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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부산=김귀혁 기자] 선수의 가치는 다양한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이적료나 연봉과 같은 금전적인 요소가 있다. 팬들의 평가 등으로 이루어진 무형적인 요소도 이 중 하나다. 그리고 최근에는 게임 속 능력치가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일부 구단은 'EA'에서 만든 'FIFA(이하 피파)' 능력치가 적힌 카드를 선수들에게 보여준다. 이에 해당 선수는 본인의 능력치에 대해 만족하거나 불평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만큼 게임의 능력치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체계화되어있다.

또한 게임사에서는 여러 이벤트로 획기적인 카드를 내놓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2017년 '피파온라인3'의 사례가 있다. '한국 축구를 구원하기 위해 축구의 신이 보낸 다섯 사도'라는 컨셉으로 당시 주목받은 다섯 명의 유망주 카드를 만들었다. 비록 만우절 기념으로 한정 사용해야 했지만 당시에 바라본 2022년도의 가상 능력치가 설정됐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받은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스포츠니어스>는 이 다섯 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한찬희를 김천상무의 전지훈련지인 부산에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전지훈련지를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선수마다 너무 힘들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도 상무의 전지훈련은 조금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우선 지금 있는 인원들 전부 다 훈련소를 완전히 마치지 못해서 직전 12월에 4주 훈련을 받고 온 상태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너무 힘들게 하다 보면 부상 선수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거든요. 감독님께서도 단계별로 천천히 올리자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맞춰서 지금 2주 차 정도 됐는데 조금씩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막까지 얼마 남지 않았긴 했지만 굳이 그때 100%의 컨디션을 맞추지는 않으려 합니다. 시즌을 길게 보면서 컨디션을 올리는 데 주력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중반쯤에 상무에 합류했습니다. 첫 동계 훈련이라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상무에서 동계훈련을 온다는 것 자체가 사막에 오아시스 같은 상황입니다. 밖에 나와서 훈련할 수 있는 거 자체가 정말 감사하죠. 물론 군인으로서 신분을 망각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안 좋게 보여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끝까지 제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은 잊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이 해방감은 너무 좋습니다.

지난 시즌 돌이켜보면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해서 좀 아쉬웠을 것 같아요.

제가 6월에 입대했습니다. 그때가 서울에서 전반기에 경기를 뛰다가 가벼운 발목 부상을 안고 복귀하려는 찰나였거든요. 그래서 상무에 들어와서는 딱히 부상 때문에 뛰지 못했다기보다 기존에 있던 선임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신병들이 경기에 투입될만한 상황은 아니었죠. 그리고 감독님께서도 요소요소에 필요한 사람들만 한두 명씩 투입시켰습니다. 그때 많은 선택을 받지 못했던 거죠. 그래도 그 기간 동안 상무에서 어떻게 슬기롭게 남은 1년을 보내야 할지 생각한 것 같습니다.

김천은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다수 포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찬희 선수도 훈련하면서 느낀 점이 많겠는데요.

지금 팀에서 나이대가 1994년생 형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 나이대가 선수 생활하면서 몸이 제일 좋을 때거든요. 그런 최상의 전성기를 누리는 선수들을 보니까 소속팀에서 느끼던 것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예전에 팀에 있을 때는 어린 선수들부터 베테랑까지 연령대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역할과 할 수 있는 범위가 정해져 있었죠. 그런데 여기는 다 비슷한 나이대에 좋은 몸 상태인 선수들이 많아서 더 치열한 것 같습니다. 보통 팀에서 베테랑들은 연륜을 중시하고 신인에게는 패기를 기대하잖아요. 여기에는 그런 구분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평소에 같이 뛰어보고 싶었던 선수도 있었나요?

동기인 고승범 선수가 떠오릅니다. 이전에는 수원에서 워낙 머리가 길어서 돋보였던 정도로만 인식했었는데요. 직접 부딪혀보니까 제가 보완해야 할 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비할 때의 적극성이나 공을 받을 위치를 찾고 공을 관리하는 능력 등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많이 배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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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한찬희 선수 데뷔할 때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2016년에 데뷔를 하셨는데 그때 많은 경기를 소화했더라고요. 프로 무대에 적응도 해야 하고 떨리는 마음도 있었을 텐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하셨나 궁금합니다.

그때 고등학교 졸업하고 막 올라온 상태여서 주전이라기보다는 교체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 당시에 노상래 감독님이셨는데 감사하게도 출전 시간은 많이 없었지만 기회는 자주 주셨거든요. 그러면서 경기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뭘 해야겠다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대신 프로를 처음 경험하다 보니까 출전 자체에 감사했던 시즌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2017 FIFA U-20 월드컵'이 있었잖아요. 사실 그전에 중용 받은 것 대비 많은 출전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을 것 같기도 해요.

