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 보은상무 이미연 감독이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수원=김현회 기자] WK리그 보은상무에 군기가 바짝 든 선수들이 들어왔다.

1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는 2021 WK리그 수원도시공사와 보은상무의 경기가 열렸다. 두 팀은 이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보은상무는 2승 5무 4패 승점 11점으로 6위를 이어가게 됐다. 선수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은상무는 올 시즌에도 리그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도 후반 막판가지 물러서지 않으면서 투혼을 발휘했다.

이 경기에서 긴장한 자세로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지난 2월 17일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 지난 달 25일 부사관에 임관한 신입 선수들이다. 이정민과 최다경, 최수경, 문진서, 하지희, 권다은 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가입교 기간을 포함해 무려 5개월 가까운 기간 동안 부사관 훈련을 받은 뒤 최근 보은상무에 합류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군인의 길을 선택해 부사관이 된 선수들이다. 이들은 기초군사훈련 5주에 부사관 훈련을 13주 동안 받았다.

보은상무는 과거 W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적지 않은 논란이 됐었다. 드래프트에서 이 팀의 선택을 받을 경우 반강제로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4년에는 국군체육부대에서 지명한 선수가 이를 거부해 1년간 경기에 나서지 못한 일도 있다. 당시 해당 선수는 군 입대를 거부했고 '드래프트를 거부하면 해당선수는 2년간 실업팀 등록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졸지에 무적 선수가 됐다가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가까스로 구제 받았다.

이후 상무는 일반 드래프트에서 빠졌다. 자발적으로 상무에 지원한 선수들 중에서만 선수를 선발한다. 상무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선수는 자동적으로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 군 입대에 거부감을 느끼는 선수들도 있지만 선수 생활 이후에도 직업 군인으로서 복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자발적으로 입대를 원하는 선수들도 있다. 2010년 입대해 장기 선발에도 합격해 군 생활과 선수 생활을 병행하는 권하늘 상사는 상무 지원자들의 롤모델이다.

권하늘 상사처럼 장기복무에 합격하면 은퇴하더라도 군인으로서 최소 53세까지 정년이 보장된 군 생활을 할 수 있다. 세계군인체육대회 등 국제대회 출전 기회도 주어지고 입상할 경우 체육연금 혜택도 받는다. 단순히 군 입대만 생각하면 “거길 왜 가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강제적인 군 입대는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보은상무행이 나쁜 선택만은 아니다. 연봉이 그리 높지 않고 인프라가 부족한 여자축구에서 보은상무의 순기능도 충분하다.

이날 수원도시공사와의 경기에는 이제 막 부사관으로 임관한 이들의 첫 무대였다. 최다경과 권다은, 이정민 등 이제 막 훈련소에서 나온 선수들은 5개월 간의 공백 때문에 백업 명단에 포함됐다. 경기 후 만난 보은상무 이미연 감독은 “우리 신입 선수들이 이제 막 팀에 합류했다”면서 “지난 주 금요일에 임관한 뒤 사흘간 휴식을 취하고 부대에 복귀해 이번 주 월요일부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임관 후 오늘 처음으로 경기장에 나왔다. 다들 대학 무대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라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보은상무 이미연 감독 ⓒ스포츠니어스

5개월 동안 군사 훈련을 받은 이들이 팀 합류 후 나흘 만에 백업 명단에 포함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미연 감독은 “훈련소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면서 “군사 훈련을 다 받고 오후에는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셨다. 선수들이 하루에 두세 시간씩은 운동을 할 수 있었다. 5개월 동안 집중적인 운동을 하지 못했지만 체중도 1~2kg밖에 늘지 않았다. 경기에서 10분, 20분씩 투입하다보면 금방 다시 그라운드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미연 감독은 “부사관이라 5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는데 우리 선수들이 그 중에서도 성적도 잘 받고 나왔다”면서 “군인다운 모습으로 변해서 돌아왔더라. 훈련을 잘 받아서인지 군기가 빡 들어있다. 자신들이 원해서 온 선수들이기 때문에 군인 정신은 말할 것도 없다. 금방 기존 선수들과 흡수돼 군인과 축구선수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잘 해 나갈 것”이라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경기 후 신입 부사관(?)들은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선수단 미팅에 임했다. 이미연 감독이 “오늘 선배들 뛰는 거 보니까 어때?”라고 묻자 이들은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있다가 차렷 자세를 취하며 “멋지십니다”라고 답했다.

이미연 감독은 “요새 WK리그가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이어 경기를 하고 있다”면서 “오늘 경기가 끝났으니 돌아가서 하루 쉬고 일요일에 발을 가볍게 맞춰본 뒤 다시 월요일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 다른 팀들도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수 수급이 다른 팀보다는 어렵긴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를 안 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을 즐기려고 한다. 휴식기가 오기 전까지 선수들이 군인 정신을 발휘해 집중할 것이다. 오늘도 선수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잘해줬다. 조직력이 탄탄해진 게 보인다. 끝까지 잘 버텨줬다”고 칭찬했다.

이날 보은상무는 팽팽한 흐름 속에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하위권인 보은상무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지만 골 결정력을 발휘했다면 승점 3점을 따낼 수도 있는 경기였다. 이미연 감독은 “우리가 항상 그게 약점이다”라면서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골대를 강타하는 등 위협적인 장면은 많이 나오고 있다. 항상 힘든 상황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미연 감독은 “휴식기를 앞두고 치르는 두 경기과 강팀들과의 경기다. 체력을 잘 회복해 역습으로 승부를 내겠다. 앞으로 신입 선수들이 해줘야 할 일이 많다”고 웃었다.

5개월 동안 군사 훈련을 받으며 군인이 된 이들은 이제 보은상무에 합류해 군인 정신을 발휘할 예정이다. 선수 수급이 다른 팀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보은상무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이미연 감독이 인터뷰를 마치고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미팅을 끝내자 주장인 권하늘 중사가 크게 외쳤다. “차렷. 감독님께 경례.” 그러자 동료들, 특히나 군기가 바짝 든 신입 부사관들이 경례를 했다. “충성. 수고하셨습니다.” 이렇게 이들은 군인이자 축구선수로서의 일과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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