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김영광 “팬의 소중함? 관중과 서로 물병 던지며 깨달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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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조성룡 기자] 성남FC 골키퍼 김영광이 다사다난한 한 해를 마쳤다.

2020시즌을 앞두고 서울이랜드에서 성남FC로 이적했던 김영광은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다. K리그1 23경기에 출전해 33실점을 기록했다. 한 시즌의 대부분을 소화한 셈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K리그1 무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소속팀 성남도 강등의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기적적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하지만 김영광의 이야기는 단 한 해 만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는 2002년 전남드래곤즈를 통해 프로 무대에 발을 들였고 무려 19년을 활약해왔다. <스포츠니어스>는 탄천종합운동장에서 김영광을 만나 제법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김영광은 세월을 녹여 정성껏 질문에 대답했다.

쉽지 않은 한 시즌이 끝났다. 돌아보니 어떤가?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에 상승세를 타고 잘 나가다가 갑자기 굴곡이 많아졌던 한 해였다. 그럼에도 그런 굴곡 속에서 마지막에 웃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준비를 하고 열심히 했다. 결국 마지막에 진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웃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고생한 보람을 찾은 시즌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나 또한 너무 울컥했다. 나 뿐만 아니라 전부 다 감동 받았던 것 같다. 그동안에 서로 힘들었던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데 뭔가 운이 안따라줬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 다 보상받은 느낌이어서 다들 감동했던 것 같다. 이것은 나만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특히 마상훈의 골이 기억에 남는다. (마)상훈이도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마상훈에게 올 시즌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시즌 막판에 정말 열심히 해줬다. 그의 투혼 넘치는 모습이 팬들 입장에서는 마상훈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상훈이가 그 전까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정말 중요할 때 한 골 넣어서 선배로서 뿌듯하더라. 올해 결혼도 하는 친구라 참 다행이다. 하하.

성남 입단부터 당신은 연봉을 구단에 ‘백지위임’하며 화제가 됐다.
사실 프로의 값어치는 말 그대로 돈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맞다. 선수의 자존심이나 자부심은 연봉에 따라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구단에 연봉을 백지위임했다. 어찌보면 돈보다 축구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리하자면 축구를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이가 적지 않다. 성남에 입단하면서 내가 올해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도 있었고 주전 경쟁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우선 돈보다 내 실력으로 무언가를 증명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백지위임’을 받은 구단은 잘 챙겨줬는가.
아… 이건 구단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 양해해달라.

오랜만에 K리그1으로 복귀했지만 당신의 선택은 ‘골키퍼 왕국’ 성남이었다. 주전 경쟁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성격이 그렇다. 내가 만약에 운동을 하고나서 몸 상태를 판단했을 때 ‘이게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장갑을 벗어버릴 만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서울이랜드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끝나고 새 시즌을 준비하면서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느껴졌다. K리그1에서도 충분히 주전 경쟁이 가능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성남에 와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으로 임했다. 좋은 골키퍼들이 많지만 또 후배들과 경쟁해서 좋은 모습으로 뭔가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런 곳에서 주전 경쟁을 하다보면 후배들의 좋은 모습을 본받고 동시에 내가 가진 좋은 모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신 만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자신감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축구를 해오고 골키퍼를 오래 해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당연히 있다. 솔직히 골키퍼가 막는 실력의 차이는 크지 않다. 아마추어에서는 실력 차이가 나지만 프로 무대에 입성한 골키퍼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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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골키퍼의 차이는 다른 부분에서 나온다. 바로 경기 운영이나 경험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판단 대처 능력 등이 그렇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최대한 기복이 없어야 한다. 한 시즌을 굴곡 없이 갈 수 있는지가 골키퍼의 실력을 가르는 것 같다.

잘할 땐 정말 엄청나게 잘하다가 못할 땐 못하고 컨디션이 좋아 말도 안되는 공도 다 막다가 갑자기 말도 안되는 실수로 실점하는 골키퍼가 있다? 그 시즌은 그 골키퍼에게 점수를 높게 줄 수 없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은 길기에 굴곡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굴곡이 크지 않아야 한다. 한 번도 실수하지 않고 먹을 수 밖에 없는 골만 실점하는 골키퍼는 없다. 대신 최소한의 실수를 해야 잘하는 골키퍼라고 생각한다.

