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지훈 씨 제공

[스포츠니어스 | 서울월드컵경기장=김귀혁 기자] 서울 팬들이 걸개를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2 FC서울과 성남FC의 시즌 14라운드 맞대결에서 홈팀 서울이 전반 22분 상대 구본철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0-1 패배했다. 이날 결과로 서울은 지난 강원FC와의 경기 0-1 패배 이후 2연패하며 상위권 도약에 실패했다.

요즘 FC서울 홈경기를 보면 매 경기 걸개가 걸려있다. 보통 걸개는 항의의 차원에서 거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의 경우에는 다르다. 지난 8라운드 강원FC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 파열 부상을 당한 고요한을 위한 응원의 걸개다. N석 2층에 걸려있는 해당 걸개에는 '보고 싶어요 한참 더 언제라도 함께 해, 기다릴게'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런데 이날 경기가 시작되자 N석이 아닌 새로운 방향에 여러 걸개가 걸려 있었다. 내용은 다양했다. '수호신, 연대가 아닌 모두의 이름', '자존심만 있으세요?', '연대 못하는 연대', '완장짓은 일부가 쪽팔림은 모두가', '유상훈 화이팅'등이 그것이었다. 이 걸개는 서울 응원의 중심 구역인 N석이 아닌 E석과 원정석인 S석 사이 3층에 10명 남짓한 인원이 가세해 걸개를 내걸었다.

해당 걸개가 걸린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3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8일 서울의 서포터스인 '수호신' 공식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인스타그램 메시지(DM) 캡처본이 올라왔다. 대화의 내용은 강원FC 서포터스 현장 팀원이 유상훈의 응원가를 사용해도 될지에 대한 것이었다. 유상훈은 2011년부터 군 복무 시절을 제외하고 2021년까지 서울에서 활약한 뒤 올 시즌을 앞두고 강원으로 이적했다. 즉 강원 서포터스 측에서는 올 시즌 이적해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유상훈을 위해 고유의 응원가를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호신의 대답은 "자존심도 없으세요? 만들어쓰세요"였다. 이후 응원가 사용을 먼저 제안한 강원 서포터스는 "넵 죄송합니다 ㅠㅠ"라고 말하며 대화는 마무리됐다. 수호신 공식 계정은 이 대화 내용을 캡처해서 올린 뒤 '정당한 경기는 정당한 선수등록부터 시작!'이라고 글을 작성했다. 그 위에는 수호신과 수호신 내 한 소모임의 계정을 태그했다.

이 사실이 커뮤니티에 공개되자 팬들은 비판적인 기조를 보였다. 수호신이 만든 고유 응원가이기 때문에 제안에 대해 충분히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었다. 하지만 친절하게 물어본 강원 서포터스에 비아냥 거리는 말투와 함께 개인 계정이 아닌 공식 계정에 이 대화 내용을 올렸다는 사실이 가장 큰 비판의 이유다.

특히 다른 팀 팬들 뿐만 아니라 서울 내부에서도 반발 여론은 거셌다. 사실 이전부터 N석의 응원을 주도하는 서포터스와 그렇지 않은 팬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의 원인은 응원 문화의 차이 및 수호신의 대표성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확실한 것은 이 갈등이 비단 최근 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벌어진 여러 사건으로부터 쌓여왔고 그것이 이번에 폭발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관련해 <스포츠니어스>는 경기 종료 후 이번 걸개를 주도한 유지훈(29)씨 외 여러 명의 서울 팬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 유지훈 씨 제공

