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테스트 탈락한 팀에 두둑한 이적료 받고 온 ‘대전 박진섭 스토리’


박진섭을 직접 만나 극적인 그의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거제=김현회 기자] 대전하나시티즌에는 훌륭한 선수가 많다. 기업구단으로 전환된 뒤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대전은 여기저기에서 좋은 선수들을 대거 수혈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선수가 있다. 바로 박진섭이다. K리그2 안산그리너스에서 2년간 뛰었던 박진섭이 날고 기는 팀 동료들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박진섭은 채프만과 구본상 등 쟁쟁한 미드필더들과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며 지난 시즌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이제 박진섭은 대전의 중원에서 가장 믿음직한 선수가 됐다. 도대체 그는 어디에서 어떻게 성장한 선수일까. 누군가에게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등장한 선수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박진섭에게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숨어 있다. 경남 거제에서 전지훈련 중인 박진섭을 직접 만나 그의 기적과도 같은 축구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진섭은 대전하나시티즌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할 정도로 큰 신뢰를 받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동계훈련은 어떤가.
훈련이 많이 힘들다. 새로 부임한 이민성 감독님께서 정해진 룰 안에서 규율을 지키는 걸 중시하시는 것 같다. 나는 일주일 정도 훈련을 하다가 아킬레스에 살짝 염증이 생겨서 5~6일 정도 쉬는 중이다. 원래 아프지 않았던 부위인데 운동 강도가 높아지다보니 살짝 다쳤다. 심한 부상은 아니어서 상태를 점검한 뒤 다시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지난 시즌 활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팀의 살림꾼이었다.
프로 무대에서는 첫 이적이라 부담감이 컸다. 내가 잘해야 기존에 내가 속했던 안산 팀의 이미지도 좋게 이어갈 수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지난 시즌 많은 경기에 나서는 목표였는데 그건 이뤘다.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서 선발로 경기에 나가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 하지만 팀이 성과를 내지 못해 아쉬운 시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의 대학교 출신이다. 철저한 무명 생활을 한 선수인데 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출신이다. 우리 학교 이름을 이야기하면 거의 대부분이 모른다. 알려지지 않은 학교일 뿐 아니라 축구를 하는 환경도 열악했다. 내가 전주공고를 나와서 서울문화예술대학교로 진학했는데 이 대학교가 고등학교보다 시설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별 수 있나. 처해진 상황이 열악했다. 하지만 선수층이 두텁지 않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갈 수 있었다.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장점을 찾은 걸 보니 진정한 ‘일류’인 것 같다.
우리가 U리그에서 서울 경기권역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보니 리그에서 연세대와 고려대, 한양대, 아주대 등 강한 팀들과 붙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메리트를 찾으라면 이게 전부였다. 진짜 힘들게 운동했다.

유명하지 않은 대학에 진학했다는 건 고등학교 시절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뜻인가.
그래도 나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전주에서는 이름 좀 있었던 선수였다. 서울문화예술대학교가 내가 원한 대학은 아니었다. 나도 좋은 학교에 당연히 가고 싶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감독님께서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만 말씀해주셨다. 그때는 에이전트도 없을 때였는데 그냥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꼭 실력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고등학교에 좋은 선수들이 있었는데 진학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박진섭은 힘든 시기를 거쳐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프로축구연맹

열악한 환경의 대학교에 진학한 뒤 축구를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그 학교를 선택하니까 주변에서는 ‘무슨 저런 학교를 가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면 축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그 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무명 대학교에 가면서 주위 시선에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꼭 여기에서 살아남아서 보여주자’는 마음이었다. 이런 학교를 나와도 프로 무대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이를 갈았다.

자신과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우리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었다. 캠퍼스와 떨어진 곳에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는 게 보통이었고 축구부 숙소는 허름한 빌라를 빌려 썼다. 운동장이 없다보니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훈련장을 돌아다니면서 운동을 했다. 밥은 근처 식당에서 사 먹었고 웨이트트레이닝을 할 곳이 없어서 사비를 털어 동네 헬스장을 다녔다.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나. 여러 선수가 우르르 헬스장으로 몰려가 우리 상황을 설명하고 단체로 등록할 테니 할인을 좀 해달라고 해서 헬스장에 다녔다.

