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아산 조주영이 군복무까지 미루며 그토록 간절한 이유

[스포츠니어스|남해=김귀혁 기자] K리그를 꽤 오래 본 사람이라면 2016년의 광주FC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강등권 전력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으며 8위에 안착했다. 이때 20골을 넣으며 활약한 정조국은 팀이 중하위권에 있었음에도 MVP를 거머쥐기도 했다. 모든 관심이 정조국에게 쏠렸지만 사실 축구는 11명이 뛰는 스포츠 아닌가. 당시 광주는 정조국 이외에 정동윤, 이민기, 윤보상 등 신인급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그 신인 멤버 중에 한 축을 담당하며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선수가 있다. 투입 5분 만에 프로 데뷔골을 신고하며 베스트11까지 선정되기도 했다. 화려한 시작이었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7년에 팀 내 최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 못했다. 2018년부터는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우여곡절이 그를 덮쳤다. 무슨 사연일까? <스포츠니어스>는 충남아산의 전지훈련지인 경남 남해에서 조주영을 만났다.

전지훈련 돌아다니면서 거의 모든 선수가 훈련 강도에 혀를 내두릅니다. 조주영 선수도 비슷한가요?
우선 동계는 당연히 힘들어야 하는 게 정상이죠. 그래도 나름 그 과정에서 많이 배우기도 해서 괜찮습니다. 충남아산이라는 팀에는 처음 와서 긴장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하다 보니까 예상외로 즐겁게 진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팀 분위기가 활기차서 그런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팀 분위기가 정말 좋습니다. 감독님부터 코칭 스태프까지 선수들이 똘똘 뭉치도록 도와주십니다.

부천FC1995에서 인터뷰했을 때는 젊은 선수들이 많다 보니까 활기찬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충남아산도 그런 분위기를 좀 타는 걸까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젊은 선수들만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고참 형들이나 중고참 선수들까지 서로 이끌어주다 보니까 그런거죠. 그래서 어린 선수들이 좀 더 파이팅 있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조주영 선수의 축구 인생을 좀 돌아보고자 합니다. 광주에서 우선 지명을 받고 아주대학교에 가셨잖아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우선 지명을 받으니까 광주가 나의 골수 팀이라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광주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 한다는 마음도 생겼고요. 그래서 대학교 때도 광주 경기를 자연스레 찾아보더라고요.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하는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2016년에는 프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데뷔전에서 교체 투입되자마자 5분 만에 데뷔골을 신고했는데요.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 돋고 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데뷔전에 데뷔골뿐만 아니라 첫 인터뷰도 했었거든요. 거기에 베스트 일레븐까지 들어가서 너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사실 데뷔전이 어떤 선수든지 간에 생에 한 번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골을 넣었다는 것보다도 데뷔골을 제가 할 수 있었던 점이 너무 좋았던 거죠. 그때 운이 좋게도 부모님이 경기장에 오셔서 더욱더 뜻깊었습니다. 아직도 한 번씩 그 골 장면을 찾아보는 것 같아요. 그때 그 기억을 잃지 않으려는 거죠.

교체 투입되기 전에 남기일 감독님이 특별히 지시했던 사항이 있었나요?
크게 저에게 요구했던 사항은 없었습니다. 그냥 ‘네가 하던 대로 잘하는 걸 전방에서 보여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신 거죠. 또 당시 수석코치님이 제 대학교 은사님이신 이정효 선생님이시거든요. 하프타임에 선수들 나가고 라커룸에서 저에게 준비를 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올 것 같다고 여지를 남기셨어요. 그래서 그 말씀을 듣고 더욱 열심히 몸을 풀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면 그 경기 전에 몸 상태가 특별히 좋았다거나 자신감이 있었던 건가요?
당시에 입단 동기 선수들은 한 명 한 명씩 데뷔를 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데뷔를 너무 하고 싶어서 계속 준비하고 있었죠. 그때 남기일 감독님이 제 모습을 보시면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실 그 전 경기인 FC서울전 명단에 있었습니다. 그때 감독님께서 마지막 교체 타이밍에 저를 두고 엄청 고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그때 나왔더라면 데뷔전이 더 빨랐을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어쩌면 아마 제 운이 전남드래곤즈와의 경기에 와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 말씀대로 됐던 거죠. 그렇게 골을 넣고 그다음부터는 계속 엔트리에 들어갔습니다.

