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통영=김현회 기자] 울산현대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울산현대는 김도훈 감독이 물러나고 홍명보 감독이 새로 부임했다. 몇몇 선수들은 팀을 떠났고 새로운 자원이 그 자리를 대신할 예정이다. 내달 4일부터 카타르에서 열리는 2020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 참가하는 울산현대는 북중미카리브해축구연맹(CONCACAF)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티그레스와 첫 경기를 치른다. 달라진 울산현대의 모습을 일찍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의 긍정적인 요소들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 울산현대에는 긍정적인 요소들이 생겼다. 홍명보 감독 특유의 리더십으로 꽤 클 수도 있었던 전력누수를 최소화했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울산현대의 주축이었던 김태환과 김인성, 즉시 전력감인 이동경 등이 팀을 떠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울산현대는 이 선수들을 모두 잔류시켰다. 이 선수들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본다면 굵직한 선수의 영입 못지 않은 잔류 소식이다. 김태환과 김인성, 이동경은 울산현대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의 잔류는 홍명보 감독의 공이 컸다. 이동경은 지난 시즌 중용받지 못하며 이적이 기정사실화 됐다. 실제로 클럽하우스에서 짐을 싸고 선수단과 작별 인사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동경은 포르투갈 이적 직전 최종 협상 결렬로 결국 이적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새 시즌을 앞두고 울산현대를 떠난다는 건 더 이상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연령별 대표팀에 꾸준히 승선했고 김학범 감독이 지휘하는 올림픽 대표팀에서 황태자로 자리 잡은 이동경을 원하는 팀은 많았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은 취임 이후 첫 주문으로 구단에 “이동경을 꼭 붙잡아 달라”고 했고 이동경과 따로 식사 자리를 마련해 “너는 팀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다”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미 마음이 떠났던 이동경은 홍명보 감독과의 대화 이후 오히려 울산과 2년 재계약이라는 놀라운 선택을 했다. 김도훈 감독 재임 시절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해 불만이 컸던 이동경은 홍명보 감독과 그리 길지 않은 미팅을 가진 후 마음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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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경과 김태환, 김인성을 지켜낸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은 이적 가능성이 높았던 김태환 역시 지켜냈다. 홍명보 감독은 “김태환은 그동안 울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큰 도움을 줬다”면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태환에게 울산에 남아달라고 이야기했고 결국 올 시즌도 김태환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 부임 전후로 김태환이 팀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가 팀에 공헌한 선수들을 정리한다는 오해를 받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홍명보 감독은 김태환의 잔류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김인성의 잔류 역시 홍명보 감독 특유의 리더십 덕분에 더더욱 큰 효과를 냈다. 김인성은 대전하나시티즌과 이적 협상 중이었고 이적 협상 막판 홍명보 감독과 면담을 가졌다. 이전까지 김인성은 홍명보 감독과는 따로 이적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이 자리에서 홍명보 감독은 “네가 울산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이적을 만류했다. 결국 이미 마음을 결정한 김인성이 대전으로 가겠다면서 면담이 끝났지만 대전하나시티즌은 최종 결정 단계에서 이적을 결렬시켰다. 김인성은 이적이 무산된 뒤 뒤늦게 울산현대 선수단에 합류했다.

김인성과 울산 구단, 홍명보 감독의 기류가 어색하게 흐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홍명보 감독이 이적 확정 전 김인성을 만나 “팀에 남아달라”고 나눴던 대화 덕분에 이 관계는 빠르게 수습됐다. 김인성은 “나를 인정해 주고 다시 나를 받아준 홍명보 감독을 위해서라도 꼭 올 시즌에는 잘 해야한다”고 자신을 받아준 홍명보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홍명보 감독도 “김인성의 이적 협상 결렬이 한편으로는 좋은 마음도 있었다”고 농담을 건네면서 “김인성 포지션에 대체자가 아무도 없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과 김인성의 관계는 이렇게 이적 해프닝이 잘 수습되면서 잘 마무리됐다.

울산에서도 발휘 중인 홍명보 감독 특유의 보스 기질

홍명보 감독은 과거 지도자 생활을 할 때도 특유의 보스 기질을 잘 발휘했다. 2012 런던올림픽 당시 홍명보 감독은 병역 논란이 있던 박주영을 끝까지 품으며 동메달을 따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군대에 가지 않으면 내가 대신 가겠다”는 말을 할 만큼 제자를 챙겼다. 논란도 컸지만 결국 홍명보호는 메달을 따내며 해피엔딩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당시 ‘홍명보의 아이들’은 이후에도 한국 축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이어나가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밖에서는 말이 많아도 적어도 안에서 만큼은 팀을 하나로 묶는 재주가 있다. ‘내 새끼는 내가 확실히 챙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물론 이 리더십이 잘 먹힌 적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적도 있다. 2012 런던올림픽이 좋은 사례였다면 2014 러시아월드컵은 실패였다. 당시에도 선수 선발과 관련해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홍명보 감독은 특유의 보스 기질을 발휘하며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한국은 당시 좋지 못한 성적을 냈고 결국 선수 선발에 관한 논란도 커졌다. 결과가 어찌 됐건 홍명보 감독은 내부 결속력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밖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오건 우리 선수는 내가 보호한다”는 게 지금껏 홍명보 감독의 스타일이었고 이는 울산현대 부임 후에도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경남 통영의 전지훈련장에서 <스포츠니어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김인성의 사례를 들며 “본인이 내가 부임하기 전에 구단과 이야기를 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면서 “내가 부임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인성은 지난 시즌 공격 포인트도 많았고 활약도 좋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 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었지만 나는 ‘올 시즌에도 같이 가고 싶다’는 내 의사를 충분히 밝혔다. 그럼에도 김인성은 이적 의사를 밝혔고 이를 존중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인사를 나눈 뒤 그가 돌아오는데 딱 하루가 걸렸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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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역할은 우리 선수들 보호하는 것”

