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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잠실올림픽경기장=김현회 기자] 베네가스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익숙한 얼굴이 통역으로 등장했다.

서울이랜드는 6일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벌어진 하나원큐 K리그2 2021 김천상무와의 홈 경기에서 김진환의 선취골과 베네가스의 두 골, 김정환의 추가골에 힘입어 4-0 대승을 거뒀다. 지난 개막전에서 부산아이파크를 상대로 3-0 대승을 거둔 서울이랜드는 이로써 최근 2연승의 상승세를 이어가게 됐다.

특히나 이날 베네가스의 활약이 눈부셨다. 베네가스는 K리그 첫 선발 출전 경기에서 두 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경기 후 수훈선수 기자회견 주인공도 당연히 베네가스였다. 양 팀 감독 기자회견이 끝난 뒤 베네가스가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바로 옆에 통역으로 동석한 이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이들이 많았다. 서울이랜드 인창수 코치가 베네가스의 통역사로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것이었다.

인창수 코치는 스페인어가 능숙하다. 어릴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가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던 인창수 코치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 프로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한 지도자다. ‘디에고 인’이라는 아르헨티나 이름도 꽤 익숙하다. 서울이랜드 감독대행을 맡았다가 2018년에는 서울이랜드 정식감독으로 부임했고 이후 정정용 감독 체제 하에 다시 서울이랜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는 독특한 이력도 있다.

서울이랜드에는 현재 통역이 한 명이다. 포르투갈어를 전담으로 하는 통역이 레안드로와 바비오, 베네가스를 돕고 있다. 브라질 출신인 레안드로와 바비오는 포르투갈어를 쓰고 아르헨티나에서 온 베네가스는 스페인어를 쓴다. 두 언어가 비슷해 완벽한 의사소통까지는 되지 않지만 의미는 대략적으로 다 통한다. 스페인어를 쓰는 베네가스가 포르투갈어 통역과 함께 지내며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K리그2 구단이 스페인어 통역과 포르투갈어 통역을 동시에 고용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베네가스가 기자회견 등 공식적인 자리에 나설 때다. 포르투갈어 통역사가 베네가스의 표현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전달하기란 어렵다. 이날 베네가스가 두 골을 기록하며 펄펄 날자 기자회견을 준비한 서울이랜드 측에서는 결국 인창수 코치를 스페인어 통역으로 기용(?)하기로 했다. 인창수 통역, 아니 인창수 코치는 구단의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이 경기장에서 감독까지 지낸 인물이 통역사로 등장한 건 독특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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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베네가스가 기자회견장에 앉아 소감을 전하자 인창수 코치는 베네가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취재진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베네가스가 길게 말하자 인창수 코치는 “일단 처음에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고요. 그 다음 내용은 ‘이렇게 따로 모여 이야기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네요”라면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감독대행과 정식감독 시절 자주 앉아본 기자회견장이라 긴장한 내색은 없었다.

짓궂은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베네가스에게 “스페인어를 잘하는 코치가 있다는 게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이었다. 베네가스가 진지하게 답했고 인창수 코치는 “아르헨티나에서 여기 오기 전에 코칭스태프에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팀을 오기로 결정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옆에서 인창수 코치가 빨리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는 말을 통역했다. 그러면서 그는 통역을 이어가다 중간에 “내 이야기를 하려니 쑥스럽네요”라고 말해 기자회견장에 웃음이 터졌다.

약간의 실수도 있었다. 베네가스가 한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던 순간 인창수 코치는 “통역을 하면서 방금 하나 빼먹은 게 있다”면서 “베네가스가 답변 맨 앞에 ‘아르헨티나를 떠나서 처음 해외 생활을 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이걸 빼먹어서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창수 코치, 아니 인창수 통역은 이날 베네가스의 말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베네가스가 맹활약해 기자회견장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지면 서울이랜드도 베네가스를 위한 스페인어 통역사를 뽑을 수밖에 없다. 인창수 코치에게 계속 통역을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서울이랜드 관계자는 “베네가스가 이렇게 활약을 이어가면 당연히 스페인어 통역사가 한 명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네가스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밝은 표정으로 인창수 코치와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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