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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고양=김현회 기자] 5일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과 투르크메니스탄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이 열린 고양종합운동장에는 많은 관중이 들어찼다. 코로나19 여파로 관중을 다 받지는 못했지만 팬들은 거리두기를 지키며 경기장을 찾았다. 팬들은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고 관중석에 앉았다. 코로나19로 육성 응원이 금지된 상황에서 유니폼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 중 하나였다.

경기장 여기저기에는 선수들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이 내걸리기도 했다. 토트넘 손흥민의 유니폼부터 갓 대표팀에 승선한 수원삼성 정상빈의 유니폼을 관중석 한 켠에 내건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 관중 사이에서 흥미로운 유니폼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여자축구 대표팀 수비수 심서연의 유니폼이었다. 한 여성 팬은 심서연의 유니폼을 입고 홀로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봤다. 최근 출시된 ‘신상’ 국가대표 유니폼이었다. 손흥민이나 권창훈이 아닌 심서연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은 나름대로 ‘레어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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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이 유니폼을 입은 주인공은 ‘진짜 심서연’이었다. 그는 직접 자신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았다. 심서연은 초대권 좌석이 아닌 일반 구매 좌석에 앉아 다른 관중과 똑같이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 전 만난 심서연은 “진심으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마음을 어떻게 전할까 고민하다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오게 됐다”면서 “나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관종’이어서 그런 건 아니고 월드컵에 도전하는 남자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서 이 옷을 입고 왔다”고 말했다.

심서연에게는 고양종합운동장에 남다른 사연이 있다. 고양종합운동장을 홈으로 썼던 WK리그 고양대교에서 뛰기도 했던 심서연은 최근에도 이 경기장에서 잊을 수 없는 경기를 펼쳤다. 심서연은 지난 4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중국과 도쿄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플레이오프를 치렀다. 당시 경기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면서도 1-2로 패했던 한국은 이후 중국 원정에서 연장 접전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 두 경기 합계 3-4로 밀렸다. 심서연은 올림픽 첫 출전의 꿈을 미뤄야 했다.

심서연은 “두 달 전 이 경기장에서는 내가 이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뛰었지만 오늘은 관중의 한 사람으로 이 유니폼을 입었다”면서 “누구보다도 선수들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안다. 오늘 꼭 좋은 결과를 냈으면 좋겠다. 오늘 입고 온 이 유니폼이 당시에 입었던 그 유니폼이다. 고양대교 시절부터 늘 훈련과 경기를 했던 이곳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심서연은 “마스크를 썼으니 아마 사람들이 몰라볼 것”이라면서 “그냥 심서연 팬 한 명이 유니폼을 입고 왔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벤투호에 지인이 많다. 함께 운동을 하면서 친해진 남자 선수들과 평소에도 허물 없이 지낸다. 하지만 심서연은 이날 선수단 초대권이 아닌 자비로 입장권을 구입해 경기장에 왔다. 심서연은 “경기를 앞두고 평소에도 친한 홍철에게 ‘티켓 좀 달라’고 전화했는데 초대권 신청이 다 끝났다고 해서 한 소리했다”면서 “철이가 미안하다고 하더라. 미안할 일까지는 아닌데 그건 그거고 경기는 경기다. 오늘 홍철을 비롯한 선수들이 꼭 이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심서연은 전반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일반 관중석에서도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하프타임 동안 그의 정체가 탄로(?)났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콜린 벨 여자대표팀 감독이 심서연이 경기장을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심서연을 만나러 왔기 때문이다. 훤칠한 외국인이 누군가 대화를 나누자 주변에서는 “저 사람들이 누구냐”고 관심을 보이다가 콜린 벨 감독과 심서연이라는 걸 알았다. 관중석에는 거리두기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 요원들이 배치돼 있어 이후에도 거리두기는 안전하게 이어졌다. 심서연은 정체가 밝혀지고 오히려 후반전을 더 마음 편히 지켜봤다. 국가대표 선수가 관중으로 참여한 경기는 이렇게 유쾌하게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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