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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고양=김현회 기자] 손흥민이 대표팀 경기에서 갑자기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한국 여자 축구의 간판 공격수 지소연에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2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신세계 이마트 초청 여자 축구대표팀 평가전’ 뉴질랜드와의 맞대결에서 전반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 상대 자책골과 임선주의 결승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따냈다. 특히나 이날 경기에서 콜린 벨 감독은 지소연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전술을 실험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윤영글이 골문을 지켰고 장슬기와 홍혜지, 임선주, 김혜리가 포백을 구성했다. 중원에는 지소연과 이민아가 포진했고 손화연과 추효주가 좌우 날개에 포진했다. 조소현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했고 이금민이 최전방 원톱으로 출격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지소연의 수비형 미드필더 배치였다. 지소연은 A매치 통산 59골을 기록,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58골)을 제치고 A매치 최다골 기록을 보유 중이다. 또한 지소연은 FIFA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2020-2021시즌 첼시에서 활약하며 잉글랜드 여자 슈퍼리그(WSL) 2연패, 리그컵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여자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끌었다. 한국 남녀 축구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공격수다.

그런데 이날 지소연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전반전에는 이민아와 함께 중원에서 호흡을 맞추면서 공격형 미드필더 조소현의 뒤를 받쳤다. 후반 들어 이민아 대신 박예은이 투입되자 지소연은 조소현과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소화했다. 지소연은 경기 내내 전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후방에서 플레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다. 후반 막판에는 조소현까지 공격적으로 가담하자 홀로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다. 4-1-4-1 포메이션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1' 자리를 지소연이 소화했다.

파격적인 전술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도 “지소연이 대표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건 처음 본다”고 놀라워했다. 이날 지소연은 후방에서 상대 공격을 차단하고 공을 전방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공격에 가담해 특유의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세트피스 상황이 되면 전담 키커로 나서 날카로운 킥을 선보였다. 프리킥으로 상대 골대를 강타하기도 했고 코너킥 상황에서는 두 차례나 홍혜지에게 연결한 공이 슈팅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콜린 벨 감독은 지소연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린 뒤 다양한 공격 조합을 시도했다. 전반전에는 이금민을 원톱으로 내세웠고 추효주를 오른쪽 측면에 배치해 활용했다. 후반 들어서는 최유리가 투입되며 공격진에 변화가 생겼다. 다양한 공격 자원이 마련된 상황에서 지소연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하면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지를 실전에서 활용했다. 지소연의 장기인 드리블과 슈팅 등은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지소연은 후방에서 노련한 플레이로 공격을 지원했다.

협회 관계자는 “지소연이 이런 포지션 변화도 재미있어 한다”면서 “평소에도 자신이 골을 넣고 해결하는 건 물론이고 동료들에게 패스를 찔러 넣어주며 도와주는 플레이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날 지소연은 후반 종료 직전 상대 공격을 차단한 뒤 공격진에서 최유리에게 기가 막힌 침투 패스를 찔러 넣어주는 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지소연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은 벨 감독이 더 다양한 선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었던 실점이었다.

경기 종료 후 뉴질랜드 지츠카 클림코바 감독 역시 “한국의 어떤 선수가 가장 돋보였느냐”는 질문에 공격수들이 아닌 지소연을 지목했다. 클림코바 감독은 “한국의 10번이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다. 믿을 수 없었다”면서 “경기장 내에서 보여준 영향력이 컸다. 지치지 않았고 후반전까지 열정을 보여줬다“고 지소연을 칭찬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다골을 보유 중인 공격수는 이렇게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장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남자 대표팀으로 치자면 손흥민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서는 것과 같은 놀라운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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