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용 인터뷰①] “석사 딴 이유? 지도자가 무식하면 선수가 힘드니까”


ⓒ 서울이랜드

[스포츠니어스|잠실=전영민 기자] 지난해 겨울 서울이랜드가 정정용 U-20 대표팀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서울이랜드가 이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이들은 별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이랜드는 지난 두 시즌 연속 리그 최하위에 위치하며 K리그2 최초 2년 연속 꼴찌라는 불명예를 썼다. 정정용 감독이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고 대단한 성과들을 냈지만 ‘감독 하나 바뀐다고 달라지겠어?’라는 곱지 않은 시선들이 이어졌던 이유다.

하지만 정정용 감독은 1년 만에 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실점을 내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주저앉았던 ‘약체’ 서울이랜드는 더 이상 없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는 K리그2 10개팀 중 리그 5위에 위치하며 지난 시즌과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때 3위를 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듯 했으나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전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2020시즌을 마감했다. <스포츠니어스>는 16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새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정정용 감독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눠봤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전남과 마지막 경기가 끝난지 벌써 한 달이 됐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허허. 벌써 한 달이 지났나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합니다. 시즌 때보다 지금보다 더 바쁜 것 같아요. 쉬는 날이 없네요. 2021년 선수 구성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선수 구성이 잘 되어야 할 텐데… 코칭스태프와 이 부분에 관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행사도 있고 개인적인 일들도 있어서 정신 없이 보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팀 훈련을 시작합니다.

휴식은 좀 취하셨나요?
휴식 시간이 없네요. 하루도 쉰 날이 없습니다. 제가 본가가 대구인데 토요일에 대구에 내려갔다가 일요일에 올라오거나 제가 주말에 일정이 잡히면 아이들이 올라오고 그랬습니다. 올해 ACL이 늦게 시작했습니다. (영입 희망 선수) 접촉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우리가 원한다고 선수를 데려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돈을 두 배로 주겠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선수가 좋겠다” 정해 놓고 기다리는 단계입니다.

1년 전 취임식에서 아드님이 “아빠 괜찮겠어?”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시즌 끝나고 나선 아드님이 무슨 말씀을 해주셨나요?
아들이 직접 서점에 가서 스카우팅 리포트를 삽니다. 2019년, 2020년 버전을 샀더라고요. 축구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빠가 하는 팀이니 궁금하기도 하겠죠. 스카우팅 리포트에 선수의 장점과 단점이 간략하게 적혀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선수는 정신력이 부족하다” 이런 것들이죠. 그걸 보고 아들이 저에게 “아빠 얘 정신력 부족하다는데?”라고 말을 합니다. 원래는 아들이 야구를 좋아합니다. 삼성라이온즈를 좋아하는데 올해 삼성이 성적을 못 냈다고 투덜거리더라고요.

아드님도 축구를 하고 계신가요?
아뇨. 축구에 소질이 없습니다(웃음). 다만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경기에서 지면 아들이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간섭하진 않죠. 다만 수쿠타-파수의 플레이는 어땠고 “아르시치는 왜 안 뛰어?” 이 정도의 이야기까지는 합니다.

코로나19로 시즌이 단축되어 치러졌습니다. 6개월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셨나요? 아니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셨나요?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전체적으로 정말 ‘훅’ 지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와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어떤 경기이신가요?
역시 첫 승(리그 5라운드 충남아산전 1-0승)이겠죠. 경기력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1-0으로 이겼습니다. 아무래도 첫 승이 미뤄지면 부담스러운 면이 있잖아요? 가장 아쉬운 건 역시 아시잖아요. 마지막 경기(전남전 1-1 무승부)가 아쉬웠죠.

반면 의도한대로 잘 풀렸던 경기에는 어떤 경기가 있으실까요? 
선수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기를 하면서 교체되어 들어간 선수들이 승부를 뒤집었던 경기라고 하면 0-2로 지고 있다가 3-2로 뒤집은 부천 원정 경기를 꼽을 수 있겠죠. 그 경기에서 지도자로서의 희열을 느꼈습니다.

