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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홍인택 기자] 임대생 신분으로 부천 데뷔전을 치른 전종혁이 의미 있는 경기를 소화했다.

지난 27일 드디어 2021년의 K리그가 시작됐다. 지난 28일에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2 2021 부천FC1995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가 열렸다.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시즌 개막전일 수도 있었고 누군가에겐 비시즌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개막전이었다. 기대를 나타내듯 부천의 홈 팬들도 최대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경기장을 채웠다.

이 경기는 오랜만에 축구장을 찾은 팬들에게도 기대감을 심어줬지만 누구보다 기대를 안고 있던 선수가 있다. 이번 시즌 성남FC에서 부천FC1995로 임대이적한 전종혁이다. 그가 이 경기를 기다린 이유는 바로 상대 골문을 지키는 인물이 김동준이라서다. 전종혁과 김동준의 인연은 꽤 질긴 편이다.

이미 <스포츠니어스>에서는 전종혁과 김동준의 인연을 조명한 적이 있다. 전종혁과 김동준은 많이 닮았다. 둘 다 골키퍼고, 같은 대학교를 나왔으며 프로 데뷔 팀도 성남으로 같다. 게다가 둘 다 노래 실력이 뛰어나 정식 음원도 발매됐다. 전종혁은 당시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김)동준이 형을 봤다. 거의 친형과도 같다. 많은 영향력이 있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전종혁은 "나 자신을 동준이 형과 어릴 적부터 비교를 굉장히 많이 했다"라면서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아마 친형이 있는 분들은 알 것이다. 무의식중에 그대로 따라 하게 된다. 동준이 형이 정말 잘하는 선수라 그렇다. 다른 선수들은 스페셜 영상을 찾아볼 때 나는 눈앞에 있는 동준이 형의 플레이를 봤다"라며 둘의 인연을 밝힌 바 있다.

항상 김동준을 눈으로 좇고 김동준의 플레이를 뒤에서, 혹은 벤치에서 지켜봤던 전종혁에게도 바람이 있었다. 바로 김동준과 골대를 마주 보고 경기를 뛰는 것이었다. 전종혁은 "나는 동준이 형에게 ‘형과 반대편에서 뛰어보고 싶다’라고 항상 이야기했다”라면서 “김동준이라는 선수가 반대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기회는 K리그2 일정이 확정되면서 생각보다도 일찍 찾아왔다.

전종혁은 개막전부터 김동준을 마주 보게 됐다. 서로의 골대에서 김동준과 전종혁이 팀 동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수비를 조율했다. 이날 경기는 대전이 강한 압박과 빠른 속도로 부천 수비진에게 부담을 주던 경기였다. 자연스럽게 대전의 슈팅 수가 더 많았고 공을 막아내는 장면도 전종혁이 더 많았다. 부천은 집중력 높은 수비를 보여주며 대전의 공격을 잘 막아냈고 날카롭게 역습을 전개했다. 전종혁의 역할을 최대한 실점을 막으면서 필드 선수들의 심리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이날 전종혁은 정말 잘 막아냈다. 침착하고 좋은 판단이 계속 이어지면서 대전 공격수들도 득점에 애를 먹었다. 정점은 후반 13분이었다. 대전에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VAR을 거쳤지만 원심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천 박하빈이 경고를 한 장 더 받으면서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공을 페널티 지점에 놓은 선수는 이날 부천 수비진을 휘저어 놓던 에디뉴였다. 그리고 골문 앞에는 전종혁이 있었다. 에디뉴는 왼쪽 구석을 선택했고 전종혁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부천 선수들은 일제히 전종혁을 끌어안았다. 에디뉴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김동준은 역시 김동준이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전종혁의 페널티킥 선방으로 기세를 올린 부천은 곧바로 날카로운 역습을 보여줬다. 물론 김동준은 역시 김동준이었다. 기세를 올린 부천의 역습 과정에서 김동준과 부천 공격수의 일대일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동준은 침착하게 미리 예측하고 각을 좁히면서 좀처럼 부천 선수들에게 득점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공을 잡으면서 대전의 골문을 지키고 있었다. 대전으로서는 수적 우위를 살리고 어떻게든 득점을 먼저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김동준도 먼저 실점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팽팽하던 두 팀의 균형은 결국 후반 35분이 되어서야 깨졌다. 먼저 실점한 쪽은 '동생' 전종혁이었다. 박스 밖에서 날아오는 슈팅을 막다가 공이 튀어 올랐다. 빠르게 위치를 잡은 신상은에게 실점을 허용했다. 흥미롭게도 곧바로 공격에 나선 부천이 이번에는 박창준을 앞세워 김동준을 무너뜨렸다. 김동준도 추정호의 슈팅을 막는 과정에서 흘린 공을 막지 못하고 실점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비슷한 상황에서 실점하고 말았다.

하지만 역시 수적 열세는 어려웠다. 페널티킥을 놓쳤던 에디뉴가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며 결국 자신이 넣지 못했던 왼쪽 골문 구석으로 팀의 결승골을 밀어 넣었다. 페널티킥도 선방하고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전종혁이었기에 마지막 실점이 크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보여준 활약에 비해 '2실점'이라는 기록은 가혹하기까지 했다.

경기를 마친 전종혁은 "아쉽다"고 했다. 자신의 실점 이야기는 하지 않고 오직 "팬들이 많이 오셨는데 팀이 승리하지 못했다"라며 아쉬워했다. 이날 최고의 장면이었던 페널티킥 선방에 대해서도 "원래 보고 차는 선수들을 막는 확률이 높다. 에디뉴도 보고 찰 거 같더라. 하던 대로 했는데 운이 좋게 걸렸다"라며 차분하게 답했다.

비록 이날 경기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종혁은 동경하던 김동준과의 공식 맞대결을 소화해냈다. 전종혁은 의외로 담담한 감상을 전했다. 전종혁은 "경기 전에는 (김)동준이 형과 맞대결이 많이 기대됐다. 재밌을 것 같았다"라고 입을 열었지만 이어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까 그런 생각은 안 들더라.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실점하지 않고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만 했다. 그렇게 크게 생각은 안 한 거 같다"라고 전했다.

비록 선수 본인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보는 둘의 맞대결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김동준은 긴 부상을 털고 일어나 드디어 다시 대전 골문을 지키게 됐다. 실력은 인정받지만 꾸준히 주전 골키퍼로 나서지 못했던 전종혁은 뛸 수 있는 팀을 찾았고 부천의 골문을 지켰다. 김동준의 부상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혹은 전종혁이 이번 시즌에도 성남에 남아있었다면 이들의 특별한 맞대결을 지켜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전종혁은 다른 무엇보다 승리를 놓쳤다는 점에 아쉬움이 컸다. 부천 팬들에게도 "리그가 개막하고 홈에서 개막전을 치렀다. 일부 유관중 경기가 열려서 팬분들이 많이 찾아와주셨는데 승리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라며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전종혁은 이어 "다음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신다면 승리할 수 있게 준비를 더 잘할 것이다"라며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 둘의 맞대결은 큰 변수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또 열릴 예정이다. 부상에서 복귀한 김동준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그리고 리그 첫 경기부터 큰 산을 하나 넘은 전종혁이 부천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특별한 인연을 가진 두 골키퍼의 활약을 중심으로 이번 시즌 K리그2를 지켜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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