그런 환경에서 프로 선수로 성장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은 그렇다고 쳐도 공을 가지고 개인 훈련을 할 공간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는 풋살장에 가서 따로 공을 찼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운동에 집중할 수 없어서 새벽에 혼자 동네 풋살장에서 슈팅 연습을 했다. 오전에 단체 훈련을 하면 오후에는 따로 헬스장에 가고 저녁에는 형들과 근처 공원에 가 줄넘기를 했다. 같이 운동을 하다보면 서로 파이팅을 외치면서 기합도 넣고 하는데 거기에서는 그런 것도 못했다. 서로 기합을 넣으면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조용히 ‘쌩쌩이’만 죽어라 했다. 그리고 튜브를 연결해 놓고 그거 땡기고 그랬다. 빌라에는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와서 겨울에도 찬물로 씻었다. 빌라가 좁아 잠도 다 붙어서 잤다.

무슨 1970년대 축구인 선배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런가. 이게 2014년, 2015년 얘기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보니 동료들하고 끈끈한 정이 생겼다. 지금은 우리 학교 출신 중에 프로 선수가 나 말고는 없다. 몇몇 선배가 프로에 진출했다가 1년 정도 후에 은퇴했고 나만 남아있다. 하지만 아직도 동료들과 연락하면서 잘 지낸다. 그 시기를 같이 겪으면서 정이 들었다.

대전코레일 시절의 박진섭. ⓒ내셔널리그

그런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하니 성과가 나오던가.
나보고 어느 학교 출신이냐고 물어서 서울문화예술대학교를 나왔다고 하면 다들 생소하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내밀 수 있는 이력이 있다. 내가 그 쟁쟁한 학교가 속한 U리그 서울 경기권역에서 득점왕을 두 번이나 했다는 점이다. 1학년 때와 3학년 때였다. 팀 성적이 바닥이었는데 주변에서 형들도 많이 도와줬고 운도 따랐다. 내가 나온 학교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 그래도 U리그 서울 경기권역 득점왕을 두 번이나 한 선수”라고 소개한다.

최약체 팀에서 득점왕을 두 번이나 차지했지만 당신은 곧바로 프로로 오지 못했다.
2016년 말에 대전시티즌에서 나를 불렀다. R리그도 한두 번 소집됐었고 나름대로 플레이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전시티즌 최문식 감독님께서 나를 좋게 봐주셨다. 2016시즌이 끝난 뒤 대전 클럽하우스에서 합숙을 시작했다. 2주 동안 대전 선수들과 동고동락했고 프로 계약도 눈앞에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감독님이 바뀌었다. 최문식 감독님이 나가시고 이영익 감독님이 오셨는데 이영익 감독님은 나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내가 이력도 별 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감독님이 바뀌고 다시 공개 테스트를 받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전에 R리그도 뛰고 2주 동안 합숙하며 평가받았던 건 다 백지화 됐고 테스트를 받는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다시 테스트를 시작한다고 했다. 뭐 별 수 있나.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테스트에 임했다. 하지만 결국 선택받지 못했고 대전 클럽하우스를 떠나야 했다. 그때 합숙을 하면서 대전시티즌 엠블럼이 달린 트레이닝복도 받고 진짜 프로 선수가 됐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는 다시 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 주변에는 “박진섭이 대전하고 계약 맺고 프로선수가 됐다”는 소문이 다 났는데 얼굴을 들 용기도 없었다. 정말 안 풀렸다. 그때가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던 때였는데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프로 계약을 눈앞에 뒀다가 쓸쓸히 짐을 쌌을 때의 심정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 그리고는 K3리그 화성FC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성 숙소에서 2박 3일을 있으면서 같이 운동도 했고 계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런데 그때 내셔널리그 대전코레일에서 혹시 테스트를 볼 수 있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응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나보다 늦게 테스트를 받으러 온 선수들도 하루 이틀이면 테스트를 마치는 동안 나는 테스트를 2주 동안이나 진행했다. 대전코레일 형들도 “진섭아. 감독님이 아직도 별 말 안 하셔?”라고 매일 물을 정도로 의아한 일이었다. 1차 동계훈련이 다 끝나니까 그때 “이제 가보라”고 하시더라. 그때까지도 “나중에 따로 연락하겠다”면서 입단에 확답을 주지 않으셨다. 팀을 나오는데 정말 미치겠더라.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이 들었나.
집에서 연락을 기다리는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에 대전코레일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갈 곳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가 설날 쯤이었다. 남들은 명절이라고 즐거워하는 시기에 나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대전코레일 김승희 감독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들하고 경쟁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서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고 했고 결국 대전코레일과 계약을 했다. 1월 말에 연락이 와서 2월 1일부터 목포에서 하는 동계훈련에 참가했다. 그렇게 내셔널리그 선수가 됐다.