당시에 데뷔골을 넣고 참 많은 축하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너무나 다 기억에 남죠. 특히 그날 부모님에게 받은 축하가 인상 깊었습니다. 사실 그때 당시에 부모님께 경기 출전 여부를 말씀 드리지 않았어요. 이후에 경기 마치고 인터뷰까지 끝나고 나서 버스를 타러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이 멀리서 보이시더라고요. 그때 부모님이 저를 보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길게도 말씀 안 하시고 “잘했다. 고생했어”라고만 하셨죠.

그 짧은 말씀 속에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데뷔 시즌인 2016년의 광주FC는 정조국 선수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조주영 선수를 포함해 당시 젊은 선수들도 센세이션한 모습을 일으켰거든요. 그때를 떠올려본다면 어땠나요?
많은 고참 선배님들에게 배운 시즌이었죠. 특히 같은 포지션에 (정)조국이형이라는 배울 점 많은 선배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조국 하면 좋은 선수인 걸 알잖아요. 물론 경기를 뛰고 싶은 욕심도 분명 있긴 했죠. 하지만 조국이형을 보면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습니다. 당시에 조국이형 뿐만 아니라 (이)종민이형, 여름형 등을 보면서 많이 따라갔습니다.

정조국 선수는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느꼈나요?
원정 경기를 다니다 보면 룸메이트가 거의 항상 조국이형이었습니다. 그런데 크게 조언을 많이 하시는 스타일은 아니셨어요. 다만 훈련이나 경기장에서 모습을 보면 많이 놀랐죠. 슈팅하는 자세나 임팩트부터 문전 앞에서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조국이형이 삼관왕(베스트11-득점왕-MVP)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에 국내 공격수 중에서는 최고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나름 임팩트 있는 데뷔 시즌을 보낸 뒤 2017년에도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2018년 앞두고 김해시청축구단으로 임대를 떠났는데요. 그 배경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2017년도에 제가 팀에서도 공격 포인트가 1등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팀이 강등됐으니까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박진섭 감독님과 유경렬 코치님이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고 계셨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구단과 에이전트 간 소통이 잘 안 돼서 갑자기 김해시청축구단으로 임대를 떠나게 된거죠. 뜻하지 않은 임대였다 보니까 착잡했죠. 그러면서 멘탈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우선지명도 받으면서 광주라는 팀에 애정을 인터뷰 초반에도 드러내셨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팀을 떠났을 때 조금 아쉬웠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아마 그때가 축구 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김해시청에 계시다가 인천유나이티드로 가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여름에 많은 팀의 제안이 왔습니다. 그중에 인천에서 먼저 연락이 온 거였죠. 사실 인천에서도 좋은 몸 상태는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어깨 탈골이 있는 상황에서 계약했거든요. 그 이후에 재활하다 보니까 몸이 좀 늦게 올라왔어요. 당시 욘 안데르센 감독님과 색깔도 맞지 않기도 했고요. 참 2018년은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제가 많이 어렸어요. 그래서 자꾸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해서 더욱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2019년도에 다시 광주로 복귀했습니다. 기분이 미묘했겠어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남들은 나아가는데 저는 제자리걸음만 한 느낌이었죠. 원소속팀에 돌아와서 기쁜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스스로 젖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의 아픔과 고통이 저를 계속 괴롭혔던 거죠. 그래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2020년에는 K3리그의 천안시축구단으로 가게 됐습니다. 조금 전환의 계기가 됐을 것 같기도 한데요.
제가 김해시청축구단에 있으면서 K리그에서 다시 한번 더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당시 윤성효 감독님도 저에게 “너는 더 위에 있어야 한다”라고도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면서 스스로의 착각에 많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 여름에 다른 팀들을 여기저기 알아보던 때였어요. 생각해보니 그 전까지는 제 위치와 현실이 어디인지 잘 모르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이것저것 따지기보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곳에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천안의 김태영 감독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이후 천안에서의 활약이 괜찮았습니다. 그때 힘들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계속 잘하고 싶었어요. 또 김태영 감독님도 아버지처럼 저에게 너무 잘해주셨거든요. 그런 믿음을 받으니까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팀의 주장까지 맡게 됐는데요. 들어보니 제 단점을 고쳐주기 위해서 주장을 시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축구인으로서 운동장 안에서의 마음가짐 같은 거죠. 또 마침 그때 천안의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인 정규리그 우승을 이뤄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많았는데요. 사실 주장이라면 개인뿐만 아니라 팀 전체를 돌봐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성장의 계기가 되지는 않았나요?
그때가 처음 성인팀 주장이었거든요. 그래서 팀을 더욱 잘 이끌어 가고 싶은 마음이 컸고 욕심도 많았습니다. 또 위치가 주장이다 보니까 선수들 한 명씩 다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양보나 배려심도 생기고 헌신도 하게 되면서 많이 배웠죠. 그 외에도 저는 K3리그에 있으면서도 언제든 다시 프로 무대로 올라가야 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훈련하면서도 천안에서 만족할 게 아니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면서 임했었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제가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김태영 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신뢰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분위기를 저에게 맞춰주셨어요. 그래서 그런 퍼포먼스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감독님께서 다시 프로 무대인 충남아산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뻤을 것 같은데요.
사실 원래는 사회 복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부모님과 이야기까지 마무리 되던 와중에 박동혁 감독님과 코치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일주일간 잠도 못 자면서 고민했어요. 그런데 옛날에 한 번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두 번 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물론 그 사이에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겁이 나면서도 자신감은 있었어요. 너무 많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 김태영 감독님에게도 전화드리면서 제 고민을 털어놨죠. 이후에 박동혁 감독님의 전화를 한 번 더 받은 뒤 결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김태영 감독님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나요?
김태영 감독님은 사실 사회 복무요원으로 근무하기를 원하셨어요. 빨리 군 문제를 해결해야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던 와중에 충남아산에 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말씀드렸죠. 그때는 또 존중을 해주시더라고요. 감독님도 항상 선택은 존중할 테니 잘 생각하고 결정하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렇게 결정이 났습니다.

