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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광양=김현회 기자] 김다솔에게 지난 해는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출발한 전지훈련부터 꼬였다. 수원삼성의 동계 전지훈련을 앞두고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으로 난감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아내가 전해준 편지를 SNS에 올렸는데 여기에는 구단 코치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이 써 있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김다솔은 이 SNS로 논란을 일으키며 난처해졌다.

지난 해 김다솔은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며 그라운드 안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수원삼성에서 지난 2019년 7경기에 출장했던 그는 지난 해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한 채 구단과 계약이 만료됐다. 그렇게 SNS 사건 이후 경기장에서 모습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김다솔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남드래곤즈로 이적해 새로운 도약을 도리고 있다. 전남 광양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김다솔은 웃으며 과거를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김다솔의 SNS 논란에 관한 입장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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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오늘 마음의 각오를 하고 왔다. 그 이야기를 물어보실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일을 묻지 않을 수는 없다.

나도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인터뷰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대화를 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천천히 시작하자.

알겠다.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전남드래곤즈에 합류한 이후로 마음이 편하다. 수원에 있을 때는 그래도 심적으로 좀 힘든 부분도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오해도 풀리고 마음이 점점 편해지긴 했지만 지난 시즌 초반부터 마음고생을 한 건 사실이다. 요즘은 다시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어서 그게 가장 좋다.

광양에 살 집은 새로 구했나.

아직은 못 구했다. 아내와 아이가 수원에 살고 있는데 집 전체를 이사할 계획은 없다. 내가 경기하는 날 가족이 광양으로 내려오니 작은 방 하나를 구하려고 한다. 가족이 내려올 때만 그 집으로 가고 다른 날은 클럽하우스에서 살 예정이다. 어릴 때는 어떻게든 숙소를 떠나려는 친구들이 많지만 나이가 드니 숙소가 가장 편하다. 삼시세끼 밥도 다 주고 이런 곳이 또 없다.

얼굴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선수가 경기를 나가지 못하면 힘들다. 코칭스태프와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부분이 오해로 이어졌는데 수원 구단을 떠나기 전에 코칭스태프 선생님들과 다 오해를 풀고 나왔다. AFC 챔피언스리그 엔트리에까지 들어 카타르에 가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불러준 팀이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축구를 하고 있다.

전남에서의 훈련은 어떤가.

힘들다. 내가 여기에서 (박)준혁이 형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데 준혁이 형은 지금 아파서 서울에서 재활 중이다. 내가 가장 고참이다. 운동을 하면서 내가 고참이라는 걸 처음 느껴보고 있어서 어린 선수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전남에서의 훈련은 힘든 편이지만 체지방이 많이 빠졌고 몸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코칭스태프에서 세심하게 관리에 신경을 써주고 계셔서 그 부분이 많이 놀라웠다.

다이어트에 성공한 걸 축하한다.

훈련에 합류하고 3주일 만에 4kg이 빠졌다. 포항에서 3년차 이후 체지방이 10%대에 진입한 건 처음이다. 아파서 매년 재활을 병행하다보니 체지방이 늘었고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체중 관리가 더 힘들었는데 지금은 몸 상태가 좋다. 몸이 가벼워진 게 느껴진다. 아내도 요새 내가 다시 광대가 살아났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동계훈련은 이렇게 훈련량이 많은 게 당연한 거다. 근육이 붙고 힘이 생기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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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

나는 지난 시즌 한 경기에도 나가지 못했고 항상 2군에서 어린 선수들과 훈련을 했다. 나이도 있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지난 시즌 내내 ‘내년에는 다시 잘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찾아줄까?’라는 걱정이 많았다. 전남이 나에게 제안을 보냈을 때 감사한 마음으로 무조건 가겠다고 바로 결정했다. 불러주는 팀이 있으면 그 팀에 가서 기회를 잡아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수원삼성과는 계약이 만료된 건가.