그러면서 홍명보 감독은 “하루 만에 협상 나오던 팀과 잘 되지 않았다고 들었을 때 한 편으로는 좋은 마음도 있었고 한 편으로는 본인을 위해서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면서 “본인은 아쉽지만 다시 팀에 돌아와서 한 번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하루 만에 해프닝이 끝났다.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하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렇게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김인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만일 김인성이 떠난다고 할 때 붙잡지 않고 그가 다시 이적 협상 결렬로 복귀하는 상황이었다면 김인성과 구단, 홍명보 감독의 관계는 서먹했을 것이다. 김인성이 떠나기 전 그에 대한 애정을 확실하게 보여준 홍명보 감독의 행동은 결론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홍명보 감독의 리더십은 종종 ‘제 식구 감싸기’라는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울산현대의 최근 상황을 놓고 본다면 그의 리더십은 긍정적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전임 감독과 마찰이 적지 않았던 선수들도 큰 불만 없이 훈련에 임하며 다시 한 번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내가 들어오자마자 이 선수, 저 선수가 나간다는 이야기가 나와 솔직히 난감했다”면서 “이 선수들을 지키는데 중점을 뒀고 면담을 하면서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선수들을 다 지켜냈다. 새로 시작하면서 전력누수가 생겨 어려움이 있을 뻔했는데 잔류를 결정한 선수들에게 고맙다. 이 선수들의 성장을 돕고 싶다”고 밝혔다.

홍명보 감독은 “이근호나 박주호 등은 내가 들어오기 전에 구단 자체적으로 정리하는 선수들이었다”면서 “내가 온 후에 신형민과 이동준 등이 영입됐다. 즉시 전력감 몇 명이 필요해 어린 선수들 몇 명이 다른 팀으로 가는 출혈이 있었지만 우리는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강한 선수들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철학을 전했다. 홍명보 감독은 “감독의 역할은 명확하다.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전략과 전술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큰 역할 중의 하나는 선수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을 외부로부터 보호하면서 이 선수들을 상대팀과 싸울 수 있는 강한 전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선수들’을 지키는데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영광스럽지만 손실도 큰 클럽월드컵 출전

울산현대가 중요한 시기에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 건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걱정도 적지 않다. 바로 클럽월드컵 때문이다. 울산은 현재 21명의 선수들이 클럽월드컵을 위해 경남 통영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골키퍼 세 명을 제외하면 필드플레이어는 18명에 불과하다. 홍철과 이동경, 이청용, 고명진은 부상으로 클럽월드컵행이 좌절된 채 현재 선수단에 합류하지 않고 재활 중이다. 주니오와 비욘존슨, 불투이스, 데이비슨 등 외국인 선수 네 명은 코로나19 여파로 귀국하지 못했다. 이들은 한국에 들어오면 2주 자가격리를 해야 해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이다. 주니오와 비욘존슨은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다.

선수단은 현재 체력 훈련을 최대한 배제한 채 패스 게임 등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분의 K리그 구단이 동계 전지훈련을 통해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울산현대는 클럽월드컵을 통해 사실상 일찌감치 시즌을 시작한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이후 2주간의 자가격리를 거친 선수들은 쉴 틈도 없이 다시 훈련 중이다. 부상 선수와 외국인 선수 등 총 8명의 핵심 자원이 빠진 가운데 18명의 단촐한 필드플레이어로 훈련을 하고 있다. 자체 연습경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다. 클럽월드컵 참가는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이 대회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

불투이스와 데이비슨은 클럽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 현지에서 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 두 명은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들 역시 카타르 현지 합류가 유력하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은 발 한 번 맞춰보지 못하고 울산현대 유니폼을 입은 채 클럽월드컵에 임해야 한다.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다. 더 걱정인 건 클럽월드컵에 다녀온 선수단은 전원 2주 자가격리를 다시 해야한다는 점이다. 올 시즌 K리그가 2월말에 개막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울산현대는 더더욱 난감해졌다. 클럽월드컵 이후 2주 자가격리를 마치면 시즌 개막일이 코앞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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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숙제가 공존하는 홍명보호의 운명은?

선수들은 2주간의 자가격리가 얼마나 컨디션에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안다. 집에서 간단한 근력 운동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몸 상태는 엉망이 된다. 클럽월드컵을 다녀오면 그에 따른 손실은 어마어마하다. 지난 시즌에도 전북현대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승점 경쟁을 한 울산현대는 올 시즌 개막 초반 고전할 경우 우승 경쟁이 힘겨워질 수도 있다. 또한 체력훈련을 전혀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즌에 임할 경우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높아지고 장기 레이스에서도 체력적으로 불리하다. 그럼에도 울산현대는 일단 클럽월드컵에 집중해야 한다. 놓칠 수 없는 의미를 가진 경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타르로 넘어가 딱 두 경기만 치르고 돌아와 2주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울산현대는 긍정적인 면과 숙제가 공존한다. 과연 홍명보 감독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전임 감독이 이뤄놓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클럽월드컵 출전이라는 영광이 지금은 홍명보 감독에겐 큰 숙제가 됐다. 보스 기질을 발휘해 어렵사리 선수들을 지켜낸 그가 적은 인원으로 클럽월드컵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시즌 개막 이후에는 자가격리 여파와 체력 문제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궁금해진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현대에 부임하자마자 쉽지 않은 여정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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