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거제=김귀혁 기자] 해외 축구를 보는 팬들이라면 익숙한 선수다. 이재성의 유럽 무대 시작점이었던 홀슈타인킬에서 동고동락했다. 물론 이재성보다 독일 무대 연차로만 따지면 선배다. 한양대학교에서 2년여간 활약하며 U리그 정상급 풀백으로 기대를 받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선택은 국내가 아닌 해외 무대였다. 2015년부터 함부르크SV 2군 팀에 입단하며 기대를 받았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1군에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2군에서 머무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프로 데뷔를 위해 당시 분데스리가 2부였던 MSV뒤스부르크에 입단했으나 출전 시간이 길지 않았다. 이후 홀슈타인킬에서 한 시즌을 보낸 서영재는 2020년 여름 국내로 복귀했다. 꾸준한 출전 기회를 보장받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시즌 대전의 주전 왼쪽 풀백으로 활약하며 그 목표를 이뤄냈다. 한 시즌을 꾸준히 소화한 서영재의 느낌은 어땠을까.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스포츠니어스>는 대전의 전지훈련지인 거제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전지훈련 강도가 지난 시즌에 워낙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이민성 감독님 말씀으로는 올해 강도를 조금 줄었다는데 어떠신가요?

작년보다 줄은 건 맞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힘들어요. 작년에는 유산소를 많이 해서 힘든 면이 있었거든요. 올해는 순발력이나 스프린트 위주의 훈련으로 바뀐 것이 차이입니다.

선수들 반응도 궁금합니다.

다 힘든 건 똑같은 것 같아요. 똑같이 힘들다 보니까 서로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아요.

현재 룸메이트는 누군가요?

고등학생 배준호 선수라고 있습니다. 평택진위FC에 있던 선수인데 올해 들어왔습니다.

고등학생 선수와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저를 많이 어려워하다 보니까 주로 단답형으로만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맨날 옆에서 장난만 치죠. 그래도 처음에는 말도 못 걸고 눈도 못 마주쳤거든요. 방에도 앉아만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편해졌나 봅니다. 제가 밖에서 들어오면 형 들어왔는데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냐고 말합니다.

올해는 스프린트 위주의 훈련을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빠른 사람 중에 대회 나갈 사람 없냐고 해서 시작했던 거죠. 엘리트 스포츠로 전문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년 중에서는 마침 제가 제일 빨랐습니다. 어렸을 때라 100m가 아니라 80m 대회에 나갔는데 그때 강원도 원주시 대회에서는 1등을 했습니다. 이후에 강원도 대회에 나가서는 3등을 했죠.

어렸을 때 기본적으로 빠른 발을 가지고 계셨군요. 그전에는 축구를 취미로 했을 것 같은데 갑자기 축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축구를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에 너무 심하게 빠져서 성적이 바닥을 치더군요. 부모님도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공부 쪽으로 시키기를 원하시던 상황이었죠. 그렇게 지내다가 초등학교 때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스카우트하러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누가 제일 축구 잘하냐고 물어서 저를 데려갔던 거죠.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면 축구 시작 전에는 학원을 제법 다니셨겠군요.

엄청 많이 다녔죠. 그래도 축구 때문에 학원을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틈만 나면 축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 좋아했던 과목을 꼽으라면 영어였습니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재밌었던 거죠. 반면에 수학은 정말 싫어했습니다.

부모님이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엄청 반대하시지는 않았어요. 아마 속으로 축구가 힘든 거 다 아니까 '그만두겠지'라는 생각으로 시키신 것 같기도 해요.

그러면 이후에 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던 건가요? 사실 이 질문을 드리는 이유가 전학을 많이 하신 것 같아서 그 배경이 궁금했거든요.

처음에 원주에서 축구를 하다가 감독님이 나가셨습니다. 그러면서 코치님들이 다 찢어지셨죠. 이때 한 코치님이 저와 함께 가자고 해서 천안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후에 천안 성거초등학교에서 졸업을 한 거죠. 그때 가족들과는 떨어져 지내서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만 버스로 원주를 갔다 오곤 했죠.

그렇게 축구를 계속하시면서 한양대학교에 입학하셨습니다. 그때 U리그에서 활약이 좋았는데 해외 리그로 이적을 추진하셨잖아요.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느 리그에서나 잘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같습니다. 그런데 선수마다 꿈은 다르겠지만 빅리그로 가는 것은 대부분의 선수가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때마침 분데스리가에서 먼저 연락이 온 상황이었습니다. 테스트를 한 번 보자고 해서 갔는데 거기에서 다행히 좋게 봐주신 거죠. 게다가 다른 리그도 아니고 분데스리가에 팀도 명문 팀인 함부르크잖아요. 바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테스트 당시 특히 컨디션이 좋았거나 자신감이 있던 상황이었나요?

