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이성윤 “전북 유스로서의 책임감, 누구보다 막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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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전주=김현회 기자] 전북현대는 스타들이 즐비한 팀이다. 하지만 이런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경쟁하는 어린 선수도 있다. K리그에서 22세 이하의 어린 선수들이 의무적으로 뛰어야 하는 조항을 준수해야 하는 가운데 스타 군단 전북현대가 이 조항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늘 관심사다. 한 명의 자리를 채우는 수준이 아닌 동료들과의 동등한 경쟁에서도 살아남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어린 선수의 등장은 팀에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다.

송범근을 줄곧 22세 이하 자원으로 활용하며 재미를 봤던 전북현대는 송범근이 22세 이하 선수의 자격이 끝나자 조규성 등을 영입하며 지난 시즌 U-22 카드를 채웠다. 하지만 조규성은 올 시즌을 앞두고 군 입대를 택했고 이제 이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그 중 가장 기대를 받는 건 바로 이성윤이다. 2000년생의 이성윤은 전북현대의 유소년 팀인 영생고 출신이어서 기대가 더 크다. 이성윤을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직접 만나 올 시즌 임하는 각오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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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이제 곧 시즌이 시작한다. 감독님, 형들과 함께 발을 맞춰서 시즌을 잘 준비하고 있다. 아직 생각 만큼 컨디션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남은 시간 동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겠다.

감독이 바뀌었다. 팀 분위기는 어떤가.
크게 변한 건 없다. 김상식 감독님께서 원래 코치로 함께 하셨던 분이셔서 지난 시즌과 별다른 건 없다. 또한 전북이라는 팀은 이런 변화에 휩쓸리는 팀이 아니다. 분위기는 좋다고 자부할 수 있다. 주장인 (홍)정호 형이 분위기를 잘 이끌고 있고 부주장인 (이)용이 형과 (최)영준이 형도 리더십이 탁월하다. 또한 주장과 부주장을 떠나 늘 팀을 위해 헌신하는 (최)철순이 형도 분위기를 띄우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전북이라는 큰 팀에서 U-22 쿼터로 활용되고 있다. 조규성이 나이도 차고 군대까지 간 상황에서 올 시즌을 앞둔 부담감도 클 것 같다.
K리그가 U-22 제도를 강화하는 건 나같은 어린 선수한테는 좋은 기회다. 하지만 이 기회를 나만 누리는 건 아니다. 우리 팀에 (명)세진이나 (이)지훈이, (노)윤상이 등에게 기회는 똑같이 주어진다. 그 안에서 경쟁을 해야한다. 당연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더 노력을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기회를 얻고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잠깐 대화를 해봤지만 말을 굉장히 차분하고 조리있게 한다는 느낌이 확 든다.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런 말씀을 해주시면 앞에선 겸손하고 뒤에선 뿌듯하다.

뿌듯하다는 건 그만큼 말을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인가.
말하는 걸 원래 좋아하고 잡지식이 좀 많다. 축구선수는 원래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말이라도 잘하는 축구선수가 되면 어디에 가서 무시는 당하지 않겠다 싶어서 책을 많이 읽는다. 공부는 안 하는데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축구 말고는 언어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래도 내가 좀 내세울 게 있다고 생각한다.

차분히 말하는 게 교회 오빠 스타일 같다.
교회 오빠는 아니고 성당 오빠다.

어떤 책을 주로 보나.
에세이를 좋아한다. 언어와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언어의 온도’, ‘자존감 수업’ 같은 주제의 책을 많이 봤고 그런 게 좀 흥미가 떨어지면 축구선수 자서전도 많이 봤다. 당연히 우리 박지성 어드바이저님의 자서전도 읽었고 손흥민 선배님 자서전도 봤다. 해외 선수 중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의 자서전도 쭉 읽었다. 해외 선수들 자서전 중에는 즐라탄 자서전이 가장 재미있더라.

