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거제=조성룡 기자] '황금 세대'의 주역은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올 시즌을 앞두고 울산현대에는 새로운 선수가 등장했다. 오인표다. 오인표는 과거 울산현대 유스 팀인 울산현대고에서 뛰다가 2018년 울산에 입단했다. 하지만 그는 K리그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곧바로 오스트리아 무대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4년의 시간을 보낸 뒤 오인표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신을 키워준 친정팀 울산에서 K리그 데뷔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울산의 전지훈련장인 거제도에서 오인표와 마주하고 앉았다. 이동경, 원두재 등이 친구라는 오인표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생각보다 조용하다.

만나서 반갑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울산현대 전지훈련에 합류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형들과 아직 덜 친해서 어색한 면이 있었다. 그래도 하루하루 지나면서 형들과 친해지니 좀 재미있게 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울산으로 돌아왔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울산에서 보내 친근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프로에서 경쟁을 해야 되는 거니까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해외 생활은 어땠는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울산을 거쳐 성균관대로 진학한 이후 해외 진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울산에서도 허락을 해주셔서 임대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LASK 린츠로 가게 됐다. 이후 FC 유니오즈로 가서 뛰게 됐다.

이 때 내 나이가 22세였다. 해외로 혼자 날아가 혼자 지내야 했다. 그리고 이제 말도 통하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해야하는 것이라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걱정한 것만큼 많이 힘들긴 하더라. 하하. 혼자 밥도 해야하는 등 축구 외적으로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대전하나시티즌의 김재우는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알았다고 하더라.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쉬운 생활은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것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필요한 것을 하는 것도 제약이 많았다. 장 보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버스 타는 것도 어려웠다.

장을 보러 갈 때 처음에는 번역기를 주로 썼다. 대파를 사야 하는데 쪽파를 살 수는 없으니 번역기를 활용했다. 이렇게 생활하다가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극복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거주하는 한인 교민 분들이 가르쳐주셔서 하나씩 극복하고 적응해서 이겨냈다.

요즘 번역기가 정말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이 유용하다. 물론 번역기를 이용하면 내 의도와 조금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어느 정도의 의사소통은 해주는 것 같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독일어를 배우는 게 낫지 않았는가.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한다. 내가 처음에 오스트리아에 가서 독일어를 써야 한다고 들었다. 그 때 좀 열심히 하려고 독학으로 독일어를 배우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나니까 한계가 오더라.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내가 초등학교 이후로 공부를 거의 안했다. 차라리 영어라면 내가 듣기라도 많이 해봤으니 조금 더 편안하게 배웠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어는 내게 완전히 생소한 단어였다.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다. 하하.

그래도 해외 생활 초반에는 괜찮았다. 내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좀 버틸 만 했다. 혼자 있는 게 즐겁고 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조금씩 힘들어졌다. 향수병인 것 같은 느낌도 받아서 쉽지 않았다. 한 1년 정도 지나니까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당신은 오스트리아에서 4년이나 버텼다. 비결이 뭔가?

초반에는 내가 유럽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크게 갖고 갔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고 했다. 그렇게 1~2년이 지났다. 그리고 힘들어질 때쯤 홍현석 선수가 내가 있는 팀으로 왔다. 그 친구와 재밌게 보내다보니 4년 정도가 지나게 된 것 같다.

홍현석의 합류가 내게는 큰 도움이 됐다. (홍)현석이가 우리 팀에 오면서 집에서 함께 살았다. 방은 따로 쓰지만 같은 집에 살았다. 같이 한국 음식도 많이 만들어 먹었다. 요리는 내가 더 잘한다. 현석이도 요리를 좀 하지만 나보다는 약하다.

그리고 둘이 함께 대화도 많이 하고 산책도 많이 다니고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다. 서로 외로운 마음을 털어낼 수 있고 함께 힘이 되어줄 수 있으니 버텨낸 것 같다. 코로나19 시국에도 이렇게 함께 버텨냈다. 홍현석이 합류했을 때가 코로나19가 터졌을 때였다.