사실 그때 컨디션은 엄청 안 좋았어요. 대학생 때인데 그때가 고등학생 때보다 급성장을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가던 또래 연령별 대표팀(U-20)에 그 위에 형들 대표팀(U-23)까지 갔었거든요. 그렇게 두 개 대표팀도 가면서 대학교 연맹 대표팀도 오가던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추계 전국대학축구연맹전 끝나고 바로 테스트를 보러 갔습니다.

에이전트도 제가 피곤한 것을 아니까 '네가 어떤 선수인지만 대충 보여주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선수가 막상 갔는데 어떻게 대충해요. 무려 분데스리가에 함부르크였잖아요. 다행스러운 건 그날 이상하게 잘 됐어요. 기존에 좋지 않은 컨디션에 시차 적응까지 겹친 상황이었는데도요. 경기는 뛰지 않았지만 정말 이상하리라 만큼 잘 됐습니다. 그렇게 테스트를 봐서 합격한 거죠.

ⓒ프로축구연맹제공

그렇게 꿈에 그리던 독일 생활을 시작하셨는데요. 첫 해외 생활이기도 하고 초반에는 많은 출전을 하지 못하셔서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독일에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그때 엄청 힘들었어요. 첫 팀인 함부르크에 3년 정도 있었는데 계속 2군에만 있었거든요. 그래서 도중에 계속 돌아오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국내에 오려고 연락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독일 생활 중에도 운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2군에 있다 보니까 거기에 2군 감독님이 계시거든요. 그런데 그때마다 저를 좋게 봐주는 감독님들이 계속 남아달라고 요청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본인이 책임지고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도 했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도중에 해임돼서 나가셨습니다. 저를 처음에 뽑아준 감독님과 단장님도 뽑은 지 얼마 안 돼서 두 분이 나가셨죠.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많이 자고 휴식을 취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극복했다기보다 그냥 버텼던 기억입니다.

보통 해외 생활하시는 분들은 주변에 친구들이나 시설이 없어서 힘든 적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함부르크는 괜찮았나요?

하숙집 형태로 가족분들 집에서 살아서 크게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축구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점이 힘들었던 거죠. 그래서 딱히 취미도 없었고 정말 축구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마 외국에 있는 선수들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훈련 끝나고 특별한 날 아니면 보통 집에서 핸드폰을 하거나 자죠.

그렇게 함부르크에서 3년 정도 지내다가 뒤스부르크에 가셨습니다. 그 과정도 궁금해요.

함부르크 마지막 해 당시에 저희 멤버가 되게 좋았습니다. 또 아무리 2부리그라 해도 어린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많이 보러 왔거든요. 당시 멤버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다 데려오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감독님도 저에게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이번에는 그 감독님이 1군 감독님이 나간 다음에 그 자리를 맡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저를 1군으로 데려갔죠. 심지어 감독님 방에서 미팅하는데 곧 경기 뛸 꺼니까 축하한다고까지 이야기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에 명단에서 빠져있는 거에요. 감독님은 데뷔를 시키려고 했으나 아마 구단에서 막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쨌든 그 일을 겪은 이후에 여기는 아닌가 싶었습니다. 때마침 2부리그에서는 잘 하는 와중에 뒤스부르크가 저를 좋게 봤던 거죠.

감독님이 축하한다고 했을 때의 느낌과 반대로 다음 날에 명단에 빠졌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라 더 좋았죠.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제 TV 나오니까 구경하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다가 갑자기 다음 날 명단에서 빠지니까 이게 뭐지 싶었어요. 그 이후로 구단에서 막았다는 것을 알고 섭섭하기도 했죠.

그 이후로 이적하겠다고 마음을 굳으셨군요.

마침 그때가 시즌 끝난 무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바로 나간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2군에 있다가 1군에서 훈련하니 어떤 점이 가장 달랐나요?

1군 훈련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더 무거웠습니다. 아무래도 국가대표 선수들도 있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2군은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밝은 분위기가 분명 있거든요. 라커룸 분위기도 아주 달라요. 2군은 노래 틀어놓고 까불까불 장난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서로 뛰어다니면서 놀기도 하고요. 반대로 1군의 경우에는 그런 것들이 거의 없죠. 라커룸도 조용하고 훈련 이후에는 바로 퇴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그런 경험 이후에 결국 뒤스부르크로 가게 됐는데요. 뒤스부르크에서의 데뷔전 상대가 함부르크였다 보니까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정말 너무 특별했죠. 사실 그때도 초반에는 거의 모든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그래서 데뷔전 직전에도 한국에 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거의 끝난 상황이었고요. 당시에 말씀 드릴 때도 훈련도 열심히 참여했는데 제가 부족한거니까 가겠다고 말했죠. 뒤스부르크에서도 그동안 헌신해줘서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적료는 많이 안 부르겠다고 배려해줬죠.