가장 먼저 걸개를 주도한 배경에 대해 묻자 유지훈 씨는 "수호신 연대 홈페이지가 있다"면서 "강원전 종료 후 소통을 하러 갔는데 응답이 늦게 왔다. 사실 오랜 기간 동안 연대의 일부 팬들의 행동으로 인해 개인 지지자들이 피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큰 변화 없이 넘어갔던 것이 이번에 터지고 말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유 씨는 "축구장에서는 누구나 다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서 "개인 지지자라고 해서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항상 사건 사고가 일어나면 피해를 받는 것은 다 같이 본다. 그런 행동을 자제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목소리를 모은 뒤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유 씨와 수호신 연대 측 사이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이에 대해 그는 "바로 답장이 오지는 않았고 공식적으로 추후에 글을 올리겠다는 말씀이 있었다"면서 "그 사이에 간담회를 하겠다고 했는데 불발이 됐다. 그런데 나는 간담회도 좋지만 재발 방지 사과문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유 씨는 "사과문은 어떤 행동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작성하는 것이 맞다"면서 "일부에 의해 대다수의 팬들이 뒤집어진 상황이었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을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호신이라는 이름이 서울 팬 모두를 지칭하는 단어라고 봤을 때 일부 팬들의 사건 사고에 대한 비판은 다른 지지자들도 같이 받는다. 그런 부분이 억울했던 것 같다. 그동안 크게 바뀐 것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날 경기에서 걸개는 총 5개가 등장했다. 각각의 걸개에 대한 의미를 묻자 유지훈 씨는 휴대폰의 사진을 보며 설명했다. 그는 "먼저 '자존심만 있으세요?'라는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겠다"면서 "수호신 오피셜이라는 계정에는 천만 수호신이라는 모토가 있다. 그것을 대표하는 입장이라고 보면 너무 경솔한 언행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차용해서 걸개를 든 이유는 사과를 하지 않고 너무 자존심만 챙기려는 것 같아서 그것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이후 유 씨는 "'수호신, 연대가 아닌 모두의 이름'은 보이는 그대로다"라면서 "일부 소모임이 아닌 경기장에 오는 모든 서울 팬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어디서 응원을 하고 어떤 자리에서 무슨 목소리를 내든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현장 팀에 있다고 그분들이 수호신 목소리의 대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호신은 모두의 이름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완장짓은 일부가 쪽팔림은 모두가'라는 내용에 대해서는 "놀림을 받거나 다른 팀 팬들에게 조롱을 받는 것은 우리 모두이다"라면서 "강원 팬들이 '자존심도 없으세요 일단 이기세요'라고 말한 것은 스토리를 올린 팬 뿐만 아니라 모든 서울 팬들, 그리고 선수들에게도 포함되는 말이다. 적어도 다른 팀들로부터 조롱당할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수호신 공식 계정으로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올라온 뒤 치른 서울과 강원과의 경기에서 서울이 패배하자 강원 서포터스 측은 해당 내용의 걸개를 게시했다.

'연대 못하는 연대'에 관련해서도 그 배경을 밝혔다. 유 씨는 "이번에 간담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일부 소모임 회장들만 이야기를 나눈다고 해서 이해가 안됐다"면서 "소통을 하자고 요청했음에도 답변도 늦었고 두루뭉술한 대답만 반복됐다. 운영진으로서 사람들과의 소통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는 "수호신 홈페이지를 오라고 해서 갔지만 원활한 소통이 이어지지 않았다"면서 "그런데 사실 '서울라이트'라는 많은 팬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다. 수호신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팬들의 목소리를 찾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연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내용 선정 이유를 밝혔다.

배경지식을 잘 모르고 본다면 '유상훈 화이팅'이라는 걸개가 가장 의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의아함을 유발하는 것이 가장 큰 노림수였다. 유지훈 씨는 "다른 4가지 걸개는 공통된 의견을 담고 있다"면서 "뜬금없이 이 걸개를 걸었을 때 경기장에 오는 사람들이 의아해주기를 바랐다. '왜 느닷없이 유상훈이 등장했지'라면서 배경을 궁금해하실 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걸개 퍼포먼스는 휘슬이 울린 뒤 2층이 아닌 3층에서 약 2분 간 진행했다. 이것도 이유가 있었다. 유지훈 씨는 "우리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항의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가족 단위로 오신 팬분들이 너무 많았다. 팬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걸개를 걸었다. 원래도 5분 간 걸개를 들기로 계획했지만 오래 들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경기를 즐기러 오신 분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3층에서 들었다"고 밝혔다.

