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김호남이 손편지 쓰고 ‘국부론’까지 읽는 이유

[스포츠니어스|울산=김귀혁 기자] K리그 팬이라면 ‘호남두’라는 별명은 한 번씩 들어봤을 것 같다. 측면에서 빠른 발과 함께 위협적인 드리블로 상대를 공략한 뒤 득점을 하는 방식이 마치 그 선수와 닮았다. 해당 별명을 가진 이 선수는 2010년에 당시 J2리그였던 사간도스에서 데뷔를 한 뒤 2011년 국내로 넘어와 광주FC에서 K리그 경력을 시작했다. 두 시즌 동안 3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2013년부터 잠재력이 터지며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2014년에는 K리그 챌린지(현 K리그2)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제주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면서 기량을 과시했고 이후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상주상무에서 활약했다.

개성 있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출전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 사이에 인천유나이티드로의 트레이드를 당일 통보받기도 하는 등의 시련도 있었다. 지난 시즌에는 원소속팀 수원FC를 떠라 포항스틸러스 임대 생활을 하면서 리그 6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리고 그는 이전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부천FC1995로 이적했으며 자신을 괴롭히던 부상도 말끔히 털어냈다. <스포츠니어스>는 위 사연의 주인공인 김호남과 부천FC의 전지훈련지인 울산에서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우선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굴에 상처가 나셨는지 밴드를 붙이고 계시네요. 훈련하면서 부상이 있었던 건가요?
그건 아니고 전ㆍ현직 프로 선수들과 몸 상태도 끌어올릴 겸 비시즌에 조기 축구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비선출분이 저를 막으셨는데 혼자서 화가 나셨는지 저를 그냥 밀어버리더라고요. 그러면서 펜스에 긁히면서 난 상처입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다행히 눈을 다치지는 않았는데 메디컬 테스트도 이틀 앞둔 시점이어서 굉장히 아찔했던 기억입니다.

방금도 치료를 받고 오셨다고 들었어요. 몸 상태가 아직 완전치 않은 건가요?
아파서 치료받기보다는 부상 방지 차원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스프린트가 많은 유형의 선수다 보니까 근육 쪽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치료를 받고 왔습니다.

전지 훈련장에서 몸놀림이 되게 가벼워 보이시더라고요. 지금 계속해서 전지훈련을 하고 계실 텐데 몸 상태는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리셨나요?
몸 상태는 8~90%까지 끌어올렸는데 아직 경기 감각이 완전치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 경기 감각은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부분이고 프로 선수로서는 그 한 끗 차이로 수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날카롭고 기민했던 그 상태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찾기 위해서는 경기를 계속 뛰는 것밖에 없을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연습 경기를 세 경기 정도 소화했는데 그 세 경기 모두 소화하고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떤 팀과 연습 경기를 했었나요?
지금까지 동아대학교, 울산대학교, 울산시민축구단과 경기를 했었고 내일 울산현대와 경기를 할 예정입니다. 이런 연습 경기는 결과보다는 몸 상태를 끌어 올리는데 집중하면서 우리 수준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웬만한 K리그1 팀들도 울산현대와 하면 버겁고 저희도 그러리라 생각하는데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배우는데 포커스를 맞춰서 임하려고 합니다.

