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브랜드가 뭐 어떤가요. ⓒGS칼텍스 서울 Kixx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초등학교 시절 프로스펙스는 선망의 브랜드였다. 있는 집 자식들만 신는 신발이었다. 르까프와 프로월드컵 등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프로스펙스가 ‘원탑’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니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세상이 열렸다. 프로스펙스를 신는 친구들은 패션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로 분류됐고 아디다스와 나이키를 신어야 ‘인싸’가 될 수 있었다. 하얀 실내화에는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으로 나이키를 그려 신고 다녔다. 프로스펙스의 시대는 저물었다.

예쁘고 마케팅 잘하는 나이키의 ‘조던’을 신어야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디다스의 ‘엑신’도 그럭저럭 먹어줬다. 많이 양보해서 리복의 ‘샤크’까지도 ‘인싸’ 범주로 포함하자. 하지만 프로스펙스의 ‘헬리우스’는 이 티어에 안 껴줬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프로스펙스가 눈밖으로 밀려난 건 사실이었다. 성인이 되고 서태지와 김연아가 프로스펙스 모델이 됐을 때는 좀 놀라기도 했다. 복고 열풍이 불고 몇 년 전 정말 어렵게 프로스펙스 신발 하나를 구하기도 했다. 어릴 땐 촌스러워 보였던 프로스펙스가 지금은 ‘뉴트로’ 시대에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프로스펙스가 K리그 FC서울의 유니폼 스폰서로 나선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프로스펙스가 LG그룹과 GS그룹이 보유한 프로스포츠 4대 종목에 유니폼 스폰서로 나선다는 것이었다. 2년 전 GS스포츠 산하 프로배구단인 GS칼텍스의 유니폼 스폰서 계약을 맺은 프로스펙스는 FC서울은 물론 KBO리그 LG트윈스와 프로농구 창원 LG의 유니폼 스폰서도 계획하고 있다. 르꼬끄와 계약이 올 시즌을 끝으로 만료되는 FC서울은 프로스펙스와의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C서울이 프로스펙스를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프로축구연맹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팬들 사이에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다소 세련미가 떨어지는 프로스펙스 로고가 유니폼에 붙는 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디자인이 예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고 흔히 말하는 ‘폼’이 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프로스펙스는 K리그의 빅클럽인 FC서울 유니폼 스폰서가 될 자격이 충분하고 오히려 이렇게 돈을 주는 프로스펙스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갑’은 스폰서 비용을 지불하는 프로스펙스다.

가슴팍에 나이키를 달고 뛰면 폼이 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축구계에서 나이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돈이 되는 대표팀에만 후원하는 나이키는 K리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K리그 단 한 구단도 나이키의 후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논리로 봐서 나이키를 비난할 수는 없다. 돈 되는 사업만 하겠다는데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한국 축구의 뿌리인 유소년 축구나 K리그에 관심을 갖는 용품 스폰서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K리그에 관심이 없다.

이런 업계에 프로스펙스가 뛰어든다고 하니 이건 버선 발로 뛰어나가 반겨야 할 일이다. 프로스펙스가 촌스럽다고?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해 디자인이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우리는 이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팀인 여자배구 GS칼텍스의 유니폼도 프로스펙스에서 후원하고 있는데 나는 이 유니폼이 촌스럽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비록 이제는 팀을 떠났지만 내가 좋아하던 이소영 연봉의 일부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하니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공짜로 입어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을 내면서 입어달라고 하는 건데 이런 브랜드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배가 불러도 너무 불렀다. 과거 수원삼성이 자이크로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이다. 당시 자이크로는 파격적으로 수원삼성과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후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했고 제품의 질도 좋지 않아 논란이 됐다. 이런 수준 미달의 업체와 계약을 하는 건 당연히 지적받아야 하지만 프로스펙스한테 이런 소리하면 40년 전통의 프로스펙스한테 실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프로스펙스는 서태지와 김연아가 광고 모델을 했던 곳이다.

프로스펙스의 이번 스폰서 계약이 긍정적인 건 이게 LG그룹과 GS그룹이 보유한 프로스포츠 4대 종목 모두와 손을 잡는다는 점이다. 당연히 프로스펙스 내부에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제때 물량이 나오지 않고 질도 떨어지는 용품을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계약을 계기로 그룹 내부에서 프로스펙스가 차지하는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고 LG그룹과 GS그룹이 보유한 프로스포츠 4대 종목에 대한 그룹 내의 위상도 달라지지 않을까. 프로스펙스는 과거 포항아톰즈와 럭키금성, 성남일화 등을 후원했던 K리그계의 ‘근본’이기도 하다.

FC서울이 프로스펙스를 입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프로축구연맹

오히려 이번 후원을 계기로 프로스펙스 뿐 아니라 질 좋은 국내 브랜드들이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활발히 활약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로벌 브랜드 유니폼을 입고 성적이 좋지 않은 것보다는 국내 스포츠 브랜드를 입고 좋은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게 더 팬들이 원하는 방향 아닐까. 정확한 계산이 아닐지 몰라도 지동원 영입 비용이 결국 구단 수익, 그 중에서도 유니폼 스폰서 수익에서 나왔다면 유니폼 스폰서에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물론 지동원의 영입 자금이 현재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프로스펙스에서 나올 일은 없지만 비유가 그렇다는 거다.

프로구단이 유니폼 스폰서를 바꾸면 산하 유소년 팀의 용품도 모두 바뀐다. FC서울 유소년 선수들이 프로스펙스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성장할 수 있다면 까짓 거 나이키가 아니어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가는 지하철에서 프로스펙스 기성용 마킹 유니폼 입고 돌아다니는 게 부끄러울 것도 없다. 최근 상황을 살펴보니 프로스펙스의 FC서울 후원 규모도 상당히 큰 편이고 거기에 프로스펙스가 근본이 없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이크로처럼 구단의 속을 긁어놓을 일도 없다. 생산 문제가 걱정인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과의 계약인데 이런 걱정은 넣어둬도 좋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이렇게 국내 프로스포츠에 투자한다는 업체가 등장한 건 오히려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FC서울이 프로스펙스와 손을 잡고 함께하겠다는 발표가 나오면 이런 브랜드에는 ‘돈쭐’을 내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K리그 시장이 더 커질 테니 말이다. K리그 시장이 커지면 글로벌 용품 브랜드들은 오지 말라고 해도 K리그에 들어올 것이다. 그전까지는 K리그 팬들이 구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프로스펙스의 K리그 복귀를 환영하면서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일 오전 10시 나이키에서 ‘르브론 18’ 신발을 선착순으로 판매하기 때문이다.

footballavenue@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