그렇게 이야기가 된 상황에서 전반기 마지막 경기 때였죠. 저는 그 경기를 하고 한국으로 가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 경기에서 당시 주장이 옐로카드를 받았습니다. 그 카드가 누적 카드 5장 째라 징계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해당 포지션에 뛸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거죠. 물론 저는 신경도 안 쓰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평소에 말도 안 걸었던 감독님이 뛰고 싶냐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함부르크 출신인 걸 알았던 거죠.

재미난 점은 그 감독님하고 제법 논쟁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를 출전시키지 않다 보니까 많이 따졌기도 했거든요. 한국하고 문화가 다르다 보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거죠. 어쨌든 그런 감독님이 출전시켰는데 그 경기에서 마침 되게 잘했습니다. 또 경기에 지기는 했지만 많은 축하를 받았어요. 그런데 팀 동료들보다 상대인 함부르크 선수들에게 더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제가 선발인 것을 알았을 때도 함부르크 선수들이 먼저 저에게 와서 축하한다고 말해줬습니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치진이나 장비 담당하시는 분들에게까지 축하를 받았습니다. 너무 기분 좋았어요.

한국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었던 상황에서 그런 활약을 펼쳐서 기분이 참 묘했을 것 같아요.

당시에 팀을 구체적으로 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가는 것은 확정이었죠. 그런데 당시 지역 언론에서 데뷔전 이후에 저를 좋게 조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더니 뒤스부르크 구단에서 갑자기 팔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그 이후로 6개월 정도는 필요한 상황마다 경기장에 들어오기는 했습니다.

독일 무대에서 뛰기를 열망하셨던 거잖아요. 경기장에 제법 들어갔다 보니까 많은 의미 부여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독일은 워낙 시장이 넓습니다. 그래서 잘만 하면 좋은 팀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확실히 느낀 것이 함부르크 때였습니다. 당시 2군이니까 리그로는 4부 리그인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경기를 뛰면 2부 리그에서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뒤스부르크에서도 경기를 뛰면 1부 리그에서도 관심있게 본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어서 더욱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뒤스부르크가 강등을 당했잖아요. 그러고 나서 홀슈타인 킬(이하 킬)로 이적을 했는데 그때 이재성 선수를 처음 만난 건가요? 워낙 서로 친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선 이적하게 된 건 계약에 강등이 되면 나갈 수 있는 조항이 있어서 갈 수 있었습니다. (이)재성이 형은 그전에 뒤스부르크에 있을 때 경기 중에 처음 봤습니다. 여기에도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뒤스부르크에서 경기를 뛰다 보니까 그때 킬에서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킬과의 경기가 있었는데 원래 제가 들어가는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도 그 주장 선수가 옐로카드 누적 징계로 인해서 제가 출전하게 됐습니다. 그 경기에서 마침 잘하기도 해서 킬에서 좋게 봐주셨죠.

이재성 선수와는 얼마나 친했던 건가요?

그 형이 대표팀에 가서 못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붙어 있었죠. 집도 차 타고 5분 정도 거리여서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같이 있었습니다.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워낙 많아서 하나 꼽기가 어렵네요. 그냥 가족처럼 지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디 자주 놀러 갔냐는 질문도 많았는데요. 사실 둘 다 운동 끝나고는 힘들어서 거의 그러지 못했죠. 주변에 쇼핑 갔던 정도가 있을 것 같네요. 또 그 지역이 바다라서 같이 수영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엄청 친한 형이었다가도 '아 이 형이 국가대표구나'라고 느낄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건 뒤스부르크 때 그랬던 것 같네요. 전혀 모르던 형이었는데 서로 맞대결한 경기가 있어서 그 전에 인사 드렸죠. 메시지로 "안녕하세요. 뒤스부르크에서 축구하고 있는 서영재입니다. 경기 때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보냈습니다. 그때는 사실 아우라가 있었는데 친해지면서 좀 없어졌죠(웃음). 또 재성이 형이 국가대표긴 하지만 나이 차가 많이 안 나서 편하기도 해서 그런 거죠. 고등학교 때 대학교와 경기하면 몇 번 보기도 했었고요.

