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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포항=김현회 기자] 스틸야드에서 첫 골을 넣은 권기표가 송민규의 전북 이적으로 허탈해 하는 포항 팬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포항은 4일 포항스틸야드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1 2021 성남FC와의 홈 경기에서 권기표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이 경기 승리로 포항은 두 경기 연속 무승(1무 1패) 이후 승리를 따냈다. 특히나 권기표는 이날 K리그1 데뷔골이면서 포항 유니폼을 입고 첫 골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난 2018년 포항 유니폼을 입은 권기표는 그해 2군격인 R리그에서 19경기에 나서 14골 5도움을 올리며 펄펄 날았지만 정작 1군에는 두 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후 2019년 서울이랜드로 임대를 가 21경기에 나서 3골 1도움을 올리는 그는 지난 해에는 다시 안양으로 임대를 떠나 10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골은 기록하지 못했다. 올 시즌 그는 다시 포항으로 복귀해 철치부심하며 출장 기회를 노렸다.

권기표에게는 포항에서의 경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의외의 기회가 찾아왔다. 송민규가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되고 타쉬가 부진하면서 권기표는 출장 기회를 잡았다. K리그에서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던 그는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1차전 랏차부리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며 첫 선을 보였고 조호르 다룰 탁짐과의 경기에서는 후반 37분 고영준의 도움을 받아 득점을 뽑아내기도 했다.

이날 권기표는 득점 후 춤을 추며 다니엘 스터리지를 따라하는 세리머니로 화제를 모았다. 권기표는 “이 세리머니를 우리 홈인 스틸야드에서도 꼭 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권기표에게 K리그에서도 기회가 찾아왔다. 송민규가 전북으로 이적한 가운데 임상협과 김호남, 김현성 등은 부상을 당했고 타쉬의 부진도 이어졌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 달 24일 FC서울과의 경기에서 권기표를 선발로 내세웠다. 이후 대구FC전에도 선발 출장한 권기표는 4일 성남FC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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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에서 권기표는 후반 26분 역사적인 스틸야드에서의 첫 골을 뽑아냈다. 고영준의 크로스를 다이빙 헤더로 연결하며 이날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뽑아냈다. K리그1에서 기록한 첫 골이었다. 권기표는 약속한대로 스터리지 세리머니를 하며 유쾌한 모습을 보여줬다. 경기 종료 후 김기동 감독은 권기표의 플레이에 대한 평을 부탁하자 “내가 잘 못 봤는데 그 춤추는 세리머니를 했느냐”고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표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아니면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이제 그 선수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선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 후 만난 권기표는 밝은 표정이었다. 돌고 돌아 4년 만에 스틸야드에 와 마침내 첫 골을 넣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권기표는 “스틸야드에서 골을 넣는 장면을 꿈에서만 그려왔다”면서 “스틸야드에서 골을 넣는 게 어릴 때부터 꿈이었다. 그런데 이게 현실이 됐다. 너무 기쁘지만 한 편으로는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권기표는 포항스틸러스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거친 ‘포항 성골’이다.

그는 골 장면에 대해 “왼쪽 측면에서 (고)영준이와 (강)상우 형이 주고 받는 플레이를 했다”면서 “영준이는 항상 오른발 컨트롤이 좋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영준이가 오른발로 올려줄 거라고 생각해서 뛰어 들어갔다. 영준이가 잘 넣어줘서 머리가 잘 맞고 들어갔다”고 득점의 공을 고영준에게 돌렸다. 이날 권기표는 득점하고 5분 뒤 이수빈과 교체 아웃됐다. 그가 그라운드를 빠져 나가자 포항 팬들은 박수를 보내며 권기표를 응원했다.

권기표는 이날 득점 후 유쾌하게 춤을 추며 세리머니를 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골을 넣고 재미있는 세리머니를 했다”면서 “대학교 때는 형들과 골을 넣으면 브라질 춤도 따라했다. 프로에서 개성이 넘치는 선수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세리머니가 나왔다. 팬들에게 골 이후에도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 많은 골을 넣고 많은 세리머니를 하고 싶다. 아직 준비된 세리머니가 더 있는데 그건 골을 넣고 공개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서울이랜드 임대 시절 골을 넣으면 하려던 세리머니가 있었는데 그때는 골을 넣고 정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면서 “이제는 그래도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할 여유는 생겼다. 아무래도 2년 동안의 임대 생활이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 2018년도에 프로 1년차 시절 스틸야드에서 뛸 때와는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기표는 2년 동안 K리그2 무대에서 31경기에 나서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공격수가 아닌 윙백 역할도 맡는 등 값진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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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표에게는 마음 속의 경쟁 상대이자 비교 대상이 있었다. 송민규다. 권기표와 송민규는 2018년 나란히 포항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후 송민규는 포항에서 승승장구했고 권기표는 임대를 전전했다. 권기표는 “내가 (송)민규와 입단 동기다”라면서 “민규가 빠지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왔는데 당연히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민규는 포항에서의 입지가 많이 다르다. 나도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지만 그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는 포항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다. 믿음직한 포항 선수가 되기 위해서 죽어라 뛰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권기표는 “민규가 포항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라면서 “나도 포항을 위해서 경기에 나서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임대를 다녔고 민규는 그 사이 더 성장했다. 하지만 민규가 잘 됐다고 배가 아픈 건 전혀 없다. 그만큼 잘 하는 선수다. 매일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민규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갑작스럽게 민규가 떠나면서 나에게 기회가 왔는데 더 많은 경기에 나서면서 포항에서 오래 뛰고 싶다”고 말했다.

권기표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팀에 오래 남을 것만 같던 송민규가 떠나면서 허탈할 포항 팬들에게 권기표가 또렷하게 말했다. 그는 “난 이제 시작이다”라면서 “포항에서 나를 좋게 봐주시고 받아만 주신다면 포항에서만 오래 오래 뛰고 싶다. 솔직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좋아하는 팀이 포항 말고는 없다. 다른 팀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포항만 보고 자라왔다. 스틸야드에서 뛰는 게 꿈이었고 이제는 이 스틸야드에서 오래 서는 게 내 목표다. 포항이라는 ‘한 팀’에서만 오래 있고 싶다”고 밝혔다.

“선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 이야기는 빼는 게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오히려 그는 “정말 진심이다”라면서 “나는 포항 외에는 다른 팀에 관심이 없다. 오래 오래 포항에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 포항에서 유소년 시절부터 꿈을 키워온 권기표는 이날 스틸야드에서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골을 뽑아냈고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당당한 목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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