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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전주=김현회 기자] 이청용이 관중석에 앉아 있다. 김호남과 오범석도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상하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선수는 이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경기 백업 명단에 포함된 이들이다. 이들은 벤치가 아니라 벤치 뒤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아시아축구연맹(AFC)의 방침이었다. 백업 명단에 포함된 선수들이 모두 벤치에 앉을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기 않기 때문이다. 엔트리에 든 선수 중 상당수는 벤치가 아니라 벤치 뒤 관중석에 앉아야 했다. 규정상 AFC 챔피언스리그는 10명의 선수를 백업 명단에 넣을 수 있다. 코치진과 백업 선수가 모두 벤치에 앉을 수 없다. 이들은 경기를 지켜보다가 감독의 지시를 받으면 ‘선택된 선수들만’ 그라운드로 내려가 몸을 푼다.

올 해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과 올 시즌 개막한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도 이같은 방식으로 백업 선수들이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대기했다. 곧 경기에 뛸 선수들이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생소했다. 관중처럼 앉아 있다가 뛰어나가 성난 황소처럼 달리는 모습은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이날 경기에서도 양 팀 백업 선수들은 감독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관중 모드’로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는 지난 전북-울산, 포항-나고야 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관중석에 있던 관중 ‘일류첸코 씨’는 김상식 감독 지시 이후 그라운드로 내려가 몸을 풀더니 연장전에서는 ‘일류첸코 선수’로 변신했다. 경기장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관중을 꽉 차게 받을 수 없어 골대 뒤쪽 좌석은 선수들이 앉아도 일반 관중과 접촉할 만큼 가깝지 않다. 다만 일반 관중은 바로 앞 관중석에 나란히 앉은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신기한 구경을 체험할 수 있다.

관중석에 있다가 그라운드로 투입되는 선수가 있다면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번 AFC 챔피언스리그 8강과 4강에서 교체 아웃된 선수는 숨을 헐떡이며 유니폼을 입은 채로 벤치가 아닌 관중석으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 전북-울산전에서도 교체 아웃된 이승기 등은 그대로 녹색 유니폼을 입고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 경기에서도 후반 교체 투입된 울산현대 이동경과 바코, 오세훈은 곧바로 벤치로 올라와 동료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승부차기가 시작되자 그라운드로 다시 내려가 동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승부차기를 지켜봤다.

선수였다가 곧바로 관중으로 변신하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풍경이다. 연장 막판 아쉬운 기회를 놓치자 관중석에 앉은 선수들은 정말 관중처럼 탄식했다. 또한 엔트리에 든 선수들이 관중석에서 몸을 풀러 그라운드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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