부천 훈련장 분위기도 굉장히 밝더라고요. 미니게임 할 때도 모든 선수가 골대를 같이 옮기는 상황도 봤었는데 그런 분위기가 처음부터 계속 이어져 온 건가요?
입단하고 처음에 감독님하고 미팅할 때도 훈련 분위기가 굉장히 좋고 선수들도 엄청 열심히 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 훈련할 때 패스가 잘 맞으면서 흥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럴 때일수록 흥분하지 않아야 하거든요. 젊은 선수가 많다 보니까 그런 요소가 조금 있기는 한데 차차 좋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천에 젊은 선수가 매우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올 시즌에 이 선수만큼은 ‘기대해도 괜찮다’ 싶은 선수가 있을까요?
누구 한 명을 꼽기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장단점이 있어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안 하면 재미가 없으니 한 명을 꼽자면 안재준 선수입니다. 해외에 나갔다가 들어온 선수로 알고 있는데 공격수로서 능력이 있어 보입니다. 골 결정력도 괜찮고 한국 수비수들이 거친 편인데 그것을 이겨낼 만한 피지컬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인 중에는 안재준 선수를 주목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훈련하면서 호흡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던 선수도 있나요?
지금 멤버가 고정된 게 아니고 계속 바뀌면서 뛰는 중이라 뽑기가 애매합니다. 그런데 훈련하면서 느낀 점은 대부분이 좋은 선수들이라서 그 선수 성향만 파악하면 거기에 맞춰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호흡을 맞춰보더라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저는 측면에 있는 선수라서 윙백인 최병찬, 감한솔과의 호흡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위치이다 보니까 호흡을 많이 맞춰봤는데 받아들이는 흡수력이나 요구 사항 수행력 등을 따져 봤을 때 좋은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선수진에 대한 믿음이 남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 이적으로 광주FC에서 활약했던 이후 처음 K리그2에 오신 거잖아요.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은 제가 여러 가지 이유로 1년 6개월 동안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서 그런 것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그전까지 K리그1에서 경쟁력을 발휘했던 것은 다 과거의 이야기거든요. 최근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그 다음 행선지를 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K리그1 선수라면 지금 당장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기대할 텐데 저는 부상으로 쉬었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분명 있을 거로 생각해요. 심지어 K3리그까지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제가 원하는 팀이 있고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제 강점을 보여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에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또 김지운 코치님이 제주 시절 때 같이 있었는데 전화가 와서 “부천FC 코칭 스태프가 너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고 그 정도로 너를 원한다”라고 들었을 때 어떤 리그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아내와 상의하고 답 드리겠습니다”라고 그날 바로 전화를 드렸습니다. 또 부수적일 수 있는데 집이 송도에 있거든요. 포항으로 이적하면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는데 아내가 쌍둥이 육아도 혼자 하면서 도움을 많이 못 줬습니다. 여기에 제가 축구 선수다 보니까 배려심에 여러 가지 일을 혼자 다 하려고 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옆에 있으면 정서적으로나마 안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을 고려했을 때 부천이라는 팀을 선택한 것은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선수 시절 초반만 하더라도 부상 없이 활약하기로 유명했거든요. 부상이 많이 심했던 건가요?
정확하게 프로 1~2년 차 까지는 실력이 부족해서 경기를 많이 못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주가 강등되면서 2013시즌부터는 여러가지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서 꾸준히 30경기 이상씩 뛰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큰 부상이 없었던 게 저한테는 큰 축복이었고 익숙해지다 보니까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거든요. 나름 몸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부턴가 한쪽에서 삐꺽거리기 시작하고 그것에 따라 연쇄적으로 다른 부상이 오면서 쉬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수술은 어떻게든 안 하려고 치료를 15번 정도 받았는데 잠깐 좋아지다가 결국에는 또 재발이 돼서 수술을 하게 됐습니다. 지금 수술 한지는 4~5개월 정도인데 거의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부위에 부상이 왔던 건가요?
허리디스크였습니다. 허리디스크 수술도 칼로 하는 게 있고 내시경으로 하는 게 있는데 전자의 방식으로 하면 피부 조직도 망가지고 회복도 느리다고 해서 저는 그나마 회복이 빨랐던 내시경으로 했습니다.

