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여름이 직접 전하는 ‘광주를 떠나던 날’

[스포츠니어스|서귀포=조성룡 기자] 제주유나이티드 여름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올 시즌 가장 충격적인 이적을 꼽자면 광주FC의 원클럽맨 여름이 제주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것이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하지만 여름은 광주 그 자체였다. 2013년 광주를 통해 K리그에 데뷔한 여름은 상주상무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모두 광주에서 뛴 인물이다. 이대로 광주에서 은퇴한다면 여름은 광주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변화를 택했다. 제주의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팬들도 충격이었고 지켜보던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도대체 여름은 왜 제주로 이적을 택했을까. 도저히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 <스포츠니어스>는 제주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여름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찌보면 슬픈 이야기다.

만나서 반갑다.
아니 제주에 다른 훌륭한 선수들도 많은데 왜 날 인터뷰 하는 건가.

같은 ‘업자’끼리 이러지 말자. 내가 할 질문도 당신이 할 대답도 다 알지 않는가.
맞다. 하하. 하지만 당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 물어봐도 좋다. 언제든지 괴롭히는 것 환영이다. 나는 모든 대답을 할 준비가 됐다.

아직 제주 엠블럼이 내게는 많이 낯설다.
나도 한 번씩 자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새로운 팀에 적응 중이고 동료 선수들 중에 친한 선수들이 나를 일부러 놀려가면서 적응시키려고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제주의 선수들도 그렇고 스타일도 내게 잘 맞는 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내가 아직 많은 훈련을 소화하지 못해 컨디션이 조금 떨어져 팀 훈련 소화를 잘 못하고 있다. 팀에 적응만 한다면 더욱 재미있고 좋은 축구를 할 생각이다.

그 와중에 과거 팀 동료 이찬동은 당신이 제주에 오자 광주로 돌아가더라.
큭큭… 사실 (이)찬동이와 여기 와서 또 호흡을 맞춰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찬동이가 조금 더 마음에 걸린다. 찬동이가 떠날 때 “다치지 말고 잘 이겨내고 있어라. 또 언제 같이 공 찰 수 있는 날이 올테니 그 때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춰보자”라고 인사를 했다.

빙빙 돌리지 않고 물어보겠다. 광주 ‘원클럽맨’이 이적을 결심했다. 배경이 궁금하다.
첫 번째는 축구선수의 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도전이 많이 필요했다. 광주에 있으면서 우승컵도 들어보고 10년 만에 K리그1 파이널A에도 가봤다.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기 시작하다보니 좀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

결국에는 꿈의 문제였다. 축구선수의 궁극적인 꿈은 국가대표가 될 수도 있고 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도 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소속팀에서 K리그1 우승 경쟁도 해보고 싶었고 아직 한 번도 나가지 못해본 ACL 무대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고자 제주라는 팀을 선택하게 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앞서 말한 것처럼 솔직히 선수라면 항상 꿈도 있고 욕심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나의 개인적인 실력도 나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거 내가 경험이 부족했을 때는 솔직히 광주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고 광주에서 잘하는 게 먼저였다. 이러다 보니 이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어느덧 나이를 조금씩 먹고 광주에서 이룰 걸 이루다보니 욕심이 좀 생겼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와중에 오퍼가 여러 군데 왔다. 내가 결혼도 했기에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나는 많은 걸 광주에서 희생했다. 그런데 더 이상 내 개인적인 일만 가지고 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건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원클럽맨의 기록이 끝난다는 것은 아쉬울 것 같다.
단순히 아쉽다거나 아깝다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것 같다. 뭐라고 해야할까… 내 인생에 있어서 광주라는 팀은 거의 전부였다. 내가 지금 앞으로 제주 만을 위해 뛰려고 마음 굳게 먹고 왔다. 그러나 제주 선수들과 팬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내 마음 한 쪽에는 광주가 남아있다.

나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애착이 강했다. 아쉬움으로 끝내는 건 말이 안된다. 정말 이적이 결정난 뒤 제주로 출발하기 전날 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광주에서 잤을 때 새벽 네 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온갖 생각이 들고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더라. 이건 사실 경험 해보지 못한 선수들은 아마 못느껴볼 거다.