그 때는 훈련도 거의 하지 못했다. 경기도 없었다. 코로나19 확산이 심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홍현석과 둘이서 집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홍현석과 서로를 목마 태우고 스쿼트를 했다. 집에 딱히 기구가 없다보니 몸을 유지하려고 이렇게 훈련하고 밖에 나가서 막 뛰기도 했다.

사실 오스트리아에 있던 도중 부상도 당했다고 들었다.

겨울이었다. 훈련 중에 점프를 하다 착지하는 과정에서 뼈가 부러졌다. 병원에 가보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리고 6개월 정도 재활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수술을 받고 회복을 했다. 약 6개월 정도가 지났다. 문제는 계속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병원에 가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상 부위에 염증이 생겼다고 하더라.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총 1년 정도를 쉬게 된 것 같았다. 선수가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참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해외에서 버티고 버텼다.

어렵게 유럽에 나간 만큼 거기서 내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더 올라가고 싶은 욕심도 컸다. 그러다보니 시간 지나는 것도 모르게 4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것 같았다. 해외에 한 번 나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4년 살았던 오스트리아는 살기 좋은 곳이었나?

여행으로는 참 좋은 곳이다.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사람들도 정말 여유롭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살기에 좀 답답한 면이 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택배 하나 받는 것도 빠르면 일주일 정도 걸린다. 그리고 마트 등 이런 것들도 오후 6시면 문을 다 닫는다.

생필품을 살 수 있는 곳들이 오후 6시면 문을 닫으니 어려운 점이 제법 있었다. 대신 주유소에 딸려있는 편의점 하나만 열려 있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식재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것만 살 수 있는 정도다. 이런 부분은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만일 스마트폰이 고장났다고 해도 바로 수리가 안된다. 우리나라는 가지고 가면 당일에 바로 A/S가 된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아니다. 맡기면 며칠 있다가 수리가 되는 수준이다. 그러면 그 며칠 동안에는 연락이 하나도 안되는 거다.

한 번은 스마트폰 요금을 내지 않아서 정지가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요금이 밀렸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데이터도 사용할 수 없어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녀야 했다. 요금 내는 방법도 몰라서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갔다. 거기에 와이파이가 있었다. 와이파이를 연결해 요금 내는 방법을 찾아서 겨우 요금을 냈다.

그 정도면 오스트리아에서 스마트폰을 개통한 것도 신기한 수준이다.

예전에 교민 한 분이 나를 도와주신 적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생활 초반에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까 통역 등을 도와주셨다. 이 때 스마트폰 개통 업무 등 자잘한 것도 많이 도와주셨다. 그런데 그 이후로는 나 혼자 생활해야 하니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축구에 관해서도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다.

일단 내가 한국에서 뛴 경험은 아직 없기 때문에 한국과 세세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오스트리아의 경우 훈련장 안에서 경쟁도 엄청 심하고 텃세도 좀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외국의 경우 힘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실제로 부딪쳐보니 확실히 힘의 차이가 많이 크더라.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프로로 오래 살아남기 위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프로에서는 그 사람의 장점이 하나쯤 더 부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뛰어보니 나 자신은 모든 게 뭔가 좀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도 하나를 크게 발전시켜서 극대화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4년을 돌아보면 해외 생활에 만족은 못하는 것 같다. 부상을 당한 시기도 길었고 부상을 자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해외 경험을 쌓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사실 해외에 가게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혼자 해결해야 하는 일도 많아지고 훈련장 안에서 말도 안통하는 친구들과 뛰어야 한다. 처음에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축구는 항상 트렌드가 빠르다. 그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축구를 어린 나이에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큰 장점이다. 어릴 때도 그렇고 언제든지 해외에서 뛰게 된다면 느끼는 것이 클 것 같다.

그리고 당신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결심하게 됐는가?

물론 이렇게 돌아온 것이 내가 꿈꾸던 해외에서의 마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해외에 더 머무르지 않는다고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배운 게 많이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이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내가 한 팀에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런 타이밍에 한국에 돌아가서 조금 나를 새롭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울산에 와서 함께 훈련하니 어떤가?

