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서른 살 비선출’의 5번 째 WK리그 드래프트 도전기

WK리그는 드래프트를 통해 신입 선수들을 받는다.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2021 WK리그 드래프트에 신청한 선수들의 이름이 공개됐다. 한국여자축구연맹은 보도자료를 통해 “17일 오후 2시 축구회관에서 2022 한국여자축구 실업리그(WK리그) 신인 선수 선발 드래프트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드래프트에는 총 52명이 지원했다. 유력한 1순위 지명 후보로는 최근 콜린 벨 한국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고 있는 조미진(세종고려대)과 꾸준히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됐던 장유빈(대전대덕대), 2016 여왕기대회 최우수 선수 출신 황아현(고베아이낙) 등이 거론되고 있다. 쟁쟁한 선수들이다.

광명시 여성 축구단 1993년생 조아라
이런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있었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광명시 여성 축구단 1993년생 조아라’라는 이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나이가 어리지도 않았다. 경력이 부족한 그가 WK리그 팀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건 사실상 희박하다. 그런데도 서른 살을 앞두고 있는 이 동호회 출신은 왜 WK리그 드래프트에 도전하게 된 걸까. WK리그 드래프트를 하루 앞둔 16일 오후 <스포츠니어스>는 조아라 씨와 대화를 나눴다. 결전의 드래프트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녀는 덤덤하게 드래프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아라 씨는 흔히 말하는 ‘선출’이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평범한 학생으로 지냈다. 워낙 운동신경이 뛰어나 육상부 등으로 활동했지만 조아라 씨는 전문적인 체육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체육 실기로 축구 드리블을 했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다시 축구가 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우승을 차지했던 때여서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고민만 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체육 선생님을 찾아가서 ‘저도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죠.”

조아라 씨는 2012년 네이버 지식인에 이런 간절한 질문을 올렸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 찾아간 축구 동호회
당시 체육 선생님은 배드민턴을 전공하고 있어 축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어떻게 진학 지도를 해야할지도 난감했다. 하지만 체육 선생님은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축구 감독을 소개했다. “소개받은 축구부 감독님께 연락을 해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까 ‘알려줄 수는 있지만 축구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했고 수능이 끝난 뒤에 동네에 있는 광명시 여성 축구단에 들어가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2004년 창단된 광명시 여성 축구단은 순수 아마추어가 모인 팀이다. 조아라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12년부터 이곳에서 활동했다.

조아라 씨는 운동과는 전혀 관련 없는 학과에 진학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국립 한경대 미디어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축구에 대한 열정을 멈출 수 없었다. 학교 남자 축구부에 들어가 남자부원들과 공을 차기 시작했고 광명시 여성 축구단 소속으로 경기도민체전에도 나갔다. 조아라 씨는 2012년 당시 네이버 지식인에도 ‘제가 여자축구 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그녀는 당시 네이버 지식인에 “스무 살의 제가 여자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테스트라도 받아보고 싶습니다”라는 장문의 글을 썼다.

조아라 씨는 네이버 지식인에 답변을 달아준 이에게 곧장 연락을 했다. F.C ALLBOYS라는 동호회에서 같이 훈련을 해보자는 말에 곧장 그 팀으로 달려갔다. 조아라 씨는 이때가 너무 행복했다. “주로 축구를 늦게 시작한 20~30대 남자 분들이 있는 팀이었고 여자는 저 혼자였어요. 처음 그 팀에 나가서 연습경기를 하는데 제가 남자 분들 사이에서 두 골인가 세 골을 넣었어요. 사실은 그 분들이 패스를 잘 줬던 건데 자신감을 갖게 된 거죠. 그래서 그 이후 무료로 팀 레슨을 받았고 ‘여축사모’라는 여자 축구 동호회 팀에도 가입했어요. 이때부터 개인 레슨도 받기 시작했죠.” 스무 살의 여대생은 무모하지만 용감하게 도전했다.

