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이 날아온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강원FC 볼보이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강릉=김현회 기자] ‘볼보이’도 강원FC 선수단과 한 마음이었다.

강원FC는 12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 2021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대전하나시티즌에 4-1 승리를 거뒀다. 지난 8일 원정 1차전에서 0-1로 패했던 강원은 이날 선제골을 내준 뒤 연이어 네 골을 뽑아내는 괴력을 발휘하며 승부를 뒤집었다. 특히나 한국영은 이날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으면서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원은 K리그1 생존을 확정지었고 대전은 7년 만의 승격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경기는 강원으로서는 불리한 상황에서 치르는 승부였다. 지난 8일 대전한밭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 2021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0-1로 패한 강원FC는 이 경기에서도 전반 이종현에게 선제골을 내주면서 끌려갔다.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연이어 세 골을 넣지 않으면 곧바로 K리그2로 강등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후 강원은 기적을 썼다. 전반 26분 상대 이지솔의 자책골로 동점에 성공한 강원은 1분 뒤 임채민이 역전에 성공했고 한국영이 전반 30분 세 번째 골을 뽑아내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선제골을 내준 뒤 급하게 공격에 임하던 강원은 세 번째 득점 이후 여유로운 플레이로 전환했고 급해진 대전은 빠르게 공을 전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반전은 강원이 3-1로 앞선 채 마무리됐다. 전반전 경기 운영, 특히 볼보이의 활약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후반 들어 강원FC의 새로운 전략(?)이 등장했다. 바로 볼보이(볼스태프)가 공을 상대에게 천천히 전달해주는 전략이었다. 마치 짜기나 한 듯 후반 들어서 볼보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후반 6분 하프타임 부근에 있던 볼보이는 대전의 스로인이 선언되자 공을 느릿느릿 전달했고 결국 답답해 하던 대전 선수가 직접 달려와 공을 가지고 갔다. 같은 자리에서 4분 뒤인 후반 10분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 볼보이는 대전 스로인 상황에서 대전 선수에게 공을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바깥으로 나가는 공을 주우러 갔다.

대기심이 볼보이에게 “빨리 공을 달라”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이 볼보이는 “알았다”고 답했다. 이 자리에 위치한 볼보이 뿐 아니었다. 후반 18분 대전 골대 뒤의 볼보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전의 골킥 상황에서 대전 골대 뒤 볼보이는 공을 슬쩍 굴려 주며 김동준이 받을 수 없는 위치로 전달했다. 화가 난 대전 벤치에서 일제히 일어나 주심에게 항의를 항 정도였다. 대전 서포터스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담당자가 직접 해당 볼보이에게 가 주의를 줄 정도였다.

후반 26분에는 더 격한 장면이 나왔다. 이번에도 볼보이 때문이었다. 대전의 공격 진영에서 공이 터치라인을 벗어나 대전이 스로인으로 공격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을 들고 있던 볼보이가 요지부동이었다. 이 볼보이는 공을 대전 선수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결국 마음이 급한 대전 선수가 직접 트랙으로 달려가 굴러 나가는 공을 집어 들고 돌아왔다. 이 상황에서 격분한 대전 코치가 항의했고 대전 관중석에서는 물병 두 개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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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는 볼보이를 향해 대전 팬들은 확성기를 들고 욕설을 했지만 볼보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최윤겸 경기감독관과 강원FC 관계자는 볼보이 교체를 지시했다. 하프라인 부근에 있던 볼보이와 대전 서포터스 앞에 앉아 있던 볼보이의 위치를 바꿨다. 대전 서포터스 앞에서 욕설을 들었던 볼보이가 하프라인 옆으로 포지션 변경을 하러 와 자리에 앉자 구단 관계자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했다. 하프라인에 있다가 대전 서포터스석 앞으로 간 볼보이는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야유를 원천 차단했다.

이날 경기를 담당한 최윤겸 경기감독관은 “볼보이로 나온 유소년 선수들이 하프타임 때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면서 “그래서 ‘혹시라도 경기를 지연하거나 그런 플레이를 계획하고 있거든 그러지 말아달라’는 말을 했다. 볼보이는 물론이고 나중에는 들것도 늦게 들어가더라. 일단은 연맹에 제출하는 보고서에는 이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추후 징계 여부는 연맹에서 논의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강원FC 홈 경기 때는 일정에 맞춰 U-15 팀인 주문진중학교 선수단이나 강릉제일고 선수들이 볼보이로 온다. 춘천에서 경기가 열릴 때면 춘천고등학교 선수들도 동원된다.

이날 경기에 온 볼보이들은 강원FC U-18 팀인 강릉제일고 선수들이었다. 경기 후 이민성 감독은 이날 볼보이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원정경기니까 이런 건 감안해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좀 더 경기가 깨끗해졌으면 한다. 양 측이 다 간절한 건 분명한데 그런 행동은 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최용수 감독은 “볼보이의 영역까지 내가 관여할 바도 아니고 홈과 원정 어드벤티지는 전세계에 다 있다”면서 “그건 신경을 쓰지 않았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강원FC 관계자는 “유소년 선수들이어서 그런지 이 선수들도 승부욕이라는 게 있다”면서 “누군가 지시한 일은 아니지만 워낙 중요한 경기여서 조금 더 과하게 행동한 것 같다. 워낙 생존이 간절했던 상황이라 그런 모습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원래 볼보이라는 게 홈 팀 유소년 팀이 주로 맡는 일이기 때문에 홈 어드벤티지가 없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역사 속에는 이날 골을 넣은 선수들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볼보이는 엄청난 야유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시간을 끌었고 결국 강원의 4-1 대승에 미약하게나마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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