시즌 중반 “세트피스를 발전시키겠다”라고 다짐을 하셨고 그 다짐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트피스에서 득점이 나왔습니다.
계속 훈련을 하며 세트피스 연습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U-20 월드컵을 하고 난 다음 데이터를 봤을 때 10골이 터진다고 가정하면 최소 30%는 세트피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세트피스가 한 경기의 결과를 바꿉니다. 우리가 수원FC와 경기를 해서 세트피스 한 방에 진 적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세트피스로 이득을 취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트피스 부분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즌 내내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선수들에게 강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철학을 말씀하셨습니다.
선수들에게 강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부상자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딜레마라고 생각합니다. 훈련량을 많이 가져가면서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면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어요. 솔직히 가능성이 높습니다. 허나 그 후에 선수들은 죽어나죠. ‘혹사’ ‘오버 트레이닝’ ‘데드 포인트’로 가는 겁니다. 더 강하게, 정신적인 면을 강조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한시적인 효과는 있을 수 있으나 결국 선수 개인의 발전에 있어선 마이너스가 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결국 본인 스스로 깨닫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게 최고로 중요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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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감독님이 선수 생활을 하던 옛날에는 한국 축구 전체에 강압적인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언제부터 선수들이 스스로 느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시게 된 건가요?
우리나라는 주입식 교육이 강합니다. 하지만 주입식으로 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승우도 그래요. 승우가 어렸을 때 승우를 지도했던 지도자들이 제게 “형님. 승우는 강하게 해야 따라옵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면 앞에선 따라오겠지만 뒤에선 안합니다. 선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사야 합니다. 이런 게 중요합니다. 선수의 성장과 교육적인 측면에서 저는 주입식을 지양합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건 스스로 선수가 느끼고 발전하는 거에요. 그게 사실 우리 문화에서는 힘들긴 합니다. 그래서 외국 지도자들이 한국에 오면 실패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과도기는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누군가는 넘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감히 그렇게 접근을 해보고 있습니다. 저도 손해는 보죠. 예를 들어 우리가 시즌 초반에 제주, 경남 등 강팀들과 경기를 하면서 3무를 했습니다. 잘했죠. 그러다가 홈에서 안양을 만났습니다. 만약 안양전에서 1승을 추가하면 1승 3무가 되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선발 선수들을 다 바꿨고 안양에 졌습니다(0-2 패배). 1승 3무와 3무 1패는 하늘과 땅 차이에요. 오죽했으면 경기 후에 안양 감독님이 “안양을 우습게 본 거 아니냐”라고 하셨겠습니까. 하지만 우습게 본 건 아니고 주중에 경기가 있어서 선수들을 믿고 로테이션을 시킨 겁니다. 제 콘셉트가 그렇고 선수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 했던 거죠.

올 한 해 선수들이 스스로 느끼고 한 단계 도약하는 점들이 보이셨나요?
저는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개인 차는 있겠죠. 올 시즌 팀에 임대 선수와 젊은 선수들이 많았는데 그 선수들이 원 소속팀으로 돌아가 평가를 받았을 때 “서울이랜드에서 경기에 많이 나왔고 성장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성장이 된 거잖아요? 팀에 2~3년 동안 있었던 선수들과 미팅을 해봐도 “이제야 관리를 하는 측면에 있어서 프로 팀 같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선수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발전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즌 시작 전엔 임대 선수와 젊은 선수들이 많아 우려 섞인 시선들이 존재하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무식한 게 용맹한 거라고 프로 첫 감독인데 뭘 못하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꼴찌가 더 이상 어디로 갑니까? ‘지금보다 더 지지하고 관리를 해주면 나아질 거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제주와 첫 경기를 앞두고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최면을 걸었어요. ‘월드컵에도 갔고 아시아 대회에도 나갔었는데 이거 못 이겨내겠냐’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주 원정에서 이길 뻔 하다가 비겼는데(1-1 무승부) 그 경기를 보며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시즌 서울이랜드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감독님에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데 구단 역시 올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기 감독관들이나 관계자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작년에도 오고 재작년에도 왔는데 서울이랜드가 많이 좋아졌더라. 올해는 다르다. 능동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욕들이 있다는 거 잖아요? 그런 게 중요한 겁니다. 시너지 효과가 났습니다. 되는 팀은 됩니다. 파주에 있으면서 많은 팀들을 봤습니다. 과거에 홍명보 전무님이 이끌던 올림픽 대표팀을 보면서 ‘아 이 팀은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아 저 팀은 쉽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의 팀들도 많이 봤습니다.

