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화면 캡처

[스포츠니어스 | 제주=김현회 기자] 제주유나이티드 안현범은 최근 이슈의 중심에 섰다. 한 방송사가 제주의 동계훈련을 취재해 뉴스로 보도하는 장면에서 안현범의 짠하면서도 배꼽을 잡을 만한 모습이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지옥훈련 중인 장면을 보도하면서 체력훈련 후 훈련장에 누워있는 안현범을 향해 기자는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고 안현범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은퇴하고 싶다”고 괴로워했다. 이 장면은 캡처돼 축구 커뮤니티를 뒤엎었고 안현범의 사실적인 표현에 많은 이들이 웃음 지었다.

뉴스를 통해 본의 아니게 은퇴 선언(?)을 하게 된 안현범은 21일 <스포츠니어스>와 제주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나 이 이야기에 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안현범은 “나도 그 뉴스를 보며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게 인터뷰인지도 몰랐다. 너무 힘들어서 누워 있다가 눈을 딱 떴는데 마이크가 앞에 있어서 장난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뉴스에 나가서 놀랐다. 주변에서는 그 뉴스 보도 이후 내가 결혼할 때보다 더 많은 연락을 해온다. 많이 힘드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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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는 <스포츠니어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안현범은 “은퇴 선언 후 잠시 현역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많은 생각을 했고 이 자리에 있다는 걸 감사하게 느끼게 됐다”면서 “구단과 합의를 통해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게 됐다”고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뉴스 보도 이후 잠시(?) 그라운드를 떠났던 그가 공식적으로 은퇴 번복을 선언한 것이다. 만 26세의 어린 나이에 은퇴할 뻔한 안현범은 이렇게 다시 축구선수로 돌아왔다.

안현범의 은퇴 선언(?) 이후 이 장면은 구단 내에서도 화제였다. 남기일 감독은 이 장면을 보고 “입에서 말이 나온다는 건 덜 힘들다는 이야기다”라면서 “더 힘들게 훈련을 할 것”이라고 웃었다. 이 이야기를 안현범에게 전하자 그는 “방송 이후 감독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분명히 그 뉴스 보도를 봤을 것”이라면서 “감독님이 약한 모습 보이는 걸 싫어하신다. 그래서 그 이후 눈치를 많이 봤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던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라고 덧붙였다.

남기일 감독은 혹독한 체력 훈련을 바탕으로 많이 뛰는 축구를 추구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동계훈련을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클럽하우스에서 진행 중인 제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혹독하게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안현범은 “오전과 오후, 두 번에 걸쳐 웨이트트레이닝과 코어 운동, 체력훈련을 반복했고 이제 막 공을 만지는 훈련에 돌입했다”면서 “내가 중학교 때는 계단을 많이 뛰었고 고등학교 때와 대학 때는 산을 죽어라 뛰었다. 그때도 힘들다고는 생각했는데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된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그 때는 그걸 끝내면 성취감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냥 죽고싶다는 생각 뿐이다”라고 엄살을 부렸다.

혹독한 훈련으로 괴로워하는 안현범에게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남기일 감독이 곧 선수단과 한라산 등반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안현범은 “이번에 한라산에 가면 10번째 등반이다”라면서 “아마 이 정도 올라갔으면 높이로는 이미 달나라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제주에는 눈 앞에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산이 있는데 우리는 산으로만 간다. 경치도 구경하면서 등산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우리는 운동을 목적으로 산에 간다. 중간에 쉬는 것도 없고 중간에 김밥이나 라면을 먹지도 못한다. 그런데 정말 감독님께서 한라산에 간다고 하셨나. 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현범은 제주에서 6시즌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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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범은 투덜거리면서도 체력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팀 동료 송주훈은 “안현범이 말은 그렇게 해도 체력이 정말 좋다”면서 “안현범이 진짜 힘들다고 하면 그건 정말 힘든 거다”라고 웃기도 했다. 안현범은 “내가 동국대를 나왔는데 학교가 남산과 연결돼 있다”면서 “그때는 새벽마다 남산을 뛰었다. 진짜 좋은 이 여행지를 우리는 왜 매일 뛰고 있나 불만이 많았다. 남들은 남산에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러 오는데 우리는 머리를 빡빡 밀고 땀 냄새를 풍기며 뛰어다녔다”고 투덜댔다.

안현범은 송주훈의 말처럼 체력이 왕성한 선수다. 불만도 많고 늘 투덜대지만 그러면서도 할 건 다 한다. 안현범은 “내가 좀 잘 뛰기는 한다”면서 “그런데 그 전에 뛰려면 마음을 좀 먹어야 한다. 마음을 먹으면 하는데 마음을 먹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훈련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언덕을 오르면 몸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언덕에서 축구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1차원적으로 이런 훈련을 잘 이해 못하면서도 몸은 한다. 힘든 훈련을 할 때마다 머리로는 화가 나고 속으로는 구시렁거리는데 열 받아서 더 뛴다. 그래서 체력테스트에서 1등을 한다. 나를 자극하면 더 잘한다. 힘든 훈련을 할 때마다 머리 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싸우다가 결국 악마가 이긴다”고 말했다.

안현범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결혼식을 올렸다. 오는 5월에는 아빠가 된다. 이제는 책임감도 막중하다. 그는 “사실 훈련이 힘들긴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감사한 일이다”라면서 “그런 생각으로 버틴다. 혼자만의 인생이 아니라 가정이 있어서 이제는 책임이 막중하다. 축구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해 16~17년 정도를 했다. 이제 길어야 10년을 더 할 수 있는데 이 고생을 한 번 더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하다”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또 다시 투덜댔다. 말로는 엄살을 부렸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이제는 가장의 책임감까지 더해진 그는 할 건 다하는 진정한 프로선수였다.

그에게도 중요한 시즌이지만 강등을 당하고 한 시즌 만에 K리그1 무대에 복귀한 제주로서는 올 시즌이 굉장히 중요하다. 안현범은 “작년에 어렵게 우승을 해서 K리그1에 올라오게 됐는데 감독님과 단장님을 비롯해서 구단 관계자들이 선수 영입에도 신경을 써주고 있고 기존 선수들도 잘 대우해 주려고 한다”면서 “그에 걸맞게 열심히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1년 만에 올라왔는데 그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더 조직력을 갖춰서 더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 결혼해서 치르는 첫 시즌인데 결혼해서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열심히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다”고 듬직하게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진짜 은퇴는 한 10년 뒤에 해달라. 이제는 이번 뉴스에서처럼 그런 은퇴 선언은 더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훈훈한 마무리 시도에도 “내일 다시 은퇴 선언을 할 수도 있다. 내일 훈련이 굉장히 힘들 것이다. 물론 그래놓고 또 번복해서 욕을 먹더라도 또 은퇴를 번복할 수도 있다”고 끝까지 투덜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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