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FC 조동건 “3부리그 온 이유? 축구만 있다면 어디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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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화성=김현회 기자] 조동건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8년 K리그 성남일화에 입단하며 데뷔전에서 두 골을 터트렸던 조동건은 이후 수원삼성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K리그에서 9시즌 동안 207경기에 나서 42골 21도움의 활약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2017년부터 J리그 사간 도스에서 네 시즌을 뛰었다. 사간 도스에서는 네 시즌 동안 57경기에 나서 10골을 넣었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조동건이 선택한 팀이 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동건은 K3리그 화성FC와 계약한 뒤 현재 K3리그 무대를 누비고 있다. 국가대표로서도 세 경기에 나섰던 그가 3부리그를 택했다는 건 의외의 일이었다. 이제는 36세가 된 조동건을 경기도 화성 훈련장에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눴다. 데뷔 당시 맹활약하며 충격을 선사했던 그는 이제 팀내 최고참이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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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어떻게 지냈나.
일본에서 4년을 뛰었다. 사간 도스에 있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팀을 찾고 있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여러 팀을 알아보다가 K3리그 화성FC에 입단하게 됐다.

일본에서 네 시즌을 보냈다. 우리가 잘 모르니 어느 정도의 활약을 했는지 소개해 달라.
네 시즌 동안 57경기에 나서 10골을 넣었다. 사간 도스에만 쭉 있었다. 많은 경기에 나선 건 아니지만 그래도 팀에서 많이 인정해줬다. 부상이 있었는데도 계약을 연장하며 4년을 뛸 수 있었다. 팬들이 내 응원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에게는 일본에서의 4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사간 도스는 한국 선수들을 좋아한다. (안)용우와 (정)승현이, (김)민혁이, (박)정수 등과 같이 있었다. 한국 선수 중에 어린 골키퍼 김민호라는 친구도 같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많이 있어서 외로운 건 크게 없었다. 그리고 사간 도스는 (김)민우가 닦아놓은 게 엄청 많아서 한국 선수들이 적응하기 수월했다.

김민우의 위상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가.
민우가 팀에 헌신적이고 열심히 해서 모두가 민우를 좋아했다. 작년까지는 사간 도스에서 민우의 등번호가 임시 결번일 정도였다. 민우가 사간 도스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올해는 다른 선수가 그 번호를 달았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민우의 등번호를 비워줄 정도로 민우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그 팀에서 한국 선수를 좋아하는 건 민우 덕이 크다.

일본에서 뛰며 힘들었던 건 없나.
생활하는 건 딱히 힘든 게 없었다. 그런데 축구를 하면서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내가 공격수지만 일본이 워낙 기술적인 축구를 하다보니 수비도 많이 해야했다. 팀도 강팀이 아니어서 전술적으로도 수비를 위주로 했다.

K리그1이나 K리그2가 아닌 K3리그로 온 게 인상적이다.
솔직히 말하면 프로 팀을 알아봤는데 갈 팀을 못 찾았다. 에이전트와 이적시장 막판까지 프로팀 이적을 추진했고 잠깐 K리그 팀에 들어가서 운동도 했는데 입단이 성사되지 못했다. 내가 올해 한국 나이로 36살이다. 나이도 걸렸을 거다. 3월 31일이 등록기간인데 그 안에 프로 팀에 가기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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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의 나이면 은퇴를 고민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로팀에 가지 못하더라도 축구를 계속 하고 싶었다.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그게 2부리그건 3부리그건 크게 상관은 없었다.

일본에서 더 도전하는 건 고민해보지 않았나.
그건 힘들었다. 가족들이 작년에 코로나19로 일본에 한 번을 오지 못했고 나 혼자서 생활했다.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아내와 두 아이는 한국에서 나와 따로 살았다. 한 번 더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는 건 이제 하고 싶지 않았고 한국에서 가족들과 재미있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 잔류는 포기하고 한국행을 결정했는데 팀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본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지 않았나.
첫 시즌 6개월 동안 나 혼자 일본에 있다가 가족들이 일본으로 왔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일본 생활에 적응을 못하더라. 당시 첫째가 4~5살이었는데 일본 유치원에 다녀야했다. 그런데 친구들과 말도 안 통해서 누구를 사귀질 못했다. 일본 생활이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토피 피부염도 생길 정도로 고생했다. 한 번은 둘째가 열이 너무 많이 나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병원에 가서도 언어가 통하질 않으니 뭘 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아, 모두를 위해서 가족은 한국으로 들여보내는 게 맞다’ 싶었고 나 혼자 일본에 남았다. 아이들과 아내는 그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이 일본에 산 건 몇 개월 안 됐다.

그때부터 일본에서 혼자 생활한 건가.
그렇다. 3년 넘게 혼자 살았다. 물론 장점도 있었다. 운동선수로서 몸 관리를 해야하는데 그건 좋았다. 보통 가족과 함께 있으면 운동하고 나서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동이 끝나고 집에 와도 혼자 할 게 없었다. 총각처럼 지내긴 했는데 그냥 집에만 있는 총각이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아예 얼굴도 못 보고 지내는 시간이 길었을 것 같다.
그렇다. 작년 3월에 일본에서 동계 훈련이 끝난 뒤 한 달 정도 같이 있었다. 아이들이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않아 잠깐 같이 있을 수 있었는데 그 이후 12월까지 가족들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래서 ‘내년에도 일본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코로나19가 한 번에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이들도 “아빠가 한국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나 첫째가 지금 경기도 용인 어정초등학교에서 축구를 하는데 “아빠하고 같이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복귀 결심을 굳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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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당신을 닮아서 축구를 잘하나.
그냥 뭐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항상 우리 아이한테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온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나도 늘 그런 마음으로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축구를 재미있어 한다. 한국에 돌아와 같이 할 수 있어서 좋다.

