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제주행’ 윤빛가람 “도움 20개? 주민규 믿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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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서귀포=김현회 기자] 윤빛가람이 ‘또’ 제주로 돌아왔다. 2010년 경남FC에 입단해 K리그 생활을 시작한 윤빛가람은 2012년 성남일화를 거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제주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이후 중국에 진출했던 그는 군 복무를 앞두고 2017년 임대로 두 번째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군 생활을 마친 윤빛가람은 중국 옌볜 푸더가 해체되면서 FA가 됐고 2019년 제주에 세 번째로 입단했다. 이듬해 울산현대로 이적해 2년간 뛴 윤빛가람은 올 시즌을 앞두고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네 번째 제주행이다. 과연 윤빛가람은 어떤 매력에 끌려 다시 제주로 돌아오게 된 걸까. 동계훈련 중인 윤빛가람을 제주도 서귀포의 클럽하우스에서 직접 만났다.

요새 컨디션은 어떤가.
아직 컨디션을 끌어 올리고 있는 단계다. 이제 한 60% 정도 됐다. 지난 시즌 때 많이 바빠서 비시즌 동안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다. 부상은 없기 때문에 점차 컨디션을 끌어 올리면 시즌에 임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제주에 네 번째 입단했다. 한 팀에 네 번 온 기분은 어떤가.
젊었을 때 제주에 입단한 것과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그래도 프로 생활을 하면서 가장 오래 있었던 팀이다. 제주에 오니 마음이 편하다는 게 느껴진다. 아는 선수들도 많아서 적응하기 편하다. 아직은 가족들이 다 제주로 내려오지는 않았고 나만 혼자 내려와 있다. 워낙 여기 지리에 익숙하고 클럽하우스도 익숙해서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오랜 만에 돌아오니 달라진 건 없나.
여기 인터뷰를 하는 클럽하우스 내 카페를 빼면 다 그대로다. 내가 제주를 떠날 때는 이곳이 새 단장하기 전이었다. 이거 하나만 빼면 내가 있던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식당도 그대로고 웨이트 트레이닝장도 그대로다. 아직 클럽하우스 내 선수들의 방에는 안 들어가 봐서 모르겠는데 대부분은 내가 팀을 떠날 때와 변한 게 없다.

올해 몇 살인가.
서른 세 살이 됐다.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봐 왔는데 이제는 노장이다.
그렇게 됐다. 이제는 어린 선수들이 물을 떠서 한 번씩 가져다 주기도 한다. 내가 시키는 건 아닌데 자기들이 물을 마시려다가 살짝 눈치를 보면서 가져다 준다.

팀에 오자마자 부주장이 됐다. 제주 경험이 있고 고참이기는 해도 새로운 선수에게 부주장을 맡긴다는 건 파격적인 일이다.
운동을 하기 전에 감독님께서 주장과 부주장을 발표해 주셨다. 나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통보였나.
따지고 보면 그렇다. 어쨌든 부주장을 맡겨 주셨다는 건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최)영준이가 고참 선수들과 어린 선수들의 중간에서 팀을 더 잘 이끌어 달라는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K리그 미디어 캠프에 참가한 주민규가 당신에게 올 시즌 어시스트 스무 개를 요구했다.
우리 팀 선수들이 다들 “올 시즌 가람이가 도움 20개를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기자회견 당시 민규 바로 옆에 있었는데 민규가 너무 과하게 이야기한 거 아닌가 싶었다. 나하고 합의가 안 됐는데 언론에다가 나에게 어시스트 20개를 부탁했다. 너무 많이 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도움 10개 정도를 이야기하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도움 20개를 어떻게 다 하나. 그래도 민규 덕분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이후 주민규와 이에 대해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게 있나.
내가 장난으로 “20개? 너무 많이 지른 거 아니야?”라고 말했더니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라고 민규가 답하더라. 그래서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내가 공을 찔러 넣어주면 민규가 전방에서 득점을 해줄 거라는 믿음은 늘 있다. 상무 시절에 민규가 내 1년 선임이었다. 당시 나는 신병이었고 훈련소에 갔다 와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발을 맞출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런데 워낙 민규 스타일을 잘 알고 있어서 올 시즌에 호흡을 발휘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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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 스타일을 잘 알고 있나. 당신은 K리그를 잘 보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요새는 K리그를 잘 챙겨보는 편인가.
물론이다. 지난 시즌에도 내가 울산에서 뛰면서 전북과 우승 경쟁을 했고 다른 팀들의 결과도 중요했다. 많은 경기를 챙겨보게 됐다.

