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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상대를 더 잘 아는 쪽은 FC서울의 박진섭 감독이었다.

1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하나원큐 K리그1 2021 FC서울과 광주FC의 경기는 열리기 전부터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바로 지난해까지 광주를 이끌던 박진섭 감독이 서울의 수장이 되어 광주를 만나는 경기인 동시에 지난해 감독대행으로서 FC서울의 반등의 기회를 보여줬던 김호영 감독이 이번에는 광주를 이끌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경기가 열리기 전 만난 두 감독의 기류는 묘하게 달랐다. 김호영 감독은 경기 전부터 전의를 불태웠다. "서울을 잡을 전략을 갖고 왔다"라면서 강한 각오를 보였다. 물론 뒤이어 "상암에 오면 좋은 기억이 많다. 다른 원정 경기 보다는 편안하다"라고도 전했지만 곧바로 다시 "그래도 승리는 우리가 가져가겠다"라며 필승 의지를 보였다.

이미 서울에서 선수들을 지도한 만큼 서울에 대한 분석도 잘 되어있을 것이란 평가였다. 김호영 감독은 "서울의 선수 면면을 보면 좋은 팀이다. 팔로세비치와 나상호를 영입하면서 최전방 속도와 기습 측면이 보강됐다"라고 분석하면서 "물러서지 않는 경기를 하겠다. 맞대응해서 싸우겠다"라며 매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반면 박진섭 감독은 조금 감상적이면서도 치밀한 모습을 보여줬다. 친정팀 광주를 상대하는 소감에 대해 박 감독은 "감사한 팀이다.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팀이다. 운동장에 나가서 선수들을 봤는데 가슴이 뛰었다. 선수들과 정이 많이 쌓이긴 했나보다"라면서도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어쩔 수 없다"라고 답했다.

박진섭 감독의 치밀한 면은 경기 준비를 설명할 때부터 나왔다. 박진섭 감독은 상대 광주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박 감독은 "광주가 후반에 체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오늘 승부처는 후반이다. 전반은 잘 지키면서 상대팀이 더 많이 뛰게 할 것이다. 그리고 후반에 공격하겠다"라고 경기 전부터 자신의 경기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경기는 시작됐다. 광주는 김원식과 김종우, 이찬동을 중심으로 중원에서 활발한 활동량을 보여주면서 서울을 공략했다. 펠리페는 없었지만 엄원상과 김주공, 송승민이 꾸준히 자신의 위치를 바꿔가며 서울을 위협했다. 특히 김주공의 헌신이 빛났다. 잘 버티던 서울도 결국 전반 30분 김주공의 돌파에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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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울의 승부처는 그때 부터 시작이었다. 서울은 공격 기어를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다. 먼저 실점을 내줬지만 따라잡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특히 서울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던 광주 중원이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국 전반 40분 나상호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서울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광주는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때 김원식이 중원에서 팔로세비치와 공을 두고 경합하며 신경전을 벌이며 팀을 하나로 묶는 모습이 나왔다. 광주로서는 전반전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서울에 밀렸지만 동점으로 전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박진섭 감독의 분석이 통했다. 박진섭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한찬희 대신 기성용을 투입했다. 그 전까지 수비 지역에서 긴 패스를 뿌리던 기성용은 없었다. 오스마르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고 기성용에겐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했다.

광주가 서울의 맹공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윤보상의 활약 덕분이었다. 서울은 광주를 상대로 끊임 없이 몰아쳤지만 그 때마다 윤보상이 놀라운 선방을 펼치며 서울의 득점을 방해했다. 서울 선수들도 속이 탔고 박진섭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박진섭 감독의 전략이 정점을 찍은 건 결국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은 후반 38분 감각적인 왼발 감아차기로 철벽같던 윤보상을 무너뜨리고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박진섭 감독의 기성용 시프트는 박 감독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경기 후 박진섭 감독은 기성용을 전진시킨 이유에 대해 "후반 들어 상대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오스마르가 충분히 수비 지역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후반에 기성용을 공격적으로 기용했다. 골까지 넣어줘서 고맙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역전 패배를 당한 김호영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김 감독은 "수비 면에서는 좋았지만 공격 과정에서 계속 패스가 끊기면서 다시 내려 앉게 됐다. 그러면서 체력 소모가 컸다"라고 분석했다. 김호영 감독은 경기를 총평하는 과정에서 "역전패를 당해서 아쉬움이 진하다. 재정비해서 공격 부분을 보완하겠다"라고 밝혔다.

서로를 잘 아는 두 감독의 지략 대결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결국 웃은 쪽은 박진섭 감독이었다. 사연 많았던 경기는 이렇게 끝났다. 두 감독은 빠르게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발언을 남겼다. 김호영 감독의 광주는 제주 원정을 앞두고 있다. 박진섭 감독도 슈퍼매치 원정을 앞두고 있다. 두 감독 모두 쉽지 않은 경기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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