경험담인가?
물론이다. 어릴 때는 워낙 팡팡 튀고 에너지가 넘쳤다. 아까 말한 점수 높게 줄 수 없는 골키퍼가 나의 과거 이야기다. 잘할 때는 들어가서 다 막았다가 무너질 때는 확 무너졌다. 굴곡이 심했다. 그래서 대표팀에 갔을 때 컨디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이걸 끌어올리지 못하더라. 남들이 봐도 잘할 때는 잘하는데 못할 때는 못하는 모습이 불안했을 것이다.

통계를 봤을 때 세계적인 골키퍼들이 자기 실수로 인해서 실점하는게 한 시즌에 보통 2.5개 정도다. 공을 잡다가 놓쳐서 실점하는 경우나 크로스가 올라왔을 때 잡겠다고 나왔다가 넘어가는 바람에 실점하는 등 누가 봐도 골키퍼 실수로 실점하는 상황이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2.5개는 나온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세계적인 골키퍼라면 그런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름을 날린 세계적인 선수도 2개에서 2.5개는 한다고 하더라. 그렇기에 실수에 대한 부분들을 최소화해야 좋은 골키퍼가 된다고 생각한다.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팀 뿐만 아니라 감독님과 팬들에게도 골키퍼가 출전했을 때 ‘와 안정감 있다’라고 느낄 수 있게 해야한다.

맞다. 김영광의 어린 시절은 정말 팡팡 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대표팀 경험을 하면서 좀 달라졌다. 나는 꾸준히 성장하던 골키퍼 유망주였다. 2004년에 올림픽도 경험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됐다. 내 나름대로 잘한 것 같지만 그 당시에 나는 너무 나와서 플레이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이야 빌드업을 강조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그런 스타일의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비판도 받았다. 실점 상황이 내 실수가 아니어도 내가 나온 상황에서 실점하면 “골키퍼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렇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다보니 조금씩 내 스타일을 바꿔나가게 됐다.

요새는 빌드업을 많이 강조한다. 특히 골키퍼를 통해서 전개하는 것이 추세다. 따라서 요즘 말하는 ‘발 밑’도 골키퍼에게는 중요하다. 그래서 일찍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 골키퍼가 만약에 양발을 다 쓴다면 나중에 프로 레벨까지 올라왔을 때 엄청난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한 발이 아니라 양 발을 쓰고 이와 함게 양 손을 쓴다면 그거보다 더 좋을 건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K리그1에 돌아와 낯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솔직히 선수의 수준 차이가 K리그2보다 낫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K리그1의 경우 프로 의식이 조금 더 강하다.

내가 볼 때 1부리그와 2부리그의 실력 차이는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향 평준화 되어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프로 의식이다. 확실히 1부 팀은 프로 의식이 더 높은 것 같다.

내가 K리그2에서 한 5년 있다 K리그1으로 올라왔는데 선수들의 프로 의식이 다르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이 선수들은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는 것부터 시작해 몸 관리 등 마인드가 K리그2보다는 우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차이가 나오는 것 같다. 축구 실력은 비슷하거나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함께 선수 생활을 하던 김남일, 정경호를 감독과 코치로 만나기도 했다.
나는 함께 선수 생활을 했지만 호칭은 무조건 ‘감독님, 코치님’이다. 당연히 나부터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선수 생활할 때는 형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니 더 깍듯이 대한다. 후배들도 내가 어떻게 감독님과 코치님을 대하는지 다 보고 배우기 때문에 더욱 신경쓰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김남일 감독님을 성남에서 다시 만나니 추억이 하나 떠오르더라. 사실 나도 몰랐던 이야기다. 2014년에 김 감독님이 전북현대 선수로 뛸 때를 기억하는가. 그 때 9월에 김 감독님이 골을 넣었다. 그게 아마 김 감독님이 10년 만에 넣은 골이었다(2004년 5월 26일 인천전 득점 이후 10년 4개월 만에 넣은 골). 아내 분인 김보민 아나운서가 포옹하고 펑펑 울었던 날이다. 감독님이 그 골을 넣었을 때 실점한 골키퍼가 바로 나였다.

감독에 이어 골키퍼까지 죄다 ‘센’ 사람들이 모여 성남 선수들은 힘들었을 것 같다.
아니다. 시간이 지나니까 사람이 바뀌더라. 감독님도 나도 이제 더 이상 그런 이미지는 없다. 사실 감독님은 운동장 안에서만 터프했지 밖에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부드러웠다. 다만 경기장 안에서 플레이가 터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뀐 게 맞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센 사람이었다. 나는 ‘에이, 막 갈아엎어! 다 죽여!’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저 ‘아이고, 두루두루 삽시다. 내가 참아야지’ 이런 느낌으로 바뀌고 있다.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또 내가 두 딸의 아빠가 되다보니 더욱 그런 성격으로 바뀐 것 같다.