그때가 지금까지의 축구 인생 중에 가장 힘들면서 보약이 됐던 순간이었습니다. 두 가지의 느낌이 교차했던 기억인데요. 사실 월드컵 이전에는 주장까지 하면서 앞에서 이끄는 역할만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에 주장이 바뀌었죠. 이후에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벤치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는데요. 워낙 앞에서 이끌다가 벤치 신세를 지게 되니까 심리적으로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내 모든 것을 보여주자'라는 다짐을 했습니다. 프로가 무조건 경기에 나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잘할 때보다 잘 안 될 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더 좋은 선수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꾸준히 제 모습을 보여주면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지난 시즌 상무에서 경기 수가 적은 가운데 1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 것도 U-20월드컵에서의 경험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U-20 월드컵이 없었으면 힘들어 하면서만 보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뒤에 있을 때도 어떻게 준비하고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계속 말씀드리지만 프로는 무조건 경기에 나설 수 있는게 아니라서 그 상황을 아쉬워만 하면 안 되거든요. 프로 무대에서 각자가 좋을 때는 다 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에는 안 좋을 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차이인거죠. 그리고 그런 것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토대로 지난 시즌을 보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마음가짐을 달리하셨나요?

사실 처음에는 군대에서의 시간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선수라면 기본적으로 정신이 맑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군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통제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코로나19 때문에 휴가를 나갈 수 있는 시간도 제한돼서 개인적으로 마음을 다질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경기에 뛸 수 있는 체력을 항상 만들어놨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에 뛰었던 선수들은 다음날 보통 휴식을 취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따로 체력 훈련을 하면서 그 템포를 맞추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신이 맑아야 한다는 것이 통제된 생활로부터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는지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죠. 만약에 전 소속팀인 FC서울에서는 힘들 때마다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다질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부대 안에서는 제한적이고 통제가 많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상무에는 조금 일찍 올 수 있던 걸로 알거든요. 그런데 당시 소속팀이던 전남드래곤즈를 위해 입대를 연기하셨는데 그때 상황이 궁금합니다.

2018시즌에 팀이 강등당했습니다. 그런데 강등이 되기 전부터 저는 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가 팀이 강등되고 마침 그 시즌에 주전 멤버로 활약하면서 일종의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팀이 강등당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갔으면 도피하듯이 보일 수도 있잖아요. 구단에서도 1년 정도만 열심히 해서 승격에 도움을 주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셔서 결국 입대를 미뤘죠. 아마 팀이 잔류했더라면 바로 군대에 갔었을 거예요.

그때를 돌이켜보면 한찬희 선수도 잔류를 택했고 팀도 유력한 승격 후보 중 한팀으로 거론됐었거든요. 그런데 그 기대감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도 분명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K리그2 경험이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K리그1에 있으면 같은 1부리그의 경기를 보고 K리그2의 경기는 챙겨보기 쉽지 않습니다. 선수들도 '상위권에는 무조건 가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즌에 임했던 것 같고요.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 당시 주장이었던 (최)효진이형을 포함해서 K리그2가 쉽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시즌 중반에 선수단에서도 우리가 너무 쉽게 봤음을 인정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자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후반기에 성적이 괜찮아졌거든요. 만약에 그때 초반에 그런 생각을 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분명 있죠.

당시에 느껴본 K리그1과 K리그2의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제 생각에 K리그1은 수비 조직도 촘촘하면서 좀 더 전략적입니다. 반면에 K리그2는 선수들이 더욱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별로 활동량도 많고 볼을 잡았을 때 압박 타이밍도 빨랐거든요. 후반기에 갈수록 간격이 벌어지는 현상이 보였긴 했는데 의욕 면에서는 확실히 차이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아쉬운 시즌도 보내긴 했지만 전남에서 유스 생활도 하셨기 때문에 팀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전남은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지역에서 있었고 유스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전남 경기를 가끔 챙겨 봅니다. 이번에 FA컵 우승도 제 일처럼 기뻤거든요. 저의 첫 데뷔팀이라서 항상 마음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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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FC서울로 가게 됐는데요. 그 당시 배경이 궁금합니다.

그때가 K리그2에서 1년을 뛰었는데 팀이 승격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만약에 전남에서 시간을 더 보낸다면 팀도 팀이지만 개인적인 성장이 느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FC서울하고 최용수 감독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이적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 당시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나갈 수 있어서 그것에 대한 욕심도 있었습니다. 또 서울이라는 구단이 매스컴에도 많이 노출되고 명문 구단이잖아요. 제 성장뿐만 아니라 상품성도 보여줄 수 있는 팀인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서울에 가면서 많은 팬들이 기대를 했는데 부상이 많아서 아쉬움이 컸을 것 같아요.