마음을 굳혔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충남아산 구단에서 제 경기를 보러왔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를 좋게 봐주셨습니다. 감독님께서도 저에게 “잘할 자신 있지?”라고 계속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 믿음과 말씀에 보답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천안에서 궁금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지막 김포FC와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두 골을 연달아 허용했을때의 심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축구 하면서 준우승이 없었습니다. 결승전에서 지금까지는 다 이긴 기억밖에 없어서 준우승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렇게 돼버리니까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경기 끝나고도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주장으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였죠. 당사자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그 여파가 한 달 동안 계속됐어요. 자거나 밥 먹다가도 생각났습니다.

당시에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을 마쳤습니다. 라커룸 분위기는 어땠나요?
계속 조바심 갖지 않으려고 ‘끝까지 준비한 거 잘 하자’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김포는 정규리그에서도 계속 경쟁을 했던 팀이었잖아요. 꼭 한 번은 우리가 이겨서 끝내자는 다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웠죠.

여기서 재미난 점이 천안에서 같이 뛰던 김종석 선수가 그 김포로 이적을 했습니다. 김종석 선수에게 물어보니까 천안 팀 동료들에게 배신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저는 가기 전에 따로 (김)종석이에게 들었는데 기분이 참 묘하더라고요. 왜 하필 거기를 가냐는 생각도 있었죠. 그래도 결국 종석이의 선택이니까 존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디 잘해봐라”라고 장난식으로 웃어넘겼죠. 그런데 지금은 저나 종석이도 K리그2로 와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감)한솔이나 (이)용혁이도 부천으로 갔어요. 같이 뛰던 선수들이 상위리그에 올라온 거잖아요. 함께 경기장에서 경쟁하고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K3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제 각각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선수는 프로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보낸 뒤 K3리그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있죠. 반대로 유망한 어린 선수들도 많습니다. 프로에 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같이 뛰던 동료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기분 좋죠. 저도 사실 프로에서 많은 경험은 아니었잖아요. 천안에도 저보다 경험 많은 선배들도 있었고요. 그럼에도 저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만족하지 말아라. 프로 무대에서는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축구할 수 있다”라고요. 그리고 짧은 경험 속에서도 저는 K리그1에서 강등도 당해보고 K리그2에서 우승도 해봤거든요. 그런 걸 다 해보니까 더욱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을 앞두고 팀이나 개인적인 목표를 듣고 싶습니다.
팀 목표는 감독님 말씀으로 5위에서 6위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팀에 있는 선수들도 각자 개인의 목표가 있을 거거든요. 그 개인 목표들을 채우다 보면 팀이 좋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사실 큰 욕심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욕심이 너무 생기더라고요. 제 포지션이 스트라이커고 팀의 9번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득점왕 경쟁도 해보고 싶고요. 공격포인트도 두 자리 이상은 기록하고 싶습니다. 물론 팀에 헌신적인 플레이도 잘 하고 싶습니다. 이런 개인 목표를 채우다 보면 팀도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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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영은 한동안 팬들에게 잊혀졌던 선수였다. 그 사이에 겪은 많은 일들은 그런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꿋꿋이 견뎌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난해 주장까지 맡으며 내면의 성장도 이뤄냈다. 올 시즌은 군 복무 의무까지 제쳐두고 다시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만큼 조주영의 올 시즌은 간절하다. 그래서 그의 2022년이 더욱 기대된다.

gwiman@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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