즐라탄 특유의 ‘자뻑’이 느껴지던가.
살짝 그런 게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거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 자존심도 강하고 자신감도 넘치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을 보면서 확실히 사람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축구를 할 때가 아니면 일부러 축구를 잊을 수 있는 취미 활동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그 시간 동안에는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평소에도 영화를 자주 본다. 인도네시아에 살 때부터 배웠던 수영하는 것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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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살았다고 들었다. 요새 또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스포츠니어스가 핫하다.
하도 오래 전이라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던 게 그렇게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인도네시아에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모든 가족이 인도네시아에 정착했었다. 내 머리 속 기억의 필름을 가장 처음으로 돌리면 눈을 떴을 때부터 인도네시아였다. 나는 거기가 한국인 줄 알고 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녔는데 주위에 대부분이 한국 사람이어서 정체성의 혼란 같은 것도 없었고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다니고 학교를 마치면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그랬다. 11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ewako Asnawi’라는 말을 아나.
‘에와코’가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인도네시아어를 대부분 까먹고 인사 정도만 기억한다.

‘에와코’는 인도네시아어로 ‘파이팅’이라는 뜻이다. 아스나위는 아나.
뉴스로 봤다. 인도네시아 선수가 K리그에 온다고 해서 반가웠다.

‘에와코 아스나위’는 ‘아스나위 파이팅’이라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 ‘파이팅’이라는 말을 할 일이 많이 없어서 ‘에와코’라는 말은 몰랐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

인도네시아에서 살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뭔가.
국제학교를 다녔는데 거기는 초등학교만 있는 게 아니라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붙어 있어서 시설이 엄청 컸다. 한국 학년으로 6학년 다음에는 중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 7학년이 있었다. 체육대회를 하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 모였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느끼지 않았나.
그렇다. 국제학교 매점에서 한국 음식을 팔았는데 한국 돈 천 원이 인도네시아 돈으로는 만 원이었다. 매점에서 파는 컵 떡볶이 하나에 우리 돈으로는 5백 원, 인도네시아 돈으로는 5천 원이었다. 한국 돈으로 7백 원 하는 아이스크림 ‘뽕따’가 거기에서는 7천 원이었다. 초등학생 때 내 용돈이 하루에 만 원이었는데 ‘뽕따’를 7천 원 주고 사먹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화폐 단위가 달라지니 혼란스럽진 않던가.
혼란스러웠다. 인도네시아에서 5천 원 하던 ‘새콤달콤’이 여기에서는 5백 원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잠시 기뻤지만 내 용돈 단위도 인도네시아에서와 같지는 않다는 걸 알고 실망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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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뭔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안 돌아오는 선수도 있다.
누나와 형이 있는데 둘이 연년생이다. 누나가 한국에서 대학에 갈 나이가 됐고 형도 1년 후면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다같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내가 누나, 형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11년을 살았고 형과 누나는 20년 가까이 살았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축구를 즐겨했었나.
물론이다. 학교를 마치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동네 축구’를 했다. 당시에는 내가 동네에서 축구 실력에 관해선 자부심이 있었는데 한국에 오니 그렇지 않더라. 내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가 우리 박지성 어드바이저님께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시간대가 잘 맞아서 어린 나이에 아빠하고 중계를 자주 봤다. 그때 축구를 처음 좋아하게 됐는데 지금 박지성 어드바이저님이 우리 팀에 있다는 게 정말 놀라운 일이다.

박지성을 직접 만나니 너무 신기하고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 우리 전지훈련장에 오셔서 처음 만났는데 정말 연예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개인 면담을 하는데 뭘 물어보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연예인과 팬의 입장이었다. 바라만 봐도 신기하고 좋았다.

면담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했나.
여러 질문을 생각해 갔는데 막상 박지성 어드바이저를 만나니까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분과 대화하고 그런 거 자체가 신기할 뿐이었고 딱히 질문은 생각나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볼 땐 장난기도 있으시고 친숙해 보였는데 오히려 실제로 만나니 근엄하고 진지하셨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모습이 아니라 축구라는 직업을 대하니 진지한 모습이셨다.

처음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보다가 선수와 어드바이저로 만나 면담을 했다니 ‘성공한 덕후’ 느낌이 물씬 난다.
한 번은 박지성 어드바이저님이 우리 숙소에서 아침 밥을 드신 적이 있다. 내가 자다가 일어나서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식당에 밥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거기에 박지성 어드바이저님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계셨다. 이게 정말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아침 밥을 먹으러 갔는데 박지성 어드바이저님이 앉아 있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때 전북이 정말 대단한 구단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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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이 많은 전북현대에서 생존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이다. 쉽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런데 장점도 많다. 나는 정말 최고 선수들의 장점을 쪽쪽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팀에는 잘하고 경험 많은 선수들이 많다. (김)보경이 형만 보더라도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고 일본에서도 생활했었다. 보경이 형의 축구에는 ‘EPL’이 녹아있는 거 아닌가. 같이 플레이를 해보면 ‘저렇게 해야 EPL에 갈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전북에 있으면 이런 엄청난 형들의 알짜배기 엑기스를 다 흡수할 수 있다.