그때 재성이 형뿐만 아니라 (이)청용이 형도 알게 됐죠. 경기 끝나고 뒤스부르크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아셔서 그런지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너무 놀라서 어떤 말도 안 나왔습니다. 그냥 처음 뵙는다고 인사드렸죠. 심지어 청용이 형이 국가대표를 갔다 오셔서 명단에 제외된 상황이었거든요. 그럼에도 경기장에 오셔서 끝나고 저희 라커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거죠. 또 당시에 뒤셀도르프라는 지역에서 사셨는데 뒤스부르크에서 20분이면 갔거든요. 그래서 가족분들이 독일 오시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계속 밥을 사주셔서 감사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동계훈련 때도 숙소가 같으니까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후 킬에서 대전으로 오셨습니다. 독일에서 5년 정도면 꽤나 자리를 잡으려는 시기였을 것 같은데 국내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킬에서 전반기에는 좀 뛰었다가 후반기 때 그 빈도가 점점 줄었죠. 그래서 이제는 경기를 꾸준히 뛰고 싶은 곳에 가기를 원했습니다. 당시에 킬에서는 연장 계약 의사가 있었는데 제가 거절했죠. 물론 군대 문제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에서 대전으로 오시고는 어떠셨나요. 독일과 국내 무대의 차이도 제법 느꼈을 것 같은데요.

축구 스타일은 꽤나 비슷했습니다. 템포는 독일이 훨씬 빠르기는 했는데 전체적으로는 유사했어요. 반면에 생활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죠. 외국은 팀 생활에 있어서 자율적이라 자유분방했거든요. 반면에 한국에 오니까 규율이나 제한되는 상황이 분명 있었습니다.

아까 독일에서는 큰 취미 생활이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국내에 와서는 그래도 조금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딱히 취미생활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꼽으라면 컴퓨터 게임 정도네요.

어떤 게임을 하시죠?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을 합니다. 독일에 있다 보니까 잘 몰랐는데 그 사이에 많은 게임들이 나왔더라고요. 잘 하는 편은 아닌데 그래도 즐기면서 가끔 하는 편입니다.

같이 하는 팀원이 있나요?

(이)현식이가 잘해요. 팀 내에서도 꽤나 고수입니다. 저는 잘 못하니까 주로 약 같은 거 날라주는 스타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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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는 꾸준히 주전 멤버로 풀 시즌을 소화했습니다. 프로에서 풀 시즌을 소화했던 적이 드물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한 경기 한 경기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보충제도 많이 챙겨 먹으면서 몸 관리도 신경 썼습니다.

고대하던 경기 출전이 한국에서 좀 많아졌습니다. 기분이 어떠셨나요?

기분은 물론 좋긴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뛰니까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더군요. 부주장까지 하다 보니까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부주장을 맡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진섭 선수가 주장이었는데 저와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선택이라기 보다 저에게 권유를 했던거죠. 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하게 됐습니다.

좀 민감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 중반에 이민성 감독님이 공개 석상에서 서영재 선수에게 쓴소리를 했는데요. 당시 어떤 기분이셨나요?

당연히 기분은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못 한 거라서 그러신거죠. 잘 했을 때는 칭찬도 받고 반대로 못 했을 때는 지적도 받는 거잖아요.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경기력과 결과가 좋아졌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전반기 때와 후반기 때 감독님의 요구 사항이 조금 달랐습니다. 전반기 때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축구를 원하셨죠. 그러다가 후반기 때는 그런 부담을 줄이면서 기술적인 부분을 강조하셨습니다. 저희 선수단에는 후반기 때 원하셨던 것이 좀 더 맞았던 거죠. 그렇게 개인이나 팀의 경기력이 올라오게 됐습니다. 또 그런 상황이 되니까 부주장으로서 주위 선수들도 잘 챙기게 됐고요. 전반기 때 할 수 없던 것들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좋은 분위기를 탔습니다.

지난 시즌을 돌이켜 봤을 때 승강 플레이오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으실 것 같아요.

아쉽다는 기분도 들지 않았습니다. 끝나고 서로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충격을 많이 받아서 그랬던 거죠.

사실 평소 시즌 준비하고 플레이오프 준비는 기분이 달랐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정규 시즌을 마친 뒤에 시간이 많았잖아요.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더 많은 집중을 했던 것 같습니다. 몸 관리에 있어서도 '할까 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무조건 안 했죠. 어디 놀러 가고 싶어도 참고 축구에만 집중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저 개인뿐만 아니라 선수단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시즌 앞둔 각오 듣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목표는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작년에 우리가 실패했던 그 과정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시즌을 보내고 싶습니다. 팬분들께도 항상 승격한다고만 하고 그러지 못했잖아요. 무슨 축구를 하겠다는 이야기보다는 그 약속을 이뤄드리고 싶습니다. 또 팬분들이 있어서 저희가 축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응원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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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달리 서영재는 독일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출전 기회를 보장해 준다던 감독들은 갑자기 팀을 떠나곤 했다. 별다른 취미 없이 그저 그 상황을 버텼다는 그의 이야기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이후 대전에 온 서영재는 지난 시즌 많은 출전 기회를 잡으며 그 한을 풀었다. 기대주에서 성숙한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런 서영재의 올 시즌 시선은 팀의 승격을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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