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양산=조성룡 기자] 강원FC 임창우가 솔직하게 지난날을 회상했다.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대전시티즌의 승격 주역이었던 임창우는 한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임창우는 2016시즌부터 UAE 알 와흐다에서 뛰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임창우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는 듯 했지만 2021시즌을 앞두고 강원FC에 입단하며 K리그로 돌아왔다.

임창우는 그 와중에 힘든 시기도 겪었다. 약 6개월 동안 임창우는 팀에 소속되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훈련해야 했다. 어찌보면 임창우는 강원이라는 곳이 더욱 소중할 수도 있다. <스포츠니어스>는 강원의 양산 전지훈련장에서 임창우를 마주했다. 힘든 시기를 겪은 것 같아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더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반갑다. 바쁜 전지훈련 중에 시간 내줘서 고맙다.

바쁜 것보다 기쁜 마음이 크다. 너무 오랜만에 팀에 합류했다. 이런 동계훈련도 오랜만에 진행하고 있다. 힘든 것보다 설레는 마음이 크다.

팀의 동계훈련이라 생각하면 힘들고 고된 훈련의 연속이다. 하지만 강원이라는 팀에 와서는 다르다. 감독님과 경험해보면서 훈련이 좀 기다려진다고 해야할까? 훈련이 힘들면 좀 주저하기도 하는데 매일매일 있는 훈련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어떤 훈련이 있을까 기대되는 하루하루의 연속인 거 같다.

오랜만의 K리그인 것 같다.

햇수로는 6년 만이다. 시간 정말 빠르다.

어린 나이에 중동을 갔다.

맞다. 2016년에 떠났으니 어린 나이에 갔다.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거 같다. 몇 년 있었는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오니까 나도 굉장히 나이를 먹었더라. 한없이 내가 어린 줄만 알았는데 어느덧 중고참에 속해있더라. 어릴 때는 형들 따라가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 들어오니까 팀에 어린 선수들도 많다.

이제 내가 이 팀에서 위치가 달라진 만큼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달라져야 하는 거 같다. 예전에는 내가 조용했지만 이제는 형들과 팀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할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팀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려야겠다.

중동 생활을 물어보면 다들 좋다고 하더라. 당신도 그랬나?

중동에서 뛰어본 선수들이 말하는 것처럼 살기에는 굉장히 좋았다. 여름에 좀 더운 것만 빼고 살기에는 굉장히 좋다. 훈련 시스템도 잘 잡혀있고 환경적인 것도 훌륭했다. 예를 들면 잔디 상태도 굉장히 좋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곳에 있어서 부상도 크게 없었다. 그저 운동에만 집중해서 매 경기 항상 열심히 했던 기억 밖에 없다. 축구 외적으로는 삶도 괜찮았다. 그래서 중동에서는 좋은 기억들 밖에 없다.

어린 나이에 처음 중동에 갔을 때는 문화충격도 많았다. 한 가지 일이 생각난다. 동료 선수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 어디로 우르르 간다. 알고보니 가서 기도를 단체로 하러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놀랐다. 같이 있다가 갑자기 우르르 간다.

훈련 하다가도 비슷하다. 물론 훈련 시간에 기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데 뭔가 노랫소리가 나온다. 그러면 선수들이 훈련을 멈춘다. 멈추고 기도는 안하는데 그 노랫소리가 끝나야 다시 시작한다. 다들 멀뚱멀뚱 서 있는다. 처음에는 '뭐지? 왜 훈련 안하지?'라고 생각했다. 중동 생활이 적응되고나서 그 노랫소리도 익숙해지더라.

ⓒ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다가 샤워 문화도 독특했다. 한국에서 선수들이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씻을 때 다같이 벗고 씻는다. 그런데 거기는 그게 안된다. 완전히 벗은 몸을 드러내면 안된다. 그래서 중동의 경기장에는 샤워하는 곳마다 칸막이가 있다. 거기서 다 벗고 씻는다.