아르바이트 하며 배운 축구, 대학교 편입까지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던 조아라 씨는 통학 비용과 레슨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남들은 학창시절 축구를 배워 이제 대학교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동안 한참 늦게 운동을 시작한 조아라 씨는 갈 길이 멀었다. “피자집에서도 일하고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노트 공장도 다니고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죠. 그 돈으로 개인 레슨을 받았고 교양 과목 중에 축구 수업도 들었어요. 남자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서 같이 운동도 했죠.” 조아라 씨는 2학년이 되고 교양으로 축구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축구선수 테스트를 받고 싶은데 혹시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담당 교수는 놀랐다. 지금껏 전문 선수로 활약하지 않은 평범한 여대생이 갑자기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조아라 씨에게는 너무나도 간절한 일이었다. 담당 교수는 수소문 끝에 조아라 씨가 갈 수 있는 여자 축구부가 있는 대학교를 알아봤다. “교수님께서 제주 국제대학교에 가서 테스트를 받아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저렴한 가격으로 능력 있는 분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지도자 분도 소개해 주셨죠.” 제주 국제대학교는 2012년에 창단해 선수 수급이 급한 상황이었다.

조아라 씨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축구선수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제주 국제대에 편입해 축구부에 들어가고 싶다는 간절한 목표였다.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뒤에는 시간표를 아예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바꿨다. 오전에는 광명시 여성축구단에서 운동을 하고 오후에 강의를 몰아넣었다. 그리고는 개인 레슨을 받을 시간을 만들었고 틈만 나면 아르바이트를 해 레슨비를 벌었다. 조아라 씨는 한경대에서 여자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고 마침내 2014년 그토록 고대하던 제주 국제대 축구부 편입에 성공했다. 2013년 크리스마스 쯤 일주일 동안 제주 국제대 테스트에 임한 그는 최종적으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조아라 제공

2년간 20분 출장, 하지만 행복했던 그녀
“아직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아요. 국제대 감독님께서 테스트 마지막 날에 ‘이제 계속 우리하고 운동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스무 살에 축구를 처음 시작해 2년 만에 대학교 축구부에 들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를 해왔던 ‘선출’ 사이에서 조아라 씨의 경쟁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껏 이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조아라 씨로서는 몸이 따라가기 버거웠다. 그녀는 편입 후 한 달 만에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고 계단을 오를 수도 없는 몸 상태가 됐다. 스물두 살에 겪는 첫 부상이라 제대로 된 재활 정보도 없었다.

“다른 언니들은 ‘나는 예전에 허벅지가 15cm나 찢어졌는데도 참고 경기에 나갔다’고도 하셨고 주변에서도 ‘너는 선수 출신이 아니니 대학에 가면 절대 쉬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도 하셨어요. 몇몇 친구들은 ‘다쳤을 때 초반 며칠만 잘 쉬면 된다’고도 했는데 저는 쉬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경력도 짧았고 실력도 떨어져서 마음이 급했나봐요. 의욕만 넘쳤는데 몸 관리하는 법을 몰라서 더 많이 아팠죠. 그렇게 6개월 정도를 운동을 하다 말고 하다 말고 했어요.” 마냥 뛰는 게 좋았던 조아라 씨로서는 선수 생활을 이제 막 시작한 뒤부터 부상과 씨름해야 했다.

조아라 씨는 제주 국제대에서 2년 동안 딱 두 경기에 나선 게 전부다. 두 경기 출장 시간을 모두 합쳐도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3학년 때 두 경기에 나갔어요. 대회 이름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대한축구협회에 가서 출장 경력 증명서를 떼야 어떤 대회였는지 알 것 같아요. 한 번은 충북 순복음총회신학교하고 경기를 했고 또 한 번은 위덕대학교와의 경기였어요. 순복음총회신학교하고 경기할 때는 제가 교체로 들어가서 스루 패스를 하나 했는데 공격수 동생이 놓쳤고 위덕대하고 경기에서는 제가 크로스한 공을 언니가 슈팅으로 연결했는데 막혔어요. 너무 아쉽고도 소중한 기억이라 그 장면은 지금도 떠올라요. 그렇게 두 경기에서 20분 정도 뛴 게 전부입니다.”