특히 어린 선수들은 호칭 정리하는 것부터 난관이지 않겠나.
내가 어릴 때는 호칭에 대한 기준이 있었다. 10살 정도 많은 선수들까지는 형님, 띠동갑 넘어가면 삼촌이다. 대신 9살 이하로 차이가 나는 사람들은 형이다. 하지만 요새는 다 형이거나 형님이라 부르라고 한다. 난 이렇게 불리는 것이 좋다. 나이 차이도 많아 서로 다가가기 어려운데 그렇게 불러주면 더 친근감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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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소리 들어서 일부러 그러는 것 아닌가.
간혹 그런 경우도 있다. 너무 나이 차이 많아 보이면 좀 그렇다. 삼촌이라 부르라고 한다면 후배들이 내게 접근하기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대신 형이라고 하면 좀 접근하기 쉬울 것이다.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가면 되지 않는가.
당연하다. 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시간 있을 때 같이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자 이러면서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한다. 성남에서도 내게 얻어먹은 사람들이 많다. (전)종혁이와 (허)자웅이가 대표적이다. 골키퍼들은 자주 뭉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연제운도 있다. 연제운은 주장이다보니 팀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퇴근길에 만나서 밥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또 중고참들은 따로 모아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후배들을 만나면서 어느 특정 선수에게만 너무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편애한다는 시선이 생기면 좋지 않게 보일 수 있다. 최대한 모든 후배들을 고르게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후배들을 만나면 ‘라떼는 말이야’가 절로 나오지 않는가?
내가 어릴 때에 비해 엄청 달라지긴 했다. 후배들이 굉장히 당돌하다. 개성도 강하다. 어떻게 보면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저XX 건방지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당돌함이 있어야 축구를 잘한다.

(이)천수 형이 축구를 잘했던 이유가 당돌한 성격 덕분이다. 자신감이 넘치지 않는가. 경기장에 들어가면 플레이가 자신감 있다. 그런 모습들이 더 장점이 될 수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물론 ‘음…’ 할 수는 있다. 그래서 본인들이 당돌하면서도 수위 조절을 잘해야 한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런 당부는 하고 있다. “당돌한 건 좋지만 축구선수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성남은 대부분 순한 이미지의 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전혀 아니다. 우리 팀 선수들도 당돌하고 자신감 넘친다. 특히 홍시후가 그렇다. 시후는 이제 20세다. 나와 18세 차이다. 내가 한참 형이다. 그런데 시후는 내게 스스럼 없이 “형! 형!”하면서 온다. 놀랍다.

그래서 내가 “시후 골 넣을 수 있어? 몇 골?” 그러면 “두 골 넣을 수 있슴다”라고 한다. 당돌하다. 시후는 항상 자신감이 있다. 보통 내가 농담 삼아 후배 공격수에게 “몇 골 넣을 수 있어?”라고 하면 “아… 일단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하는데 시후는 상세하게 “두 골 넣어보겠슴다”와 같이 그런 당돌함이 있다. 나도 시후를 보면 ‘저 놈 뭔가 될 거 같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굉장히 당돌했던 것 같다. 선배들에게 반말도 막 하고 강해보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경기 전에 미리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경기장에서 존대하지 않고 이름 부르겠습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러니까 선배들이 웃으면서 “어라 이X끼 당돌하다”라고 하더라. 형들이 그런 모습들 좋게 봐주셨기에 내가 경기장에서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거 같다. 형들이 이해해준 덕분이다.

생각해보니 당신은 너무 당돌해서 팬들에게 비호감 이미지도 있지 않았나.
맞다. 선수 생활을 하다보니 과연 프로 선수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이유를 고민해보게 됐다. 사실 팬이 없으면 프로 선수는 존재 가치가 없다. 우리끼리 축구하는데 왜 프로 선수라는 이름이 붙겠는가. 프로를 좋아해주고 동행해주고 응원해주고 함께 울고 웃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깨닫게 됐다.

세월이 지나면서 팬이 없다면 축구가 정말 어려워질 수 있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나는 축구선수에게 0순위는 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든 팬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한두 분이라도 경기장에 다시 오도록 만들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다. 굳이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감사한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다.