문제는 원정이다. AFC 챔피언스리그(ACL) 원정경기에는 그렇게 칸막이가 쳐져 있지 않는 곳도 많다. 그러면 어쨌든 부득이하게 서로 볼 수 있는 곳에서 씻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때는 속옷을 입거나 하의를 입고 씻어야 한다.

내가 처음에 중동에 갔을 때는 훈련이 끝나고 샤워실에서 다 벗으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동료들이 화들짝 놀라면서 하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어느 정도 중동 선수들의 성향도 파악하게 되니 적응을 수월하게 했던 거 같다.

중동을 경험한 선수들은 다 대저택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총각이기 때문에 그렇게 큰 집이 필요 없었다. 대신 나는 호텔에서 살았다. 우리 구단 경기장 바로 옆에 구단이 소유하고 있는 호텔이 있었다. 호텔 안에 아파트도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방 2~3개짜리 아파트에서 5년 동안 살았다.

만약 내가 결혼을 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팀에서 집을 비롯한 여러가지가 다 제공된다. 나 말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은 다 결혼을 했다. 그래서 팀에서 집을 제공해준다. 가보면 와… 굉장히 필요 이상으로 크더라. 으리으리하다. 2층 또는 3층집에 방 대여섯 개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굳이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나 생각했다. 또 그렇게 집이 크면 청소는 어떻게 하겠나. 하하. 나는 사실 아담한 게 좋았다. 큰 집은 필요없었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도 구단에 큰 집을 달라고 했으면 팀에서 제공 해줬을 거 같다.

이야기 들어보면 집 안에 수영장도 있다던데?

맞다. 있다. 물론 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있는 집도 없는 집도 있다. 대부분 큰 집은 앞에 마당도 있고 안에 수영장도 딸려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살짝 후회되는 게 있다. 나도 그런 집에서 한 번 살아봤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중동에서 생활하면서 3년차까지는 큰 집의 필요성을 못느꼈다. 그 이후에는 살짝 흔들렸다. '나도 밖에서 한 번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호텔에 있으면 훈련장까지 걸어서 다녔다. 되게 동선도 편하다.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밖에 나가서 살 이유가 없었다. 어쨌든 중동 생활 4년 째에 접어들면서 큰 집에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어머니와 지냈는데 어머니 의견을 물어봤는데 "굳이? 큰 집 가면 청소도 힘들고 그럴 거 같아"라고 하셔서 그대로 살던 곳에 살았다.

어머니와 함께 중동에서 살았던 것인가?

그렇다. 사실 나는 중동 생활이 큰 상관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굉장히 고생하셨다. 나는 운동 가면 어머니는 날 위해 먹을 것도 준비하셔야 하고 운동 간 시간에 혼자 계셔야했다. 특히 몇 번 ACL 원정을 가면 2~3일은 집을 비우게 된다. 그 때 어머니는 집에 있으면서 할 것도 없다.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게 엄마와 한국에 돌아와서 대화하면 그 때 생활이 그립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어보면 나와 해외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좋았던 거 같다. 나와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놀러도 다닌 기억을 하시더라. 외로운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이 많았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붙어있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집에서 결혼에 대한 압박은 없는가? 슬슬 잔소리 좀 들을 나이 됐는데…

부모님께서는 결혼에 대해서 크게 부담은 주지 않는다. 다만 최근 들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이나 선배들이 결혼하니 조금씩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결혼에 대해 크게 부담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슬슬 결혼에 대해 좀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그게 잔소리의 시작이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아… 그렇구나…

이제 와서 물어보지만 어린 나이에 중동으로 떠나 비판적인 시선도 많았다.

인정한다. 심지어 나 자신도 어린 나이에 중동으로 가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중동에서 처음으로 제안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 나는 국내에 남아서 나의 모습을 좀 더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당시를 기억하면 복잡한 상황이었다. 내가 울산에서 크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슬럼프에 빠졌다.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적이 뭔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중동은 달랐다. 이적료부터 여러 조건을 딱 정확하게 내놓았다. 내가 가겠다고 선택만 하면 일이 진행되는 거였다.

