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니어스|성남=전영민 기자] 올 시즌 성남FC는 정말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시즌 초반 있었던 네 경기에선 2승 2무를 기록하며 무서운 상승세를 타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며 강등 위기까지 몰렸다.

성남이 롤러코스터 같은 한 시즌을 보내며 부주장 연제운도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올 시즌 주장 서보민이 장기 부상으로 오랜 기간 이탈하며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던 연제운은 파이널B 돌입 이후 첫 경기였던 인천전에선 전반 2분 만에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스포츠니어스>는 지난 20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프로 5년 차에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던 연제운과 만나 한 시즌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갑다. 시즌이 끝난지 벌써 꽤 됐는데 어떻게 지냈나?

집이 목포에 있어서 부모님을 1년에 거의 한두 번밖에 뵙지 못한다. 보통 시즌 중에는 집에 내려가지 않고 시즌 후에 가는데 이번에 목포에 가서 친구들과 밥도 먹고 푹 쉬다 왔다. 여자친구와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갔다 왔는데 우도를 비롯해 가볼 만한 곳은 다 갔다 왔다. 운동은 이번주부터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하기보다는 몸이 망가지지 않는 정도로만 하려고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혼자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선수들과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이니까 같이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부산과 마지막 경기가 끝난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그날 경기가 기억에 남는다. (마)상훈이 형이 넣은 마지막 골은 경기 후에 이틀 동안 계속봤을 정도였다. 가장 친한 친구가 곧 결혼을 하는데 그날 그 친구가 아내와 함께 경기장에 왔다. 경기 전에 친구 부부에게 "오늘 이기면 소고기를 사겠다"고 했는데 하필 그날 엄청난 경기가 나왔다. 우리가 이겨서 경기 후에 소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친구와 제수씨가 "네 입꼬리가 올라가있다"라고 했다. 그 정도로 마음이 계속 남아있었다. 다음 날까지 기분이 좋았다.

성남 입장에선 아찔했던 경기였다. 전반전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에 0-1로 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부산전 바로 전 경기였던 수원전에서도 우리가 먼저 실점을 해서 0-1로 지고 있다가 역전을 했다. 0-1로 부산전 전반을 마치고 라커룸에서 주무 님에게 "FC서울-인천 경기 몇 대 몇이에요?"라고 물어봤는데 "인천이 이기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 나는 수원과 경기가 끝나자마자 '인천이 서울을 잡겠다'는 예상을 했다. 분위기상 절대 서울이 인천을 절대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원전 끝나고도 선수들에게 "승리에 젖어있지 말자. 인천이 부산, 서울과 경기가 남아있는데 내 생각엔 인천이 이 경기들을 다 잡을 것 같다. 그러니 우리도 마지막까지 해야 한다"고 했는데 예측대로 됐다.

우리로서는 부산을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을 앞둔 상태에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편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차피 0-1로 지나 0-2로 지나 똑같으니 편하게 하자'는 생각이었다. 오히려 부담을 가지면 될 플레이들도 경기장에서 안되는데 편하게 하니 잘 됐다. 선수들에게도 "어떻게 하자"라고 하기 보다는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를 했다. (홍)시후에게도 "기죽지 말아라"라고 말을 해줬다.

사실 시후가 굉장히 어린데 전반전에 기회를 한 번 놓친 것 때문에 하프타임 때 라커룸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책을 하더라. "괜찮다"라고 했다. 우리 팀엔 젊은 선수들이 많아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나는 한 번 경험이 있으니 "괜찮다. 해보자"라고 했다. 동점골이 들어갔을 때는 '더 할 수 있겠다. 역전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상훈의 역전골이 들어갔을 때 부심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고 있었다.

