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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축구경기에 비디오 판독(VAR)이 도입된다고 했을 때 반기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마다 경기 흐름을 끊는 게 축구의 원초적인 본질을 훼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축구가 농구처럼 초 단위로 흐름이 바뀌는 스포츠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심판이 경기를 중단하고 쪼르르 달려가 영상을 보고 ‘내 판정이 맞았군’이라며 휘슬을 보는 모습을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심판의 고의적인 오심이 아니라면 심판의 실수도 축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VAR 도입으로 이 세상의 모든 오심이 싹 사라질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중계 기술이 발달한 시점에서 영상을 되돌려보면서도 못 잡아낼 반칙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결정적인 오프사이드에서 심판이 보는 영상에 선 하나만 그으면 이게 오심인지 정심인지 바로 판가름난다. VAR 도입 후 우리는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걸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게 됐다. 오심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VAR 도입은 시대의 흐름이 됐다.

하지만 VAR은 VAR대로 도입됐으면서도 오심은 여전하다. 올 시즌 K리그만 봐도 그렇다. 수원삼성은 올 시즌 11경기 중 5차례 경기에서 오심 논란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심판평가소위원회에서 오심을 인정한 포항스틸러스전 페널티킥 논란을 비롯해 1라운드 11경기에서 총 다섯 차례 석연치 않은 판정을 받아 들었다. 어제(21일) 열린 경기에서도 수원삼성은 최성근이 핸드볼 파울로 퇴장과 함께 페널티킥을 허용하며 대구FC에 0-1로 패했다.

최성근의 퇴장 장면은 아무리 돌려봐도 정심이라고 보기 어렵다. 중계 화면을 통해 전해진 리플레이에서도 최성근의 손에는 공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주심은 VAR실과 교신을 한 뒤 영상을 보지 않고 페널티킥을 선언했고 최성근은 퇴장 판정을 받았다. 억울한 최성근은 “영상을 봐 달라. 절대 손에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주심은 경기를 속개했다. 이렇게 최성근의 파울 선언 이후 페널티킥 시행까지 9분여가 걸렸다.

VAR 도입 이후 가장 원하지 않는 장면이 이날 나왔다. 주심은 논란의 장면에서 영상을 보지 않고 판정을 내렸다. 자신의 판단이 확고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심은 VAR실과 교신하며 판정을 내렸다. 스스로도 애매하다고 느낀 판정이니 전적으로 VAR실과의 교신에 의지했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영상을 확인한 뒤 판정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설령 그랬다면 최성근에게 퇴장을 명령하고 페널티킥을 선언한 게 수원삼성 입장에서는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오심을 줄일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음에도 그걸 외면하면서도 오심을 범한 상황 자체에 수원삼성 입장에서는 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페널티킥 시행까지의 과정이 9분이나 됐는데 이 긴 시간 동안 영상 한 번 확인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었을까. 이건 심판진이 ‘내 판정이 맞다’는 식의 고집을 세운 행동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VAR이 있다면 활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활용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어차피 흐름이 끊어진 상황에서 이걸 운영의 묘라고 볼 수도 없다.

수원삼성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올 시즌 11차례 경기 중 무려 다섯 번이나 오심 논란으로 영향을 받은 수원삼성 뿐 아니라 다른 팀들도 심판 판정 문제에 불만이 많다. 지난 17일 수원FC와의 원정경기에서 강원FC 김병수 감독은 격하게 항의했다. 수원FC 김승준의 첫 골 장면에서 핸드볼 파울로 의심되는 장면이 있었지만 이를 심판이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김병수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아니 왜 VAR을 돌려보지 않느냐”며 격하게 항의했다. 어느 한 팀의 문제가 아니라 K리그 전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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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는 말할 것도 없다. 올 시즌 수원FC 박지수는 두 경기 연속으로 퇴장을 당했다가 사후 징계를 감면받고 부활(?)했다. 이런 오심이 없었다면 수원FC의 시즌 초반 성적은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VAR이 도입되면 최첨단 기술로 오심의 사각지대까지 비춰줄 줄 알았는데 VAR 도입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이 기술을 엉뚱하게 쓰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팬들의 분노만 더 커지고 있다. 경기 후 심판평가소위원회에서 오심을 인정해도 경기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경기 후 선수와 감독 및 코칭스태프 등 그 누구도 심판 판정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 심판 판정에 문제를 제기했다가는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언론에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이 나오질 않으니 다들 불만 없이 판정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김병수 감독은 수원FC전이 끝난 뒤 복도에서 거세게 항의하다가 기자회견장에 들어와서는 판정에 대해 침묵했다. 지난 18일 포항스틸러스를 상대한 광주FC 김호영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심판 문제를 언급했다.

21일 박건하 감독도 “판정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비판을 우회적으로 전했다. 심판 판정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데 이걸 언급할 수 없으니 정당한 비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VAR 도입 이후에는 오심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사라졌다. VAR을 도입하고도 오심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좋은 기술력을 도입해 놓고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VAR이 도입되면 오심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순진했던 걸까.

지난 시즌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승점 1점당 각 구단이 쓴 비용을 계산해 공개한 적이 있다. 프로축구연맹이 공개한 연봉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었다. K리그1 구단들은 승점 1점을 위해 1억 5천만 원에서 3억 2천만 원까지 썼다. 승점 3점을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6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했다. 주심의 판정 하나가 미치는 영향이 이 정도라는 걸 깊이 새겨야 한다. 좋은 기술력에 걸맞는 활용 능력이 필요하다. 요즘 K리그의 VAR 활용은 성능 좋은 스마트폰을 사놓고 ‘문자 메시지’만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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