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서아시아로만 가는 것 같다.

AFC는 30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규정 변경을 발표했다. AFC는 11월 말 상임위원회를 열었고 여기에서 외국인 선수 제한, 그리고 대회 일정 변화에 대해 논의했다. AFC는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서 이듬해 봄에 시즌을 마무리하는 추춘제를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AFC는 "추춘제는 타 대륙과의 이적시장 동기화를 통해 아시아 구단들이 더 나은 선수들과 감독들을 영입할 기회를 제공하고 A매치와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구단 경기 분배에 더 유리한 면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설명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서아시아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서아시아 대부분이 추춘제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중국 등은 봄에 시즌을 시작해 가을에 시즌을 마치는 춘추제로 운영 중이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추춘제를 도입하는 건 결국 AFC 내부에서 힘이 더 센 서아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머니 게임’에서 밀리지 않던 중국 슈퍼리그의 힘이 떨어진 이 시점에서 AFC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걸 내가 너무 꼬아서 생각하는 것일까. 동아시아 국가에서 추춘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폭설이 내린 강원 홈 경기장에서 공연 중인 브라운아이드걸스. ⓒ강원FC

K리그, 추춘제 했다가 얼어 죽는다

한국에서 추춘제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8월 말에 시즌을 시작해 12월까지 경기를 하고 겨울에 두 달 정도 휴식기를 가진 다음 3월부터 5월까지 경기를 하면 된다. 가장 추운 1월과 2월에 쉬면 시즌이 잘 돌아갈 거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절대 반대다. 당장 이번 주말 열리는 K리그 최종전에 현장에 가서 중무장을 하고도 달달 떨며 손이 얼어서 기사에 오타가 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렵다. 꽁꽁 언 도시락을 열고 밥에 젓가락을 찔러 넣어도 밥이 얼어서 젓가락이 들어가지 않는 게 12월 축구장이다. ‘핫팩’은 무용지물이다. 축구장은 3월에도 춥다.

추춘제는 우리나라에서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12월까지 경기를 하고 두 달 휴식기를 가지면 된다고 주장하지만 이러면 지금 하고 있는 춘추제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올 시즌 K리그는 12월에 끝나고 내년 시즌은 월드컵 일정 때문에 2월 말부터 시작된다. 두 달을 쉬는데 이걸 ‘휴식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시즌 종료’라고 해야 하나. 추춘제를 해도 추위를 피하려면 12월부터 2월까지는 쉬어야 해 길게는 석 달까지 휴식기가 생기는데 이게 ‘윈터 브레이크’인가. 이 정도면 그냥 시즌 종료다. 추춘제를 하면 우리는 이 추위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축구계에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돔구장 건설을 외칠 허구연 해설위원 같은 분들도 없다. 돔구장 없이는 추춘제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추춘제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더 많다. 한국에서 스포츠를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날씨는 대략적으로 5월과 6월, 7월 초, 그리고 9월과 10월 정도다. 그런데 추춘제를 하면 5월에는 시즌이 딱 끝난다. 가장 날씨가 좋고 관중이 몰릴 5월과 6월, 7월 초를 그냥 날리는 건 너무나도 아까운 일이다. K리그 관중몰이는 이때가 가장 잘 되는데 이때를 포기할 수는 없다. 또한 영동지역에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수시로 폭설이 내린다. 2월에 강원FC의 강릉 홈 경기가 제대로 치러질 수가 없다. 추춘제를 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흥행하는 KBO리그를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같으면 추운 축구장에서 덜덜 떠느니 따뜻한 배구장이나 농구장에 갈 것이다.

폭설이 내린 강원 홈 경기장에서 공연 중인 브라운아이드걸스. ⓒ강원FC

추춘제, K리그에선 생각도 하지 말자

추춘제는 결국 서아시아를 위한 선택이다. 자국 리그 대다수가 추춘제로 운영되는 서아시아의 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추춘제를 해도 날씨가 일정한 서아시아는 별로 타격을 입을 게 없다. 거기에 AFC 챔피언스리그는 동아시아의 강세에 제동을 걸기 위해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결승 전까지는 만나지 않도록 분리해 놨다. 추춘제가 시행되면 서아시아 팀들은 날씨가 좋은 5월에만 동아시아를 한 번 방문해 결승전만 치르면 된다. 12월의 매서운 날씨 같은 건 서아시아 팀들이 AFC 챔피언스리그를 추춘제로 바꿔도 동아시아에 와 느낄 일이 없다. 크리스마스에 하던 홍명보 자선축구에 알 힐랄을 초대하면 추춘제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AFC 챔피언스리그가 추춘제를 실시해도 우리는 그대로 춘추제를 유지했으면 한다. 어차피 AFC 챔피언스리그가 추춘제를 해도 가을에 조별예선을 하고 겨울 휴식기 이후 2~3월에 토너먼트가 진행된다. K리그로서는 조별예선 이후 새로운 시즌에 토너먼트를 치러야 하는 게 다소 찜찜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서아시아 팀들도 자국리그는 추춘제를 하면서도 AFC 챔피언스리그는 춘추제로도 잘만 운영했다. 어차피 12월부터 2월까지는 추춘제를 해도 경기를 못 하니 우리는 지금 그대로 리그 방식을 유지하면 된다. 혹여라도 AFC 챔피언스리그가 추춘제를 한다고 K리그도 추춘제를 고민하지는 말아달라는 이야기다. 정말 그러다가 다 얼어 죽는다.

외국인 선수를 최대 7명까지?