나는 이적시장 거의 끝날 때까지 버텼다. 그 어린 나이에 중동은 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가기 싫었다. 그런데 선택지가 압축되니 갈 수 있는 곳이 거기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망치듯 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입장에서는 중동으로 향한 게 되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동을 가게 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축구 안에서도 축구 외적으로도 많은 경험을 했다. 축구를 하면서 많은 감독님을 만나 경험을 얻었고 중동에서 ACL 무대라는 흔치 않는 경험도 했다. 축구 외적으로는 문화를 많이 경험했다. 여행도 많이 했다. 시즌이 끝나면 유럽에 가서 많은 것을 봤다. 축구 외적으로 시야가 넓어진 거 같았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중동은 큰 경험인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대표팀 승선이나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분명 아쉬울 것이다.

그 생각에는 동의한다. 한국에서 관심같은 부분은 많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중동에 대한 관심이 적기 때문이다. 물론 대표팀 승선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중동으로 가는 것은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이건 감수를 해야하는 부분이다. 중동에서의 활약은 한국 매스컴에 잘 타지도 못한다.

그래서 요즘 시대에서는 다들 SNS를 활발하게 하지 않나. 내가 중동에 있으면서 골을 넣거나 그러면 개인적으로 SNS에 올린다. 한국에 있으면 굳이 올릴 필요 없는 일이다. 하지만 팬들에게 나 중동에서 잘하고 있다, 골도 넣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중동에서는 한계가 있더라.

ⓒ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 부분은 중동에서 뛰는 입장에서는 감수를 해야한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중동의 축구 수준이나 환경적인 것은 우리나라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내 팬들이나 관계자의 중동을 향한 관심은 어느 정도 떨어진다. 그런 부분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도 중동행을 추천하는 편인가?

강원에 와서 후배들이 처음 물어보는 게 "해외 생활 어때요?" 이거다. 나는 항상 좋은 얘기만 해줬다. 살기 좋았다. 운동도 좋았고. 해외 생활이 굉장히 재밌었다는 말을 해준다. 후배들도 해외는 한 번씩 다 경험해보고 싶어 하더라. 기회가 된다면 추천한다. 그들에게 "어디가 됐든 해봐라. 그게 나중에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나서 6개월 동안 팀이 없었다. 무슨 일이었나?

작년 시즌을 잘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코로나19가 터졌다. 갑자기 시즌이 멈췄다. 나는 다시 재개가 될 줄 알았는데 중단이 됐다. 우승팀 없이 중단됐다. 내가 그 때 하필이면 계약기간이 끝나는 것과 맞물렸다. 그렇게 도중에 FA가 됐다.

그 당시 나는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럽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큰 팀이 아니고 2부리그에 속한 작은 팀이더라도 축구선수를 했으면 유럽에서 뛰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에이전트와 노력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심지어 코로나19가 터져 더욱 어려워졌다.

중간중간 중동 몇 군데 팀에서 제안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도 고려해야 하고 지금 이 시기에 팀을 잘 옮기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어서 조금이라도 좋은 팀을 가고 싶어서 다 거절했다. 기다리다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팀으로의 입단은 되지도 않았다.

하필 그 전에 제안이 왔던 중동 팀들도 다른 선수를 알아보는 바람에 이적시장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6개월을 쉴 수 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붕 뜬'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더라. 나는 유럽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는데 그대로 안되서 좀 아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임창우 인생에 가장 힘들었던 6개월 아닌가.