정말 한국에 와서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훈련장 안에서 한국말 하면서 한국말 다 알아듣고 형들과 친구들과 재미있게 훈련하고 싶었다. 실제로 울산에서 그렇게 훈련하니까 정말 행복했다. 정말 울산에서 첫 훈련을 하는 순간 '이게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에서는 많은 형들이 나를 잘 챙겨주신다. 다들 착하시고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동경과 원두재, 이동준 등 친구들을 알고 있기에 잘 어울리면서 지내고 있다.

특히 김태환 형 같은 경우는 대표팀 차출로 인해 아직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같은 포지션이라 많이 배우고 싶다. 그 와중에 조수혁 형은 '베리나히쑤' 같이 찍자는 이야기는 안하고 구독 하라고 해서 바로 유튜브 구독 버튼을 눌렀다.

당신 친구들의 캐릭터는 대부분 세다(이 인터뷰는 이동준 등의 이적 전 진행됐다).

나는 얌전한 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듣고 있다가 중재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시끄러운 친구들 틈에서 얌전한 캐릭터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하. 내가 일단 이들에게는 말로 다 진다. 다 져줘야 한다. 안져주면 내가 더 힘들어진다.

뭐 그렇다고 친구들이 나를 특별히 괴롭히거나 놀리는 건 없다. 그냥 동네 친구들처럼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거나 재밌게 장난 치는 거다.

당신 친구들도 놀림거리가 많다. 원두재는 백태클을 이야기하면 되고 이동경은 악수 거부, 이동준은 토미야스 이야기를 하면 된다.

기사로 보거나 영상으로 봤다. 이거 참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런데 자기들끼리는 서로 그 얘기를 하면서 놀리더라. 워낙 다들 승부욕도 강해서 그런 일이 있었고 서로 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런 놀림 받을 만한 일에 휘말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하.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사고친 건 그 친구들 몫이다. 내가 옆에서 위로가 되거나 도움이 되줄 수는 있지만 그걸 '커버' 쳐주지는 못하겠다. 일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잘 관리하는 게 내 몫이다. 올 시즌 이들이 평온한 1년을 보내면 그건 내 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돌아오니 울산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는가?

울산은 내가 떠나기 전에도 강한 팀이고 정말 좋은 팀이었다. 그리고 해외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울산의 경기나 소식을 챙겨봤다. 그런데 울산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런 팀에 돌아올 수 있어서 감사했다.

울산 유스 선수들은 특히 우승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같다.

나도 울산현대고 시절에도 우승에 대한 갈망이 많이 컸다. 그래서 승부욕도 정말 세다. 평소에는 얌전하지만 축구할 때는 다르다. 그렇기에 K리그1 우승에 대해서는 언제나 갈망하고 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럴 것이다.

특히 울산현대고 시절에 우승을 많이 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물론 그 때는 고등학교 대회지만 우승을 해봤기 때문에 우승의 맛이 어떤지 정말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승을 더욱 꿈꾸는 것 같다.

홍명보 감독님은 '원 팀'을 많이 강조하신다.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1순위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 이야기에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홍 감독님은 훈련장 안에서 정말 열정적으로 가르치신다. 훈련하면서 배울 게 많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제 당신의 첫 K리그가 시작된다.

일단 부상 없이 전지훈련을 잘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일 것 같다. 그리고 또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팀이 승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팀에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 크다.

경기 출전은 내가 노력을 해야 한다. 일단 출전하기 위해서는 팀 안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준비를 잘하고 보완할 점을 보완하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 기회들을 잡게 된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

팬들께는 모든 선수들이 다 열심히 하는 법이지만 내가 정말 열심히 하고 승리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정말 팀에 헌신하는 선수라는 인상을 드리고 싶다. 처음에는 '우리 팀에 저런 선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차츰 경기할 때마다 열심히 하고 팀을 위한 선수라는 생각을 심어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식상한 질문을 하겠다. 올해 울산 우승할 수 있을까?

우승할 거다. 우승할 수 있다.

오인표는 조용한 인물이었다. 이런 선수가 축구장에 들어가면 180도 달라진다는 것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오인표의 이야기에는 일종의 자신감 또한 묻어나 있었다. 해외 생활을 바탕으로 오인표는 이제 울산의 우승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다.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있다. 그런 만큼 오인표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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