저는 칼로 하는 수술을 했거든요. 수술 전에는 다리가 많이 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와 진짜 죽습니다. 저도 다리가 너무 저려서 잠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같은 환우로서 공감되네요. 그러면 프로 생활 내내 그 부상은 조금씩 안고 계셨던 건가요?
허리디스크도 사실 모든 선수가 다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게 통증으로 얼마나 오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디스크가 삐져나온 게 신경쪽을 건드리다 보니 계속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술로 그 부분을 제거했는데 아주 시원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괜찮으셔서 다행입니다. K리그2에 오시긴 했지만 과거 광주FC에서의 활약 덕에 2부리그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좋은 기억이 부천에서도 발휘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제가 2013시즌부터 2014시즌까지 광주FC가 2부리그에 있으면서 좋은 성과를 냈었습니다. 그 덕에 상을 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고 K리그2와 K리그1의 수준 차이도 꽤 줄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과 똑같이 K리그2와 K3리그 간 차이도 줄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는 또 다른 수준의 K리그2라고 생각을 하고 절대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 부천이 작년에 하위권에 있었기 때문에 도전자의 입장이어야 하고 그래서 더욱더 철저하게 팀으로서 조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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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짐처럼 김호남 선수 하면 생각나는 것이 투지거든요. 그래서 인천 시절에 팬들한테 “우리 팬들 XX 멋있다”라고 했다가 아내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하던데요.
원래 아내와 저는 서로 은어를 안 씁니다. 물론 친구들을 만나면 쓰긴 하는데 아마 아내 입장에서는 제가 그런 단어를 쓴 것 자체에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때도 “그런 단어도 쓰냐”라고 물어서 저는 당시 상황을 격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썼다고 답했죠. 왜냐하면 지금도 인천 팬분들한테 되게 고맙다고 생각을 하는 게 제가 딱히 그분들한테 저를 좋아해달라고 어필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경기를 보러 오시는 분들한테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잖아요. 저도 그것에 맞춰서 열심히 뛴 것밖에 없었는데 많이 좋아해 주셨습니다. 정말 기본 중의 기본을 지켰을 뿐인데 저를 그렇게 예뻐해 주시니까 그때 당시에 감사함을 격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은어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인천 팬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인천 시절을 회상해 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나요?
2019년 K리그1 잔류가 확정됐던 경남FC와의 최종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그 해에 개인적으로도 팀 적으로도 다사다난했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상철 감독님에 대한 왠지 모를 미안함도 조금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 감독님이 아프셨고 그런 감독님의 그해 숙원을 풀어드리는 것에 있어서 안도감과 감사함이 복합적으로 와닿았던 경기여서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현장을 촬영한 미니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지금도 가끔 보면 울컥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듣기로는 유상철 감독님께 편지를 쓰면서 김영권 선수한테 쓴 이후로 처음 썼다고 밝히셨어요. 사실 남자끼리 편지하기가 쉽지 않은데 김영권 선수한테 쓴 편지의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사람이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말과 글이 저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떤지 표현하는 것이 그 사람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데 말과 글 중에서는 글로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온기나 생각의 깊이가 더 잘 표현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남자끼리 낯간지러워서 못 쓴다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 표현을 좀 더 정성스럽고 더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편지가 최고라고 생각해서 (김)영권이한테 썼던 것 같습니다.

편지를 썼을 때는 아마 영권이가 대학교에서 일본으로 갔던 시점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7만원인가 8만원짜리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하나 사면서 글을 썼던 것 같은데요. 영권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궁금하실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면서 서로 축구 선수로서 같은 목표와 방향성을 갖고 나아갔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용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도 같이할 정도로 서로 가정사가 어려웠고 그런 것들을 공유하면서 지내온 사이입니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도 각자의 어려움이나 고충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위로하는 사이거든요. 그런 존재인데 아마 그 폴라로이드 사진을 주면서 “너와 내가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사진으로 추억을 남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죠. 그러면서 “일본에 가서도 네가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을 때 사진으로 담아서 그걸 간직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편지를 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기로 사진을 찍었는지는 모르겠네요