음? 아니다. 사실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내게는 그 6개월이 값진 시간이었던 거 같다. 돌이켜보면 초심을 찾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축구를 하면서 쉼없이 달려왔다. 쉬는 6개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가족들과 시간도 많이 보냈다. 이제는 강원이라는 팀에 소속돼 아무 걱정없이 많은 지원 받으며 운동할 수 있는 사실에 더욱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힘들었던 기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자가격리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하… 맞다. 굉장히 힘들었다. 자가격리 전에 미리 준비를 했다. 2주 동안 마냥 집 안에서 놀면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자전거를 비롯해 각종 운동기구, 아령, 매트 등을 다 주문했다. 그런데 하루종일 운동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운동은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 한다. 남는 시간에는 정말 아… 쉽지 않았다.

집 앞에 공원이 있다. 집에서 밖을 보면 사람들이 운동하거나 놀고 있다. 그걸 보고 있으면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 된다. 저 사람들은 잘 놀고 있는데 나는 뭐하는 건가 싶었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 시국에 자가격리는 무조건 해야하는 것이다. 창문을 열고 밖에 보면서 바람 쐬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자가격리 1주차 지나고 나서는 끝나고 무조건 뭘 해야겠다는 계획을 딱 세워놓았다. 그런데 막상 자가격리가 끝나고 나니까 잠만 잤다. 이제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소소한 것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지더라. 소소한 것에 감사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2주 동안 정말 자아성찰도 많이 했다. 지금 훈련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혼자서 운동하며 컨디션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쉴 때 초반에는 혼자서 한두 달 정도 운동을 했다. 그런데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텅 빈 학교에 가서 혼자 공 들고 운동하는데 "지금 여기서 운동하면 안된다"라고 쫓겨난 적도 있었다. 코로나19라 외부인 출입이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쫓겨나면 다른 운동장을 찾거나 혼자서 공원을 뛸 때도 많았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렇게 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래도 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울산시민축구단에 은사님이 계셔서 팀 훈련에 몇 번 참가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더라. 코로나19 때문에 팀에서 내가 훈련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후배에게 부탁을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고등학교 후배다. 지금 축구교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다. 그에게 부탁해 풋살장을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빌렸다. 거기서 체력적인 훈련이나 부족한 것들을 후배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했다. 이 후배가 흔쾌히 내 부탁을 받아준 덕분에 내가 열심히 훈련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시즌 때보다 체중도 줄어들고 신체적인 부분에서는 더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경기 체력이나 감각은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술이나 체력적인 부분은 오히려 좀 더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운동하고 팀에 들어와서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데 크게 뒤떨어지는 부분도 없고 오히려 축구가 좀 더 잘되는 느낌을 받는다.

6개월 동안 정신적인 것보다 체력적인 부분이 더욱 힘들었다. 막연하게 6개월 동안 겨울 이적시장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서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그 후배가 옆에서 많이 다독여줬다. 나를 이끌어줬다. 많은 도움을 받은 덕분에 많은 분들이 걱정하는 거에 비해 몸 상태는 좋은 거 같다.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다. 나중에 후배에게 맛있는 거 좀 사줘야할 것 같다.

시련의 시기를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겨낸 것 같다.

뭐 어쨌든 6개월을 쉬어야 한다는, 그렇게 된 입장이니까 어쩔 수 없었다. 내 입장에서는 6개월동안 백수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백수 생활이 한 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운동만 열심히 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내게 값진 시간이었다.

그 때가 좋았다고 기억하는 것보다는 한 번씩 백수 시절이 생각난다. 그래도 백수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팀에 들어와 운동하는 게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백수 생활을 해보지 않았다면 팀 훈련의 소중함을 이렇게 크게 느끼지는 못했을 것 같다.

겨울 이적시장을 기다리는 마음은 불안하지 않았나?