그렇다. 2년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었는데 구단에 물어봤을 때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해주셨다. 일찌감치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재계약 불가 통보를 늦게 하면 선수가 갈 팀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구단에서 빨리 결정하고 빨리 말씀해주셔서 바로 새 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 시즌 수원은 골키퍼만 여섯 명을 보유하며 주목을 받았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보통 프로팀에 골키퍼가 많으면 네 명, 정말 많으면 다섯 명이다. 나도 포항에 처음 있을 땐 골키퍼가 다섯 명이 있던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 팀에 골키퍼만 여섯 명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다. 분위기는 좋았다. 내가 가장 고참이었는데 경기에 나가고 나가지 못하고를 떠나서 후배들과 다 잘 지냈다. 아마 김봉수 골키퍼 코치가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골키퍼 훈련을 할 때면 여섯 명에게 공을 다 차줘야 한다. 물론 시즌에 돌입하고 나서는 1군과 2군 훈련이 나눠져 훈련 시간이 달랐다.

지난 시즌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면서 초조했을 것 같다.

수원에서 첫 시즌이었던 2019년에는 개막전에도 선발로 출장하고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해에 워낙 (노)동건이의 활약이 좋아서 그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더라. 지난 시즌에는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한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많았다.

정말 힘든 한 시즌이었을 것 같다.

내가 한 시즌만 하고 은퇴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 시즌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훈련을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동건이와 (양)형모를 도우면서 보탬이 되자고 생각했다. 조급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배우자고 생각하면서 내려놓으니까 마음은 편해지더라. 작년에는 시즌 막판 감사한 일이 많았다. 한때는 내가 전력 외로 분류되기도 했지만 시즌 종료 직전 카타르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에는 명단에 들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언제 또 이런 대회를 경험할까 싶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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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나.

그렇다. 일단은 그 일에 대해서는 내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핑계를 댈 것도 없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모든 잘못을 인정한다. 김봉수 코치님께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그 대가도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 심정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다. 조금 힘들었다. 아니, 조금이 아니라 많이 힘들었다.

난처한 상황이었을 것 같다.

동료들이 “실수할 수도 있다. 괜찮다”고 해줬고 코치님들도 격려해 주셨다. 김봉수 코치님도 처음에는 화가 나셨지만 시간이 흘러 대화를 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풀리셨다. AFC 챔피언스리그에 가서는 그래도 관계가 잘 마무리된 것 같다. 늘 죄송한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은 평생 가겠지만 그래도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전남에서 더 잘 되면 또 한 번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를 다시 하고 싶다.

SNS에 편지를 올리고 당신은 곧바로 비행에 돌입해 이 사실이 전국에 다 퍼지고 있다는 걸 몰랐다. 아랍에미리트 전지훈련지에 도착한 뒤 이 사실을 처음 접하게 됐을 때 충격도 컸을 것 같다.

아내가 마스크 사이에 편지를 끼워 놓았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이륙 직전에 아내에게 연락이 와서 “내가 편지 써놨는데 못 봤어?”라는 메시지가 왔고 부랴부랴 마스크 사이에 껴 있던 편지를 발견했다. 감사한 마음이었고 당연히 ‘잘 하고 오라’, ‘다치지 말라’는 응원의 메시지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내용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걸 곧바로 SNS에 올렸다. 비행기에서는 아무 일도 몰랐고 평온했다. 가서 열심히 훈련할 생각만 했다. 그런데 중간에 비행기에서 와이파이가 한 번 터졌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폭주하더라. 카카오톡부터 시작해서 SNS 메시지 등이 엄청나게 왔다. “SNS에 올린 그 편지 사진 빨리 내리라”는 내용이었다. 그게 이륙 후 한 5시간이 지난 다음 알게 된 일이다.

그 5시간 동안 축구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었다. 당신의 심정이 궁금하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 같다.

너무 당황했다. 일단 사진은 그 비행기에서 삭제했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단 주무를 찾아가 상황 설명을 했다. 구단에서도 상황을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짐 찾는 곳으로 가 김봉수 코치님께 솔직하게 다 말씀드렸다. “지금 기사도 이렇게 나오고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사죄드렸다. 당시 김봉수 코치님께서도 아직 기사나 원문을 보지는 못한 상황이어서 “알겠다”고만 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당신은 그 이후 단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이 일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보는가.