오프사이드가 아니길 빌었다. 하지만 그 골이 안 들어갔어도 그날따라 '우리가 이길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상훈이 형의 골이 인정됐다. 사실 내가 인천전에서 퇴장을 당하고 나서 상훈이 형이 내 자리에서 계속 뛰었는데 상훈이 형의 컨디션이 좋았다. 출전 정지 징계 기간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도 상훈이 형의 컨디션이 워낙 좋다 보니 '내가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뒤에서 응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정도로 상훈이 형의 몸이 좋았다. 상훈이 형이 컨디션이 좋다 보니 자신감이 생겼고 그렇게 결국 득점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날 경기장엔 성남 팬들의 수위 높은 걸개들이 걸려있었다. 그중엔 결국 강등으로 마무리됐던 2016시즌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2016년에 나는 신인이었고 프로 1년 차였다. 아무것도 모를 때였다. 프로 무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적응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강원과 마지막 승강 플레이오프 경기를 벤치에서 지켜봤는데 그때는 강등이 실감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어리다 보니 책임감이 많지는 않았다. '형들이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는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인천과 경기에서 퇴장을 당했다. 내가 2분 만에 퇴장을 당해서 인천에 대패했고 또 그럼으로 인해 인천에 희망을 줬다. 하지만 인천전 퇴장으로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많이 생겼다. 물론 내 퇴장이 팀에는 엄청난 손실이었다. 퇴장을 당한 이후에 경기장 밖에 나와 생각을 해봤는데 그동안 내가 너무 혼자서 부담감을 가지고 혼자서 짊어지려고 했더라. 그러다 보니 실수를 했다. 또 내가 무너져버리니까 팀도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뒤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인데 멘탈이 무너지니까 어느 순간부터 짜증을 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 것부터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왔을 땐 '내가 뛰든 안 뛰든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짜증을 냈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가?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내가 주위 선수들에게 짜증을 냈고 내가 짜증을 내니 다른 선수들도 다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부분에서 내 경험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두 경기를 남겨두고 옆에 있는 형들이나 다른 팀 형들에게 조언을 받았다. 형들이 "그냥 편하게 해라.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 잘될 수도 있다"고 해주셨다.

인천전 퇴장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카드를 잘 안 받는 선수로 유명하지 않나?

작년에 리그 전경기를 뛰면서 카드를 한 장도 받지 않았다. 전경기 풀타임을 뛴 건 아니고 경련이 나서 2분 정도 못 뛰긴 했었다. 퇴장은 인천전에서 받은 퇴장이 프로 생활하면서 처음이었다. 원래 내 플레이 스타일이 확실한 게 아니면 기다리면서 따라가는 수비를 많이 한다. 확신이 있을 때만 덤빈다. 확실한 게 아니면 파울을 주지 않으면서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렇게 수비를 하고 너무 경고가 없다 보니까 '올해는 더 타이트하게 수비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카드를 받지 않는 노하우가 딱히 있기보다는 이게 그냥 내 축구 스타일인 것 같다.

수비수이긴 하지만 거칠게 하기보다는 영리하게 플레이를 하려고 했다. 올해는 경고를 두 장 받았다. 한 번은 킥을 늦게 차서 받았고 한 번은 수원과 경기를 하다가 받았다. 하지만 수원전에 받은 경고는 내가 생각했을 때 경고를 받을 만한 장면이 아니었다. '첫 파울이니까 일부러 강하게 끊어도 카드를 받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하프라인 쪽에서 내가 있는 쪽으로 공이 들어오는 순간 파울을 했는데 바로 경고를 받았다. 첫 파울이었는데 경고를 받아서 억울한 게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경기였던 인천전에서는 전반 2분 만에 퇴장을 당했다.

내가 인천전까지 엄청 부담을 많이 가졌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내가 해야겠다'라는 부담감이 강했다. 인천전을 하러 나섰는데 그날따라 몸이 너무 좋더라. 몸이 붕 떠 있었다. 경기 초반에 스로인 상황이 나왔다. (이)태희 형이 바로 내게 던지면 편하게 전환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태희 형이 내게 공을 주려다가 주지 않았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잠깐 공을 못 보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태희 형이 내게 공을 던졌다. 사실 그 타이밍에는 공을 받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때 태희 형이 내게 스로인을 줬다. 그런데 공이 '통통통통' 튀어서 내게 왔다.

그 상황에서 무고사가 뛰어왔다. 그 찰나에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무고사를 제칠까?' '공을 잡고 옆에 있는 선수에게 줄까' '아니면 아예 반대로 줄까'까지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한 것보다 공이 너무 빨랐고 컨트롤을 못했다. 컨트롤이라고도 할 수 없었고 그냥 내 공이 내 몸에 맞았다. 그 순간 무고사가 공을 채냈다. 그래서 '살짝 쳐서 템포만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고사를 잡아챘는데 무고사가 바로 쓰러졌다. 멍청한 공격수였으면 거기서 내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앞으로 갔을 텐데 무고사는 영리한 선수이다 보니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라. '아 이거 퇴장이구나'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지만 최초 판정은 옐로카드였다.

그렇다. 하지만 인천 벤치에서 항의를 했다. "단독 기회였는데 왜 퇴장을 안 주냐"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VAR을 보면 퇴장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주심이 VAR을 보고 있을 때 선수들이 내게 와서 "제운아 어떨 거 같아?"라고 물어봤다. 마음 속으로는 '퇴장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선수들에게 그렇게 말을 하진 않았다. 밖에서 보셨던 분들 중에 "퇴장까지는 아니지 않냐?"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더라. 하지만 나는 퇴장 장면이었다는 걸 인정한다.