굉장히 절친이군요. 그런데 김영권 선수는 군 복무를 안 했잖아요. 김호남 선수가 군대 갔을 때 조금 놀리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그때 영권이가 러시아 월드컵 기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전에서 영권이가 골 넣고 이겼을 때 저는 자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실시간으로 못 봤는데 그떄 영권이가 독일전이 끝나고 락커룸에서 그 영광적인 순간에 저에게 영상 통화를 했었습니다. 가장 벅찬 그 순간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제가 그걸 못 받아서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나중에 김영권 선수가 뭐라고 하던가요?
딱히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영권이가 러시아에서 왔을 때 마침 저도 휴가여서 같이 만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권이 활약이 좋아서 섭외 요청이 많이 들어왔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스케줄이 엄청 빡빡했었는데 고맙게도 송도에 와줘서 월드컵에 있었던 이야기를 회 한 접시와 함께 공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외에 군대에 있을 때도 영권이와 계속 교류를 했는데 참 좋은 친구이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미안한 마음이 있나요?
영권이가 중국에도 있었다 보니까 아무래도 소득 수준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창 경기를 못 뛰었을 때 같이 휴가를 가면 영권이가 밥값을 주로 냈고 대신에 제가 뭘 사려고 해도 영권이가 엄청나게 만류했었거든요. 그때 또 저 불편할까 봐 “너랑 나랑은 이런 거 하지말자. 누가 사면 어떠냐”라고 말했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엄청 고마우면서도 이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불편해지는 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조금 애매할 수도 있잖아요. 친구는 수평의 관계가 되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아무리 대가 없이 잘 해준다고 해도 저 스스로 수직까지는 아니지만 대각의 관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많이 생기는 데 영권이를 만나서 불편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런 이유로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 제가 경기를 많이 뛰고 소득 수준도 조금 올라오면서부터는 더치페이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한 번은 제가 내려고 합니다. 또 그게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영권이도 아마 느꼈을 텐데 딱히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느껴져서 항상 이런 고마움 속에는 미안한 마음도 동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김영권 선수가 국내에 와서 반가운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포항에 있을 때 영권이가 울산에 온다는 사실을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지만 제가 이야기하면 안 돼서 따로 표 내지는 않았죠. 그런데 그때 제가 포항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재계약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내심 저 스스로 포항에서 재계약을 하고 동해안 더비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아쉽게도 그건 안됐죠. 그래도 영권이가 울산에 왔기 때문에 해외에 있을 때보다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고 저희 팀이 울산에 전지훈련 왔을 때도 영권이가 찾아와서 같이 커피 한잔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서적으로 가까워진 기분도 들었고 가족들끼리도 친해서 앞으로 서로 좋은 교류를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남자들은 군대 훈련소에서 가장 편지를 많이 쓴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영권 선수한테 편지를 썼듯이 훈련소에 있으면서도 편지를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저도 그때 많이 썼습니다. 조성환 감독님, 남기일 감독님, 고 유상철 감독님께도 편지를 쓴 기억이 있습니다. 세 분의 감독님들에게 쓴 이유는 경험한 만큼 보인다고 각자 이유가 있는데요. 조성환 감독님에게는 인간적인 면을, 남기일 감독님한테는 축구적인 영감을, 그리고 유상철 감독님으부터는 프로 정신에 대해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은사님들이 다 소중하지만 저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줬던 분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어서 훈련소 때 편지를 썼고 지금도 자주 연락을 드렸거든요. 그 정도로 감사한 분들입니다.

