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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입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요새 K리그에 복귀하는 일부 해외파 선수들의 상황을 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백승호와 박정빈에 관한 이야기다. 전북현대 입단을 노리는 백승호와 이미 FC서울 유니폼을 입은 박정빈은 한국 축구 유소년 시스템 근간을 흔들만한 이기적인 행보로 지탄을 받고 있다. 유소년 시절 도움을 준 구단에 대한 예의는 전혀 없다.

숙소와 차량, 언어까지… 아낌없이 준 수원삼성

대동초를 졸업한 백승호는 2010년 수원의 유스팀인 매탄중에 입학하자마자 바르셀로나 유스팀으로 유학을 떠났다. 수원은 당시 백승호의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바르셀로나 유학을 허락하면서 2010년 4월 백승호 측과 '백승호의 발전을 돕는 차원에서 3년 동안 매년 1억 원씩 총 3억 원을 지원한다. 유학 기간이 끝나면 매탄고로 진학한다'는 내용의 1차 합의서를 작성했다. 중학생이 1년에 1억 원이라는 큰 돈을 받는 건 상상을 초월한 지원금이었다.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수원삼성은 3억 원을 지원하면서 “유학이 끝나면 우리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했고 백승호도 이에 “알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백승호가 2011년 7월 바르셀로나와 5년 계약을 하면서 수원 구단과 어긋났다. 백승호 측은 바르셀로나와 5년 계약을 맺을 당시 경제적 지원을 해준 수원 구단에 이 사실을 제대로 통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원삼성은 남은 2년간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고 2013년 3월 백승호 측과 “K리그로 돌아오면 무조건 수원에 입단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2차 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백승호 측은 2차 합의서 작성 과정에서 추가로 2억 원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 수원 측에 따르면 2차 합의서에는 계약을 위반하면 유학 비용과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백승호는 어린 나이에 풍족한 지원을 받으며 스페인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 수원은 숙소와 차량, 언어 지원 등 백승호를 위해 투자했다. 그런데 백승호는 약속을 어겼다. 받들어 모셔도 시원찮을 고마운 구단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다른 팀과 협상을 시작했다. 백승호는 수원과의 계약을 어기고 전북과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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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효력 없다고? 적반하장도 유분수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백승호 측은 2차 합의서 작성 과정에서 수원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합의 내용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수원은 백승호가 전북 구단과 이적 협의 중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수원 관계자는 “백승호와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지원금 회수 같은 문제가 아니다. 구단은 이번 일로 K리그 유스 정책의 근간을 흔든다고 생각한다. 금이 간 수원의 명예 회복도 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수원삼성으로서는 백승호가 K리그내 경쟁 팀으로 가고 말고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유소년 시절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도의’를 어겼고 여기에 명백한 계약서까지도 있는데 이를 어겼으니 ‘불법’까지 있다는 것이다. 수원삼성은 과거에 비해 운영비는 줄었어도 그렇게 인심이 퍽퍽한 구단은 아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팀에 오랜 시간 있었던 김종우가 이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이적료는 크게 상관없으니 네가 원하는 곳으로 이적하라”고 배려하기도 했다. 물론 이적료 차이가 크지 않아 할 수 있었던 일이지만 수원삼성이라고 해서 정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런데 백승호는 2차 합의서 작성 과정에서 수원이 추가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합의 내용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번 양보해 백승호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도의적인 측면에서도 백승호의 행동은 잘못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성공할지, 실패할지도 모를 어린 선수를 수억 원씩 지원해줬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K리그의 다른 팀으로 홀랑 떠나려고 했다는 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다. 뭐 이런 일이 생기면 부모님이나 에이전트가 나서서 책임을 다 뒤집어 쓰려는 경우가 많은데 다 큰 어른이고 자신이 결국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 본인이 직접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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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을 향한 박정빈의 ‘2통수’

백승호의 행동은 너무 이기적이다. 억 대의 지원금은 다 받아놓고 수원삼성은 연봉을 못 맞춰줄 것 같으니 그 팀으로 가기는 싫은 것 같다. 그리고 돈은 벌어야 하고 경기에는 나서야 하고 군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니 K리그의 다른 팀으로 가겠단다. 너무 이기적인 심보가 뻔히 보인다. 과거에는 이런 상황에서 선수가 절대 ‘갑’이었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뛰는 선수라면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대승적인 차원’ 한 단어로 도의적인 책임을 피했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백승호에게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백승호는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허점이 너무 많다.