전반 2분 만에 당한 퇴장인데 혹시 그날 샤워는 했나?

샤워는 했다. 경기 전에 40분 동안 몸을 풀었는데 샤워는 해야 하지 않겠나. 마침 그날 내가 선크림을 많이 발라서 선크림을 지워야 하기도 했다.

분위기를 조금 바꿔보자. 이제 더 이상 상주 입대를 미루기엔 애매한 나이가 됐다.

구단에는 "군대에 갔다 오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올해 1993년생이 입대 연령 마지노선인데 내가 1994년생이다. 사실 작년에도 상주에 원서를 넣었었다.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구단도 그렇고 감독님도 "1년만 더 해달라"라고 해서 가지 않았다. 성남에 애정이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내렸다.

작년에는 베테랑 수비수 임채민이 옆에 있었다.

작년에는 채민이 형이 있었고 그전에는 (윤)영선이 형이 있었다. 내 옆에는 항상 좋은 수비수 형들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그 형들이 했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담이 많이 됐다.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기도 했다. 내가 팀과 수비를 이끌어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생각도 많이 했다. 올해 많이 배웠다.

그전에는 영선이 형의 장점, 채민이 형의 장점을 보고 많이 배웠다. 그런데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두 형들에게도 배웠지만 (마)상훈이 형에게도 배웠고 (임)승겸이에게도 배웠다는 것이다. 중앙 수비수들은 각자 가진 장점이 다 다르다. 국가대표 출신인 영선이 형과 채민이 형에게도 배울 수 있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형이 가지지 않고 있는 걸 다른 선수들은 가지고 있다. 나보다 잘하는 게 있으면 내 친구에게도, 동생들에게도 보고 배울 수 있는 거다. 프로에 있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배웠다.

평소에 축구를 많이 본다. 후배들이 내게 "축구에 미쳐 산다"라고 할 정도다. 외국리그와 K리그 가리지 않고 많이 본다. K리그에선 상대 공격수들을 볼 때도 있고, 내 자리에 잘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울 때도 있다. 나중에 지도자를 할 생각이 있다. 각 팀들마다 전술이 다르니 다 챙겨본다. 축구 생각과 공부를 많이 한다.

외국에서는 어떤 팀들의 경기를 챙겨보나?

원래는 맨시티 축구를 많이 봤는데 요즘엔 첼시 경기를 많이 본다.

모두 아기자기한 축구를 하는 팀들이 아닌가?

그렇다. 뒤에서부터 썰어가는 팀들이다. 나는 중앙 수비수치고 피지컬이 좋은 편이 아니다. 키도 184~185cm고 우락부락한 몸도 아니다. 원래는 내가 미드필더 출신이다. 어릴 때는 미드필더를 보다가 중앙 수비수로 내려왔는데 빌드업 부분에선 자신이 있다. 첼시, 맨시티 경기를 보고 나서 '나도 저런 축구를 해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공을 잘 돌릴까'는 생각이 들었다. 되게 답답했다. '왜 맨시티는 상대가 전술을 분석하고 나와도 거기서 다 풀어나올까. 왜 쟤네는 (마크맨이) 한 명이 빌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답답함이 있었는데 정경호 코치님이 오시며 그런 답답함이 좀 풀렸다. 정경호 코치님이 전술적인 면이 좋으시다. 시즌 초반에는 우리도 밑에서부터 경기를 했다. 하지만 상대가 분석을 하고 나오면 막히게 되지 않나. 거기서부턴 어느 정도 선수 개인의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전술이 있어도 밑에서부터 빌드업을 하기 위해선 선수들의 퀄리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 팀은 전북이나 다른 팀들 정도의 퀄리티가 없다. 그러다 보니까 자주 막히고 한계에 부딪쳤다. 그래서 "아 이건 안되겠다. 현실적으로 가자"라고 바꿨다. "타이트하게 해서 상대를 잡고 빌드업을 하더라도 밑에서부터는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가 됐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지만 개인적으로 후방 빌드업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그런 축구를 하고 싶다. K리그가 예전보다 전술적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대부분 내려섰다가 역습을 하는 방식의 축구만 했다. 내려섰다가 앞으로 때리는 방식이었다. 밑에서부터 세밀하게 전술적으로 풀어가는 축구에 대해서는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런 면에서 정경호 코치님은 확실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다. 제대로 축구를 배운 게 이번이 처음이다. 정경호 코치님은 운동이 디테일하고 패턴을 잡아 훈련을 하도록 해주신다. 또 위치 선정도 다 잡아주신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런 축구를 하기 위해선 선수 개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정경호 코치가 이전에 있던) 상주는 워낙 개인 능력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성남에서보다는 상주에서 (정경호 코치의) 색깔이 잘 나왔다. 올해 우리도 그렇게 했는데 물론 실패는 아니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그런 축구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경호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김남일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해봐야 하지 않겠나.