대전 팬들과 물병도 주고받던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다니 놀랍다(2007년 울산현대 소속이었던 김영광은 대전시티즌과의 K리그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대전 관중이 던진 물병을 주워 다시 관중을 향해 던져 논란이 일었다. 이후 김영광은 징계를 받기도 했다).
내가 그 때 많은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는 관중이 욕하면 나도 같이 가서 욕했다. 물병도 주고 받았다. 그러면서 ‘정말 팬들이 중요하구나. 진짜 내가 진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짓을 했구나’라는 것을 많이 깨달았다.

이제 나는 골대 뒤에서 상대팀 팬들이 욕설을 쏟아내면 나를 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그 분들이 상대팀을 그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한테 심리적으로 흔들리도록 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욕은 하지만 상대팀을 정말 사랑한다는 팬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제는 뒤에 계신 팬들께서 욕을 하시면 뒤로 돌아서서 “아유 죄송합니다.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자제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오히려 팬들께서 더 “어휴 죄송해요”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갔을 때는 “김영광 반갑다”라고 “이번 경기도 파이팅하라”고 하신다. 팬들께서 그렇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니까 너무 감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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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막판 생존 싸움이 한창일 때 수원삼성과 했던 경기가 생각난다. 우리가 수원을 이기고 있을 때였다. 당시 우리는 절박했다. 그러다가 팬들이 오해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런 상황도 아니었다. 교체 상황에서 우리가 좀 늦게 경기장에서 나간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그래서 수원 팬들의 항의가 내게 쏟아졌다. “왜 빨리 안나가냐”고 하더라.

팬들이 보시기에는 그 당시의 모습이 우리가 시간을 지체하려고 보는 거 같더라. 그래서 나는 공을 내려놓고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빨리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팬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김영광에게 감동받았다”라고 올리셨더라. 나 또한 팬들의 그런 글들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때는 정말 살벌했다. 수원 팬들에게 야유를 많이 받았다. 욕도 좀 들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이야기하니 팬들께서도 들으시고 좋게 넘어가주셨다. 나도 팬들의 그 모습이 훈훈하게 느껴져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경기 끝나고 인사 드리니까 기립박수를 쳐주셨다. 비록 상대 팀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 감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활발하게 여러 군데 하는 것 같더라.
팬들이 많은 곳에는 항상 찾아가는 것 같다. 다들 정말 축구를 많이 사랑해주니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이 모두 경기장에 찾아오시면 좋을 것 같아서 많은 소통을 하려고 한다. 선수와 팬이 서로 교감이 되면 경기장에 한 번 더 오실 수도 있는 법이다. 다른 팀을 응원하지만 한 번 쯤은 우리 팀 응원해줄 수도 있다는 기대도 조금은 있다.

요새 어린 선수들은 굳이 팬들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더라. 정말 우리 K리그가 예전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팬들을 많이 생각한다.

다시 올 시즌으로 돌아가보자. 정말 마음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나이도 제일 많고 골키퍼다보니 힘들긴 했다. 뭔가 경기가 잘 안풀리면 나는 항상 내가 못막아서 진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경기를 너무 이기지 못하니 심적으로 괴로웠다. 마지막에 꼭 웃고 싶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뭔가 다같이 노력했다. 결국 그렇게 마지막에 좋은 드라마틱한 경기가 나왔다.

한 차례 강등 경험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더욱 그럴 수도 있다.
2014시즌 울산에서 뛰다가 경남FC로 임대이적을 했다. 그리고 경남 소속으로 강등을 경험해봤다. 그 때 너무나도 아쉬웠다. 임대로 합류한 뒤 경기를 계속 뛰었다. 그 때 경남은 어린 선수들이 많았다. 전반기에 부진하다가 후반기에 힘을 내줬다. 내 기억으로는 수원삼성에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고 FC서울도 잡고 그러던 후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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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도 경기를 뛰고 다른 선수들이 힘을 내주면서 소속팀 경남이 강등권을 벗어났다. 시즌 서너 경기가 남을 때로 기억한다. 강등권과 승점 7점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내가 경기를 뛰지 못했다. 이해는 했다. 어차피 나는 임대 신분이기에 원소속팀으로 돌아가야 했다. 경남 또한 키우는 선수들의 경험치를 쌓아야 했다. 이 상황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한두 경기에서 잘못되자 다시 팀의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갔다. 1차전에서는 내가 뛰지 못했고 광주FC에 1-3으로 패배했다. 2차전에서 이를 뒤집으려면 3-0으로 이겨야 했다. 일단 2차전에는 내가 뛰었지만 1-1로 무승부를 거두면서 강등을 당했다. 참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었다. 안타깝기도 했다.

