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호를 제주 서귀포 전지훈련지에서 직접 만났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제주=김현회 기자] 신진호가 포항으로 돌아왔다. 포항의 최대 라이벌인 울산현대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그가 곧바로 포항 유니폼으로 바꿔 입은 건 K리그에선 꽤 충격적인 사건이다. 과연 신진호는 어떤 마음으로 라이벌팀에서 곧바로 친정팀으로 복귀하게 됐을까. 포항의 전지훈련지인 제주 서귀포에서 신진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단 먼저 사과할 일이 있다.

알고 있다.

당신과 한국영이 맞트레이드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방송에서 이야기했는데 그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다. 나도 알아본다고 알아본 건데 미안하다.

괜찮다. 나는 당시 전혀 몰랐던 이야기다. 그래도 어디에선가 이야기가 흘러 나왔으니까 그렇게 듣지 않았을까.

사과를 받아줘서 고맙다. 포항에 합류한 뒤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아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열심히 체력 훈련 중이다. 포항이 훈련을 간단하고 쉽게 끝내는 스타일이 아니고 굉장히 체계적이다. 확실히 힘들긴하지만 느낌은 좋다. 특별하게 아픈 곳 없이 지난 시즌을 마쳤고 지금도 부상은 없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졌다.

포항에 올 때 김기동 감독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처음 전화가 왔을 때는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현재 거취가 어떻게 되는지 여쭤보셨고 나도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감독님께서 “포항으로 오라”고 하셔서 장난인줄 알았다. 언젠가는 포항으로 돌아갈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그게 이번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감독님께 “나는 돌아가고 싶었는데 포항에서 내가 떠나고 5년 동안 나한테 제안을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어떤 답이 오던가.

감독님께서 “네 몸값이 많이 올라서 우리가 제안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웃으셨다. 그래도 이날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가 많이 진척됐다. 솔직히 포항 팬들은 떠난 선수들을 그리워하고 포항 출신 선수들도 늘 포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상황이 맞지 않아 돌아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감독님이 진지하게 영입 제안 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으니 “진짜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그러면 진정성을 보여주세요”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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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이라는 건 좋은 계약 조건을 의미하는 거였나.

감독님이 오라고 하시는 건 진정성을 느꼈는데 어느 정도 조건도 맞아야 하지 않겠나. 첫 번째 통화를 하고 이틀 뒤에 다시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구체적인 조건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런데 포항의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협상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돌아오고 싶은 마음과 구단, 감독님이 나를 원하는 마음이 잘 맞았다.

진정성을 느꼈나.

내가 사실 그 당시 여러 팀과 이야기 중이었다. 강원에서는 나를 대학교 때 가르친 김병수 감독님이 계셔서 강원행을 고려한 것도 사실이고 제주에서도 제안이 왔다. 그래도 강원은 은사님이 계시니 강원 이적이 말이 되긴 하는데 제주는 좀 조심스러웠다. 나와 이렇다 할 관계가 있지 않아서 제주로 갈 명분은 크지 않았다. 사실 포항에서 제시한 조건보다도 제주에서 나에게 제안한 조건이 더 좋았는데 나는 포항으로 오고 싶었다. 조건 양보는 구단보다는 내가 더 많이 한 것 같다.

결국 돌고 돌아 포항에 복귀했다. 오랜 시간 생활한 클럽하우스에 다시 가보니 어땠나.

아직 송라에 있는 클럽하우스에는 가지 못했다. 포항에 가서 메디컬 체크를 하고 사무실에 가서 인사를 하고 바로 제주 전지훈련장으로 넘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클럽하우스에서 내가 쓰던 방을 (강)상우가 쓰고 있다고 하더라. 내가 상우한테 지나가는 말로 “거기 기운이 좋지?”라면서 눈치를 한 번 주기는 했는데 상우가 방을 뺄지 안 뺄지는 모르겠다. 창문을 열면 훈련장이 바로 보이는 방이라 기분도 좋고 내가 신인 때부터 썼던 방이라 느낌도 좋은 곳이다. 상우가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포항으로 돌아와 반가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을 것 같다.