가족과 함께하니 행복한가.
물론이다.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너무 오래 같이 살지 않다보니 처음에는 내가 다른 가족들과 섞이지 못하고 있더라. 아내가 “너무 오래 혼자 살아서 개인주의냐”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내가 좀 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가족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축구만 하다보니 이런 게 아직도 어색하다.

36세의 나이라면 이제 선수로서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할 시기다. 느끼고 있나.
그렇다. 하지만 아직 축구를 그만둔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번에 팀을 찾는 과정에서도 어디에 가서건 축구를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축구선수는 ‘아 이제 더 이상 몸이 안 되겠다’는 느낌을 아는데 나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운동을 정말 많이 했다. 원래 사간 도스가 훈련을 많이 하는 팀이어서 꾸준히 몸 관리를 할 수 있었다. 컨디션이나 경기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그만둘 때는 아니다.

당신은 비록 나이가 있지만 K리그2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선수 아닌가.
K리그2도 알아봤는데 쉽지 않았다. 요새는 어린 선수들을 제도적으로 기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어서 나이 있는 선수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다. 또한 36세의 나이라면 한 팀의 레전드 정도는 돼야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다. 성남에서 뛰다가 수원삼성에서 뛰어서 어느 한 팀 레전드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일본에 4년 동안 있다 보니까 실질적으로 내 경기를 직접적으로 본 사람이 거의 없다. 플레이 영상은 있지만 이건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결국 프로 팀의 선택을 받지 못했는데 이걸 누구 탓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즐겁게 하려고 한다.

화성FC는 어떻게 오게 됐나. 연결고리가 궁금하다.
여기에 딱 한 명 나보다 선배님이 있다. 바로 (심)우연이 형이다. 내 대학 선배님인데 내가 한국에서 팀을 찾고 있을 때 연락이 닿았다. 상황을 이야기하니 “우리 팀에서 공격수를 찾고 있는데 여기에서 같이 운동하면서 팀을 찾아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화성FC에 합류해 몸을 만들면서 프로 무대에 도전했는데 성과가 없었다. 어느 시점이 되니까 안 되는 걸 가지고 기다리는 것보다는 여기에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축구에 집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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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과거 동료들과는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나.
그렇지는 않은 편이다. 아직 내가 화성FC와 계약을 한지 모르는 지인들도 많더라. “왜 아직도 일본에 안 가고 한국에 있느냐”고 물어본다. 사람들에게 일일이 알리지 않았고 인스타그램에도 안 올렸다. 누가 정확히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았다.

비록 K3리그 무대지만 팀 합류 후 득점력이 눈에 띈다.
화성FC와 계약을 한 뒤 데뷔전 강릉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고 FA컵 2라운드 청주FC와의 경기에서도 득점했다. K3리그 수준이 과거에 비해 엄청 높아졌다. 위에서 좋은 선수들이 내려오고 내려오고 하다보니까 좋은 축구를 한다. 하지만 아쉬운 건 심판이 경기를 자제시켜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파울 상황에서 파울을 주지 않으면 상대도 과격해지고 서로 거칠어진다. 축구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선수들이 싸우면 안 좋을 것 아닌가. 나도 첫 경기 때 그러다가 상대 수비수와 싸울 뻔했다.

당신이 이름값이 있어서 일부러 거칠게 한 건 아닐까.
날 몰라보는 것 같았다. ‘저 아저씨는 뭐지?’ 이런 분위기였다.

J1리그의 좋은 시설에 있다가 K3리그로 오면 너무 열악하지 않나.
사간 도스와 화성FC를 비교하면 예산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축구를 더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열악하더라도 괜찮다. 어릴 때는 여기보다 열악한 곳에서도 축구를 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시에서 지원을 잘 해줘서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도 훈련을 한다. 화성FC에는 나뿐 아니라 프로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꽤 있다. 어리고 잘하는 선수들도 많다. 법인화가 되고 자격이 되면 2부리그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의 목표가 있나.
이 나이가 되면 이제 1년 1년이 마지막이다. 그래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에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 내가 축구를 하면서 부상으로 목표치에 올라가지 못했는데 마지막까지 부상은 피해가고 싶다. 그리고 화성FC가 올 시즌에 우승하고 내년에 한 번 더 우승해서 K리그2로 올라간 뒤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다. 1~2년은 더 하고 싶다. 여기에서 재미있게 해볼 테니 많은 응원 보내주셨으면 한다.

조동건은 이제 은퇴를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국가대표까지 지냈고 해외 무대에서도 오랜 시간 뛴 선수가 K3리그에 온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동건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한국에서 보낼 수 있다는 점을 행복해했고 뿌듯해했다. 36세의 이 베테랑 공격수는 화성FC에서 올 시즌 행복한 축구를 하려고 한다. 비록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3부리그에서 뛰지만 그에게 올 시즌은 큰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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