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전지훈련장에서 만난 김인성은 칼을 갈고 있었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통영=김현회 기자] 김인성은 최근 K리그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몰고 다녔다. K리그 최정상 윙어인 그는 거액의 제안을 받고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으로의 이적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는 울산현대 선수단과 마지막 인사까지 나누고 이적을 준비했다. K리그2에서 막대한 투자를 하며 승격을 노리는 대전이 김인성을 영입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2부리그에서 새롭게 도전을 하겠다는 김인성의 선택 또한 흥미로웠다.

하지만 김인성은 결국 대전으로 가지 못했다. 그는 현재 경남 통영에서 진행 중인 울산현대의 동계 전지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대전 이적은 잠깐 동안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김인성은 올 시즌도 울산현대의 측면을 책임질 예정이다. 이슈의 중심이 됐던 그는 이제 해프닝을 털어내고 훈련에만 몰두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가 경남 통영에서 최근 가장 근황이 궁금한 김인성을 단독으로 직접 만났다. 김인성은 만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마음고생은 딱 하루저녁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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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마음고생은 딱 하루였다. 하루저녁 그런 뒤에 괜찮아졌다.

나같으면 절로 욕이 나왔을 것 같다.

욕까진 아니고 좀 당황스럽긴 했다. 울산 선수단과 동계훈련 소집 전에 미리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통영 전지훈련장에서 작별 인사를 하면 괜히 울산 팀 분위기를 방해할 것 같았다. 가뜩이나 선수도 별로 없는데 한 명이 훈련을 하다가 빠지면 더 휑한 느낌이 들까봐 그랬다. 그래서 울산에 남아 이적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달라.

대전하나시티즌 단장님, 감독님과 다 통화를 했다. 허정무 이사장님하고도 통화를 마쳤다. 다 준비가 됐고 이제 하나금융그룹의 최종 결제만 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적이 안 된다는 거다. 지난 시즌에 대전이 거액을 들여 골키퍼를 영입했는데 부상으로 활약이 없었고 결국 돈만 많이 쓴 이미지가 생겨 내 영입에 부담을 느낀다는 거였다. 그래서 에이전트의 이런 전화를 받고 “아 그래요? 어떻게 하죠? 일단 울산 훈련에 들어갈게요”라고 말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상황을 들은 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울산의 전지훈련장인 경남 통영으로 들어왔다.

처음 대전의 제안을 받고 이를 수락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아직 2부리그로 내려갈 실력은 아니다.

좋은 제안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2부리그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K리그1에서 리그와 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을 다 우승해 봤다. 지난 시즌 수원FC와 경남FC의 승격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를 보면서 “정말 멋있다. 나도 저런 승격의 기쁨도 한 번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전이 승격을 위해 많이 투자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예전부터 대전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다가 제안이 와 대전으로 가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다.

새로 부임한 홍명보 감독과는 대전행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었나.

감독님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는 구단하고만 대화를 나눴었다. 그런데 홍명보 감독님께서 내 잔류를 원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미팅을 하는데 “네가 남아줬으면 한다. 같이 해보자”고 말씀해 주셨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미 대전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이미 이야기도 어느 정도 마무리된 상황이었는데 감독님이 나를 원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다. 그래도 이미 마음을 먹었으니 대전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은 결국 그렇게 울산 구단과 작별한 뒤 하루 만에 팀에 복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적이 안 된 게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다. 오히려 울산에 남게 된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 중이다. 선수들이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고 나는 울산에 남아 있다가 다른 선수들보다 하루 늦게 통영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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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를 해놓고 하루 만에 돌아온다는 건 민망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루 만에 돌아와서 그런지 크게 어색한 건 없었다. 오전에 울산에서 통영으로 출발해 오후에 아무렇지 않게 팀 훈련을 시작했다. 아마 (박)주호 형 같은 형들이 선수단에 있었으면 많이 놀렸을 텐데 돌아와 보니까 이런 상황을 놀릴 형들도 없더라. 얼굴을 잘 모르는 후배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훈련을 시작했다.

이적이 황당하게 틀어지면서 대전에 불쾌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오히려 에이전트 형이 화를 많이 내서 옆에서 내가 위로했다. “이적시장에서 이런 일은 허다하잖아요. 오히려 잘 됐어요”라고 했다. 대전도 분명히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이미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이전트 형은 “아무리 그래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하더라. 앞으로 다른 선수들은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은 어떤 심정인가.