감독님들 외에 또 어떤 분들에게 편지를 썼나요?
(정)운이한테 쓴 기억이 있고 당연히 아내한테도 많이 썼습니다. 또 저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가 서른 살이 되기 직전이었는데 특히 군대에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해가 넘어가면서 그게 더 심했거든요. 그래서 그 동안의 과거를 회상하고 저 자신에 대해 좀 더 직시하는 시간을 편지에 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걸어왔고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 것이며 내가 지금의 위치까지 온 것은 왜 그런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을 했던 거죠. 그리고 향후 5년 뒤, 10년 뒤에 나의 모습과 계획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어떤 내용의 편지였는지 궁금한데요.
사실 일지는 학창 시절 때부터 썼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훈련 내용에 집중했었는데 프로에 들어와서 얼마 안 된 시점인 2011년부터는 그 내용을 조금 바꿨습니다. 일지는 며칠 걸러도 상관없으니 ‘그날 내가 느낀 점에 대해 욕을 담더라도 담백하게 담아보자’라고 스스로 약속했는데요. 그래야 그게 축적이 돼서 나중에 돌아봤을 때 공부가 되고 데이터가 되고 제가 성장하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서 작성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때 일지를 보면 되게 재밌습니다.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점점 성숙해지기도 하고 그동안의 제 과정도 보이거든요. 그리고 다시 이야기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고 말할 수 있는 건데 벌써 10년이 넘은 것들을 지금 시점에서 대입해서 보면 또 그것 나름의 재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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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지나간 사진만 추억해도 재미있는데 그 과정이 상세하게 담겨 있으니 더욱더 흥미롭겠네요. 이런 작문의 영역을 넘어서 독해의 영역인 책 읽기도 자주 하신다고 들었어요.
책을 제가 누구한테 자랑하려고 읽는 건 아니고요.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저희 때는 축구를 하면 자연스레 학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데요. 안 되겠다 싶어서 책을 읽게 됐는데 그때는 15분만 보면 잠이 와서 수면제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읽으면서 처음에는 소설로 시작해서 자기계발서로 넘어가고 이어서 역사, 경제, 인문학 이런 순서로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또 지금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책을 읽을 때 거의 필사를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 책에 대한 주요 내용을 쓰면서 봤는데 그것도 지금 몇 권 정도 됩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애덤 스미스가 쓴 고전 경제학의 시초인 ‘국부론’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책이 참 신기한 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 저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거든요. 소크라테스도 자기 스스로가 책을 쓴 게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책을 써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저는 소크라테스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소통이 되는 것이 분명 있습니다. 물론 그때의 생활과 지금은 다르지만 사람 사는 거는 항상 반복되면서 다 똑같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본질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책이 축구를 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됐나요?
많이 됐죠. 왜냐하면 축구도 결국에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그 사람의 습성이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규칙을 어겨서 우리가 돌을 던질 수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저는 던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 선수의 모습은 곧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선수가 곧 나의 거울이고 반대로 저 선수가 나를 봤을 때도 거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가 영향을 끼치고 받는 위치입니다. 그래서 결국 내 동료가 잘못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정당한지 물었을 때 저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 예전에는 단체 생활을 하면서 이게 맞고 아닌지에 대한 것이 딱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정의라는 것 자체가 상대적인 요소라서 ‘누가 정의를 이야기 할 수 있는지’ 혹은 ‘내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던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에 있을 때는 주장이다 보니까 선수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정답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정답을 규정할 수는 없는데 제가 했었던 것들은 되게 오만하고 착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행실이나 인성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남들한테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행실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웠고 팀원들한테도 그런 부분을 이야기했었습니다. 결국 정의는 상대적이고 그런 부분에서 저는 오만했던 거죠.

제가 인터뷰를 이끌어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경청했습니다. 그러면 젊은 선수들한테도 책을 추천하는 편인가요?
굳이 제가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제가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부분인 것이 선수들 입장에서는 게임하거나 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결국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야 책을 읽는 거기 때문에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책을 읽었던 것은 스스로의 다짐에서 비롯된 건지 혹은 어떠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그때 당시에 제 친형이 ‘아리랑’이라는 책이 걸작이라고 추천해줬습니다. 그래서 읽어 봤는데 그게 12권짜리라 꽤 깁니다. 그래도 묵묵히 읽다 보니까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꽤 오랜 기간 책을 읽으면서 내린 제 결론은 가장 싼 값에 그 저자의 삶을 간접 경험 하면서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으로부터 많은 부분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김호남 선수 별명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은데요. 광주 시절에는 ‘호남두’라는 별명이 있다가 한 사건이 터진 이후부터는 ‘메남두’라는 애칭도 생길 정도로 별명이 많아서 기분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하죠. 프로 선수로서는 그런 닉네임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는 하나의 소재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프로 선수로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한 커뮤니티에서 ‘호남턴’이라는 별명이 있는데 들어보신 적 있나요?
듣긴 들었는데 그게 왜 생겼는지 본질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직선적이라서 턴을 잘하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거든요.

풋볼매니저(FM)라는 게임 아시나요?
네 알죠.