나에게는 기회 자체가 없었다. 우리 팀 골키퍼가 6명이었는데 내가 6번째 골키퍼였다. 이 일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열심히 2군에서 운동하다가 나를 찾아주는 팀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엔트리에 들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간에 (박)지민이가 군대에 가고 어느 순간 내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게 되더라. 아예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구단과 코칭스태프가 그래도 좋게 생각해주셔서 기회를 준 거다. 경기에는 나가지 못했지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 경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있는 일이었다.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내가 수원에 있던 2년 동안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늘 마음에 부담이 있었다. 비록 내가 경기에 나가지는 못하지만 농건이와 형모가 잘할 수 있도록 내가 옆에서 잘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원이라는 팀이 그 위치보다는 높은데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다. 나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않아졌었는데 그걸 다시 좋게 만드는 건 내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래서 후배들을 더 챙기려고 했다.

일각에서는 SNS에 올린 편지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내가 쓴 편지를 읽지도 않고 읽은 것처럼 행동한 걸로 아내에게 혼났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그런 건 없었다. 내 SNS는 물론 아내의 SNS로도 많은 메시지가 왔다. 아내도 처음 겪는 일이어서 일단은 아내의 마음은 안정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아내한테 ‘왜 편지를 읽지도 않고 SNS에 올렸느냐’고 혼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우리 둘이서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머리를 맞댔다. 우리는 부부 아닌가. 이럴 땐 서로 힘이 되어야 한다.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는 아내가 많이 고마웠다. 멀리 가서 운동을 해야하는데 거기에 언급된 코치님과 하루에 세 번씩 마주하고 생활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이 걱정하더라. 지금은 서로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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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코치와의 관계는 그래서 어떻게 된 건가.

당연히 이 일이 있고 초기에는 안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이가 많이 회복됐다. 특히나 AFC 챔피언스리그를 치르기 위해 카타르에 갔을 때는 너무 잘 지냈다. 이제는 김봉수 선생님께서 농담도 걸어주신다. 우스갯소리로 “나중에 너 잘되면 아내하고 같이 와서 정식으로 사과 한 번 해”라고 하신다. 또 내가 이적하게되자 “광양 놀러 가면 밥 사주는 거야?”라면서 친근하게 대해주신다. 김봉수 코치님도 전남에서 생활해 본 적이 있어서 맛집도 많이 알려주셨다. “너는 선수 생활하면서 이런 일이 한 번이지만 나는 이번이 두 번째야”라는 농담도 하시더라.

혹시 이 일로 장난을 친 팀 동료들은 없었다.

왜 없겠나. (홍)철이가 가장 많이 놀렸다. 나를 보면 맨날 “으르렁 형”이라고 했다. 편지에 ‘으르렁’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철이가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해줬다.

그래도 그땐 차라리 놀리는 게 나은 것 같다.

오히려 고마웠다. 걔는 지금도 나만 보면 “으르렁 형”이라고 한다. 지금은 하나의 추억이 된 거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양)상민이 형하고 (염)기훈이 형도 그 일이 있고나서 나를 잘 챙겨줬다.

수원삼성을 떠나면서 코치진과는 어떤 대화를 나눴다.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다 했다. 김봉수 코치님은 “너는 충분히 경쟁력도 있고 몸 상태도 좋으니까 열심히 하면 좋을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해줬고 박건하 감독님은 “기회를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카타르에 같이 간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팀이 막판에 잘 되는 모습을 보고 나와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록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마지막의 좋은 기억이 더 크다. 코치진들께 진심으로 “내년에는 더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제 전남 선수가 됐다. 어떤가.

전남 유니폼을 입은지 3주가 됐다. 전경준 감독님은 이곳에 와서 처음 겪어봤는데 누구 하나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뭉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다. 모든 선수들을 다 똑같이 놓고 평가하신다. 어느 팀에 가나 일단 베스트11은 정해져 있는데 전남은 열심히 하면 누구나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평한 분위기다. 동등한 기회를 주시려고 하고 나이가 어리건 많건 다 똑같이 경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골키퍼 포지션에서는 박준혁, 오찬식 등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

골키퍼는 어딜 가나 다 경쟁이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지도자로서의 미래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배운다는 도전자 입장이다. 경쟁이 있어야 선수도 열심히 노력한다. 경쟁이 없으면 사람이 나태해진다. 준혁이 형이 아파서 재활하러 서울로 가 있는데 빨리 돌아와서 배울 점이 있으면 배우고 싶다.

새롭게 팀에 합류한 사무엘 은나마니는 잘 적응하고 있나.