박진섭은 수비 가담은 물론 위협적인 공격력으로 상대를 괴롭힌다. ⓒ프로축구연맹

성인 무대에 진출해 보니 어땠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다. 대전코레일에 들어가면서 경기에 많이 나서는 게 목표가 아니라 형들에게 많은 걸 배우자는 자세로 시작했다. 내셔널리그가 생각보다 수준이 높았다. 처음 겪어보는 실력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축구를 잘하는 형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여기에서 실력으로 비빌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냥 머리 박고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을 잘 차는 선수들이 너무 많아 그런 어줍지 않은 기술로는 절대 여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자고 마음 먹었다.

지금은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을 지배하는 선수인데 당시에는 스타일이 달랐나.
그렇다. 내가 대학 때는 그래도 기술이 좋은 편이었다. 나름대로 팀에서는 에이스였다. 중간에서 공을 뿌려주고 전방에서 해결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수비할 때는 적당히 하고 공격적으로만 뭘 보여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대전코레일에서는 그렇게 하면 이도저도 아닌 선수가 될 게 분명했다. 내가 피지컬은 자신이 있어서 터프하게 많이 뛰는 걸로 승부를 보자고 생각했다.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니 김승희 감독님이 예쁘게 봐주셨고 그 시즌에 경고누적으로 빠진 한 경기를 빼고는 모든 경기에 나갔다.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축구를 그만둘 뻔한 선수가 성인 팀의 주전으로 도약한 일이 놀랍다.
더 놀라운 건 그 해에 내가 내셔널리그에서 득점 2위에 올랐다는 거다. 수비형 미드필더였는데 골이 잘 들어갔다. 중거리 슈팅도 있었고 투볼란치에서 박스 투 박스 스타일을 맡아 공격할 때 과감하게 올라가라는 주문을 받아 공격에도 많이 가담했더니 한 시즌 동안 11골을 넣게 됐다.

대전코레일을 거쳐 이듬해 안산그리너스에 입단했다. 비록 K리그2 무대지만 우여곡절 끝에 프로에 입성하게 됐다.
그렇다. 대전코레일에서 활약을 하다보니 프로팀에서 내 에이전트에게 종종 연락이 온 모양이다.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떤 팀인지는 에이전트가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들은 건 안산 뿐이었다. 대전코레일에서는 재계약을 원했는데 김승희 감독님께 “꼭 프로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감독님께서도 “더 위에서 도전하는 거면 해보라”고 해주셨다.

프로 입성 자체만으로도 인간 승리다.
솔직히 안산이 창단 2년차 팀이라 그렇게 환경이 좋지는 않았다. 안산이 프로 팀이기는 했지만 연봉은 대전코레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대전코레일이 공기업 구단이라 내셔널리그에서도 대우는 좋은 편이었다. 나는 신인 선수 자격으로 프로에 진출했기 때문에 더더욱 연봉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내셔널리그 경주한수원 같은 팀이 연봉은 더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산이 프로팀이라는 이유 하나만 보고 가기로 했다. 축구를 하면 당연히 프로선수가 되는 게 꿈이지 않은가.