되는 팀은 됩니다. 감독, 코치, 지원스태프, 선수들의 분위기, 하고자 하는 의욕, 노력과 더불어 구단과 그룹에서도 “우리가 부족하긴 하지만 감독이 왔으니 한 번 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인프라 측면이나 운동장 사용 면에서도 구단에서 “도와주자”라고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죠. 사실 그런 게 안되면 안되거든요. 이제 더 잘해야죠. 그래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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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감독님은 서울이랜드의 전신인 이랜드 푸마의 창단 멤버이셨습니다.
창단 멤버인 동시에 해체 멤버입니다. 그때 선수 구성이 괜찮았어요. (박)건하도 있었고 이랜드에 있던 선수들이 다 프로에 올라가서 뛰었을 정도니깐요. 이랜드 그룹 임원들과 대화를 했는데 “이랜드 푸마 때 감독님이 계셨는지 몰랐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주장이었잖아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당시에 이랜드 푸마에서 제가 주무도 했습니다. 1년 동안 플레잉 코치를 하면서 동시에 주무를 한 거죠.

그때 건하가 많은 연봉을 받고 수원삼성으로 갔는데 저도 프로에서 제의가 있었습니다. 럭키금성이었죠. 하지만 이랜드가 준세미프로 방식으로 운영되며 프로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주장인 제가 떠나면 안될 거 같아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원래는 구단에서 “1년만 더 플레잉코치를 하고 유학을 다녀와라”라고 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팀이 해체됐어요. 하여튼 그때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플레잉코치로 뛸 당시에는 경기에 많이 출전하셨었나요?
못 나갔죠. 사실 막판에는 구단에서 저를 골키퍼로 등록했어요. 그때가 1996년인가 1997년일 겁니다. 골키퍼 한 명이 군대에 가서 팀에 골키퍼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누군가는 골키퍼를 봐야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후반기에 골키퍼로 등록됐죠. 슈팅게임을 했습니다. 다이빙을 뛰면 막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안되더라고요.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때 감독님이 못 막는다고 얼마나 뭐라 하던지…(웃음)

그러면 리그 경기 때 골키퍼로 벤치에 대기하신 적도 있으셨나요?
당연히 있었죠. 다만 벤치에만 있었고 골키퍼로 경기에 나간 적은 없습니다. 당시에 생각나는 게 1998년 2월 초에 이랜드 푸마가 해체되고 우리 팀 선수들 중에 프로에 갈 애들은 프로로 갔어요. 그때 마침 미포조선이 생겼는데 우리 선수 두세 명인가가 미포조선으로 갔습니다. 미포조선 조동현 감독님이 그 선수들에게 “그때 그 골키퍼는 어디갔냐?”라고 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웃겼습니다. 풀백 빼고는 모든 포지션을 다 해봤습니다. 골키퍼도 6개월 동안 한 거잖아요?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지도자를 하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선수 말년에 대학원에서 학업을 병행하셨다고도 들었습니다.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텐데요?
쉽지 않았죠. 1주일에 두 번 오후 여섯 시부터 대학원 수업을 들었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바로 대학원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감독님도 대단하신 게 “공부를 더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그렇게 해라”라고 허락해 주셨어요. 대학원에서 생리학을 공부했습니다. 지도자가 선수를 지도할 때 모르면 좀 그렇더라고요. 지도자가 무식하면 선수들이 힘들어요. 제가 선수를 할 때 물을 마셔도 왜 물을 마시는지 몰랐습니다. 예를 들어 한창 더운 날에 훈련을 하면 훈련 전에 주전자에 물을 채워 골대 뒤에 가져다 놨습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들이 “목 마르다고 그걸 못 이기고 물 마시면 정신력이 안되는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정신력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이겨냈죠.

무식한 거였어요. 요즘은 경기할 때 근처에 다 음료수를 두고 선수들이 에너지를 흡수하잖아요? 하지만 그때는 땡볕에서 무식하게 두 시간 동안 물도 안 마시고 훈련을 했습니다. 지도자가 얼마나 지식을 아는냐에 따라 선수들 역량이 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런 지도자가 되면 안되겠다’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또 선수로서 궁금한 것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궁금한 점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는 분위기였잖아요. “왜 물을 마시고 뛰면 배가 아파요?”라는 질문을 못했습니다.

요즘엔 찾으면 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책으로 아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궁금증을 풀어줄 곳도 없었어요. ‘내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컸죠. ‘박사까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전임 지도자를 하면서 시간이 안 났습니다. 박사면 이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입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죽어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 주고 박사를 따는 사람도 있잖아요? 하지만 돈으로 따고 싶진 않았어요. 죽어라 할 시간이 없었죠. 그래서 박사 학위는 취득하지 못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왜 에너지가 필요한지 알게 됐고 왜 스포츠 음료를 마셔야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스포츠 음료가 물과 어떤 점이 다른지도 알게 됐죠. 기본적인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2편에 계속.

henry412@sports-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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