햇수로는 6년 만에 돌아왔다. 사무실에 인사를 하러 갔더니 사장님과 단장님 빼고는 내가 알던 그 직원들이 다 그대로 있었다. 동양빌딩에 있는 그 구단 사무실의 구조까지도 똑같았다.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서 정말 정말 기분이 좋았다. 거의 시간이 멈춰 있던 느낌이었다. 친형 같은 분들을 다시 만났는데 나를 너무 반갑게 가족처럼 반겨주셔서 짠한 감정이 들었다. K리그 데뷔전을 치르고 첫 월급을 타고 할 때 구단 직원들이 나를 많이 도와주셨었는데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와서 그 분들을 만나는 게 좋았다. 포항에 오기 전에도 종종 연락을 했던 분들인데 이 분들과 다시 한 팀이 된다고 생각하니 행복하더라.

그렇다면 그 사이 달라진 건 없나.

환경이 더 좋아졌다. 원래 치료실에는 치료 기구가 몇 개 없었다. 초음파 치료기와 전기 치료 정도가 다 였는데 이번에 와보니 충격파 치료기도 있고 트레이너도 세 명으로 늘었더라. 피지컬 담당도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었다. 뭔가 구단이 더 꽉 찬 느낌이다. ‘내가 알던 포항이 이 정도였다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의 시설이 좋다고는 하지만 포항도 부족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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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받는 질문일 것 같다. 울산 유니폼을 입고 포항을 상대로 골 세리머니를 해 말이 많았다. 앞으로 포항 소속으로 울산에 골을 넣으면 그때도 화끈한 세리머니를 할 것인가.

원래 친정팀과의 첫 경기에서는 골을 넣어도 세리머니를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다. 이건 다른 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울산에서 포항을 상대로 골 세리머니를 한 건 이적한지 꽤 시간이 흐른 뒤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꽤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욕을 많이 먹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울산전 첫 경기를 제외하고는 이후 골을 넣게 되면 세리머니를 할 거다. 아직 어떤 세리머니를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포항 팬분들을 위해 세리머니를 준비하겠다.

라이벌팀을 오갔지만 그래도 눈치를 보기 보다는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렇다. 나는 늘 어느 팀에 가던지 그 팀 팬들을 존중하지만 내가 가진 나라는 사람의 진정성은 운동장에서 보여드리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어떻게 보여주느냐를 가지고 팬들이 나를 판단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에도 느꼈지만 미디어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느냐도 중요하더라. 라이벌팀으로 이적한 게 좀 자극적으로 노출된 부분이 없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울산현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것만 팬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만약 내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을 행동을 했다면 사과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라면 내 진정성만 알아달라. 나는 내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뭔가 헤어지면 전 여자친구는 딱 끊고 지금의 내 여자한테만 잘하는 남자친구인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꼭 지금 사랑보다 지나간 사랑에 미련이 더 많아 당신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술을 먹으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가. 그렇게 비유하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내가 포항에 있을 땐 울산으로 가게 될지도 몰랐고 포항에 오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오게될 줄도 몰랐다. 지금은 이제 다른 팀으로 또 이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축구선수를 일찍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좋은 경기력으로 오래 포항에서 뛰고 싶은데 그건 나도 노력해야 하고 포항 구단도 노력해야 한다. 나도 이제는 나이가 있는데 다시 한 번 포항을 떠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파란 하트와 빨간 하트로도 말이 많더라. 무슨 일이었나.

그 오해를 좀 풀고 싶다. 내가 SNS나 카카오톡 등에서 이모티콘으로 빨간 하트와 파란 하트를 번갈아 가며 썼다. 그런데 지난 달에 울산현대에서 같이 있던 정훈성이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고 빨간 하트를 써서 “울산현대는 빨간 하트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댓글과 함께 파란 하트를 달았다. 장난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리고 이후에 큰 의미 없이 다른 SNS글에 빨간 하트를 썼더니 많은 분들이 포항 이적이 결정되고 곧바로 하트색을 바꾼 것 아니냐고 하시더라. 사실 그때는 이적이 결정된 상황도 아니었고 의미부여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파란 하트보다는 통상적으로 빨간 하트를 많이 쓰지 않나.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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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포항으로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느 팀 유니폼을 입고 있을까. 제주인가. 강원인가.

아마 울산에 남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이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수마다 이적 협상을 할 때 자기가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게 다 다를 것이다. 그게 계약 조건이 될 수도 있고 팀의 철학이나 방향이 될 수도 있다. 포항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울산에 남았을 수도 있다.

‘포만감’(포항에서 만나 감사합니다)이라는 모임이 있다. 앞으로 이 포만감 멤버 중에 또 포항으로 돌아올 선수들이 더 있을까.