그 게임 시뮬레이션에서 김호남 선수가 턴을 한 동작이 있었는데요. 그게 게임이라서 자연스럽지 않고 좀 특이하게 턴을 했던 장면을 누군가가 올리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턴 동작이 능력치가 낮았나 봅니다. 그래도 그런 별명이 있다는 것은 저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시는 거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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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시 부천 이야기로 넘어와 보겠습니다. 부천에서는 팀의 고참급에 속해서 마음가짐이 남다를 것 같아요.
감독님이 처음에 방향성을 딱 잡아주셨는데 그 방향성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잔소리 하는 것이 고참이 아니고 솔선수범하는 것이 고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흔히 최고의 교육이 부모님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게 대물림되는 것처럼 제가 선수로서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고의 가르침이자 조언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해준다면 그거에 맞춰서 팀이 힘을 받기 때문에 저도 몸 관리에 신경 쓰면서 선수들과의 호흡을 많이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아까도 ‘내가 누군가의 거울이 될 수 있고 그 누군가도 나의 거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는 거군요.
제가 올해로 프로 13년 차를 맞이하는데 그 과정 속에 인생을 배우면서 조금씩 축적됐던 데이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김호남 선수의 올 시즌 팀과 개인의 목표도 궁금해집니다.
팀은 이미 감독님이 5위라고 딱 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모였을 때 한 사람씩 각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발표를 3분 정도 했었습니다. 그때 감독님께서 “우리의 목표는 5위이고 이를 위해서는 3경기 중에 1승 1무 1패를 해야한다. 그렇게 봤을 때 작년 우리의 실점과 득점을 계산하면 18실점을 줄여야하며 득점도 그에 상응하게 해야 한다. 또 우리가 상대적으로 약팀이기 때문에 내려설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역습과 세트피스 득점의 비율도 높아야 한다. 이런 부분을 보완해야 우리의 순위가 높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목표가 있으면 또 개인적인 세부 목표를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비는 수비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저는 공격수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팀 컬러상 공격수가 수비 의식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팀의 공격수들한테 이야기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말하기 이전에 제가 앞에서 솔선수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서로 느껴지게 분명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실천으로 옮기면서 선수들에게 주입시키면 팀 목표는 자연스레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로는 제가 프로 생활하면서 열 골을 넘긴 적이 없어서 그 이상의 득점을 해보고 싶습니다. 또 제가 몸이 좋았을 때를 떠올리면 거의 3~4경기 당 하나의 공격 포인트를 했었습니다. 그러면 그만큼의 경기를 뛰기 위해서 부상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상을 안 당하려면 보강 훈련을 해야 하고 보강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확보 해야 하고 이런 식으로 연쇄적인 계획을 짜야 하거든요. 또 그런 세부적인 목표를 따로 적어놨기 때문에 하루하루 그 목표를 실행하다 보면 개인이나 팀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분 발표할 때 김호남 선수는 어떤 소개를 했었나요?
우리가 약팀이다 보니까 그런 것들을 선수들도 인지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런 결핍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단 여기에는 ‘긍정과 낙관의 마인드로 바라봐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들어갑니다. 부정과 불만의 마인드는 분명히 핑계를 찾을 것이고 긍정과 낙관의 사고로 보면 방법을 찾게 되거든요. 그리고 부천이 작년에 18번 졌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는 18번의 방법을 찾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핑계를 찾았는지 아니면 방법을 찾았는지 스스로에게 묻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작년은 모르겠지만 올해는 선수들이 긍정과 낙관의 자세로 방법을 찾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선수의 자기소개가 가장 기억에 남았나요?
이용혁 선수요. 수비수인데 자기 장점이 대인방어, 헤더, 커버링이라고 말하면서 올해는 빌드업을 잘할 계획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장점은 아닌데 만들 계획이라고 표현한 것이 너무 웃겨서 언젠가 한 번 써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호남 선수가 긍정과 낙관의 자세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부분에서 영감을 얻은 것 아닌가 싶네요. 그러면 끝으로 부천FC 팬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천FC가 제주로 가게 된 아픈 역사가 있는데 그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지금 부천이라는 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거 없습니다. 그냥 팬이에요. 그 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계속 존속할 수 있었던 거고 그래서 그 어느 팬분들보다 부천FC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거에 맞춰서 저희 선수들도 이 엠블럼에 대한 프라이드와 함께 프로 선수로서의 기본과 책임감을 지키겠습니다. 사실 제가 그분들한테 경기장에 와달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워낙에 제가 말하지 않아도 팀을 사랑하는 분들이라서 지금 사랑 그대로 유지만 해주셔도 저희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로축구연맹제공

최근의 모습은 다소 아쉬웠지만 김호남은 분명 K리그에서 검증된 선수다. 그에게 붙은 별명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실력뿐만 아니라 그의 넓은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축구에 대한 이야기만큼 책과 편지를 바탕으로 한 진중함에 자연스레 경청했다. 인터뷰를 이끌어야 할 기자가 인터뷰 대상자에게 어느새 리드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김호남은 그저 본인의 느낌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그의 마음가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이다. 마치 그가 올 시즌을 앞두고 강조했던 솔선수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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