요새 어린 팬들은 이게 무슨 질문인지 잘 모르는 논란일 수도 있다.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건가.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당시에 나는 그런 의도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뜻이 잘못 전달됐다. 당시에는 내가 17살이어서 너무 어렸고 말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런 의도로 들리게끔 내가 이야기를 했을 거다.

당시에는 논란이 많은 발언이었다.
그거 때문에 내가 더 유명해진 건 사실이다. 일단 내가 이름이 독특하고 어린 놈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니까 많은 분들이 나를 욕하면서 기억을 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나 스스로는 ‘괜찮다’고 정신줄을 잡으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심리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나에게도 처음이었고 멘탈이 흔들리면서 이후에 경기장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들이 나왔다.

그래도 지금은 K리그를 많이 챙겨본다니 다행이다. 당시 17세 이하 대표팀 동료들과는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나.
그때는 다들 친하게 지냈는데 요새는 사는 게 바빠서 그런지 자주 연락을 못하게 된다. 2007년 당시 U-17 대표팀 멤버가 김승규, 오재석, 주성환, 배천석, 김동철, 최진수, 설재문 등이었다. 떨어져서 오래 지내다보니 연락이 끊긴 친구들도 있는데 가끔 오재석이나 최진수 등과는 연락을 주고 받는다.

그러면 또래 선수들 뿐 아니라 축구계에서 가장 친한 동료는 누구인가.
우리 팀에 있는 (이)창민이하고 친하다. 창민이가 우리 모교인 부경고등학교 4년 후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모교에 운동을 하러 가끔 가면 그때 내 스타킹도 챙겨주는 까마득한 후배가 창민이었다. 그때는 정말 어리게 봤던 앤데 이제는 창민이도 29살이 됐다. 그 사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

네 번째 제주 입성이다. 어떻게 다시 제주 입단을 결정하게 됐나.
올 시즌을 앞두고 두세 팀에서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팀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제주가 끌렸다. 내가 힘들 때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곳도 제주였고 좋았던 기억도 많은 곳이다. 또 여기에는 아는 선수들도 많다. 조건 등을 따져 봤을 때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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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겠지만 남기일 감독의 카리스마 때문에 제주에 오기를 머뭇거리는 선수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당신은 제주를 선택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다. 남기일 감독님과는 이번이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서 소통하면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제주로 오고 싶은 마음이 컸고 감독님의 의사도 중요했는데 그게 잘 맞아 떨어졌다. 아직 팀에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감독님과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다.

남기일 감독은 많이 뛰고 수비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축구를 구사한다. 기술적인 능력이 뛰어난 당신과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우려도 있다.
이번에 나만 영입된 게 아니라 영준이도 팀에 들어오게 됐다. 창민이도 올해 아마 우리와 함께 할 것 같다. 이렇게 활동량이 많고 좋은 선수들이 각자 뚜렷한 장점을 발휘한다고 봤을 때 우리 미드필드 구성은 좋다. 서로 단점을 보완해 주면서 경기를 한다면 나도 그렇고 우리 팀도 그렇고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전북과 울산이 양강 구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올 시즌 영입을 알차게 한 제주가 이 양강 구도를 깨주길 바라는 이들도 많다.
우리도 충분히 우승 경쟁을 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다. 많은 팬들이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면서 우승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시즌 울산에서 그런 역사를 한 번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승을 못해서 아쉽긴 아쉬웠다. 이번에 영준이도 전북에서 제주로 옮겨왔는데 우승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선수들 모두 좋은 성적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같이 우승 경쟁을 하던 사이였는데 올 시즌에는 이렇게 한 팀에 모인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고 있다.