전북은 백승호 영입에서 한 발 물러섰고 수원삼성도 백승호를 영입할 계획은 딱히 없다. 수원은 백승호로부터 위약금을 받는 걸로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이 둘의 감정은 깊어졌다. 법적 다툼이 심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가운데 전북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영입전에 다시 뛰어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백승호의 연봉을 맞춰줄 K리그 구단이 많지 않은 가운데 그렇다면 백승호는 결국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김천상무에도 갈 수 없게 된다. 그때 가서 또 구단의 횡포로 한 축구 선수의 인생이 흔들리게 됐다는 ‘언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100% 백승호의 잘못이다.

박정빈의 상황은 더더욱 화가 난다. 박정빈은 전남을 향해 ‘2통수’를 적립했다. 전남 유스 광양제철중-광양제철고 출신인 박정빈은 고등학교 재학 중 독일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했다. 당시 구단에는 보고하지 않고 무단 이탈 후 테스트를 실시했고 볼프스부르크 입단을 확정지은 뒤 전남에 통보했다. ‘1차 뒤통수’였다. 갑작스런 무단 이탈과 독일 진출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전남은 박정빈과 소송을 벌였고 결국 소송 끝에 전남이 이겼다. 법원 판결 결과 박정빈은 1억 5천만 원의 지급 명령서를 받았다. 그러자 박정빈 측은 전남 구단에 찾아와 “어린 선수의 꿈을 위해 양보해 달라”고 읍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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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오고도 전남 연락 안 받는 박정빈

결국 전남은 ‘대승적인 차원’이라는 유망주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독일 진출을 허락하면서 합의서를 작성했다. 당시 합의서에는 박정빈의 지급 명령서에 기재된 억대 금액 반환과 국내 복귀 시 전남 우선 복귀 내용이 포함됐다. 박정빈 측도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박정빈은 볼프스부르크에 진출한 뒤 저니맨 생활을 전전하다가 무소속으로 지난 해 12월 FC서울 유니폼을 입게 됐다. 전남에 1억 5천만 원을 반환하지도 않았고 국내 복귀 시 전남 우선 복귀 조항도 어겼다. 더군다나 전남은 박정빈 측에 연락을 시도했지만 박정빈은 이에 답신을 보내지도 않았다. ‘2차 뒤통수’였다.

백승호가 인지도가 더 높아서 더 큰 이슈가 됐을 뿐 사안만 놓고 본다면 박정빈의 사례가 더 큰 일이다. 박정빈은 이미 두 차례나 전남과의 약속을 어겼고 전남 구단과의 소통에도 굉장히 소극적인 자세만 취하고 있다. 전남 구단은 “박정빈이 우리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라면서 “오히려 우리가 박정빈과 연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대부분 성공적이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어린 시절 지원은 그 누구보다 빵빵하게 받아놓고 이제 와서 약속을 또 어긴 채 구단의 연락까지 피하며 자신의 이득을 쫓아간 선수를 과연 응원할 수 있을까.

이런 행동이 정말 지탄 받아 마땅한 이유는 앞으로 유소년 선수들에게 막대한 피해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수 한두 명의 잘못된 행동으로 한국 유소년 축구 전체의 투자가 위축 되도 할 말이 없다. 가뜩이나 운영비를 줄이려는 구단들이 많은 가운데 이런 사례가 생겨난다면 구단이 유소년 육성비를 줄이는 명분이 될 수도 있다. 나 하나 내 멋대로 살겠다고 약속을 어겨 법적인 책임을 지는 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이기심이 어린 후배들의 앞길을 가로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은 꼭 명심해야 한다. 나 하나 이렇게 박박 우기고 편법에 불법으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은퇴한다고 한국 축구가 끝나는 게 아니다.

혼자 잘나서 축구선수 된 거 아닙니다

또한 자기가 잘나서 혼자 그런 선수가 됐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 내가 K리그 빅클럽에서 구애를 받는 선수로 성장해 있지만 이렇게 성장하기까지는 수 많은 사람들의 수 많은 돈과 관심, 사랑이 필요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유소년 지원을 더 받기 위해 나선 축구인들, 학부모들, 팬들, 언론, 기업 등등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공 좀 차는 꼬마 아이한테 수억 원씩이나 주는 건 그 기업에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일이 몇몇 이기적인 선수들 때문에 어리석은 일이 되지 않길 바란다. 백승호와 박정빈의 논란이 ‘대승적인 차원’ 따위의 몰상식한 방법이 아니라 부디 상식적인 방법으로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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