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장면은 본 칼럼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파이널서드까지 딜리버리에 문제가 있네요. 스윙 작업을 통해 하프스페이스를 공략해야죠.” 들으면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최전방으로 공을 잘 연결을 하고 후방에서 패스하면서 상대 센터백과 풀백 사이를 공략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도 될 걸 어렵게 말하는 게 추세다. 전문가들도 그렇고 전문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들도 그렇다. 굳이 안 써도 될 영어를 쓴다. 한글날을 맞아 오늘이 아니면 전할 기회가 별로 없는 의견을 내고 싶다. 스포츠계에 무분별한 외래어가 너무 많다.

이제는 ‘멀티골’이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나는 이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 골’이라는 순화된 표현이 있는데 한 선수가 두 골을 넣으면 중계진이나 취재진, 그리고 팬들 모두 ‘멀티골’이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말보다 외래어의 글자수가 더 적어 줄임말 형태로 쓰는 거면 또 모르겠는데 ‘멀티골’은 ‘두 골’보다 글자수도 더 많다. 그래서 나는 그냥 ‘두 골’로 쓴다. 이렇게 편한 표현이 있는데 굳이 ‘멀티골’이 필요할까. <스포츠니어스>는 최대한 ‘멀티골’ 대신 ‘두 골’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오피셜’도 마찬가지다. 순화하면 ‘공식 입장’ 또는 ‘공식’ 정도로 쓸 수 있다. 구단이 내는 공식 입장, 특히나 이적 관련 문제를 다룰 때 ‘오피셜’이라는 표현을 쓴다. 과거에는 팬들끼리 이적설이 분분할 때 “그거 오피셜이야?”라는 정도로 썼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언론에도 구단 공식 입장에는 ‘오피셜’이라는 말머리가 붙는다. 이 역시 나는 그냥 ‘공식’ 정도로 쓴다. 그리고 사실 이런 공식 입장 보도자료는 귀찮아서 조성룡에게 넘긴다. 그런데 조성룡도 ‘공식’이라고 표현한다.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외래어는 줄여보자는 게 우리의 방침이다. ‘이슈’도 ‘문제’ 정도로 순화할 수 있다.

2019년 외국인 선수들이 모여 한글로 이름 쓰기 행사에 도전했다. ⓒ프로축구연맹

최근 들어 ‘하프스페이스’나 ‘파이널서드’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A급 지도자 교육을 다녀온 강원FC 이슬기 코치에게 물었다. 이슬기 코치는 순우리말로 된 이름으로 한글날 가장 빛나는(?) 지도자다. 그는 “‘파이널서드’는 경기장을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눴을 때 가장 위쪽 공격 구역을 뜻한다”고 했다. 내가 “그거 그냥 ‘최전방’이네”라고 하자 그는 “따지고 보면 그렇다”고 웃었다. 이슬기 코치는 “이번에 지도자 교육을 가보니 외래어가 너무 많더라. 온통 지도자 교육 관련 자료가 영어로 돼 있었다”고 전했다.

‘파이널서드’가 곧 ‘최전방’을 뜻하는 용어라고 그대로 퉁쳐 버리면 외래어를 사랑하는 전술 전문가들이 발끈할 수도 있다. “그거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거든요?”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철학은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라는 것이다. 쉬운 것도 어렵게 표현하는 건 좋은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쉬운 말을 꼬아서 어렵게 말하는 게 지식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그냥 자기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저 선수의 롤은 게겐프레싱이다”라는 것보다 “저 선수의 역할은 재압박이다”라고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니어'와 '파' 대신 '가까운 쪽'과 '먼 쪽'으로 쓰면 훨씬 이해가 쉽다.

‘멀티골’과 ‘오피셜’이 익숙해지는 동안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니 이제는 이게 일상으로 들어온 걸 보면 자꾸 문제 제기를 해줘야 한다. 물론 언론에서 외래어를 자제하는 노력을 하는 동안 축구계도 한글을 쓰기 위한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이슬기 코치는 “해외에서는 포지션을 표현하는 단어가 24개나 세분화 돼 있다고 하더라. ‘너는 인버티드 윙어로 뛰고 너는 수비할 때 어떻게 어떻게 해’라고 하면 통용이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 ‘넌 공격 보고 넌 수비에서 좀 좁혀’이렇게 말한다”면서 “외래어가 자리 잡기 전에 이걸 우리말로 순화하는 과정이 있었으면 한다. 대체할 우리말이 없는 것도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난 국어학자가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일상생활에서도 외래어를 많이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도 친구의 운전을 보면서 “야 핸들 이빠이 꺾어”라는 3개국어를 구사했다. ‘크로스’를 ‘가로지르기’로, ‘코너킥’을 ‘구석차기’로 오글거리게 표현할 생각도 없다. 이미 굳어진 표현이야 그대로 가는 게 맞다. ‘패스’를 ‘연결’ 정도로 순화해 쓰는 정도다. 하지만 굳이 심오한 뜻을 가진 외래어를 연구해가며 쓰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축구계에서도 순화할 수 있는 표현을 정리하고 장려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이슬기 코치는 “‘드롭백’을 하라고 해서 뭔가 하고 멈췄더니 ‘물러서라’는 의미였다”면서 “그럴 땐 굳이 ‘드롭백’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물러서라’고 해도 되지 않느냐”고 전했다.

