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현대 인스타그램 캡쳐

[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울산현대 SNS에 갑자기 '꼬부랑 글씨'가 등장했다.

16일 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을 앞두고 있는 울산은 공식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게시물을 올렸다. 그런데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갑자기 울산은 페르세폴리스와의 엠블럼을 같이 띄우더니 뭔가 꼬불꼬불한 글씨로 사진을 한가득 채웠다. 대충 봤을 때 아랍어로 추정됐다.

인스타그램의 번역 기능을 사용해보니 게시물에는 '이란 팬들을 위한 특별한 연합'이라는 문구와 함께 '추첨 후 슬로건, 이미지, 클립을 보내주시는 두 팀의 팬들과 팬들 1:11 명은 추첨 후 상을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어로 번역을 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울산 구단이 올린 게시물은 대충 뭔가 하면 추첨을 해서 무언가를 준다는 이야기였다. 이 게시물에서 알 수 있는 내용은 '#해킹아님'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 <스포츠니어스>는 이역만리 카타르 현지에 가 있는 울산 구단 관계자에게 전후상황을 확인해봤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알람' 때문에 줄어드는 경험

최근 울산은 이란에서 수많은 응원을 받았다. 알고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ACL 결승전의 한 자리는 이란의 페르세폴리스가 차지한 상황이었다. 만일 울산이 결승전에 오른다면 페르세폴리스의 상대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울산은 많은 응원을 받았다. 페르세폴리스의 라이벌 에스테그랄 팬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에스테그랄 팬들의 축구 보는 눈은 정확했다. 이미 그들은 ACL 동아시아 8강전부터 울산을 우승 후보라고 생각했다. 울산 구단 관계자는 "이미 8강전이 시작하기 전부터 구단 인스타그램에 페르시아어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라면서 "그 이후 페르시아어 댓글이 늘더니 결승 진출이 확정되자 댓글 7~8천개가 모두 페르시아어였다"라고 전했다.

이 구단 관계자는 울산 구단의 공식 SNS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본의 아니게 울산 구단 관계자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들만 경험해본다는 '알림창 도배'를 두 눈으로 본 것이다. 이 관계자는 "평소에 구단 SNS 알람을 켜놓지는 않았다"라면서도 "그런데 얼마 전 한 번 실험을 해봤다"라고 입을 열었다.

ⓒ 울산현대 인스타그램 캡쳐

이어 그는 "최근에 우리 구단에서 이란 팬들을 겨냥해 설영우 사진을 올려봤다"라면서 "그 때 알람을 켜봤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설영우 사진을 올렸을 때 이란 현지는 새벽 한 시였다. 그런데 그 때도 엄청나게 많은 알람이 쏟아졌다. 스마트폰 배터리를 100% 충전한 상황에서 알람을 켜고 게시물을 올렸는데 20분 만에 배터리가 15%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라면서 놀라워했다. 그만큼 울산에 대한 에스테그랄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이야기다.

뜨거운 관심 보여준 이란 향한 울산의 보답

이런 이란의 열기를 실감한 울산 구단 홍보마케팅팀은 깜짝 행사를 기획했다. 바로 그 '꼬부랑 글씨' 게시물의 정체다. 울산 구단은 인스타그램에 울산을 응원하는 게시물을 올리면서 '#ACL2020FINAL'과 '#UHFC' 해시태그를 올린 이란 팬 중 추첨을 통해 다섯 명에게 울산 유니폼을 보내줄 예정이다. 단 조건이 있다. 울산이 ACL에서 우승할 경우다.

울산 구단 관계자는 "이왕 응원을 해줄 거라면 제대로 뜨겁게 응원 해달라는 뜻에서 이번 이벤트를 기획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 이벤트를 위해 울산 구단은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다. 게시물 안에 들어가야 하는 페르시아어는 모두 전문 번역 업체에 의뢰해 완성한 것이다. 게다가 유니폼 다섯 벌을 국제배송으로 보내야 한다. 구단 관계자는 "배송비가 유니폼 비용만큼 나올 것 같다"라고 웃었다.

다만 울산 구단 관계자는 한 가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은 난리가 났는데 유튜브에는 이란 팬들이 잘 안온다"라는 것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노를 더 열심히 젓고 싶은 마음이었다. 알고보니 이란에서는 인스타그램의 사용률이 다른 SNS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산 구단은 이란에서 날아온 팬들의 응원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구단 관계자는 "요즘 K-방역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ACL에서 K-풋볼을 제대로 보여주자는 농담도 했었다"라면서 "어떤 계기가 됐든 이렇게 울산과 K리그가 조금 더 해외에 알려진다는 것은 뜻깊은 일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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