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득점 15실점’ 스리랑카의 유쾌한 도전, 그리고 첫 골

ⓒ대한축구협회

[스포츠니어스 | 고양=김현회 기자] 스리랑카에는 이 승부가 우리의 월드컵 같은 경기였을까.

5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는 스리랑카와 레바논의 2022 카타르얼드컵 아시아 지역 2차예선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4전 전패를 기록 중인 스리랑카가 한국과 1위 경쟁 중인 레바논과 치르는 경기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스리랑카는 네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지 못하고 무려 15골을 허용하며 최하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나마 북한 원정에서 0-2 로 졌던 경기가 북한의 2차 예선 남은 경기 불참으로 무효화 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스리랑카가 2차 예선의 벽을 뚫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과 레바논, 투르크메니스탄을 상대로 조 1위를 차지한다는 건 꿈과 같은 일이다. 한 골을 넣는 것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일이었다. 지난 2019년 경기도 화성에서 열린 한국과의 경기에서는 0-8 대패를 당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06위다. 지난 2018년 월드컵 당시에는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에서 부탄에 0-1, 1-2 패배를 당하며 그대로 월드컵 도전을 마감했다.

스리랑카는 2차예선에 올라온 것 자체가 경사다. 스리랑카는 1차예선 홈앤드어웨이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지난 2019년 6월 마카오와의 원정경기에서 0-1로 패한 스리랑카는 마카오가 스링랑카 부활절 폭탄 테러와 관련해 안전 문제로 불참을 통보했고 결국 스리랑카가 3-0 몰수승을 거둔 것으로 간주돼 가까스로 2차 예선에 올라왔다. 마카오가 정상적으로 경기에 참가했다면 스리랑카가 1차전 패배를 극복하고 승리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긴 어렵다.

스리랑카는 아시아에서 상위 수준의 팀과 경기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마카오와의 격돌에서 웅여곡절 끝에 2차 예선에 합류한 스리랑카는 지난 2019년 10월 경기도 화성에서 한국에 0-8 대패를 당했다. 당시 한국은 손흥민과 황희찬, 권창훈, 김신욱 등이 골 폭풍을 일으켰다. 스리랑카에 유럽 무대에서도 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손흥민 등과의 맞대결은 역사에 남을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스리랑카에는 한국은 물론 레바논, 투크르메니스탄 등 한 수 위 팀과의 격돌 자체가 값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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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홈앤드어웨이 경기가 한국에서 한꺼번에 모여 치르는 걸로 변경됐다. 지난 2019년 10월 이미 한국과 원정 1차전을 치른 스리랑카는 대회 방식 변경으로 다시 한국을 찾게 됐다. 이번 2차 예선 잔여 경기는 모두 경기도 고양시에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5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레바논과 경기를 치렀다. 4전 전패 무득점 15실점의 스리랑카로서는 레바논이 힘든 상대인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스리랑카 공격수 아흐메드 위삼 라지크가 전반 10분 만에 선취골을 뽑아낸 것이다. 라지크가 수비수와 경합을 이겨내고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슈팅했고 공은 레바논 골키퍼 메흐디 칼릴의 몸을 맞고 골대로 향했다. 스리랑카가 이번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기록한 첫 골이었다. 마카오와의 경기에서도 득점하지 못한 스리랑카가 아시아 지역 1,2차 예선을 모두 포함해 기록한 첫 득점이었다. 스리랑카 벤치에서는 마치 월드컵에서 득점이라도 한 것 마냥 환호했다.

이후 스리랑카는 신체적인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 골을 연이어 허용했다. 하지만 1-3으로 뒤진 후반 16분 라지크가 다시 한 번 개인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이 페널티킥을 직접 차 넣으면서 추격했다. 스리랑카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선수단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동점골을 응원했다. 후반 막판이 되자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전방으로 올라가라”며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체력을 다한 스리랑카는 후반 막판이 되자 제대로 뛰지 못했고 결국 경기는 스리랑카의 2-3 패배로 막을 내렸다. 비록 패했지만 스리랑카는 이날 경기에서 의미있는 두 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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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종료 후 레바논 선수들은 곧바로 라커로 향했다. 아시아 최약체 스리랑카를 상대로 두 골이나 허용하며 졸전을 펼친 그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골키퍼 메흐디 칼릴과 미드필더 조지 펠릭스 멜키를 제외하고는 상대 선수들과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스리랑카 선수들은 여운을 즐겼다. 한 쪽에서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격려했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아까 이렇게 패스를 해야 했던 것 아니냐”는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아쉬움을 표현하는 열정 넘치는 토론이었다.

스리랑카 선수들은 한 동안 벤치를 떠나지 못했다. 장내에 “코로나19 방역 수칙 준수를 위해 경기장 전체를 소독할 예정이니 경기장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리를 떠나달라. 잠시 후 한국과 투르크메니스탄전을 위해 오후 6시에 다시 경기장을 개방한다”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스리랑카 선수단은 벤치 근처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하나둘씩 라커로 향했다. 아미르 알라지치 감독은 스리랑카축구협회 직원에게 스마트폰을 내밀며 기념촬영을 부탁했다. 그는 고양종합운동장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두 팔을 벌리며 포효하는 듯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스리랑카는 이날도 패하며 5전 전패를 기록하게 됐다. 하지만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레바논을 상대로 두 골을 기록한 그들은 또 하나의 역사를 쓰게 됐다. 피파랭킹 206위인 스리랑카는 지금 한국에서 역사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오는 9일 밤 8시 이 경기장에서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상대는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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