계 대회 때부터 좋은 활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쇄골이 부러지는 바람에 부상으로 거의 1년을 날렸죠. 훈련하고 경기에 나선 기억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2학년 때도 부상 복귀 후 재활하는 과정이 있다 보니까 그런 경험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학년 때 1년을 쉬고 2학년이 됐잖아요. 그때 현대고에서도 같이 뛰었던 (오)인표 형이나 (김)민덕이 형은 2학년을 마치고 프로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고등학교 때 보다도 같이 경기를 뛴 기억이 많이 없었습니다.

부상을 당하고 재활하는 과정 속에 형들이 프로로 가다 보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형들도 2학년 마치고 프로로 가고 친구들도 몇 명 가게 됐거든요. 그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오만한 생각이 조금 있었어요. 친구들도 가고 형들도 프로로 가다 보니 ‘나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교 때 성적도 나쁘지는 않아서 당연히 프로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프로로 가지 못하게 되니까 조급함도 생겼고 그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프로로 가기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4학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4학년 때는 그 당시에 감독님을 정말 잘 만났습니다. 2학년 때까지는 설기현 감독님이 팀을 맡으셨다가 3학년 때는 정성천 감독님이 1년 정도 팀을 이끄셨거든요. 그 이후에 김정찬 감독님이 오셨습니다. 다른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정말 감독님을 잘 만났어요. 왜냐하면 항상 저를 믿어주시고 저도 그런 감독님을 신뢰하면서 축구를 했거든요.

당시 감독님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나요.
감독님이 본인을 믿으라고 하셨어요. 서로 믿어야 프로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거 생각하지 말고 감독님이 모두 책임질 테니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감독님 믿고 1년 축구해보겠습니다”라고 했죠. 그때가 동계 훈련 때 감독님과 단 둘이 만난 첫 미팅이었거든요. 어차피 4학년 되면 프로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4학년 되면 감독님께 “어차피 프로에서 관심도 없는데 실업무대에서 축구하고 대학은 마무리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죠. 아니면 그냥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실업팀에서 오라고 한 팀이 있었거든요.

그렇다면 제의를 받고 난 다음에 미팅이 있었던 건가요.
제의를 받고 나서 며칠 뒤에 구단에 합류하라고 문자가 들어옵니다. 그런데 구단에 들어가기 하루 전 날까지 계속 미팅을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감독님 말씀을 듣고 “실업팀 안 가고 감독님 믿고 1년 더 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죠. 그러면서 대학교 4학년 때까지 계속 성균관대에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김정찬 감독님과 만나면 서로 미팅했던 이야기만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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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창범 선수에게는 중요했던 날 중 하나였네요. 그런데 ‘공부를 해볼까’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공부를 하실 생각이었어요.
마침 대학교 전공이 스포츠과학과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스포츠 심리학과가 있었어요. 그래서 스포츠 심리 분야 쪽으로 공부할 생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원을 심리 쪽으로 가신 선배도 마침 있었거든요. 그 선배 이야기도 들으면서 심리학과에 대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축구 선수라면 사실 그 이전에도 심리에 관심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그런 생각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던 건가요.
그렇죠. 왜냐하면 제가 부상이 있었잖아요. 그때부터 부상 후 복귀하는 데 있어서 선수들의 심리적인 역할이 경기장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상 후 복귀하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관련 공부를 하는 선배도 있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쇄골 부상 말고도 고등학교 때 머리 부상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당시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도 궁금합니다.
상대를 따돌리기 위해 돌아섰는데 상대의 머리와 제 광대 위쪽이 서로 충돌했습니다. 관자놀이 옆 쪽을 상대방 머리로 들이 박은 뒤에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경기장에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정신을 잃다 보니까 기억도 없었는데 눈 뜨고 나니까 병원에 누워있었던 거잖아요. 그러면서 경기장에 다시 들어가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도 걱정을 진짜 많이 하셨습니다. 그렇게 여러 생각이 정말 많았는데 아버지가 심리 치료를 추천해주시더라고요.