2016년 이후 5수째 WK리그에 도전하다
조아라 씨는 4학년이 된 뒤로는 아예 경기에 나가지 못했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온 유망한 선수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실업팀에서 돌아온 이들까지 더해져 조아라 씨에게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3학년 때는 비록 경기에는 못 나갔지만 전국체전 엔트리에도 들었는데 4학년 때는 아예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졸업 후에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조아라 씨는 이 과정에서 생활 체육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새벽 운동까지 빼먹지 않는 와중에도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졸업을 하던 2016년 WK리그 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비선출’에 대학 무대에서도 2년 동안 채 20분을 뛰지 못한 이를 선택하는 팀은 없었다.

그녀는 졸업 후 광명시 체육회에 입사를 해서 일과 운동을 병행했다. 그러면서 조아라 씨는 매년 WK리그 드래프트에 신청서를 넣었다. 물론 그를 선택한 구단은 없었다. 2017년 경주한수원 여자축구단 창단 때도 지원서를 넣었지만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2019년인가 한 번 빼고는 매년 WK리그에 도전했어요. 작년에도 지원했었죠. 작년까지는 그래도 전 소속이 제주 국제대여서 눈에 덜 띄었는데 올 해 드래프트 때는 전 소속이 광명여자축구단으로 돼 있으니까 더 눈에 띈 것 같아요.” 그녀는 졸업 이후 이번이 5수째 WK리그 도전이다.

이번에도 그녀가 WK리그 팀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서른 살을 앞둔 선수 경력이 없는 이를 선발한다는 건 도박에 가까운 일이다. 어리고 쟁쟁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조아라 씨의 도전은 도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물론 이걸 조아라 씨도 잘 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감독님들이 엘리트 시합을 보고 드래프트에서 뽑을 선수를 정하신다는 걸 잘 알아요. 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선수를 선택하시지는 않을 걸 압니다. 사실은 저도 포기를 해야하는데 제 자신과 약속을 한 게 있거든요. 서른 살까지는 도전해 보자는 거였어요. 올해가 스물아홉 살이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는 중입니다.”

조아라 씨에게 WK리그는 꿈의 무대다. ⓒ대한축구협회

스물아홉 살 그녀의 마지막 WK리그 도전
조아라 씨는 마음을 비웠지만 그래도 이번 드래프트에도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이번 드래프트가 정말 마지막이거든요. 제가 광명시 여성축구단 소속으로 생활 체육 대회에서 받은 모든 수상 경력을 이력서에 다 적었어요. 2019년까지 매년 성적을 하나씩은 냈더라고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성적일 수는 있어도 저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수상 경력과 자격증까지 있는 건 다 적어서 냈어요. 저도 선수 생활을 하면서 축구를 더 배우고 싶고 더 알아가고 싶어요. 아무래도 드래프트에서 뽑힐 가능성이 적은데 너무 호들갑 떠는 건 싫어서 광명시 축구협회 실장님하고만 같이 드래프트를 준비했어요.”

조아라 씨는 C급 지도자 강습회도 다녀왔다. 그러면서 축구에 대한 조아라 씨의 열망은 더더욱 커졌다. “광명시 체육회에서 일하다가 지도자를 준비하면서 일을 그만뒀는데 이후 코로나19가 터져서 6개월 정도 대기만 하다가 광명 보건소에서도 잠깐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올해 8월에 C급 여성 지도자 강습회에 갔는데 WK리그 감독님들과 황인선 감독님 등이 강사로 나오셨어요. 그 분들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너무 소중했고 그러면서 ‘나도 축구를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축구와 계속 함께 하고 싶어요.”

이제 그녀에게는 운명 같은 기다림이 시작됐다. 아무래도 가능성이 극히 낮은 도전이다. 17일 WK리그 드래프트에서 그녀가 호명되지 않으면 선수로서 그녀의 도전도 끝날 것이다. 조아라 씨는 서른 살을 앞두고 이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축구가 간절하다. “축구가 너무 좋았고 아쉬움이 너무 커서 이대로 축구를 그만두면 너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축구를 더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 도전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도전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WK리그 선수에 도전하는 서른을 앞둔 ‘비선출’ 조아라 씨의 도전은 17일 오후 2시에 그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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