감독님은 카리스마가 상당히 있으신 분이다. 하지만 보통 감독들하고는 다른 점은 최대한 선수들에게 뭐라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주눅 들지 않도록 자신감을 심어주신다. 보통 선수들이 경기 중에 실수를 하면 대부분 지도자들이 뭐라 하지 않나. 하지만 김남일 감독님은 절대 그런 게 없으시다. 화를 안 내신다. "괜찮다"라고 항상 격려를 해주시고 "자신 있게 해라"라고 해주신다.

솔직히 우리가 올해 초반에는 좋았다. 그렇게 성적이 좋을 땐 사람이 누구나 좋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안 좋을 때는 사람이 변한다. 그런데 감독님은 안될 때도 똑같이 하셨다. 올 시즌 한결 같이 선수들에게 무조건적으로 믿음을 주셨고 선수들을 절대 탓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이끌어오셨다. 안 좋을 때 사람 본성이 나오는 법인데 1년 동안 팀을 이렇게 끌고 오신 게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김남일 감독이 시즌 최종전 직후 정말 펑펑 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감독님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한 팀의 선수단이 30명이라면 모두가 감독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경기에 못 뛰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남일 감독님은 뒤에 있는 선수들까지 워낙 잘 챙겨주시다 보니 선수들 전원이 감독님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감독님이 우리를 믿고 잘해주셨는데 우리가 너무 못했던 점에 대해 많이 죄송했다. 감독님을 지켜보면서 '아 감독이 쉽지 않은 위치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올 시즌 서보민이 주장이었지만 서보민이 장기 부상으로 이탈해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섰다.

내가 어리기 때문에 솔직히 '내 힘으로는 못하겠다'라고 생각했다. (김)영광이 형, (이)창용이 형 등 베테랑 형들이 많이 도와줬다. 물론 형들께서 선수들에게 뭐라고 하신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분위기 쳐지지 말고 기분 좋게 끌고 가자"라고 하셔서 나도 좋게 분위기를 끌고 가려고 노력했다.

주장치고는 젊은 나이였는데 경기나 훈련 때 선수들에게 말을 많이 했나? 아니면 형들에게 발언권을 넘겼나?

나는 한마디도 안 했다. 거의 형들이 얘기했다. 나는 경기장 안에서나 전반전 시작하기 전에 선수들이 다들 모여있을 때만 얘기를 했다. 경기 끝나고 나서는 주로 형들이 얘기를 했다. 나도 눈치를 많이 봤다. 형들이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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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까지 골문을 책임졌던 김동준이 나가고 올 시즌에는 김영광이 골문을 지켰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동준이와는 같은 풍생고등학교 동창이다. 나뿐 아니라 감독님과 구단, 그리고 수비수들도 동준이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나는 동준이가 내가 함께해본 골키퍼들 중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김동준이라는 선수는 그 정도로 좋은 선수다. 이별이 많이 아쉬웠지만 동준이의 인생도 있는 거였기에 이해를 했다. 요즘도 종종 동준이와 따로 만나 밥을 먹는데 나는 아직도 동준이가 K리그에서 세 번째 안에는 드는 골키퍼라고 생각한다.

풍생고를 함께 다니다가 나는 선문대에 갔고 동준이는 연세대로 가서 대학 때는 함께 맞춰보지 못헸다. 동준이와는 서로 존중을 하던 사이였다. 동준이는 모르겠는데 나는 동준이를 정말 의지하고 믿었다. 그 정도로 동준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준이 달랐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생 수준이었고 대학교 때는 프로 수준이었다. 친구들과도 이야기하는 게 "동준이는 K리그가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골키퍼 중에서도 세 번째 안에는 든다"는 것이다. 같이 해보면 안다. 동준이는 못하는 게 없다. 다 잘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남기일 감독에서 김남일 감독으로 수장이 바뀌었다는 점도 큰 변화였다. 사실 여담이지만 남기일 감독은 성남에서 정말 극강의 수비축구를 하지 않았나.