‘하프스페이스’나 ‘파이널서드’, ‘게겐프레싱’ 같은 용어는 최근 들어 블로드 등에서 전술 분석을 하는 이들이 특히나 자주 쓰고 있다. 이들 중에는 취미로 전술 분석을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더 이름을 알리고 활동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시작하는 단계부터 이런 요상한 외래어보다는 순화된 말을 쓰도록 고민해 보는 게 어떨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려운 것도 쉽게 설명하는 게 전문가다. ‘하프스페이스’나 ‘파이널서드’, ‘게겐프레싱’ 같은 용어는 클롭이나 나겔스만 감독을 만나면 쓰자. 그전까지는 일반적인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축구를 전달하는 게 전문가, 그리고 전문가를 준비하는 이들의 역할이다.

2019년 외국인 선수들이 모여 한글로 이름 쓰기 행사에 도전했다. ⓒ프로축구연맹

지도자 수업은 온통 외래어 범벅이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반대로 심판계는 최대한 순화된 표현을 쓰려고 하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최근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경기 규칙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국제축구평의회가 발간하고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가 우리말로 번역한 이 규칙서 앞머리에는 ‘우리말을 쓰는 전 세계의 축구 가족들에게’라는 가슴 떨리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다. 경기 규칙을 찾으러 들어갔다가 이 명문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는 판정 등에서는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적어도 이런 자세 만큼은 널리 알리고 칭찬해야 한다.

다음은 ‘우리말을 쓰는 전 세계의 축구 가족들에게’ 제목의 말머리 글 중 일부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소개하며 오늘 칼럼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한글날이다.

우리말은 늘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것은 조선말( 北三省朝鲜语, 在日朝鮮語)이기도, 고려말(Корё мар)이기도 하며 한국말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 20세기가 헤어짐과 만남의 반복으로 얼룩진 한 세기였듯, 우리말의 이름 또한 여러 다른 이름으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말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흩어졌음에도, 그러나 축구는 언제나 하나였으며, 그 변하지 않은 축구는 늘 우리 겨레와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구의 법(Laws of The Game)”도 늘 하나였습니다.

1928년 5월 22일 서울에서 조직된 ‘조선심판협회’는 대한축구협회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대한축구협회의 탄생을 보듬은 모태가 ‘심판(審判, match officials)’의 모임이었다는 역사적 진실에 비추어 보건대, “경기규칙서(Laws of The Game)”를 우리말로 옮겨오는 일이 우리들 심판에게 주어진 으뜸가는 임무이자, 그 태생부터 주어진 숙명이었음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지난 몇 년에 걸쳐, 경기규칙서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는 저 먼 남쪽의 제주 섬사람부터, 광양, 곡성, 대구, 대전, 전주, 수원에 이르는 각처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또한 그 나이는 서른을 넘긴 사람부터 환갑에 이르는 사람까지 걸쳐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말 규칙서는 전국 방방곡곡 남녀노소의 사람들 덕분에 그 말의 다양성을 채워 왔습니다. 물론, 그 다채로운 언어적 배경에도 그들 모두가 그 기준을 표준의 서울말로 삼아 표기의 통일성을 지켰습니다.

본 경기규칙서는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의 어문규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표준말의 출처로는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샘” “표준 국어 대사전”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의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옥스퍼드 영한사전 제9판”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의 축구 가족들 사이에서 그 사용이 오래되어 굳어진 말이나 외래어의 경우, 또는 보다 분명한 뜻을 전달하고자 영어로 쓰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야 할 경우, 그 원칙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 점은 이 규칙서를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우리 겨레와 그 헤어진 후손들을 위하여, 그들의 어머니, 혹은 그들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들을 키웠던 말로 “축구의 법”을 옮기는 일. 그 소명에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는 앞으로도 충실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말을 쓰는 전 세계의 축구 가족과 소통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희망이기도 하며, 우리말 경기규칙의 완결성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2021년 6월, 대한민국 서울에서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회 일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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