프로가 되니 어떻던가.
정말 좋았다. 내가 꿈꾸던 프로선수의 꿈을 이뤄서 하루 하루가 기뻤다. 연봉은 상관이 없었다. 내셔널리그에서 뛸 때는 내 소개를 할 때 내셔널리그가 어떤 리그인지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데 프로선수가 되니 그런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어디에 가서 누구한테 인사할 때도 “저 프로축구 선수입니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게 기뻤다.

그는 안산의 가장 빛났던 순간을 함께 한 선수다. ⓒ프로축구연맹

당신은 안산에 입성하자마자 완벽한 주전으로 도약했다.
2018년 첫 시즌에 36경기 중 26경기에 나섰다. 신인 선수가 그렇게 많은 경기에 뛸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흥실 감독님께서 나를 많이 믿고 기용해주셨다. 내셔널리그에서 프로로 올라가면서 긴장을 많이 했었는데 1년차 때는 적응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가 2년차 때는 적응이 끝나니 좀 더 플레이하는 게 수월해지더라. 여유도 생겼고 체력적인 분배와 시야도 좋아졌다.

그렇게 당신은 안산에서 2년차였던 2019년 팀의 최고 성적인 5위에 일조했다. 활약도 엄청났다.
그 시즌에 전경기인 36경기에 다 출장했다. 나는 잘하는 선수가 아니지만 꾸준한 선수라고는 자부할 수 있다. 기복이 별로 없는 편이다. 경기장에서 내가 늘 자신에게 주문하는 건 ‘오늘 가진 체력을 모두 다 쏟아붓자’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임하다보니 여러 감독님을 만나는 동안 그 분들께서 좋은 평가를 해주신 것 같다.

2년간 활약한 뒤 대전하나시티즌으로 이적했다. 몇 년 사이 당신의 주가는 점점 치솟고 있다. 대단한 일이다.
2019년 안산에서 시즌 전에 형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프로에 오래 있었던 형들이라 그 형들의 말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형들은 “진섭아. 형은 네가 더 잘 됐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네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도 중요해. 팀이 잘하면 너한테 분명히 더 좋은 제안이 올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해줬다. 그해 안산이 창단 이후 최고 성적인 5위를 차지했고 내 경기력도 좋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인데 전경기에 나가 5골을 넣었다.

안산이 5위를 한 건 대단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대전으로의 이적 과정은 어땠나.
K리그1 3~4개 팀에서 제안이 왔고 K리그2에서도 제안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당연히 K리그1 상위권 팀으로 가고 싶었고 일이 실제로도 그렇게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전이 하나금융그룹 인수 후 선수 영입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에이전트한테 연락이 왔는데 “대전이 너한테 엄청난 이적료를 지불하겠다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일단 K리그1 팀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기도 했지만 내 이적료가 얼만지 내가 듣고도 놀랄 정도였다. 솔직히 말하면 이적료에 거품이 많이 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이 정도로 내가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전시티즌에서 3년 전 테스트만 하다가 돌려보낸 선수가 엄청난 이적료 기록을 남기며 화려하게 입성했다는 건 동화 같은 이야기다.
대전으로의 이적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그래도 날 키워준 안산에 이 정도 이적료를 안겨주고 가는 거면 좋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이적을 확정했다. 주변에서도 “좋은 기회니까 놓치지 말라”고 해주셨다. 대전이 당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비전이 보였다. 대전 클럽하우스에 다시 들어오던 날을 잊지 못한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날 받아주지 않던 팀이 이제는 거액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날 데리고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방에서 씻으면서 ‘3년 전에 난 여기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지’라는 생각을 했던 게 떠올랐다. 대우가 달라진 걸 보고 너무 신기했다.