성남에 위기가 왔을 때 고참 선수들이 자주 강조했다. 우리가 더 올라갈 수 있지만 K리그2로 내려간다면 어린 선수들의 미래가 문제라고 했다. 어린 선수들은 성남과 K리그1에서 성장해 더 치고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강등 당하면 진짜 생각지도 못할 만큼 떨어진다. 절대 강등은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것들을 고참인 (양)동현이부터 (서)보민이 등 다들 강조했다.

김남일 감독과 정경호 코치의 마음고생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감독님도 많이 힘들어했다. 나부터 아무래도 많이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나 내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어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는 없었다. 항상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힘이 되어 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개인적으로 괴로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하고 운동장에서 더 소리치는 등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던 거 같다.

그냥 마지막에 웃자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했다. 마지막에 웃고 싶었다. 성남의 지난 경기를 돌아보면 뭔가 운도 많이 따르지 않았다. 그럴 때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더 노력하면 운이라는 것이 노력한 사람에게 따라오는 법이니 더 노력하면 운이 따라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님과 코치님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에 웃자”고 말씀하셨다. 비장하게 준비했다.

K리그2 무대에서 벗어나 K리그1에서 ‘행복 축구’할 줄 알았다. 그러지 못해 많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어느 팀에 가도 다 그런 우여곡절은 있다. 내가 팀에 늦게 합류를 해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어찌보면 선수들과 금방 친해져서 적응을 빨리한 것이 다행이었다.

팀이 좋을 때도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특히 팀이 좋지 않을 때 내가 내 역할을 해야한다.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나까지 휩쓸려서는 안된다. 많은 경험을 해봤으니 그 경험을 토대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 잊고 가려고 노력하고 다같이 해보자는 가족 같은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후배들은 어찌보면 동료이고 동업자이자 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신경썼다. 팀이 좋지 않아도 어떻게든 함께 다 가야한다.

해피엔딩으로 시즌이 끝났으니 이제 가장의 역할에 힘쓸 때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쉴 때 거의 100%를 두 딸에게 투자했다. 딸이 두 명이다보니 학교를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또 학원에도 보내줘야 한다. 첫째 학원에 데려오면 둘째가 학원에 가야하고 아주 정신이 없다. 두 딸의 스케줄이 서로 얽혀 있으면 내가 오가느라 쉴 틈이 없다.

와… 이 스케줄이 2주 가량 지나니까 다시 운동을 했으면 할 정도였다. 더 힘들었다. 하하. 사실 자녀가 있으면 시즌 끝나도 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바쁘다. 시즌이 끝나서 여유롭게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연락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다. 아이들에게 투자 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는다.

사실 우리 딸들을 보면 안타깝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일주일에 두세 번 밖에 못간다. 지금 나이면 한창 학교 가서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마스크도 벗고 서로 맛있는 것도 사먹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고 그냥 격리다. 학교 가도 마스크 착용하고 수업 듣느라 친구들과 이야기도 잘 못한다. 우리 어릴 때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유난히 딸바보라 더욱 애틋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
나도 내가 좀 유별난 거 같다. 그래서 사진과 영상을 엄청나게 많이 찍는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아빠의 입장에서 “너희들 이랬어”라고 하면서 뭔가 추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사진이 중요하더라. 사진이 없으면 기억 속에만 남는다. 기억은 지워지면 끝 아닌가.

결국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더라. 시간이 지나고 옛날 사진들을 꺼내보면 “이 땐 이랬지, 그 땐 이랬지”라면서 회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 “항상 사진 많이 찍어둬라, 영상 많이 찍어둬라”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하고 있다.

이런 촬영 경험이라면 곧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튜브? 사실 유튜브에 대한 생각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나중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하하

말이 나온 김에 매년 시즌 끝나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김영광 은퇴 여부’다.
나이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친구들도 은퇴하고 선배들도 하나 둘 은퇴 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도 은퇴할 나이가 점점 다가온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내가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내 자신이 경기장에 나갔을 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그만둘 것이다. 아직까지는 몸이 좀 허락하는 거 같다.