고무열과 이명주, 손준호 등은 훗날 포항으로 돌아왔으면 한다. 지금도 여러 좋은 팀에서 잘하고 있는데 이 선수들도 포항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남다르다. 아마도 포항으로 돌아온다면 팬 여러분들에게도 기쁠 일이고 또 하나의 K리그 스토리가 탄생하지 않을까. 이 선수들은 포항에 돌아와서도 잘 할 거다.

포항에서 김기동 감독의 현역 시절을 함께한 몇 안 되는 선수다. 그래서 더 의미가 남다르다.

감독님의 현역 시절 마지막 1년을 선수로 같이 보냈다. 그때도 나이 차이가 있어서 ‘형’이라고는 못하고 ‘형님’이라고 했다. 이후에 종종 연락할 때도 “네. 형님”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통화할 때는 나도 모르게 “감독님”이라고 칭하게 되더라. 형님으로 만날 때와 감독님으로 만날 때의 느낌이 좀 다르기는 하다. 원래는 핸드폰에도 ‘김기동 형님’이라고 저장돼 있었는데 이번에 계약서를 쓰자마자 ‘김기동 감독님’으로 바로 바꿨다.

‘김기동 형님’ 시절에는 어땠나.

얼마 전에 훈련장에서 (신)광훈이 형하고 축구화를 신으면서 수다를 떨었다. 서로 감독님 현역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감독님의 훈련 복장 이야기를 했다. 그때 감독님은 꼭 학생들이 신을 법한 흰색 스프라이트 양말을 접어 신고 반스타킹을 착용한 다음 카파 축구화를 신으셨다. 나하고 광훈이 형이 그걸 똑같이 기억하고 있더라. 우리가 막 깔깔대며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쪽에서 감독님이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더라. 이렇게 다시 똑같은 훈련복을 입고 모였다는 게 신기하다.

그로부터 어떤 점을 본받고 싶나.

자기관리가 엄청나신 분이다. 그 나이까지 미드필더로 501경기에 나섰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사실 그때는 대단한 기록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업적인지는 잘 실감이 안났다. 그런데 내가 나이를 먹으니 이런 기록을 세우는 건 진짜 역사적인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 원래 나이를 먹으면 살짝 내려놓고 하는 걸 많이 봤는데 감독님은 현역 시절 마지막 동계 전지훈련에서도 체력훈련을 하면 제일 앞에서 뛰셨다. 그런 점이 가장 기억에 남고 배우고 싶다.

‘김기동 감독’으로서는 어떤가.

감독님과 선수들이 거리감 없이 편하게 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지킬 선은 지키면서 자유롭다. 그게 훈련할 때도 그대로 이어진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운동을 해본 일이 많지 않아 좀 어색하기도 하다. 아직 김기동 감독님을 길게 겪어보진 못했지만 지난 시즌 상대팀으로 만났을 때도 적절한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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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올 시즌 스틸야드에서 홈 경기를 치른다. 기대가 클 것 같다.

스틸야드가 리모델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홍보팀 관계자는 “선수들 라커와 기자회견장, 선수단 출입구를 리모델링 했다”고 알렸다.) 새로워진 스틸야드가 기대된다. 스틸야드에서 비장한 각오로 경기에 출전하던 때가 생각이 난다. 굳이 경기장에 그렇게 비장하게 들어갈 이유도 없었는데 그때는 많이 비장했다. 내가 경기를 준비하는 마음이 달라졌는지 한 번씩 나를 채찍질할 때마다 스틸야드에서 경기장에 들어가던 비장한 순간을 떠올릴 정도였다. 그 느낌이 좋았다. 아마도 포항 유니폼을 입고 스틸야드에 딱 들어가면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올 시즌 어느 정도의 목표를 두고 있나.

내가 늘 어시스트보다 골이 부족했다. 어시스트는 내 위치에서 플레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지만 득점은 조금 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포지션상 득점을 많이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득점에 집중을 해보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다시 포항 유니폼을 입게 됐는데 포항 팬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나에게 돌을 던지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해 즐거움을 드리려고 노력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숙된 모습으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쳐 승리를 따내겠다. 꼭 신진호여서 응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과 자세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면 그때 응원 부탁드린다.

그는 또박또박 자신의 각오를 밝혔다. 또한 그는 “구단에 진정성을 요구했다”는 대목이나 “나도 노력해야 하지만 구단도 노력해야 같이 오래 갈 수 있다”는 말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신진호는 그라운드에서도 당당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할 말은 했다. 라이벌팀으로의 이적은 축구계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포항 유니폼을 입은 신진호가 올 시즌 그라운드에서 펼칠 당당한 플레이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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