대전에서도 그의 성공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정말 신나는 이야기다. 당신은 대전에 온 것만으로도 멋진 스토리를 썼지만 여기에서의 활약은 더더욱 놀라웠다.
사실 거액의 이적료가 부담이 됐는데 주변에서는 “너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선수다”라는 응원을 많이 해줬다. 이적료에 맞는 활약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안산에서 이적하는 다른 선수들의 이미지도 좋아질 것 아닌가. 대전은 훌륭한 선수들이 많아서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했고 경기장에 들어가더라도 좋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지난 시즌 당신은 그래도 위태위태했던 대전의 중심을 잘 잡아줬다. 활약이 인상적이었다.
팀 자체가 부담이 컸다. 선수들도 그랬고 코칭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기업구단이 된 후 주목도 많이 받았고 견제도 심해졌다. 초반에는 그런 부담감이 좋지 않은 경기력으로 이어졌고 그게 스트레스가 됐다. 점점 그게 겹치다보니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괴로워했다. 다들 스트레스가 많았던 아쉬운 시즌이었다. 우리끼리는 늘 “잘 뭉쳐보자”고 했는데 어디에서부터 삐끗했는지는 모르겠다. 안에서는 많이 노력했지만 밖으로 비춰지는 건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걸 인정한다.

늘 약체였던 팀에서 리그의 상위권으로 평가받는 팀으로는 첫 이적 아닌가. 경기에 나서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같다.
물론이다. 사실 안산에서는 승리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는 않았다. 경기에 나서는 선수는 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안산은 늘 상대보다 약했기 때문에 “우리끼리 편하게 해보자”는 마인드가 있었다. 상대가 늘 우리보다 강해서 부담감을 느끼는 건 상대였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편한 상황에서 경기를 하다보니 기대 이상의 활약이 나왔다. 하지만 대전은 달랐다. 상대보다 강했고 이겨야 하는 팀이었다. 지난 시즌을 통해 축구가 육체적인 것 이상으로 심리적인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는 걸 많이 느꼈다.

지난 시즌 활약 이후 더 큰 무대로 나갈 것이라는 이적설도 많았다. 지금도 그런 말이 종종 나오고 있다.
나도 직접적으로 듣지 못한 이야기를 주위 사람들에게 듣고 있다. “너 어느 팀 간다며?”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신기하긴 하다. 내가 그만큼 작년에 잘했으니까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속한 팀은 대전하나시티즌이다. 올해 어떻게 시즌에 임해야 할지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집중하려고 한다. 먼 미래보다는 다가올 현실을 먼저 준비할 뿐이다.

박진섭은 스포츠니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포츠니어스

여담이지만 FC서울의 박진섭 감독과 동명이인이다. 혹시 그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나.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없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감독님이 먼저 뜨는데 내가 유명해져서 검색했을 때 내가 먼저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언젠가는 인연이 되면 같은 팀에서 뛰는 날이 와도 좋을 것 같다. 안산에서 뛸 때 박진섭 감독님이 이끄는 광주를 상대로 경기를 하고 선수단이 단체로 가서 인사한 적은 있다. 내 등에 박진섭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어서 보시긴 했을 텐데 아마 내 존재를 아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당연히 알고 있을 거다.
경기 도중 우리 팀 동료들이 “진섭아. 진섭아” 자꾸 외쳐서 감독님이 쳐다봤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으로 힘든 시기를 겪다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의 이런 극적인 스토리는 힘이 될 것 같다.
나는 아직은 유명한 선수는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고는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안주하면 안 된다. 나같은 스토리의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내가 더 열심히 해야한다.

응원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선수들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내 이름을 들으면 “걔는 여기 있을 만한 선수야”, “걔는 인정해줘야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리고 늘 경기장에서 희생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팬들이 나에게 ‘언성 히어로’라는 말을 해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나는 경기장에서 안 튀어도 된다. 늘 묵묵히 최선을 다해 희생하는 선수로 기억에 남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박진섭은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해도 이상할 게 없는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K리그2에서 가장 많이 투자하는 팀의 주축 선수로 우뚝 서 있다. 테스트 끝에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던 팀에 좋은 조건으로 입단한 그의 스토리는 기적과도 같다. 꿈을 포기하려는 많이 이들에게 박진섭의 이야기가 응원의 메시지가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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