구체적인 은퇴 계획은 아직 없다고 봐도 되는가?
내가 프로 무대에 입성하고 축구를 하면서 생각한 것이 있었다. 축구하는 형님들을 보면서 나는 ‘마흔 살까지 딱 하고 은퇴하고 싶다. 그러면 후회 없이 은퇴할 거 같다’라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는 내가 하루하루 후회 없이 노력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왔다. 그런데 벌써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축구에만 쏟았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게 있다. 어릴 때부터 잠을 적게 자고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었다. 그것이 몸에 배어 있으니 지금까지도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게 있다.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이렇게 더 열심히 해서 좀 더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 한 번씩 한다. 사실 잘 모르겠다. 좀 더 나은 훈련과 좋은 방향으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가 될 수도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내가 살면서 결코 후회하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만큼 많이 운동할 자신이 없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그만큼 운동량을 그렇게 많이, 또 열심히 하고 잠을 줄이면서 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면 축구는 하지 않을 것 같다.

그 정도로 나는 열심히 했다. 내가 내 자신에게 물었을 때도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이 악물고 혼자 울면서 했다. 다리가 터질 것 같아도 이를 악물었다. ‘참고 이거 해야지 남들 이긴다, 내가 우리나라 최고 된다’ 그런 일념 하나로 버텨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우… 나는 못한다. 진짜 못한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도 난 그렇게 또다시 운동을 많이 하고 노력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만약 아들이 있으면 축구는 절대 안시킨다”라고 말했다. 나처럼 그럴까봐 두려웠다. 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근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물려받은 아들이 힘든 길을 갈까봐 걱정됐다. 힘들다는 것을 아니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신이 내게 딸을 주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딸들이 운동 재능이 있을 것 같다.
확실히 그래서 유전자는 못속인다… 첫째도 둘째도 운동신경이 있다. 그래도 운동은 안된다. 하하. 공부를 시켜야 한다. 특히 첫째는 좀 운동신경이 있다. 골프 쪽으로 재능이 보이는데 또 반에서 남자 애들이랑 팔씨름 하면 1등하고 육상대회 계주 대표로 나가고 그런다.

그게 확실히 운동선수 유전자는 뭔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키우는 아이들 보면 선수 유전자를 받은 애들은 다르다. 더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 유전자는 어쩔 수 없지만 확실히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그런데 지능은 또 공부 많이 한 아내를 닮았다. 둘 다 똑똑하다. 그래서 골프를 시키고 싶어도 공부에 대한 재능이 있으니 아내도 첫째 딸의 공부를 포기 못하더라. 공부를 하면 또 잘한다. 뭔가 첫째는 나를 좀 더 닮았고 둘째는 아내를 닮았다. 첫째는 운동 성향이 있어 활발하고 둘째는 아내처럼 혼자 공부 열심히 한다.

딸들이 자기가 정말 무언가 해야할지 깨닫게 될 때까지는 뭐든지 시켜보고 싶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 아니겠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할 것 같다.

부럽다.
가족들이 나의 힘이다. 아내가 없었으면 나는 이렇게 축구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다. 아내와 두 딸은 내가 축구만 바라보고 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내가 인스타그램에도 ‘나의 힘’이라는 해시태그를 많이 올린다. ‘나의 비타민’도 마찬가지다. 다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축구를 엄청나게 사랑한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축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만날 수 있는 것인가?
글쎄… 나와 친한 사람들은 내가 지도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축구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선수로 축구를 하는 동안 축구에 모든 것을 쏟고 싶다. 그리고 딱 그만뒀을 때는 모든 것을 쏟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지도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래서 더욱 현역 생활을 마지막까지 쏟아붓고 싶은 것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후회가 하나 쯤은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축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포지션이 골키퍼가 아니라 공격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한 번씩 ‘공격수로 뛰었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사실 공격수를 했다면 잘하긴 해도 국가대표팀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 같다.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체격이나 스피드는 자신 있는데 대표팀 갈 실력은 아닌 것 같다. 하하.

마지막 질문이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나는 그런 거 같다. 가장 중요한 건 팬들이 기억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팬들을 위해서 정말 노력하고 헌신하고 팬들의 고마움을 정말 잘 알았던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항상 말하지만 축구선수에게는 팬이 제일 중요하다. K리거들에게 앞으로 더 성장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동반자이자 후원자이자 또다른 가족이다. 팬들을 위했다는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김영광은 오랜 세월동안 켜켜이 쌓여왔던 이야기들을 동안 길게 풀어냈다. 확실히 그는 축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이해가 되는 욕심이었다. 김영광은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 마지막 불꽃을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태우고 있었다. 김영광의 축구 인생은 아직 끝이 아니다. 내년 시즌 그의 도전은 또 어떤 이야기를 그리게 될까.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불꽃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을까. 김영광은 여전히 땀을 흘리며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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