동계훈련에서의 훈련량은 어떤가. 안현범은 지난 시즌 동계훈련을 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그만큼 제주의 동계훈련이 힘든가.
힘들기는 하다. 하루에 두 번씩 훈련을 할 때도 있는데 동계훈련은 원래 늘 힘들다. 올 시즌에는 K리그 개막이 더 앞으로 당겨지면서 다른 때보다 더 빨리 준비를 해야한다. 힘든 건 맞지만 은퇴까지 운운한 안현범은 엄살이다. 선수라면 잘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훈련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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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팀에 입단하면서 공개된 영입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쓰레기를 줍는 캠페인 사진을 ‘오피셜’로 낸다는 게 흥미로웠다.
나도 솔직히 평소에는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주워보거나 그런 걸 의식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홍보를 할 겸 좋은 취지에서 구단이 오피셜 사진 촬영을 할 때 쓰레기 줍는 사진을 써보자는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환경 보호 메시지도 전달하면서 독특한 오피셜을 내는 것도 나름대로의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그날 날씨가 엄청 추웠는데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쓰레기를 줍는 척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한 블록을 이동하면서 쓰레기를 열심히 주웠다. ‘액션’만 취한 게 아니다.

반응이 좋더라. 구단에서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잠깐이었지만 나도 촬영하는 그 순간만이 아니라 한 구역을 돌며 최선을 다해 쓰레기를 주웠다는 점을 알아달라.

과거 경남FC 시절 조광래 감독은 “윤빛가람이 침투 패스를 해준 뒤 자기가 ‘캬’라고 감탄하며 공격에 가담하지 않고 그걸 지켜보고 있어서 혼을 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당사자인 당신의 해명을 듣고 싶다. 정말인가.
그건 조광래 대표님의 생각이고 나하고는 좀 생각이 다르다. 물론 당시 감독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 공격수에게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을 만드는 패스를 하면 득점은 우리 공격수를 믿는 입장이었다. 그때부터는 공격수가 해결할 일이다. 굳이 내가 후방에서 전방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득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기가 패스를 해놓고 자기가 감탄하면서 그걸 감상했다는 건 오해라는 건가.
물론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아 있긴 했다.

청소년 대표팀 시절부터 ‘수준이 다른 선수다’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정도는 아니다. 부경고 시절에 우리 팀 멤버가 좋았다. 선수들이 워낙 잘하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내가 기술적으로 섞여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소문이 과장돼서 났다. 당시 나는 17세 이하 대표팀에도 뽑혔는데 대표팀에서도 박경훈 감독님이 나를 많이 좋아해 주셨고 그러면서 언론에 많이 노출됐다. 이름도 독특하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많이 해주신 것 같다.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 이러면 ‘그 당돌했던 윤빛가람’이 아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엄청난 노력파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타고난 게 많은 선수라고 말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기본기를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 기본적인 패스나 슈팅을 정말 많이 연습했다. 체력 운동을 할 때도 끝까지 버텼다. 그런데 밖에서 바라봤을 때는 나를 보고 노력형 선수가 아니라 천재형 선수라고 생각한다.

나도 당연히 당신이 노력형보다는 천재형에 가까운 선수라고 생각했다.
친한 선수들도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너는 타고난 게 많잖아”라고 하면 나는 “야 나 노력형 선수야”라고 하는데 그래도 동료들은 안 믿는다. 웃으면서 “거짓말 좀 하지 말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개인 운동을 많이 했다. 집에서 쉴 때면 아버지가 나를 집 앞 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가 혹독할 정도로 기본기 연습을 시켰다. 패스와 킥, 발리슛 등을 그때 엄청 많이 했다. 흙으로 된 학교 운동장에서 매일 아버지와 뛰면서 어떻게 하면 축구를 더 잘할 수 있을지 연습했다.

그런 사실은 몰랐다. 아버지도 축구인 출신인가.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하시다가 사정으로 일찍 그만두셨던 분이다. 그래서 나를 축구선수로 키우면서 욕심을 많이 내셨다. 이렇게 프로 무대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기본기를 열심히 닦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아버지 덕분이다. 어릴 때는 아버지께 많이 혼났는데 내가 프로선수가 되고는 이제 믿고 응원해주신다. 그리고 이제는 잔소리를 들을만한 나이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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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여성팬이 많은 선수다. 경남FC 시절부터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말 ‘의외’다.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내 얼굴이 잘 생겼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어릴 때는 ‘뽀로로’를 닮았다고 귀엽다고 해주셨던 분들이 많다.