첫 날 와서 “밥 먹었어? 뭐 먹었어?”라고 물어보니 매운탕을 먹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선수들이 깜짝 놀라서 “그거 안 매워?”라고 하니까 “난 매운 거 잘 먹어”라고 해서 한 번 더 놀랐다. 한 번 먹어본 음식인데 이름을 대충 기억하더라. “음식 이름이 뭐였냐”고 물어보니까 “탕? 탕? 매… ㅁ…매?” 그래서 “매운탕이냐”고 하니까 맞다고 했다. 독특하고 개성있는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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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로 11년차다. 11년 동안 경쟁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언제였나.

당연히 포항에 있을 때였다. 그때는 (신)화용이 형이 독보적인 붙박이 골키퍼였다. 그 사이를 파고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너무 죄송한 시절도 있었다. 바로 대전시티즌으로 이적한 2015년이다. 그때는 동계 훈련을 가자마자 이틀 만에 다쳐서 한 시즌 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죄송했고 나도 양심에 찔려 중간에 월급도 50% 삭감해서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는 2년 계약이었는데 구단에서 “1년 계약은 없애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받아들였다. 2년 계약이어서 버틸 수도 있었지만 죄송한 마음이 너무 커서 계약 종료에 동의했었다.

반대로 가장 즐거웠던 시즌은 언제였나. 2018년 수원FC에서 많은 경기에 나섰을 때였나.

경기력은 그때 수운FC 시절이 가장 좋았는데 즐거웠던 시절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2016년 인천을 꼽고 싶다. 그때 많은 경기에 나가지는 못했는데 김이섭 선생님에게 축구를 배우는 게 너무 즐거웠다. 다시 그분께 축구를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당시 (조)수혁이 형, (김)교빈이 형, (이)태희하고 같이 했었는데 매일 즐겁게 축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가장 좋은 활약을 했던 한 시즌을 꼽으라면 2018년도 수원FC 때를 꼽지 않을 수 없다. 29경기에 출장해 28실점하며 활약했고 그 활약을 바탕으로 수원삼성으로 이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올 시즌 개인적인 목표는 어떻게 되나.

팀이 작년에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그 이상의 성적을 냈으면 한다. 다이렉트로 승격하면 좋겠지만 워낙 쟁쟁한 팀이 많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공은 둥그니까 최선을 다해 플레이오프권 이상을 노려보겠다. 내 자신은 2018년도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 지금 바깥에서 보는 시선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김다솔이 축구 외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거론이 됐기 때문에 그걸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알겠다.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당신을 환영하는 전남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나한테 거는 기대가 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장 안에 있건 경쟁에서 밀려 경기장 밖에 있던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할 테니까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힘든데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 개막전부터 많은 전남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와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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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년간 당신을 응원했던 수원삼성 팬들께 한마디 한다면.

처음에 기대도 하시고 경기장에도 많이 찾아와주셔서 응원도 많이 해주셨는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코로나19로 아예 팬들이 경기장에 오지 못하게 돼 너무 속상했다. 내 축구 인생에 이렇게 많은 관중이 내 뒤에서 응원을 해주며 뛰는 날이 또 올까 싶다. 좀 더 오래 그런 분위기를 즐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항상 나에게 응원을 보내주시고 믿어주시고 괜찮다고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어려운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변해줘서 고맙다.

김봉수 선생님과도 웃으며 잘 마무리해 이제는 조금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인터뷰를 하기로 한 뒤에 걱정이 많았고 질문이 조금 힘들었으면 노코멘트할 수도 있었지만 편한 분위기라 조금 더 진솔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내 진심이 잘 전해졌길 바란다.

알겠다. 그렇다면 정말 마지막으로 김봉수 코치에게도 한 마디 해달라.

어색한데 꼭 해야하나. 선생님. 사랑합니다.

김다솔은 이 실수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며 주위로부터 안 좋은 시선을 받은 1년의 시간 동안 그는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묵묵히 했다. 그리고 그 진심은 당사자에게도 닿았고 헤어질 땐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과연 김다솔은 올 시즌 다시 골문 앞에 서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까. 김다솔은 이 모든 건 내가 자처한 일이고 내가 풀어야 한다고 했다. 올 시즌 그의 활약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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