사실 나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고 자가격리를 하면서 동기부여가 잘 안 됐다. 팀 분위기도 어수선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나니까 ‘그래? 그러면 경기장에서 더 제대로 보여줄게’라는 마음이 생기더라. 지금은 동기부여가 완벽하게 됐다.

주변에서 동기부여를 잘 시켜주는 것 같다. 과거 “포항의 1588을 모른다”고 했다가 포항 외국인 선수의 도발이 있었고 당신은 포항전 득점 후 세리머니로 맞받아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대전이 당신의 동기부여를 도와준 셈인가.

뭐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사실 포항의 ‘1588’은 정말 몰랐다. 외국인 선수 이름은 아는데 그 선수들을 합쳐서 ‘1588’이라고 하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나.

대전과 같은 리그는 아니지만 FA컵에서는 대전과 만날 수 있다. 대전과 격돌하는 모습이 궁금하다.

꼭 만나보고 싶다. 대전을 만나게 되면 진짜 어느 때보다도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혹시 대전과 맞붙는 날 골을 넣는다면 특별한 세리머니를 할 것인가.

어떤 세리머니를 해야하는지 연구를 좀 해보겠다. 진짜 재미있게 붙어볼 자신이 있다. 또한 대전이 투자를 많이 하니까 성적을 내서 1부리그로 왔으면 한다. 그래서 우리와 자주 붙으면 내가 보여줄 게 더 많을 것이다. 대전이 K리그1에 있는데 이렇게 이적이 틀어지고 맞대결할 일이 많았으면 더 재미있는 스토리가 많이 생겼을 텐데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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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 영입을 없던 일로 하면서 당신에게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워딩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인가.

협상을 하면서 계약기간을 줄이거나 그런 부분은 이견이 없었다. 옵션에 관한 최종적인 조율만 마무리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결국 최종적으로 대전의 윗선이 이 건을 취소했고 대전에서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 어쩔 수 없다”고 했고 그러면서 대전 측에서는 “다음에 인연이 되면 그때는 꼭 같이 하자”는 말을 하긴 했다.

복잡한 상황이 결국 이렇게 마무리됐다. 요새 컨디션은 어떤가.

확실히 카타르를 다녀온 뒤 자가격리 이후 컨디션을 회복하는 게 쉽지 않다. 자가격리의 여파가 크다. 거의 배달음식만 먹었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동계훈련에 합류해 보니 힘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이렇게 훈련하면 금방 좋아질 것이다. 생각보다 안 힘든 훈련을 힘들 게 소화했다. 홍명보 감독님 훈련 시간이 좀 긴 편이다. 동계훈련은 원래 이렇게 힘들어야 한다.

대전으로 이적했으면 클럽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잔류하게 되면서 클럽월드컵에 다시 출전하게 됐다.

이적을 결심하면서 클럽월드컵에 나가지 못하는 게 참 아쉬웠다. 소중한 기회를 따내고 그 대회를 나가지 못한다는 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팀에 남게 됐으니 오히려 그런 부분은 좋다. 아직 팀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성적을 내기보다는 좋은 경험을 하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다만 클럽월드컵에 갔다 와서가 걱정이다. 이후에 또 자가격리를 해야하는데 그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단 시차적응부터가 최소 4~5일은 걸린다. 나는 이번에 시차적응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시즌을 앞두고 운동을 하지 못하고 다시 자가격리를 해야한다는 건 벌써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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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월드컵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사실 클럽월드컵에 어느 팀이 나오는지는 바이에른뮌헨밖에 모른다. 운이 좋다면 바이에른뮌헨과 한 번 격돌해 보고 싶다. 물론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바이에른뮌헨을 상대로 깨지더라도 좋은 경기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이번 이적 해프닝 과정에서 당신의 편에 서서 분노하는 이들도 많았고 응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울산으로 돌아와 환영하는 팬들도 많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일단 홍명보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올 시즌은 감독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경기장에서 더 많은 걸 보여줘야 한다. 또한 내가 sns를 잘 하는 편은 아닌데 정말 많은 팬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이 모든 분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내가 경기장에서 더 잘하는 것 뿐이다. 최선을 다해 올 시즌에 임하겠다. 감사한 마음이다.

잠시 흔들렸던 김인성은 다시 마음을 부여잡고 땀 흘리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번 이적 해프닝 이후 김인성은 더 단단해졌고 더 독기를 품었다. 그가 다시 울산에 합류하면서 어수선했던 팀 분위기도 하나가 돼 가고 있고 새로 부임한 홍명보 감독의 김인성에 대한 애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인성은 다시 울산으로 돌아왔고 칼을 갈고 있다. 과연 그는 올 시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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