듣고 보니 그렇다. 어린 당신에게는 엄청난 공부가 될 것 같다.
철순이 형의 멘탈도 정말 많이 배운다. 선수 한 명 한 명 자체가 다 엄청난 스타들이기 때문에 몸 관리도 철저하다. 형들 개개인이 나에게는 다 교과서다. 또한 쿠니모토를 볼 때면 ‘정말 저렇게 축구를 잘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쿠니모토는 정말 축구 천재다. 이런 선수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따라하려고 노력도 많이 한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동국과도 같이 생활을 했다.
(이)동국이 형과는 20살인가 21살 차이다. 형들이 장난으로 “동국이 형이 첫 사랑하고 결혼했으면 너만한 아들이 있다”고 하기도 했다. 처음 전북에 왔을 땐 동국이 형과 같은 팀에 있다는 게 꿈 같았다. 내가 영생고에서 전북현대 볼보이를 할 때 봤던 ‘전주성의 라이언킹’과 한 팀에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특히나 동국이 형은 내가 전북현대 유소년인 영생고 출신이어서 더 아껴주셨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하셨다.

이동국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강렬하게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는데 당신은 2000년생이다.
나는 그때 이 세상에 없었다. 엄마 뱃속에 있지도 않았다.

아마 저기 어디 구름이지 않았을까.
아니면 개미였을 수도 있다.

전북현대 유소년 팀인 영생고 출신이다. 전북이 빅클럽이지만 유소년은 라이벌인 울산현대에 뒤진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영생고에도 (권)경원이 형을 비롯해 (이)주용이 형, (장)윤호 형 같은 좋은 선수들이 있다. 전북현대가 K리그 최강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영생고도 고등학교 최강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워낙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울산 현대고처럼 좋은 선수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나보다 좋은 선수, 경원이 형에 버금가는 선수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언젠가는 영생고가 현대고를 가볍게 이기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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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전북현대의 희망인 영생고 출신으로서의 임무가 막중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나를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는 후배들이 있다는 걸 늘 신경 쓰고 있다. 작년에는 내가 우리 산하 유소년 팀인 금산중학교와 영생고에 가서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경원이 형이나 주용이 형은 너무 큰 선배여서 이 어린 선수들이 오히려 공감을 못 할 수도 있는데 나는 이 후배들과 서너 살 차이여서 내 이야기에 많이 공감해 주더라. 때론 전북현대 유스 출신으로서의 부담감도 있지만 내가 잘해야 하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그렇다면 올 시즌 어느 정도의 활약을 목표로 두고 있나.
지난 시즌에 K리그에서 5경기에 나섰고 FA컵에서도 5경기를 뛰었다. 합치면 10경기다. 그런데 올해는 선발 출장과 교체 출전을 다 합쳐서 20경기에 나가고 싶다. 말을 해놔야 그걸 또 지키려고 노력하게 돼서 이렇게 욕심을 좀 내보고 있다. 지난 시즌에는 1골 1도움을 했는데 올해는 5골 5도움을 하면 참 좋을 것 같다. 10골 10도움은 (김)승대 형이나 (한)교원이 형 같은 대단한 분들이 하는 거고 나는 일단 소박하게 5골 5도움을 한 번 해봤으면 한다.

알겠다. 마지막으로 올 시즌을 임하는 각오를 한 마디 해달라.
올해 우리 전북은 K리그 우승은 물론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하는 게 목표다. 2관왕을 꼭 이루고 싶고 이 목표를 이루는데 나도 보탬이 되고 싶다. 안 다치고 건강하게 축구를 하고 싶다.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팬들과 경기장에서 만나는 날이 오길 기도하겠다.

이성윤은 21세의 어린 선수지만 어른스러웠다.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고 조리있게 전달했다. 지금껏 만난 또래의 다른 선수들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었다. 스타들이 즐비한 전북현대에서 이성윤은 확실히 풋풋했다. 과연 그는 그가 올 시즌 말한 것처럼 꾸준한 활약을 하며 형들과의 경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이성윤은 전북현대 유스 출신으로서의 사명감과 희망을 안고 그라운드에서 도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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