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거제=조성룡 기자] 수원삼성 민상기가 솔직하게 고백했다.

수원삼성에 박건하 감독이 부임한 이후 그가 강조한 것이 있다. 바로 '수원 정신'이다. 그가 말하는 수원 정신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다. 박 감독은 수원의 과거 영광을 가장 잘 아는 인물 중 하나다. 그렇기에 그가 외치는 수원 정신은 그 때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여정에 필요한 것이지 않을까.

여기에 수원 정신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민상기다. 수원 유스 매탄고를 거쳐 2010년 K리그에 데뷔한 민상기는 지금까지 원클럽맨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니어스>는 민상기에게 수원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민상기는 뜻밖의 자기 고백을 했다.

AFC 챔피언스리그(ACL) 이후 처음 보는 것 같다. 잘 지내고 있는가?

특별할 것은 없다. 열심히 죽어라 훈련하고 있다. 하하.

ACL 이후의 수원은 다른 팀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도 ACL 이후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도 자신감이라는 것이 붙기 시작했다는 부분이 가장 크다. 게다가 ACL에서도 자신감을 얻을 만한 그런 성적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ACL을 통해 좀 더 높은 위치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초석을 잘 다지게 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카타르에서 하는 ACL은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또 가고 싶다. 사실 카타르에서 고생은 정말 많이 했다. 호텔에서 밖으로 아예 외출도 하지 못했다. 그냥 훈련이나 경기 때를 제외하고는 호텔 안에 있어야 했다. 다행히 수원 구단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셨다. 외국에서 한식을 제공해주신 덕분에 밥 힘으로 그나마 버텼다.

정말 카타르에서의 생활은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한다. 그래도 ACL에 또 나가고 싶다. 아마 우리가 올해 ACL 티켓을 따면 그 때는 이런 상황이 아닐 것이다. 이런 대회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물론 카타르가 힘들다고 하지만 자가격리보다는 훨씬 좋았다. 거기서는 그래도 운동장에 나가 축구라도 했지…

역시 다들 자가격리 고생담은 하나씩 가지고 있더라.

내가 원래 집에만 있는 '집돌이' 스타일이다. 그런데 자가격리를 하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갈 뻔 했다. 정말 쉽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서 베란다 밖으로 사람들 걸어다니는 것을 보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이게 나가라고 하면 막상 안나가는데 못나가게 하니까 더 나가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자의로 격리하는 게 아니라 타의로 격리하는 것이지 않는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심리적으로 답답했다.

힘내라. 울산현대는 또 자가격리를 하더라.

맞다. 하지만 울산이 그래도 부럽다. 축구선수가 되어서 그런 무대 한 번 서보면 참 좋을 것 같다. 언젠가 수원도 클럽월드컵이라는 무대에 가보고 싶다.

ACL의 호성적이 오히려 올 시즌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맞다. ACL로 인한 부담감이 없지않아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양면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해주시면 동시에 우리에게는 부담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지만 프로축구와 K리그 세계에서 그런 부담감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부분이다. 우리가 그 부담이라는 것을 떨쳐내고 팬들의 기대에 맞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박건하 감독이 '수원 정신'을 외치면서 팀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솔직히 감독님의 생각과 마음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박건하 감독님은 수원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위치까지 따라가기는 아직 멀었다. 그런데 나 또한 분명 동의하는 부분은 있다. 내가 매탄고에 들어갈 때나 프로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수원은 '레알 수원'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곳이었다.

나는 감독님의 말 중에 이것이 가장 와닿았다. 감독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상황은 변할지라도 수원에 대한 정신과 흐르는 피는 절대 변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감독님이 부임을 하자마자 우리에게 그 사실을 바로 일깨워주셨다. 우리 또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내가 수원에 오래 있어서 많이 와닿은 부분들도 있겠지만 어린 선수들도 많이 느꼈을 것이다. 어찌보면 '레알 수원'이라고 불릴 시기의 화려한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던 선수들이 감독님의 그런 말씀으로 인해 수원이 원래 어떤 팀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깨우칠 수 있었던 시간이 됐던 것 같다.

확실히 어린 선수들은 '레알 수원'을 잘 모르겠다.

그럴 것이다. 모를 것이다. 하지만 감독님의 한 마디는 그 시절을 모르는 어린 선수들도 팀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매통령'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가 있던가?

나는 우리 팀의 어린 선수들이 능력 하나만큼은 진짜 누구 하나 빠짐없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것은 있다. 지금 당장 K리그1이라는 무대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기에는 경험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당돌한 선수들이 있다. 당돌함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일찌감치 기량을 뽐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한 명 꼽아보자면 음… 강현묵? 하하하. 이런 친구들에게서 좀 당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동계훈련에서도 잘하고 있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기대할 것이다.

