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벤투호, 이왕 가는 월드컵 ‘죽음의 조’에서 싸웠으면

ⓒ2022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 페이스북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벤투호의 운명이 곧 갈린다. 2022 카타르월드컵 운명의 조 추첨식이 한국시간으로 내달 2일 오전 1시 카타르 도하의 전시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벤투호가 어떤 조에 속할지가 최대 관심사다. 벌써부터 언론에서는 최악의 조와 최상의 조를 예측하고 있다. 4년마다 이때 쯤이면 나오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하지만 나는 최상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우리의 시나리오대로 결과가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때는 멕시코를 첫 승 제물이라고 지목했다가 1-3 완패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멕시코를 만났다고 기뻐했던 게 참 낯부끄럽다.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한국은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와 한 조에 속해 최상의 조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결과는 1무2패 탈락이었다. 알제리를 만만하게 봤다가 속된 말로 탈탈 털렸다.

미국이나 가나가 우리와 한 조에 된다면 좋은 시나리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브라질이나 독일, 웨일스와 한 조에 묶일 가능성을 최악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각 포트별로 최강 팀과 최약체를 꼽으면서 벌써부터 분석에 들어갔다. 하지만 1998년 멕시코나 2014년 알제리처럼 우리가 1승 제물로 꼽는다고 그게 말처럼 척척 들어맞는 건 아니다. 또 그렇다고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처럼 아무도 승리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승리를 거두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월드컵에서 조 편성을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우리는 10번의 월드컵 연속 출전으로 여러 번 경험했다.

애초에 최상의 조는 없다. 전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32개국이 참가하는 대회인데 여기에서 못하는 팀을 꼽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포트1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가는 받는 개최국 카타르는 우리와 같은 아시아 대륙에 속해 있어 한 조가 될 수 없다. 그러면 포트1에는 벨기에, 브라질, 프랑스, 아르헨티나, 잉글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중에 우리와 한 팀에 속할 팀이 정해진다. 다 똑같은 강호다. 브라질을 만났다고 슬퍼하고 스페인을 만났다고 기뻐할 건가. 그런 건 없다. 포트2에 속한 멕시코와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우루과이, 스위스, 미국, 크로아티아도 다 거기서 거기다.

독일을 만난다고 좌절할 것도 없고 미국을 만난다고 환호할 것도 없다. 2014 브라질월드컵 때 알제리와 한 조에 속했다고 환호했던 걸 잊지 말자. 포트4에서 만날 카메룬이나 캐나다, 에콰도르, 가나도 언제든 포트1의 강호를 잡을 수 있는 팀이다. 아주 간단하다. 어차피 우리는 포트1과 포트2에서 우리보다 피파 랭킹이나 경기력이 더 나은 상대를 만나야 하고 포트4 복병의 저항을 뿌리쳐야 한다. 우리가 지금껏 월드컵에서 만난 팀 중 그나마 한 수 아래로 평가한 건 2006년 토고 정도다. 월드컵에서 조 추첨의 행운은 없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장 강력한 조에 편성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에서 브라질도 만나고 독일도 만나서 치열하게 싸우는 게 우리가 지금껏 봐 온 월드컵 아닌가. 나는 월드컵에서 손흥민이 네덜란드 반 다이크와 격돌하고 김민재가 아르헨티나 리오넬 메시를 틀어막는 멋진 도전을 보고싶다. 설령 그러다가 크게 패하고 16강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이게 우리가 4년간 기다려온 진정한 월드컵 아닐까.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도 좋고 그 벽을 넘으면 더 좋다. 원래 월드컵이란 게 스페인도 만나고 이탈리아, 아 미안하다. 프랑스도 만나는 대회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나는 벤투호가 ‘죽음의 조’에 들어갔으면 한다. 돈을 주고도 붙을 수 없는 거대한 상대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런 게 지금까지 우리가 월드컵에 열광하는 이유였다. 어차피 월드컵 조편성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없을뿐더러 이왕 격돌하는 거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최고의 상대와 최상의 전력으로 멋지게 붙었으면 한다. 우리가 굽히고 들어갈 것도 없지만 부디 내일 오전 월드컵 조 편성이 마무리되면 어떤 팀은 잡고 어떤 팀과는 무승부 이상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이런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안 나왔으면 한다.

아마 내일이면 우리 조의 포트1 팀이 3승을 거둬 조1위를 여유롭게 확정짓고 우리가 포트4 팀은 무조건 잡은 뒤 포트2 팀과 16강을 확정짓는 운명의 승부를 치러야 한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 팀이 어떤 팀이건 분석은 비슷할 거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된 적은 없다. 포트1 팀도 우리가 잡을 수 있고 포트4 팀이 16강에 갈 수도 있다. 어차피 시나리오대로 된 적은 없으니 그냥 우리는 누구와 한 조가 되더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1998년 멕시코나 2014년 알제리처럼 ‘한 놈만 패면 된다’는 바보같은 분석에 속지 말자.

어차피 월드컵은 월드컵이다. 한국이 가장 강력한 조에 속했으면 한다. 우리는 어떤 조에 들어가도 90분 동안 수비만 하다가 승점 1점에 만족하는 경기를 할 팀이 아니다. 자신감을 갖자. 이왕 만나는 거 한국과 브라질, 독일, 그리고 웨일스가 한 조에 속해 즐겁고 후회없는 도전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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