부상을 당한 뒤에 심리 치료를 받으신 건가요.
네 맞아요. 심리 치료하시는 교수님을 만나 뵙다 보니까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서 쉽게 마음을 추스를 수가 있더라고요. 확실히 심리적으로 상담을 받고 난 뒤에 도움이 됐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어쩌면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이 경기에서 더욱 중요할 수 있겠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대학교 때도 만약에 축구를 그만둔다면 그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대학교 1학년 때 당한 쇄골 부상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쳤던 부상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이 덜 했겠군요.
그렇죠. 그때는 다시 일어서는 데 있어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부상에 대한 트라우마를 한 번 겪어 봤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수술하는 데 있어서 크게 두려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금방 운동장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재활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에는 부상 없이 계속 활약했던 건가요.
사실 3학년 동계훈련 때도 발목을 심하게 다쳤습니다. 발목 인대가 거의 다 끊어지는 바람에 세네 달은 쉬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마음이 조급했죠. 왜냐하면 3학년이기도 하니까 프로 진출에 있어서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던 시간이었거든요. 그때 시간의 조급함을 많이 느끼다 보니 부상이 더욱 힘들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발목 부상을 회복하고 재활하면서 심리 관련 공부를 생각했던 거군요.
3학년 때 재활을 하면서 만약에 프로에 못 가게 되면 심리 쪽으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4학년 때까지는 축구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4학년 때 프로에 간 형들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변에서도 다 3학년이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겪는 와중에 감독님의 믿음으로 1년 더 축구를 한 뒤에 안양으로부터 제의가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듣고 보니 그때 심정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일단 안양에서 제의가 왔다고 들었을 때 안 믿었어요. 왜냐하면 3학년 마친 뒤에 어느 프로팀에서 관심이 있다면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판에 흐트러졌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 때 감독님이 제의가 왔으니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을 때도 사실 별로 안 믿었어요. 이전에 한 번의 경험이 있다 보니까 들뜨지 말자고 스스로 정신을 잡았습니다. 만약에 들뜬 상태에서 또 틀어지게 되면 더 실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안양 구단에 가서 계약서를 서명했던 그 순간에도 사실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약서에 서명했을 당시에는 기뻤을 것 같은데요.
기쁘고 잘 됐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더 준비를 잘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뭔가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보통 저였으면 그냥 기뻐하면서 “와 프로다!”라고 좋아했을 겁니다.
당연히 저도 그럴 줄 알았어요. 그런데 기쁘고 설렌 마음보다는 준비를 더 잘하고 훈련을 더 열심히 해놔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 때 친구들은 다 짐 싸고 나가면서 마무리하잖아요. 저는 학교에 남아서 구단 들어가기 전날까지 계속 훈련을 했습니다.

사실 대학교 4학년이면 사실상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기회를 잡은 거잖아요. 그런 간절함 마음에서 그랬던 걸까요.
그런 간절함도 컸고 22세 이하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형들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지금 마냥 좋아할 때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도 그냥 훈련만 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그런 노력 속에 첫 시즌에 주목받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데뷔 시즌 활약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다 보니 크게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대전과의 경기를 마치고 한 시즌을 돌아봤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궁금합니다.
꿈같았던 시즌이었죠. 그리고 어떻게 보면 성공한 시즌인데 또 다르게 보면 결국은 실패한 시즌이었거든요.

