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회] ‘이동경 악수 거부’보다 더 실망스러운 협회의 변명

ⓒ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이동경이 뉴질랜드와의 경기가 끝난 뒤 상대 선수와의 악수를 거부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22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의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0-1로 패했다. 경기가 끝난 뒤 이동경은 상대팀 크리스 우드의 악수 제안을 거부했고 이 장면은 그대로 전세계로 중계됐다. 이동경은 악수를 거부하며 비매너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동경의 악수 거부보다 더 실망스러운 건 협회의 변명이었다. 협회는 이 장면이 논란이 되자 “이번 대회를 앞두고 경기 전후에 상대 선수와 불필요한 접촉을 삼가라고 철저히 교육했다. 이날 경기 전에도 ‘상대 선수들과 터치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다고 설명했다”면서 “이동경의 행위가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고 말했다. 이동경의 악수 거부보다 더 실망스러운 게 바로 협회의 이같은 발언이다.

실제로 대회 조직위원회가 참가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플레이북’을 보면 “포옹, 하이파이브, 악수 등 신체적 접촉을 피하라”는 내용이 두 번이나 나온다. 악수하지 말라는 뜻의 그림도 들어가 있다. 따지고 보면 이동경의 행위가 정당화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장면을 중계로 지켜본 이들은 이동경이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 신체접촉을 피한 게 아니라 경기에서 패한 뒤 기분이 좋지 않아 악수를 거부한다는 걸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방역 수칙 준수를 위해서라면 눈 인사를 나누거나 주먹 인사 정도도 충분히 가능했다.

경기에서 패하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나는 이동경의 악수 거부가 비매너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선수라면 이럴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에서 패했는데 실실 웃으며 상대팀 선수들과 수다를 떠는 실라지보다는 화가 잔뜩 나 있는 이동경이나 눈물을 흘리는 손흥민 같은 선수들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동경의 악수 거부는 전세계에 알려지면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감정 이입을 해보면 그 상황에서 나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한다. 물론 이동경이 상대에게 예의를 갖췄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기에서 졌으면 매너에서라도 이겼어야 했다.

ⓒ대한축구협회

하지만 이 행위에 대한 협회의 입장이 더 실망스럽다. 과연 이게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나. 아니라는 걸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협회는 이동경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방역 수칙을 내세웠는데 그렇게 따지면 황의조와 정태욱은 더 민망한 상황이 된다. 경기 종료 후 황의조와 정태욱 등은 뉴질랜드 선수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경기에서 지고도 예의를 갖추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첫 경기 패배에 대한 화가 조금 수그러 들었다. 하지만 협회의 변명이 정당화 되려면 상대 선수와 악수한 황의조와 정태욱은 방역 수칙을 위반한 선수가 된다.

이건 해서 더 문제가 될 변명이었다. 차라리 “죄송하다”는 원론적인 사과만 했어도 문제가 커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방역 수칙을 들이대니 정작 지고도 상대에게 예의를 갖춘 선수들이 방역 수칙을 위반한 선수들이 되는 논리의 모순이 생기고 말았다. 누가 봐도 곱게 보지 않았을 선수의 행위 하나를 감싸려다보니 말이 앞뒤가 안 맞는 상황이 됐다. 이날 경기 후 이동경은 상대팀 감독과 주먹인사를 나눴다. 크리스 우드의 악수를 거부한 건 방역 수칙 때문이 아니라는 건 더더욱 명백해진다. 차라리 그냥 이 일에 협회가 대응하지 않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조직위원회가 참가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플레이북’을 보면 서로 악수를 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오지만 인상을 쓰며 상대팀 악수 제안을 손으로 툭 치고 거부하라는 항목은 없다.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 일은 그저 한 순간의 해프닝 정도로 끝날 수 있었지만 협회가 오히려 잘못된 대응으로 불에 기름을 부었다. 협회의 변명 이후 이동경에 대한 비난은 더 커지고 있다. 선수를 감싸려다가 더 사지로 내 몬 꼴이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은 당연히 준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방역 수칙이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한다. 평소 보기 싫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코로나19가 좀 잦아들면 만나자”고 변명하기에 딱 좋다. 이럴 때 방역 수칙은 나름대로 ‘치트키’다. 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이 ‘치트키’가 전세계인이 다 지켜보는 올림픽에서 통하지는 않는다. 협회는 이동경의 행위를 감싸려다가 오히려 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잘못한 건 정중히 사과하고 선수 역시 다음 경기에서는 페어플레이를 보여줬으면 한다. 동경에서 이동경이 멋지게 빛나길 바라는 이들이 많다. 반성의 의미로 다음 경기에서 한 골 넣고 사죄 세리머니 한 번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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