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성’에서 사상초유의 ‘동해안더비’가 열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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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전주=김현회 기자] ‘전주성’에서 열린 사상초유의 ‘동해안더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1 AFC챔피언스리그(ACL) 4강전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경기에서 울산 윤일록의 선제골과 포항 그랜트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후 연장전 30분에서도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결국 불투이스가 실축한 울산을 상대로 포항이 승리했다. 이로써 포항은 동아시아 대표 자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과 아시아 최강을 놓고 승부를 펼치게 됐다.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라이벌전인 ‘동해안더비’가 전북현대의 홈인 ‘전주성’에서 열리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 대회는 전북현대가 주최하는 대회는 아니다. 프로축구연맹이 국내 유치를 확정 지었고 적합한 곳을 찾다가 전주시와 협의해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게 됐다. 하지만 전북현대가 8강 울산현대와의 경기에서 패하며 탈락하면서 이 대회는 남의 집 잔치처럼 비춰지게 됐다. 가뜩이나 전북, 울산, 포항의 관계가 복잡한 가운데 전주성에서 열리는 동해안더비는 전북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 운영은 전북현대에서 맡았다. 전북 구단 담당자는 경기 전 “남의 집 잔치를 준비해 주는 기분이 참 씁쓸하다”고 전했다. 이날 전북현대는 경기장 제공을 비롯해 경기 운영 전반적인 일을 모두 맡아서 했다. 안전 요원을 배치하고 티켓팅도 직접 했다. 양 팀 팬을 분리하는 역할도 전북현대의 몫이었다. 전북현대 관계자가 그라운드에서 평소처럼 경기를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경기는 전북현대가 아닌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의 맞대결이었다는 점이다.

경기 전 AFC 챔피언스리그 규정에 따라 양 팀 응원가가 흘러 나왔다. 포항스틸러스 서포터스 강철전사의 목소리가 담긴 노래가 먼저 전주성에 울려 퍼졌다. “싸워라 승리의 그날을 위하여. 포항의 붉은 전사여.” 이 노래가 끝나자 울산현대 서포터스 처용전사의 응원곡이 울려 퍼졌다. “내가 너의 별이 되어 언제든 지켜주리라.” 전주월드컵경기장의 대형 스피커를 통해 울산과 포항의 응원가가 흘러나오는 일은 아마 두 번 다시 없을 일이다. 전북 팬들이 경기 날이면 찾는 경기장 앞 포장마차의 사장은 “전북이 4강에 올라오지 못해 아쉽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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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 포항에는 다시는 잊을 수 없는 승부였고 동아시아 축구팬 전체가 주목하는 경기였지만 전북 관계자들의 표정은 씁쓸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 내에 있는 전북현대 구단 사무실에는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경기 지원을 위해 필요한 인력들이 남아 있어야 했다. 구단 사무실에는 이 경기가 아닌 구단 업무를 위해 야근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경기에 대한 관심도는 엄청 났지만 전북현대 구단 관계자들에게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한 전북 관계자는 그라운드가 보이지 않는 실내 문 뒤에서 하염없이 서성였다.

전북현대로서는 치욕스러운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남의 집에서 울산현대와 포항스틸러스는 빅매치를 펼쳤다. 전북현대와 K리그 우승을 놓고 경쟁하는 라이벌 울산현대 팬들이 전북 서포터스의 상징과도 같은 N석에서 응원을 하는 모습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지난 포항-나고야전에서는 포항 팬들도 전주성 N석에서 걸개를 걸고 응원전을 펼쳤다. 이 역사적인 광경은 오래 회자될 수밖에 없다. 전북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은 일이다. 전북현대가 주최하기로 나선 대회도 아닌데 참 난감하게 됐다. 일부 전북 구단 관계자들은 잠깐 잠깐 사무실에서 나와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지만 이 경기에 큰 관심을 두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만난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그래도 전북현대에서 매너 있게 4강전을 준비해 줬다”고 고마워했다. 전북현대는 포항과 울산이 좋은 환경에서 경기를 준비할 수 있도록 클럽하우스까지 개방했다. 포항은 전북 클럽하우스에서 이틀 간 훈련했고 울산은 먼저 정해진 일정이 있어 이 제안을 정중히 고사했다. ‘전주성’에서 펼쳐진 역사적인 ‘동해안더비’는 전북으로서는 치욕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날 전북현대는 ‘동해안더비’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에게 직접 조리한 저녁식사까지 제공했다. 반찬은 어묵볶음과 떡갈비, 김치찌개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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