밖에선 그렇게 보실 수도 있는데 우리는 '수비가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남기일 감독님이 지금 제주에서도 승격을 시키셨는데 사실 수비만 해서는 절대 경기에서 이길 수가 없고 절대 성적을 낼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남기일 감독님도 지도력이 정말 좋으시다. 오히려 남기일 감독님도 뒤에서부터의 빌드업을 엄청 요구하신다. 남기일 감독님이 우리와 함께하실 때도 스리백을 사용하셨고 지금 제주에서도 스리백을 쓰시는데 보통 감독들은 수비수에게 "빨리빨리 하고 쉽게쉽게 해. 최대한 안전하게 해"라고 하신다. 하지만 남기일 감독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셨다.

공을 줄 곳이 없으면 "제치고 나와"라고 하셨다. 상대 공격수를 제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아무 의미 없이 공 차는 걸 싫어하시고 수비수들에게 빌드업을 강조하신다. 그래서 남기일 감독님 축구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가 중앙 수비수 자리다. 수비수가 해야 할 게 진짜 많다. 빌드업도 해야 하고 수비도 해야 한다. 최대한 공격수들을 끌어내서 다른 선수들이 프리 상황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뒤에 있는 수비수들부터도 말이다. 작년에 우리 팀에 득점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수비적으로 단단하게 했을 뿐이지 우리는 감독님의 축구가 수비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뒤에서부터 빌드업을 하는 경기도 정말 많았다. 단지 밖에서는 수비하는 그 장면만 보였던 거다. 0-0 때는 공격적으로 했다. 맨날 이겨도 1-0으로 이기니 수비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한 골을 넣으면 그때부터 잠궜다.

하지만 못하는 팀들은 잠궈도 바로 골을 먹는다.

그렇다. 그만큼 작년에 우리 수비가 좋았다. 동준이부터 해서 채민이 형도 있었다. 수비가 탄탄했다. 어쨌든 말하고 싶은 건 남기일 감독님은 절대 수비 축구를 하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기일 감독과 김남일 감독 중 어떤 감독의 훈련이 더 힘든가?

남기일 감독님 훈련이 훨씬 힘들다. 전체적으로 많이 뛰고 피지컬에 대해서도 강조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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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급 선수"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아직 국가대표팀 명단에 들진 못하고 있다. "국대급"이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선수라면 국가대표의 꿈이 있다. 자신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대표팀에 못간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채워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올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못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팀을 잘 이끌지 않았냐. 잘했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나는 아직 다 못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신 있는 빌드업을 경기장에서 더 보여주고 싶다. 올해는 안일하게 수비를 한 장면이 많았다. 나와 친한 한 친구도 성남 경기를 많이 챙겨보는데 그 친구가 하는 얘기가 "밖에서 봤을 때 올 시즌 네가 너무 안일했다"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이야기에 동의한다. 올해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팀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평소에 인천에서 뛰는 문지환 선수와도 자주 이야기를 한다. 거의 매주 경기가 끝나면 지환이와 이야기를 하고 팀 경기력과 우리 개개인 경기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지환이와 주말에 밥을 먹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몇 시간 동안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축구 이야기만 한다. 사실 대부분의 축구선수가 계속 축구만 해왔기 때문에 의외로 은퇴를 하면 축구가 아닌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축구가 너무 좋다. 은퇴를 하면 지도자를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다른 걸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어렸을 때는 "일지를 쓰라"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쓰기 싫어서 단 한 번도 일지를 쓰지 않았는데 올해 정경호 코치님에게 축구를 배우며 '내가 하고 싶은 축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수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일지를 썼다. 정경호 코치님으로부터 배운 것 중에 '나중에 지도자를 했을 때는 이런 걸 가르쳐야겠다'라는 것이 있으면 일지를 썼다.

벌써 인터뷰 시간이 다 됐다. 길었던 한 시즌이 끝났는데 성남 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한다.

팬들께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올 시즌이 다사다난했는데 팬들께서도 마음이 많이 엎치락뒤치락 하셨을 거다. 그럼에도 끝까지 우리 성남을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내년에는 성남이 더 좋은 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내년에도 성남을 사랑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내 단점을 많이 극복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장점이 사라진 것도 있는 것 같다. 피지컬이 많이 부족해서 이 부분에 대해 노력을 많이 했고 그 와중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경기장에서 더 타이트하게 하기도 했다. 내가 잘하는 뒷공간 커버나 빌드업 부분에서 장점을 더 살리고 단점을 극복해서 내가 잘하는 걸 최고로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성남의 한 시즌처럼 연제운도 정말 다사다난했던 2020시즌을 마쳤다. 20대 중반이라는 다소 젊은 나이에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며 여러 난관에 부딪치기도 했고 성남이 강등 위기에 몰리며 엄청난 압박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던 시즌이기도 했다. 리그 최고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다"며 자신을 향한 평가에 손사래를 친 연제운.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연제운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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