ⓒ 유지훈 씨 제공

사실 이날 걸개를 주도한 이들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유 씨는 "팬 커뮤니티인 서울라이트에 걸개를 들거나 목소리를 내고 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같이 하자고 글을 올렸다"면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러 오셨다. 원래 소모임 활동을 했었는데 거기에서 절반이 왔고 나머지 분들은 이번에 서울라이트를 통해서 도와주시겠다는 분들이 온 것이다. 총 15명 정도 모여서 진행했다"며 이들을 소개했다.

짧은 시간 내에 모였기 때문에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의견 추합이 중요했다. 이에 대해서 유지훈 씨는 "어젯밤에 이야기를 해서 현수막 천과 락카를 급히 공수한 뒤 오늘 아침에 제작했다"면서 "현수막은 다른 분들이 빌려주셨다. 이후 아침 11시에 모여서 바로 제작했다. 사실 우리 모두 걸개를 처음 만들어 본 것이다. 그래서 자문을 구했는데 현수막 주신 분 께서는 '잘못 만들어도 좋다. 서로 즐길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추억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걸개를 게시하면서 다른 분들을 불쾌하게 하지 말자는 공통된 의견이 있었다"면서 "사실 걸개 내용도 미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경기 전날에 사과문을 게시했더라. 이를 받은 입장에서 부딪히게 되면 그것은 서로 비방하는 것 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충격 방지 차원으로 미리 내용을 공개했다. 그리고 과격한 표현을 절대 쓰지 않기로 했다.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봤을 때 이해하기 쉽도록 합의했다"며 일련의 공통된 합의가 이뤄졌음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렇게 빠르게 의견이 모아진 것은 기존에 팬들 사이에서 공통된 여론이 형성됐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한다. 유지훈 씨는 "소위 말하는 울트라스 혹은 강성이라는 문화를 다른 팬들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그분들의 목소리가 리딩을 하는 현장팀이라는 이유로 대변 시 되는 것 자체가 악습이라고 생각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후 유 씨는 "항상 목소리 크게 응원해 주시는 것은 감사하다"면서도 "하지만 그분들에게 응원할 권한이 부여된 것이지 서울 팬 모두를 대변할 권리를 준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응원 문화가 20년 정도 됐는데 지금은 시대도 변했고 사람들도 변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문화를 바라보는 시점도 분명 변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예를 들어 옛날에는 식당에서 흡연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금연이 됐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에 법으로 제정된 것이다"라면서 "지금도 선수들에게 폭력적인 언행을 하지 말자고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쯤 되면 사회적인 합의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라며 강조했다.

평소 N석에서 자주 응원한다는 유지훈 씨는 현재 응원 문화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갔다. 그는 "난간을 잡고 점프를 하거나 응원가를 부르고 상대 선수에게 욕이 아닌 조롱을 하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라면서도 "'축구는 전쟁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관련된 모든 행위는 90분 안에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리적인 충돌 등은 90분 안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지 않나. 한 명의 우발적이면서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절대다수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유 씨는 "절대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소프트한 문화도 따라가야 한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아직까지 연대에서 회의를 통해 이뤄지는 의견 교환을 연대원들만 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상시적으로도 소통 창구가 원활하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하나의 소통 창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집단으로서 자정작용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연대 입장에서는 서울라이트라는 좋은 소통 창구가 개설되어 있지 않나"라며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 유지훈 씨 제공

이날 걸개 게시 이후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응원의 글이 오고 갔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당시 경기장 내에서는 걸개를 든 이후 철수하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팬들도 제법 있었다. 수많은 응원에 대한 소감을 묻자 유지훈 씨는 본인이 아닌 다른 동료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이에 같이 걸개 퍼포먼스를 주도한 이영욱(26) 씨는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하고 있고 모두가 이 문제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서 "우리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줬다. 반응이 좋다는 것 자체는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니 그런 피드백이 온 거라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손하현(21) 씨의 경우 "걸개를 게시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의미이지 않나"라면서 "거기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방식으로 팀을 위한 기여를 한 것이라고 본다. 그 점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제일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나 된 느낌을 받았다는 팬도 있었다. 박주형(18) 씨는 "서울라이트라는 커뮤니티는 익명이다"라면서 "그래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같은 생각을 공유해도 이 내용이 실제로 경기장에서도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존재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직접 나와서 반응까지 보니 사람들의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좋은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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