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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인천=김현회 기자] K리그 경기에서 한 인물의 은퇴식이 열렸다. 누굴까. 선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독도 아니다. 전력분석관도 아니고 단장이나 대표이사도 아니다. 바로 선수단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준 영양사를 위한 은퇴식이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1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22 김천상무와의 홈 경기를 앞두고 신명자 여사(63세)에 대한 퇴임식을 진행했다. 신명자 여사는 인천유나이티드에서 2004년 7월부터 함께 한 인물이다. 무려 18년 동안이나 선수단의 식사를 책임졌다.

인천유나이티드를 거쳐간 모든 선수들의 그가 해준 밥을 먹고 성장했다. 인천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역사나 마찬가지다. 경기 전 신 여사의 퇴임식을 앞두고 경기장에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신명자 여사의 퇴임을 기념하기 위한 영상이었다. 그가 얼마나 엄청난 역사를 쌓았는지는 등장한 인물들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근호를 비롯해 최효진, 라돈치치가 연속적으로 영상에 등장했다. 이들은 인천이 힘들던 시절 신명자 여사의 밥을 먹고 힘을 냈다. 인천유나이티드는 2003년 창단해 2004년 시즌부터 K리그에 임했고 신명자 여사는 그해 7월부터 구단과 함께 했다.

이정수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따듯한 밥을 잊지 못한다”고 했고 곧바로 데얀이 등장했다. 데얀은 신명자 여사를 ‘마마’라고 부르면서 "엄마처럼 우리는 늘 보살펴 주셨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시라"고 했다. 이어 전재호 코치를 거쳐 김도훈 감독이 영상에 등장했고 김도혁이 나와 “집밥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밥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했다.임중용 실장에 이어 2005년 인천유나이티드 준우승의 주역인 장외룡 감독이 등장해 “신 여사, 잘 지내는가”라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등장한 인물들만 보더라도 신명자 여사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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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신명자 여사는 그라운드로 등장해 기념식을 치렀다. 장내 아나운서와 함께 그라운드에 선 신명자 여사는 “18년 동안 인천유나이티드에서 일했다”면서 “그 동안 훌륭한 감독님과 선수들 스태프 직원 여러분들과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올 한해도 선수 여러분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좋은 경기 부탁드린다. 인천유나이티드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신명자 여사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컥이며 눈물을 참았다. 신명자 여사의 은퇴식에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팬들은 곧바로 준비된 걸개를 꺼내들었다. ‘숨겨진 영웅 신명자 감사합니다’라는 글귀였다. 축구장에서 축구인이 아닌 인물이 이렇게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은퇴한다는 건 대단히 특별한 일이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창단 이후 18년의 역사를 함께 한 영양사의 퇴임을 이렇게 성대하게 치렀다. 경기장에서는 신명자 여사가 인사를 건네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인천이 K리그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홈 경기장이 인천축구전용경기장으로 옮겨질 때도, 강등 위기를 겪을 때도 늘 인천과 함께였다.

신명자 여사의 퇴임 기념식이 마무리된 뒤에도 행사는 이어졌다.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입장하고 도열하자 전달수 대표이사는 신명자 여사에게 선수단 앞에서 기념패를 전달했고 조성환 감독은 화장품 선물을 준비해 건넸다. 선수단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구입한 상품권을 주장 오반석이 전달했고 임중용 실장은 구단 머플러를 목에 걸어줬다. 이뿐 아니었다. 상대팀인 김천상무에도 신명자 여사가 챙기던 선수들이 있었다. 인천에서 군대에 입대한 정동윤과 지언학이 나와 꽃다발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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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다 끝나고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도 작은 감동이 이어졌다. 경기를 앞두고 기념 촬영을 하는 선수단은 신명자 여사를 향해 “어머니, 같이 사진 찍어요”라고 외쳤고 신명자 여사는 선수단만이 찍을 수 있는 경기 전 기념사진에서 한 가운데 서 마지막을 추억했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선수들은 퇴장하는 신명자 여사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18년 동안 한 팀을 위해 일한 영양사의 멋진 은퇴식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무고사는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장에 등장해 경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신명자 여사 이야기를 꺼냈다. 무고사는 질문이 따로 나오지 않았음에도 마지막 답변을 마친 뒤 "오늘 은퇴식을 하신 우리 선수단 식당의 영양사인 신명자 여사님에게 마지막으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항상 경기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제는 은퇴하시고 편하게 쉴 수 있게 응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 구단 관계자도 "여사님의 음식을 잊을 수 없다. 특히나 국이 너무 맛있었고 직접 재료를 다 사와서 만드신 닭강정도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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