그런 ‘뽀로로’였던 당시는 이제 노장이 됐다.
그때는 여성 팬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팬들이 다 떠난 것 같다. 나는 팀을 옮겨 다녔는데 그 팬 분들은 쭉 경남에 계셔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팬들이 없어진 건가. 요새는 이성 팬들이 많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중국 옌볜에서 뛸 때도 여성 팬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그 팀은 그냥 팬 자체가 많은 팀이었다. 여성 팬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가 사랑하는 팀이었다. 정말 열정적인 분들이 많았다.

군대 문제로 한국에 들어올 때 중국 여성 팬들이 “한국에서 결혼하지 말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오라”는 걸개를 걸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나도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 일이 있었나. 모르던 사실을 알려줘 고맙다. 나는 경남 시절에 당시 팀이 인기였고 그때 내가 대표팀에 가면서 인기를 좀 얻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어디 계시는가.

시집을 가서 육아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뽀로로’를 닮아서 좋아하던 분들이 이제는 자녀들에게 ‘뽀로로’를 틀어주고 있을 수도 있다.
울산에 있을 때 가끔 팀 동료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은 있다. “가람이 형은 생각보다 전국적으로 팬이 많다”면서 ‘생각보다’라는 단어를 강조하더라. 울산에서 배재우와 함께 러닝을 하는데 재우가 “형은 울산에서 보면 눈에 보일 정도로 팬이 엄청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전국적으로 팬들이 생각보다 많네요”라고 놀라더라. 어릴 때부터 대표팀 생활을 해서 그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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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로 돌아와서 이제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에서는 뭐가 됐든 취미 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제주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면 정말 축구하고 집에만 박혀 있게 된다. 심심해서 견딜 수 없다. 젊은 선수들은 서울로도 놀러가고 싶고 부산으로도 문화 생활을 즐기러 가고 싶을 거다. 제주에서 잘 적응하려면 골프가 됐건 낚시가 됐건 취미 생활이 필요하다. 나는 그래도 제주를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는 적응하는 게 큰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떤 취미가 있나.
내가 골프를 좋아한다. 여기 2013년에 처음 왔을 때 골프를 배웠다. 당시에 나도 제주 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취미를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골프를 시작했다. 요새도 쉬는 날이 되면 창민이나 (정)우재 등과 라운딩을 한다. 그래도 내가 더 골프를 오래 쳐서 그 친구들보다는 잘 치는데 방심하면 질 수도 있을 정도로 애들 실력이 늘었다.

네 번째 제주 입단인데 이번에는 어떤 걸 좀 이루고 싶나.
과거에 제주에 왔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나에게도 책임감이 많이 생겼다. 올 시즌 우리 팀에 기대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가 선수 보강도 많이 했고 이제는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라고 기대를 받고 있다. 이 기대에 실망을 주면 안 된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한 시즌을 만들어야 한다.

어시스트 스무 개도 해야한다.
그렇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이 팀에 계속 있을 거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미래를 알 수 없는데 괜한 질문으로 나중에라도 선수가 난감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제주행인가. 5번째 제주 입단도 있을까.
또 다른 팀에 갔다가 다시 제주로 오는 상황 자체는 이제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그래도 제주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미래는 모르는 거지만 나도 이제 나이가 있고 제주와 마무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경기장에서 잘해야 하고 구단에서도 계약을 더 이어가자고 제안해주셔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잘하면 이 팀에서 오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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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이다. 이제 고참이 됐다.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플레이할 생각인가.
내가 프로에서 우승을 딱 한 번 해봤다. 2020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말고는 우승컵을 들어올려 본 적이 없다. 울산 시절 그래도 리그 우승을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루지 못했다. 은퇴하기 전에 그래도 우승의 맛을 한 번은 더 느껴보고 싶다. 개막하면 시작부터 좋은 분위기를 타서 시즌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많은 팬들이 경기장에 찾아와주셔서 같이 즐기고 같이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나에게도 우승은 간절하다.

윤빛가람에게 제주는 그가 위기일 때마다 그를 구원해 준 팀이다. 제주 역시 윤빛가람의 대활약으로 찬란한 역사를 일궜다. 이 둘이 다시 만났다. K리그가 전북현대의 독주와 울산현대의 견제 체제가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윤빛가람이 가세한 제주의 행보가 유독 더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빛가람은 네 번째 돌아온 이 팀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이제 서른세 살이 된 윤빛가람은 간절한 마음으로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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