나는 사실 불안하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몸은 충분히 끌어올리고 있었고 나를 원하는 팀만 있다면 입단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자신이 있었다. 국내도 해외도 어디든지 좋았다. 크게 불안한 건 없었다. 이적시장이 열렸을 때 팀이 없을까봐 불안한 것은 없었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자신이 있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결국 당신의 선택은 강원이었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린 이후 몇 군데에서 제의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 중 강원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나 또한 강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내가 중동에서 생활하면서 K리그를 계속 챙겨봤다. 그 때 강원 경기를 몇 경기 봤다. 내게는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술적인 부분에서 강원이 수비부터 빌드업을 한다. 수비수인 내 입장에서는 그냥 크게 벌려서 진행하는 빌드업만 생각했다. 그런데 강원은 갑자기 풀백이 미드필드로 들어와서 빌드업에 관여를 하더라. 그런 부분이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감독님의 전술이 궁금했고 강원도 나를 적극적으로 원했다. 내 입장에서 크게 고민할 것은 없었다. 그 때부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금도 김병수 감독님과 함께하는 훈련은 신선하고 즐겁다. 내가 입단할 때 감독님은 그저 내 상황을 알고 계시고 몸 상태를 체크하는 정도였다. 평소에는 선수들에게 터치를 안하고 편하게 해주신다. 부담을 주지 않으신다. 하지만 훈련 때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지난 1차 전지훈련부터 김병수 감독님은 운동할 때 정말 말씀이 많아지신다. 이게 다 선수들의 문제점을 개선해주기 위한 것들이다. 정말 자세하고 세밀하게 말씀 해주신다. 선수들이 잘 받아들일 수록 문제점은 더욱 잘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재도전 생각은 없었는가?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유럽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겨울에는 마음을 좀 비웠다. 유럽도 중동도 국내도 나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열린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 중에 강원이 제일 적극적이었다. 나 또한 강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강원에서의 적응은 수월하게 하고 있는가?

사실 내가 강원에서 아는 선수가 거의 없었다. (한)국영이 형이나 (윤)석영이 형 정도가 대표팀에서 잠깐 봤던 선수들이었다. 대부분이 초면이고 어린 후배들이었다. 처음에는 강원이라는 팀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임)채민이 형과 국영이 형이 많이 도와주고 후배들도 잘 따라오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지내고 있다.

강원이라는 팀이 작년에 파이널B에 그쳤다. 이번에 많은 보강을 통해 새로운 선수들이 들어왔고 임채민, 한국영 등 베테랑 형들도 있다. 올 시즌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기대된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간의 신뢰를 통해 이번 시즌 파이널A를 넘어서 우승까지 바라볼 수 있는 그런 팀이 됐으면 좋겠다.

비록 초반에 대진운이 썩 좋지는 않다. 쉽지 않은 상대들을 연달아 만날 예정이다. 하지만 그런 고비를 넘기다보면 더욱 큰 팀이 될 수 있다. 우리 강원이라는 팀은 충분히 저력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기대가 된다.

하필이면 개막전이 '친정팀' 울산 원정이다.

내 입장에서는 정말 신기하다. 하필 우리 팀의 첫 번째 경기가 울산 원정이다. 내가 울산문수경기장에 가서 원정 라커룸을 쓰게 된다면 감회가 새롭고 기분이 묘할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울산문수경기장의 원정 라커룸을 써본 적이 없다. 홈 라커룸만 써봤다. 경기장 입구 가운데에서 항상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게 익숙했는데 이제는 왼쪽으로 가야한다.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이제 임창우의 K리그 도전이 다시 시작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오랜 시간 중동 생활을 오래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나를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그 분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다시 K리그로 돌아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 준비를 많이 했다. 내 모습을 국내 팬들에게 많이 보여드릴 기회가 생겨 기대가 된다.

올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자신이 있다. 특히 강원 팬들께서 올 시즌이 시작되고 코로나19가 진정돼 무관중 경기가 풀린다면 많이 찾아오셨으면 좋겠다. 우리 강원이 정말 많이 준비했다.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많은 기대를 해달라.

임창우는 알게 모르게 많은 경험을 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임창우는 변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힘든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이제 임창우는 달라진 팀과 달라진 위치에서 올 시즌 K리그를 준비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K리그다. 임창우는 그래서 많이 설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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