그나마 이제 제주에 있는 김오규나 김영욱은 나의 상황을 먼저 밟아왔다. 둘 다 원클럽맨으로 살다가 이적해 제주로 왔다. 특히 오규는 나와 공감하는 게 비슷하더라. 지금 같은 방을 쓰고 있다. 둘이서 좀 그런 일을 겪어보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서로 공유 많이 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쉽게 표현할 수 있을까? 9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느낌도 내가 볼 땐 아닌 것 같다.
음… 막연하게 도전을 위해 집을 떠나 서울로 가방 하나 메고 상경하는 느낌? 대충 표현하자면 이 정도인데 이게 하… 모르겠다. 내가 이거를 어떻게 잘 전달해드리고 싶은데 정확한 표현을 못하겠다. 영상을 남겼을 때도 그냥 눈물 밖에 안나왔다. 무슨 얘기를 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좀 하…

광주 팬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그 때도 마음이 힘들었을 것 같다.
다행히 내가 SNS를 안해가지고 팬들께 따로 연락 받은 것은 없었다. 좀 원래 이적하고 나면 SNS에 글을 길게 좀 남기는데 내가 영상으로만 인사를 남기고 와서 광주 팬들에게 그게 가장 죄송하더라.

대신 내가 SNS는 안하는데 커뮤니티를 많이 본다. 축구 커뮤니티가 여러 개 있지 않는가. 많이 찾아본다. 그래도 내가 좀 관종 기질이 있어서 커뮤니티에서 내 이야기 찾아본다. 다행히 이적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들 밖에 없어서 진짜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축구 커뮤니티는 어디를 좀 보는가?
이거 말해도 되는 건가? 락싸와 펨코, 펨네 이 세 개를 자주 보고 있다. 지금은 제주로 이적했기 때문에 제주 소식이 뭐가 있는지 자주 쳐본다. 가끔은 내 이름이나 광주에 대해서 그런 거 많이 검색해서 본다. 혹시라도 내 이야기나 댓글 중에 안좋은 게 있으면 ‘이 사람 누구지? 흠…’ 이러거나 약간 ‘어우 씨 열심히 했는데?’ 혼자 이러고 있다.

제주에 있다 광주로 돌아간 윤보상은 광주로 가게 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윤)보상이가 SNS를 많이 하더라. 벌써 ‘내가 돌아온다고 했잖아’ 뭐 이런 걸 SNS에 올려서 찬사를 정말 많이 받더라.

ⓒ 인스타그램 캡쳐

나는 그렇게 9년 동안 SNS는 안하지만 경기장에서 머리 박아가면서 했는데 보상이는 SNS 잘해서 바로 찬사를 받고 이거 참. 보상이를 보면 ‘야… SNS를 했어야 됐나? 팬들하고 소통을 더 해야했나?’라는 생각도 가끔 든다. 그저 SNS 대신 경기장 안에서 몸 날리고 하면 칭찬 많이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라도 SNS를 하나 만들어야 하나보다. 하하.

여름 본인도 충격이겠지만 여름을 보고 꿈을 키운 어린 광주 선수들도 충격이었을 것 같다.
내가 고참이 되면서 신인들 같은 어린 선수들과 좀 스킨십을 많이 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2019년과 2020년이었다. 당시에 주장을 하면서 정말 후배들이 편하게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줬다. <스포츠니어스>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태국에서 ‘마빡’ 맞는 건 내게 일도 아니었다.

이제는 축구도 세대가 바뀌었다. 나도 장난 치는 것을 좋아해 먼저 다가가서 장난치고 놀리고 한다. 그러면 후배들도 받아치고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후배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할 때 자기가 실수해도 눈치를 안보게 된다. 그런 게 광주의 상승세에 정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내가 어렸을 때는 실수 한 번 하면 형들이 욕할까봐 눈치 보여서 공도 제대로 못잡았다. 나는 그렇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광주는 서른명이 다 모여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니까.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특히 지금 제주 코치님인 정조국 코치가 2016년도 때 후배들에게 대하는 걸 보고 정말 많이 배웠다. 당시 조국이 형이랑 (이)종민이 형에게 많이 배웠다. 그리고 2019년과 2020년에는 광주에 합류한 새로운 선배들이 너무 잘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야 팀이 잘될 수 밖에 없겠구나’ 그런 걸 느꼈다.