성공했던 시즌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어떤 요인 때문인가요.
일단 개인적으로 첫 번째 목표는 데뷔였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경기였죠. 10경기 출전을 목표로 잡고 이후에는 20경기를 채우는 식으로요. 목표를 크게 정하지 않고 조금씩 올려 나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할 수 있었던 범위 내에서는 거의 다 해봤던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도움도 해보고 득점도 해봤거든요. 그리고 어쨌든 구단도 역대 최고 성적이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분명 성공한 시즌이었습니다. 그런데 승격을 바랐던 한 시즌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결과적으로 실패한 시즌이었죠. 그래서 올 시즌에 대해 확실한 목표 설정이 됐던 시즌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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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버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재계약 이후 구단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부자 지간에는 대화가 많이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아버지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잘 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예를 들어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당시였습니다. 그때 현대고등학교라는 좋은 팀에서 제의가 왔음에도 저는 순위는 떨어지더라도 자주 나와서 더욱 돋보일 수 있는 팀에 가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버지는 무조건 현대고로 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리고 이후에 현대고에서도 주전에서 밀리고 힘들어할 때 준비하는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때도 저는 성균관대보다는 조금 낮은 순위의 대학에 가서 더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는 무조건 성균관대에 가서 큰 물에서 있어 봐야 한다고 계속 설득하셨습니다. 그 설득에 저도 결국에는 성균관대로 가게 됐던 거죠. 3학년 때 프로에 못 가고 좌절했을 때도 아버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사실 아버지는 축구는 안 하셨고 그것과 전혀 관련 없는 사업을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축구를 안 하셨군요.
우리 집안에 운동 관련한 사람은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힘들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이에 아버지도 “운동은 잘 모르지만 네 아빠는 사업하면서 실패도 해봤고 성공도 해봤다. 그리고 결국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더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저였다면 어린 마음에 ‘아니 축구를 한 번도 안 해보셨는데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라면서 반항 아닌 반항기 있는 생각도 조금 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생각은 딱히 안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항상 인정해주셨거든요. 본인은 축구를 안 했으니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거는 비슷할 거라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본인이 어린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커 오면서 실패했던 경험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얘기들을 제 상황에 대입해서 듣다 보니 공감이 됐어요. 아버지가 일어섰던 방법에서 저도 결국 또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울산현대고와 성균관대를 거쳐 프로까지 입단할 수 있었던 것에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이 크다고 봐도 되는군요.
그렇죠. 아버지 댁은 대전이고 저는 서울에 있었거든요. 그때도 차 타고 서울까지 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집에 내려가셨습니다. 경기가 아닌 날에도 제가 힘들어 보이거나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오셨어요. 현대고에 있을 때도 울산까지 차 타고 내려오셨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엄청난 힘이 됐군요. 혹시 아버지께 한 말씀해주신다면···
아버지에게요?

좀 쑥쓰러우신가요.
이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평소에 진지한 얘기는 많이 하면서도 표현을 잘 안 하셨군요.
서로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진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또 과하게 진지할 때도 있으셨거든요. 그럴 때는 저도 사람이다 보니까 ‘또 잔소리 하시네’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아··· 표현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서로 각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올 시즌 목표 한 번만 말씀해주신다면요.
저는 항상 시즌 들어가기 전에 설정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부상을 절대 당하지 말자’가 첫 번째 목표예요. 부상에 대한 아픔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자기 관리를 통해 사전에 대처할 수 있는 부분들은 무조건 예방하려고 합니다. 그다음 목표는 팀에 있어서 정신적인 영향력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부주장을 하면서 그런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맞아요. 나이가 어림에도 경기가 안 풀렸을 때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게임 체인저’같은 선수가 되고 싶은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형들이 ‘(홍)창범이가 있을 때는 뭔가 든든한 마음이 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적인 영향력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프로 2년 만에 부주장. 어찌 보면 ‘될성부른 떡잎’이라는 표현을 써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 이전까지 홍창범의 축구 인생에서는 제법 부침이 있었다. 부상은 물론 그에 따른 심리적인 타격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의 조언 덕에 홍창범은 지금 한 프로 팀의 부주장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물론 인터뷰 내내 가장 인상적이고 공감 갔던 내용은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아버지에게 표현이요? 이거는 좀 힘들 것 같은데.”

gwima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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