서울에 가서 첫 경기가 아시아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였습니다. 그런데 그 첫 경기부터 다쳐서 밖으로 나가고 이어서 복귀한 경기에도 바로 다쳐서 나갔거든요. 그러면서 첫 네 경기를 뛰었는데 들 것에만 세 번을 실려 나갔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네 경기 삼 들것'이라고 놀림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는 그냥 운이 없었나 보다 싶었는데 중간에 큰 부상이 와서 또 한 달 반을 쉬었습니다. 이후에 후반기에 복귀할 때는 감독님도 바뀌어서 팀이 어수선했고 컨디션도 안 올라와서 아쉬운 시즌을 보냈죠.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상이 많은 이유가 있더라고요. 우선 전남에서는 워낙 오래 지냈다 보니까 내 집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안정감도 생기면서 잘 아는 팀이니까 노련하게 대처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는 저의 가치를 높이고자 오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무리한 동작에 의욕도 굉장히 넘쳤거든요. 그래서 이 동작을 하면 다치는 걸 아는데도 하다 보니까 많이 다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린 적이 많이 없어서 죄송하고 아쉽죠. 그래도 제대하고 2년이라는 시간이 남기 때문에 그 안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제2의 기성용'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성용 선수를 만나게 되면서 어떤 기분이었나요?

작년에 동계훈련을 하면서 6주 정도 (기)성용이형과 룸메이트였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성용이 형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좋은 모습들만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생활하면서 느낀 점은 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보이지 않은 곳에서 식단이나 근력 운동에 엄청나게 열중하십니다. 모든 삶의 포커스가 축구에 맞춰져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프로 생활 중에 그때의 동계 훈련이 제일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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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선수도 한찬희 선수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며칠 전에 개인 SNS에 휴가 갔을 때 사진을 올렸는데 기성용 선수가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네가 지금 놀 때가 아니다'라고 남기셨습니다. 거기에 제가 휴가라고 말하니까 '휴가는 은퇴하고 보내는 거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댓글을 보면서 '왜 이런 댓글을 달지'라는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습니다. 보통 선수라면 시즌 끝나고 쉬다가 동계훈련 때 다시 컨디션을 끌어 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쉴 때는 쉬고 놀 때는 확실하게 놀자는 마인드거든요. 그런데 성용이 형은 휴가 때도 운동에 대한 기본적인 끈은 놓지 않으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댓글이 장난인 것은 알지만 그 속에 또 힘이 있더라고요. 성용이 형이니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구나'라는 공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2017년에 '피파온라인3'라는 게임에서 한찬희 선수 특별 카드가 나온 거 기억하시나요?

정확히 기억하죠. 지금은 안 하지만 그때 저도 게임 유저였거든요. 당시에 만우절 기념으로 나와서 한 달만 쓰고 없어지는 카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능력치가 엄청나서 제가 굴리트와 대등하게 비비더라고요. 그리고 '네버스탑'이란 별명이 붙여진 이유도 궁금해하실 것 같습니다. 당시에 게임사에서 질문지가 왔습니다. '가장 많았으면 하는 능력치 셋이 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스테미나 능력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적어냈는데 광고에서 '네버스탑'이라고 표현했더라고요.

주위에서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주위에서 많이 놀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스테미나 뿐만 아니라 축구 인생에서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했거든요. 이렇듯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별명인 것 같아서 앞으로도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도 별명이 뭐냐고 하면 저는 '네버스탑'이라고 대답합니다.

게임 하시면서 어떤 선수를 많이 사용했나요?

저는 사무엘 에투 선수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침투가 좋았거든요. 그리고 당시에 제 급이 좀 높았습니다. 일례로 한 대회를 한 적이 있는데 100강 안에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참가자가 많다 보니까 온라인으로 대회를 했거든요. 그러다가 100강 안에 든 참가자들은 스튜디오로 나가서 대회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고3이라 주말 리그에 나가야 했습니다. 도저히 스케줄이 안 맞더군요. 그래서 결국 넥슨 쪽에 불참 의사를 전하고 주말 리그에 참가했습니다.

저도 피시방에서 친구들과 자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학교 내에서도 같이 자주 했던 선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부천의 추정호 선수와 많이 했었죠.

한찬희 선수와 비교하면 추정호 선수의 실력은 어땠나요?

(추)정호하고 하면 제가 졌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상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호 상대로 이긴 친구가 저와 붙으면 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축구 선수라면 피파 하면서도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수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성용이 형입니다. 특히 동계훈련하면서 같은 방을 쓰고 더욱 그런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취미로 게임을 하셨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취미가 있나요?