벌써 이렇게 당신과 어린 선수들에 대해 논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 세월 정말 빠르다.

세월이 지날 수록 '매통령'의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지는 것 같다.

맞다. 정말 맞다. 사실 전역하고나서 부담감이 매 해 조금씩 커졌다. 아직 내 위에는 (염)기훈이 형과 (양)상민이 형이 계시긴 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고참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내 나이대 선수들이 형들을 많이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 되고 있다. 그래서 책임감이 몰려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나 고백하자면 정신적으로 진짜 많이 힘들었다. 정말로 이 부담감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상민이 형에게 "많이 힘들다"라고 털어놓았고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지난 시즌 성적 부진이 원인인가?

작년의 성적 부진도 있었지만 사실 2019년에도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다. 우리가 FA컵을 우승했지만 4강 1차전에서 화성FC에 패배하고 2차전에서 힘겹게 이를 뒤집어 결승에 진출했다. 그 때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많이 힘들었다. 심지어 "이대로는 축구를 못하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많이 힘들었다.

이게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니 육체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만성 피로가 쌓이고 쌓이면서 제대로 외부 활동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2020년 들어서도 우리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성적으로 인한 책임감이었다. 분명 이 순위는 우리가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니었다. 그런데 팬들께 이런 성적 밖에 드릴 수 없었다. 그래서 책임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런데 박건하 감독님이 부임하신 이후 우리가 K리그1에서 3연승을 거뒀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다음 ACL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그러자 나 또한 많이 변했다. 계속해서 쌓여오던 걱정이 기대감ㅇ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보다 좀 더 솔선수범 하겠다는 긍정적인 책임감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수원의 화려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선수라 더 무겁게 느꼈던 것 아닐까?

그렇다고 본다. 나는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수원이라는 팀은 K리그를 주도해야 하는 팀이고 주도하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수원의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예전과 같은 화려한 시절의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원이 가지고 있던 정신과 수원을 바라보는 기대와 시선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팀에 있는 동안 그런 기대를 감당해야 하고 부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받는 기대보다 우리가 보여드리는 모습이 부족했다. 지금까지 그랬다. 그러니 결국 '내 자신이 부족하구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게 됐다. 많이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던 것인가? 조금 더 세세히 설명해달라.

잠을 자지 못한 것은 기본이었다. 특히 나는 무기력증에 빠졌다. 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은 있다. 경기 전에 몸을 푸는데 나는 공을 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훈련 때 사용하는 마커 콘을 차고 있었다. 그만큼 집중력도 상당히 저하가 된 상황이었다.

정신적으로 힘드니까 육체적으로도 번아웃이 왔다. 속된 말로 '맛탱이가 갔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벼랑 끝에 매달린다는 심정으로 경기에 임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언가라도 해야했기 때문이다. 절박했다.

나 혼자 살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내야 수원이 언젠가는 어두운 터널을 뚫고 부진하고 있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정말 힘든 시기였다.

이것도 다 지난 일이니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다. 그 때는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특히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내게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족들은 알 수 밖에 없다. 부모님과 형이 많은 걱정을 했다.

이제 올 시즌은 희망을 갖고 준비한다. 수원은 무엇이 달라질까?

ACL을 통해서 발견한 것이 있다. 수원의 모든 구성원이 간절함이라는 것을 많이 봤다. 매 경기에 대한 간절함을 갖게 됐다. 그리고 배가 고파졌다. 헝그리 정신이다. 간절함과 배고픔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올 시즌 수원은 매 경기를 뛸 때마다 더 간절하게 뛸 것이다. 다른 팀보다 활동량도 많고 끈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우리의 색깔로 만들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다이나믹한 경기 운영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특히 올 시즌 우리 수원은 분명히 달라진 부분을 팬들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동계훈련은 정말 잘 준비되고 있는 것 같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지금 수원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정신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수들이 많이 긍정적으로 변하면서 올 시즌을 충분히 경쟁력 있게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알겠다. 마지막 질문이다. 박건하 감독은 '우승'을 외치고 있다. 당신도 동의하는가?

선장이 가자고 하면 선원인 우리는 당연히 따라가야지. 선장이 가자는 대로 가겠다. 나 역시 목표는 우승이다. 그리고 ACL 티켓을 무조건 따내고 싶다.

민상기는 수원에 대한 책임감이 남다른 선수다.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수원의 어두운 터널도 이제는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ACL을 통해 작은 희망을 봤다. 그리고 그 희망을 꽉 붙잡고 올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021시즌이 끝나고 민상기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어떤 말을 하게될지 기대가 된다.

wisdragon@sports-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