다만 안타까운 건 AFC가 너무 힘 있는 서아시아 위주로 운영되고 여기에 자꾸 이상한 선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아시아의 제안으로 AFC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뛸 수 있는 외국인 선수의 숫자도 늘릴 예정이다. 현재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세 명의 외국인 선수와 AFC 가맹국 출신 선수 한 명, 즉 ‘3+1’ 규정이 있다. 그런데 서아시아에서는 이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보길 원한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이들은 더 많은 외국인 선수가 뛸수록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현재 AFC 대회 위원회와 기술위원회는 '4+2', '5+1', 혹은 '5+2' 등 새로운 조합을 제시해 오는 2023년부터 이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쉽게 말해 11명의 선수 중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의 선수로 5명을 채우고 나머지 두 자리는 한국이나 일본의 유명 국가대표 선수로 채워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축구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라지만 AFC는 너무 노골적으로 서아시아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이번에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는 무려 외국인 선수가 7명이었다. 장현수(한국), 바페팀비 고미스(프랑스), 무사 마레가(말리), 안드레 카리요(페루), 루시아노 비에토(아르헨티나), 마테우스 페레이라(브라질), 구스타보 쿠에야르(콜롬비아) 등이 있다. 이 중 카리요와 비에토, 쿠에야르는 AFC 챔피언스리그 규정에 따라 결승전에 나오지도 못했다.

외국인 선수 출장 규정을 대폭 늘이는 건 서아시아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대 7명의 외국인 선수를 보유할 수 있고 카타르 알 사드 역시 정우영(한국)을 비롯해 바그다드 부네자(튀니지), 앙드레 아에우(가나), 길레르메 토레스(브라질), 산티 카졸라(스페인) 등으로 외국인 선수 규정을 꽉 채웠다. 외국인 선수 출장 규정이 더 느슨해지면 서아시아의 막강한 자금력을 K리그가 더더욱 따라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AFC 챔피언스리그가 권위를 올리고 경쟁력을 강화하려한다는 게 AFC의 입장이지만 이는 핑계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규정 변경이 득이 될 게 전혀 없다. K리그가 AFC 챔피언스리그를 위해 자국 리그에도 ‘5+2’ 규정을 만들 수도 없다.

폭설이 내린 강원 홈 경기장에서 공연 중인 브라운아이드걸스. ⓒ강원FC

40개 팀 참가, 이상한 규정의 ACL

뭐 투자하는 구단에 더 유리한 입장을 조성하는 선택이야 그럴 수 있다. 그런데 AFC는 아직도 이 대회에 대해 갈팡질팡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올 시즌부터 32개 참가팀을 40개 팀으로 확대했다. 아직 지역 불균형이 심한 아시아에서 참가 팀수가 늘어나다보니 대회의 권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일들이 발생했다. 첫 출전한 필리핀 카야는 6전 전패 2득점 16실점을 했고 싱가포르 탬피니스 로버스 역시 6전 전패 1득점 27실점을 기록했다. 전북에는 무려 0-9 대패를 당했고 감바오사카에도 1-8로 대패했다. 필리핀 유나이티드 시티는 1승 1무 4패 4득점 24실점으로 ‘광탈’했다.

웃픈 건 그나마 중국 슈퍼리그 팀들이 2군을 내보냈고 호주 팀들이 코로나19를 우려하며 참가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만약 이들이 전력을 다했더라면 더 큰 격차가 벌어졌을 것이다. 32개 팀에서 40개 팀으로 참가 팀수가 늘어나면서 전력 불균형은 더더욱 심해졌다. 다양한 팀들이 나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울 일이지만 필리핀과 싱가포르 팀들은 아직 AFC 챔피언스리그에 나올 만한 수준이 아니다. 좋은 팀인 건 분명하지만 홍콩의 킷치가 16강을 노릴 만한 상황이었다는 건 AFC 챔피언스리그의 권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더 복잡한 건 팀수가 32개에서 40개도 확대되면서 조2위도 16강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는 점이다. 각 조 1위만 16강에 직행하고 각 조 2위는 다른 조 2위와 승점을 따져서 운명이 결정되는 복잡한 규정이 생겼다. 규칙이라는 게 간단해야 하고 각 조 1위와 2위가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하는 게 당연한데 AFC는 팀 수를 48개도 아니고 40개로 확대하면서 이상한 규정을 적용했다. 약체인 베트남 비엣텔, 필리핀 카야FC와 한 조에 속한 팀이 다른 조 2위 경쟁 팀들보다 유리한 건 명백한 사실이다. 무슨 동네 체육대회도 아니고 아시아 최고 권위의 축구대회가 이런 공정하지도 못하고 납득할 수도 없는 룰을 적용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꾸만 서아시아로 가는 AFC

중국의 견제마저 사라진 AFC에서 서아시아는 더 많은 특혜를 누릴 예정이고 AFC는 아직도 졸속 행정으로 눈치를 보고 있다. 물론 가장 넓은 대륙에서 열리는 클럽 대회이다보니 한 팀 한 팀의 사정을 다 봐줄 수는 없다. 하지만 AFC는 자꾸 공정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특히나 추춘제 도입 추진은 너무나도 노골적이다. 이런 노골적인 서아시아 편향 정책에는 이의를 제기할 용기도 필요하다. 자기들 편하겠다고 우리보고 한 겨울에도 축구를 하라는 건 너무나도 이기적인 처사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돈 많은 편 눈치만 본다. 권위를 세우려면 한참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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