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 | 전주=김현회 기자] 울산현대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의 진심이 팬들에게 전해졌을까.

17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8강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의 단판승부 경기에서 울산현대가 짜릿한 3-2 승리를 따냈다. 서로 두 골씩 주고 받으며 90분 승부를 마무리한 두 팀은 결국 연장에 돌입했고 울산 이동경이 연장 전반 10분 환상적인 아웃사이드 중거리슛으로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울산은 4강 진출을 확정 지었다.

울산현대는 지난 15일 전주에 도착해 숙소를 잡고 훈련에 돌입했다. 비가 쏟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는 날 전주로 향하게 된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 “우리 원정 팬들이 몇 명 정도 올 것 같느냐”고 구단 프런트에게 물었다. 원정팬 입장 금지 조치 중인 K리그와 달리 AFC 챔피언스리그는 원정 팬 입장이 가능하다. 전북현대와의 물러설 수 없는 승부에 달려오지 않을 울산 팬이 있을까. 홍명보 감독은 경기 전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 팬들이 멀리까지 오신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다”는 메시지를 구단에 전했다.

구단에서는 조심스럽게 홍명보 감독에게 “혹시 영상을 찍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큰 선물을 할 수는 없고 SNS를 통해 원정 응원을 오는 팬들을 향한 메시지를 담아주셨으면 한다고 물었다. 영상 촬영이야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시기였다.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하는 16일 오후 구단 홍보팀에서는 홍명보 감독에게 이 같은 사실을 조심스럽게 문의했다. 경기 하루 전 SNS 영상 촬영을 요청하는 것도 어렵고 이걸 받아들이는 감독도 흔치 않다. 경기는 절대 져서는 안 되는 AFC 챔피언스리그 8강 원정경기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은 구단 홍보팀의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16일 전주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오후 4시 반부터 훈련이 예정돼 있었는데 홍보팀 담당자들이 4시에 훈련장으로 가 촬영을 시작했다. 예민할 수도 있는 선수들 역시 홍명보 감독과 마찬가지로 원정 응원을 오는 팬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촬영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촬영해 임했다. 보통 경기 전날이면 “반드시 이기겠다”는 필승의 의지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은 팬들에게 “날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시라”고 ‘스윗하게’ 말했다.

홍명보 감독은 영상을 통해 “여기에 오니 엄청 춥다”면서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날씨가 춥고 야간 경기니까 꼭 두꺼운 옷들 입고 좋은 기분으로 응원하러 오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형민과 이청용 역시 “조심히 오시라”, “안전하게 오시라”고 당부했다. 조수혁은 동료들을 향해 “다들 다음 날 출근하고 학교도 가야하는 분들이 일요일 저녁에 시간을 내서 오신다”면서 “그분들을 위해 우리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자”고 독려했다. 경기를 앞두고 비장함 대신 팬들의 추위를 먼저 걱정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마음이 훈훈했다.

이날 울산 원정 팬들은 200명 넘게 전주성에 집결했다. 울산시청은 구단이나 서포터스가 단체로 버스를 대절할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내렸고 결국 구단이나 서포터스가 단체로 버스를 타고 전주로 오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자 팬들은 자차를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각자 알아서 전주로 모였다. 이렇게 모인 200여 명의 팬들은 역사적인 명승부를 직접 보며 열광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울산에서 전주까지 온 이들은 경기가 승부차기로 이어지면 막차가 끊길까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이날 울산현대는 경기장에서는 용맹한 호랑이처럼 싸웠다. 하지만 경기 전 많은 원정 팬들이 경기장에 온다고 하자 이들은 추운 날씨를 걱정하며 ‘스윗하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물러설 수 없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훈련을 하는 순간에도 팬들을 위해 흔쾌히 영상 촬영을 허가하는 일은 승부의 세계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홍명보 감독은 가장 먼저 이 말을 했다. “멀리서 우리 울산 팬들이 직접 경기장에 찾아와 주셔서 응원해 주셨는데 그 분들께 감사드린다. 그분들이 돌아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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