이야기를 해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광주가 K리그1에서 정상급 팀이었다면 당신은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 광주에서 무언가 한계를 느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게 어쩔 수 없는 시민구단의 한계인 거 같다. 다른 선수들이 각자 자신이 뛰는 팀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정말 어릴 때부터 광주를 보면서 자라왔고 꿈을 꿨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구단 직원들과 대표이사님, 감독님 등 많은 분들이 어떻게든 선수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시려고 진짜 많이 노력 해주셨다. 그런데 시에서 나오는 예산이 너무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 이게 참… 그렇더라.

그래서 나도 솔직히 너무 많이 아쉽다. 왜냐하면 나 같은 선수도 이렇게 프로에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고 좀 유명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나를 보며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본보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K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오래 하는 선수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선수들이 선수 생활을 오래 하고 많이 한다. 나는 정말 엘리트 코스 출신이 아니다. 그래서 더 독하게 열심히 했던 것도 사실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바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도 나 같은 선수들에게 보여줘서 희망이 되고 싶었다.

참 아쉽다. 나도 광주에서 정말 오래 해왔고 조금 더 하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는데 그런 게 많이 아쉬웠다.

여러 팀에서 이적 제안이 왔다고 했지만 당신의 선택은 제주였다.
그래도 남기일 감독님이 제일 적극적으로 제안 해주셨던 것도 있다. 아무래도 다른 팀보다는 나를 많이 잘 알고 계시는 감독님과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여기에 K리그2 우승 멤버들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 선수들과 같이 섞여서 하면 더 좋은 축구를 할 거 같아 선택했던 것도 있었다.

이적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 내가 이적해서 해당 팀에 잘 녹아서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다른 팀에 비해 제주가 많이 끌렸다. 이제 호랑이굴에 들어왔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한다.

그렇다면 ‘호랑이’ 남기일 감독의 제의가 무섭지는 않던가?
감독님과 같은 팀이 아닌 다른 팀에서 전화를 할 때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오히려 내가 감독님께 먼저 장난을 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제 감독과 선수 사이로 만나면 그 때부터 무서워지는 거다. 그래서 제주에 올 때 좀 각오를 하고 들어왔다. 감독님께 이제 ‘어디까지 장난을 칠 수 있나’ 이런 것도 좀 생각했다. 하하. 물론 아직 감독님께 장난 한 번 안쳤다.

훈련 강도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광주에서 9년 정도 있다가 이적했다. 사실 9년 있는 동안 훈련이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정말 다른 팀들은 동계훈련 때 하루에 훈련 한두 번 할 때 우리는 두세 번 했다. 항상 많이 하고 길게 했다. 원래 이렇게 힘들게 해서 운동량이나 강도는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래도 기업구단으로 이적하니 뭔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와… 내가 광주에서 처음 프로 생활을 했지 않았는가. 다른 프로 팀을 겪어보지 못하고 광주에 입단해 9년 동안 했다. 물론 다른 팀에서 뛴 선수들에게 들은 소리도 있지만 광주의 환경은 내가 겪어본 것 중에 제일 좋은 환경이었다. 그런데 제주에 와보니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광주 선수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환경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제주가 정말 좋다. 나도 깜짝깜짝 놀랐다. 제주에 오니 진짜 축구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환경이었다. 광주에서는 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주장하면서 같이 애들이랑 공도 챙기고 그랬는데 왜 선수들이 좋은 팀으로 가려고 하는지 제주 와서 많이 느꼈다.

제주도라는 섬에서 생활하게 된 것도 많은 변화인 것 같다.
아직 지금 숙소에만 잠깐 생활하고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제주도를 더 즐겨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지금 너무 행복한 마음으로 제주도에 왔다. 나는 여기에 오기 전부터 제주 이적에 관한 이야기가 없을 때부터 아내와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런데 선수들 말로는 “6개월은 살아보고 얘기하라”고 하더라. 시간이 지나면 좀 답답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 때 지나봐야 알 거 같다.

나름대로 제주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인가?
기사에서도 그렇고 제주도가 슬로우 시티라고 하던가?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섬이라고 들었다. 물론 제주에 와서 일을 할 때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을 할 것이고 운동장 안에서 경쟁을 많이 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 예정이다. 그런데 퇴근을 하면 여유를 찾는 삶이 너무 좋을 거 같다. 아내와 보내는 시간부터 선수들과 카페에도 가고 밥 먹고 이런 삶이 기대된다. 그리고 이 섬 자체가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정말 좋을 거 같다.

