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골을 먹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아버지는 남의 아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포=김현회 기자] 아버지와 아들이 상대팀으로 만나는 특별한 일이 펼쳐졌다.

FC안양은 14일 김포솔터축구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2 2022 김포FC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터진 주현우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며 1-0 승리를 따냈다. 이 경기 전까지 5경기 연속 무승(3무 2패)에 머물렀던 안양은 무승 터널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반면 김포는 5경기 연속 무승(2무 3패)의 부진을 털어내지 못했다.

특히나 이날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띈 건 FC안양 골키퍼 정민기와 김포FC 정성진 골키퍼 코치의 만남이었다. 이 둘은 부자지간이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과 함께 코칭스태프로 선수들을 지도한 바 있다. 베테랑 골키퍼 코치다. 정민기는 FC안양의 최대 스타이면서 ‘제2의 조현우’라는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수다. 이 둘이 상대로 만나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 둘은 지난 시즌만 해도 경기장에서 적으로 만날 일이 없었다. 정민기는 K리그2 FC안양 소속이었던 아버지인 정성진 골키퍼 코치가 이끄는 김포FC는 K3리그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을 앞두고 김포FC가 극적으로 프로화에 성공한 뒤 이 둘은 한 리그에서 뛰게 됐다. 그리고 지난 달 한 번 격돌했다. 지난 달 2일 FC안양은 홈에서 김포를 상대로 3-2 승리를 따낸 바 있다. 당시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팀이 패한 것도 뼈아팠지만 아들이 세 골이나 내줬다는 점 역시 복잡미묘했다.

그리고 이 둘은 이날 처음으로 김포솔터축구장에서 상대팀으로 마주하게 됐다. 아버지가 홈으로 쓰는 경기장을 아들이 선수로 방문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이 둘은 경기 이틀 전인 지난 12일 통화를 하며 서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달했고 경기 하루 전인 어제는 아예 통화조차 하지 않았다.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경기장에 도착해서도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 직전 가벼운 인사 정도만 나눴다. 정민기의 어머니이자 정성진 코치의 아내도 이날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 전반 36분 독특한 장면이 연출됐다. 김포 공격수가 안양 페널티 박스에서 넘어진 뒤 페널티킥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정민기가 골문 앞에서 상대 키커와 마주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어여 될 순간이 왔다. 이 상황에서 아버지인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뭘하고 있었을까. 의외의 장면이 연출됐다. 김포FC 골키퍼 이상욱을 벤치 앞으로 불러들여 그 동안 전하지 못한 작전 지시를 시작했다. 아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사실을 정민기에게 알리자 “아버지가 아무래도 내가 페널티킥을 막을까봐 불안하셨던 것 같다”고 웃었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이후 주심이 VAR을 보는 동안 차분히 벤치에 앉아 있었고 주심이 페널티킥을 취소하자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선수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경기 도중 이들은 전혀 부자지간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상대팀 골키퍼와 그 상대팀 코치일 뿐이었다. 김포는 후반 10분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조향기가 헤더로 연결했지만 공이 정민기 정면으로 향했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아들이 골을 막아냈다는 기쁨보다는 우리팀이 골을 넣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더 큰 듯했다.

이들은 경기 후 이렇게 다시 다정한 부자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스포츠니어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벤치 앞에 아이스박스를 올려 놓고 노트북을 켠 채 경기를 지켜봤다. 김포가 주현우에게 실점한 뒤 후반 막판 여러 번 안양 골문을 위협하는 순간을 만들 때마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모습에 크게 안타까워했다. 아들이 상대팀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오로지 김포FC의 승리에만 집중하는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자 이 둘은 다시 부자지간으로 돌아왔다. 양 팀 선수단이 서로 인사한 뒤 코칭스태프에게도 인사를 하는 순간 정성진 골키퍼 코치와 정민기가 포옹을 나눴다. 그리고 이 둘은 한참 동안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민기는 “아버지가 공중볼을 처리할 때 경쟁하는 선수가 있으면 잡기보다는 안전하게 쳐내라는 지시를 해주셨다”면서 “경기에서 부족한 것들을 세심하게 짚어주셨다”고 웃었다. 정성진 골키퍼 코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동안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 둘은 잠시 포옹한 뒤 다시 각자의 팀으로 돌아갔다. 안양은 전남 원정을 준비해야 하고 김포는 서울이랜드와 상대해야 한다. 정민기는 “아무래도 다음 주나 되어야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뵐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원래 축구선수의 삶이란 이런 거 아니겠나. 그래도 오늘 경기장에 오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나를 더 많이 응원했다고 들었다”며 웃었다. 정민기와 정성진 코치 이야기를 고정운 감독에게 농담 삼아 전하자 고정운 감독 특유의 유머가 날아왔다. "여기 그런 부정이 어딨어. 내 새끼도 저쪽에 가 있는데 뭘." 고정운 감독의 아들은 안산그리너스에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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