저는 여행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시즌 끝나고 1년 고생했다는 의미로 해외여행도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못 간지가 꽤 됐죠. 아쉬운 대로 국내 여행 위주로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 갔던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보통 상무에 있으면 시즌 중에는 휴가를 쓰기가 어렵습니다. 매주 경기 일정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춰야 하거든요. 그런데 지난 시즌에 우승하면서 포상 휴가를 받았습니다. 거기에 다른 휴가를 합쳐서 14박 15일 만박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그 기간에 제주도부터 강원도 양양까지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최대한 열심히 돌아다니려고 했습니다.

입대하신 시 7개월 정도 흘렀네요. 지금까지의 군 생활은 어땠나요?

우선 처음에 훈련소를 일주일밖에 안 다녀왔습니다. 기초 군사 훈련 때 받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숙지가 안 됐었죠. 그래서 윗 기수 선임분들이 여러 가지 알려주셨는데 당시에는 좀 엄하게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사회에 있는 물을 빼야 하는 시간이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그 나머지 기초 군사 훈련 기간을 채웠다고 들었습니다. 축구 선수들은 훈련소에서 육체적으로 다른 일반 사병보다는 덜 힘들 것 같은데요. 한찬희 선수는 어떠셨나요?

그냥 경기 뛰는 게 낫습니다. 행군이나 각개전투가 훨씬 힘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수들은 90분 시간에 맞춰서 고강도의 훈련에 적응해 있거든요. 그런데 군에서의 훈련은 무거운 거 매고 발 아프게 전투화 신고 몇 시간씩 걸어야 하잖아요. 상대적으로 저강도에 길게 이어지는 게 저에게는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훈련이 가장 힘들었나요?

저는 각개전투요. 특히 포복할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맨땅에서 제 몸을 그렇게 기었던 기억은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하늘도 엄청 예뻤습니다. 그 풍경 자체가 제 상황과 상반되다 보니까 더욱더 힘들었습니다. 그 기억은 평생 갈 것 같아요.

전역한 상무 선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훈련소 때 편지를 많이 썼다고 하는데요. 한찬희 선수도 편지 많이 쓰셨나요?

부모님께 많이 썼습니다. 사실 제가 부모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 가게 되면 다 똑같아지는 것 같아요.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통제된 생활이 더 힘들게 다가왔을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자대의 맛을 보고 난 뒤에 훈련소에 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훈련소에서 부대가 너무 가고 싶더라고요. 훈련소는 아무래도 더 통제된 생활을 하잖아요. 그래서 당시 소대장님이나 중대장님도 그런 부분을 알아서 더 배려해주셨습니다. 물론 그래도 힘들었어요.

자대의 어떤 것이 가장 그리웠나요?

일단 자대에서는 침대로 2인 1실을 쓰면서 개인적인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는 딱딱한 바닥에 일과 시간에는 계속 앉아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PX도 그립지 않았나요?

그렇죠. PX를 가긴 했는데 어느 정도 제한 사항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대에서는 개인적으로 가고 싶을 때 가면 되거든요. 그런데 훈련소에서는 분대 인원들이 다 같이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세면 바구니 안에 넘치지 않게 사야 하는 규칙도 있더라고요.

자대에 있을 때는 서로 PX 내기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많이 했죠. 5대2 볼 돌리기를 하면서 제일 많이 걸린 사람이 'PX 털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시에 많이 걸렸으면 골대 맞추기로 승부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수가 가장 많이 걸렸나요?

김민석 동기가 많이 걸렸습니다. 저는 많이 얻어먹었죠.

상무에서는 '국군도수체조' 대신 '상무체조'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아요. 거북이의 빙고 노래에 맞춰서 하는 체조입니다.

어떤 선수가 제일 잘하던가요?

이게 신병 때 다 교육을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생각보다 잘 춰서 딱히 잘하는 선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신에 몸치인 선수들이 기억이 나네요. 동기 중에서는 문지환 동기와 박지수 동기가 투톱입니다.

한찬희 선수는 어떠신가요?

저는 중간 이상은 했죠.

군 생활에 제법 적응하신 모습입니다. 그런 상무 생활의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는데요. 마음가짐이나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아요.

일단 좋은 선수들과 같이 한 팀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합니다. 그런 것들을 감사해 하면서 시즌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가 매년 다짐하는 첫 번째 목표가 부상 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입니다. 물론 경기를 많이 뛰지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남은 1년의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지 않으려 합니다. 하나라도 얻어가자는 생각으로 1년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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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희의 최근 몇 년은 어려웠다. 자국에서 열린 연령별 대표팀을 앞두고 주장직이 교체되며 많은 출전을 하지 못했다. 이후 팀은 강등당했으며 이적한 첫해에는 부상으로 신음했다. 마음이 급할 법했으나 한찬희는 이 모든 경험을 배움의 과정으로 습득했다. 김천상무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올해는 게임에서 말했던 바로 그 해이다. 굴리트와 자웅을 겨뤘던 게임 속 그 모습을 실제로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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