그래서 이번에 대대적으로 이사를 했다. 광주가 클럽하우스가 없을 때 목포에서 잠깐 살았던 기간이 있다. 그 때 목포로 가면서 처음 이사를 했다. 하지만 그 때는 광주와 가까우니 이사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배에다가 이삿짐을 싣고 넘어오는 거였다. 정말 큰 이사였다.

ⓒ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그런데 이게 진짜 내가 고마운 부분이 있다. 이사를 할 때 아내 혼자 일을 다했다. 집을 알아보는 것부터 짐 싸는 것까지 혼자 다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남편에게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제주에 와서 적응도 잘해야 하고 또 주전 경쟁을 해야하니까 배려를 정말 많이 해줬다.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만큼 제주에서 빠르게 녹아들어야 한다.
나는 제주 이적이 확정된 뒤 선수들의 인터뷰도 많이 찾아봤다. 제주 선수들의 인터뷰가 하나같이 비슷했다. 감독님부터 그랬다. K리그1 생존과 파이널A 정도가 목표가 아니라 우승을 바라보기도 하고 ACL도 가고 싶다고 하더라. 기사들을 통해 정말 많이 봤다.

내게는 동료 선수들과 감독님의 이런 인터뷰가 ‘정말 이 팀으로 가야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많이 들게 했다. 정말 제주라는 이 팀을 선택하고 난 후에 마음을 더 독하게 먹은 것 같다. 나도 축구선수로 K리그에 족적을 남기고 싶은 선수 중 하나다. 내가 잘해서 K리그를 더 알리고 싶다. 그런 팀이 제주라고 생각하고 이 팀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정말 크다.

이곳은 제주 만의 문화가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 광주는 진짜 모든 선수가 하나가 되야 100% 힘이 나올까 말까한 팀이었다. 그래서 광주에서는 실수해도 괜찮다 격려해주고 나이 먹은 거 상관없이 앞장서야 했다. 무슨 훈련을 하더라도 파이팅을 외쳤다.

내가 기업구단에 오면 그런 게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도 선수들끼리 너무 친하고 어린 선수들도 형들에게 장난치고 이런 모습을 봤다. 내가 좀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

나도 적응을 하면 운동장에서 시끄럽게 하고 파이팅을 외칠 것이다. 내가 경쟁해서 경기에 나갈 수도 있지만 못나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힘을 내주는 존재가 되고싶다. 제주에서도 내 ‘마빡’을 내줄 수 있다. 오목을 해도 좋고 뭘 해도 좋다. 다만 아직은 후배들이 날 어려워하는 것 같다.

이제 이곳에 온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내가 서른 셋이지만 만으로 생일이 안지나서 서른 하나다. 나는 프로 15년차가 되는 게 욕심이다. 내가 대학 4학년 졸업하고 나서 K리그에 왔으니 이제 10년차가 됐다. 꿈도 정말 크게 가지고 있고 선수 생활을 더 오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갖고 있다. 몸 관리 어떻게 해야하고 운동장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즐길 것은 은퇴하고 즐기면 되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나 같이 프로 팀에 지명을 받지 못하더라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치지 않고 이겨내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다.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대단한 자리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단한 자리라 봐주는 어린 선수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여기까지 충분히 올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올 시즌 부상이 없었으면 좋겠다. 부상이 없어야 내가 목표로 정했던 것을 하나하나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따뜻한 곳에서 훈련을 못하니 들려오는 얘기가 선수들이 정말 많이 부상을 당한다는 것이다. 참 안타깝다. 그게 머지않은 내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릴 때는 다치면 회복 속도도 빠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참 조심스럽다.

ⓒ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그리고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한 시즌 꼭 잘해서 시상식을 가고싶다. 아직 시상식을 한 번도 못가봤다. 그래서 상을 하나 받아서 어떻게 인터뷰 할지 머릿속에 다 그려놨다. 항상 연습도 했다. 꿈을 항상 생각하고 그려놔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좀 나 같은 선수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런 동기부여가 있어서 내 자신을 항상 괴롭히는 거 같기도 하다.

여름과의 인터뷰는 내내 즐거웠고 유쾌했다. 하지만 그가 했던 말을 가만히 되뇌이고 있으면 무언가 슬프다. 여름은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름은 아름다웠던 추억을 뒤로하고 제주로 넘어왔다. 이제는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할 때다. 여름은 제주 선수다. 이를 받아들이려면 좀 걸리겠지만 여름의 각오는 그 누구보다 굳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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