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조성환 감독이 말하는 2020년과 은퇴 번복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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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인천=전영민 기자] 결국 쉽지 않아 보였던 생존이라는 목표를 이뤄낸 인천이지만 올 시즌은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쉽지 않았다. 임완섭 감독과 함께 2020시즌을 시작했던 인천은 시즌 중반 한때 리그 8연패에 빠지며 막다른 골목에 몰리기도 했다. 결국 임완섭 감독과 결별한 인천은 임중용 대행 체재를 거쳐 지난 8월 초 조성환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감독 교체라는 극약 처방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올 시즌 인천은 리그 15라운드까지 단 1승도 챙기지 못하며 리그 최하위에 위치했었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8월 16일 있었던 대구와의 리그 16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승에 성공한 인천은 이후 조성환 감독 지휘 하에 리그 마지막 13경기에서 7승 1무 5패의 성적을 거두며 기적처럼 다시 한 번 K리그1 잔류를 이뤄냈다. 모두가 포기했던 그 순간, 조성환 감독은 침몰 직전이었던 난파선에 부임해 인천의 영웅이 됐다. <스포츠니어스>는 20일 인천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다사다난했던 한 시즌을 뒤로하고 내년 시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조성환 감독을 만나 여러 대화들을 나눠봤다.

반갑습니다 감독님. 시즌이 끝난지 꽤 지났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시즌이 끝난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네요. 마지막 경기 그 다음날부터 바로 또 시작이더라고요. 내년 시즌 구상도 하고 팀 리빌딩 작업도 해야 했습니다. 내년에는 올 시즌과 같은 상황을 안 만들어야 하니 말입니다.

시즌 종료 후에 테스트 현장도 분주히 누비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리스트에 올라있던 선수들이나 22세 이하 자원들 중에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찾기 위해 선수들을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눈에 띄는 선수들은 많이 발견하셨나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시민구단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선순환 시켜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스에서 올라온 선수들만으로는 힘들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22세 이하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위해 창원에서 올라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이 창원이고 가족들은 인천에 있습니다. 창원에 지인들과 친구들이 많아 겸사겸사 내려갔다 왔습니다. 사실 올해 잔류를 이뤄내고 제주에서 준우승 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축하를 받았던 것 같아요. 준우승 당시에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응원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기 위해 창원에 내려갔다 왔습니다.

잔류라는 대단한 성과를 내셨지만 오히려 감독님의 모습에서는 이 성과에 들뜨면 안 된다라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맞습니다. 사실 팬들이 있기 때문에 인천이라는 팀이 있는 건데 올해 팬들이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올해만 이런 상황을 겪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2016년부터 계속 반복된 상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잔류를 했다고 여기에 만족하면 내년에 또 같은 상황을 마주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잠깐은 기쁨을 누려야겠지만 내년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저도 그렇고 선수들도 차분하게 시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 시즌 감독님이 경기 기자회견에서 여러 차례 하셨던 말씀 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기존에 인천에 있던 감독들이 매번 교체되는 상황이 있었다. 이 부분을 생각해봐야 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인천이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현재 박남춘 시장님이나 전달수 대표님, 시 관계자 분들이 구단을 개선하기 위해 애써주시는 점에 대해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시장님이 축구에 대한 열의가 남다르시고 체육회 분들도 우리 인천을 도와주시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해 주시고 계십니다. 전달수 대표님 이하 구단 프런트 직원 분들도 많이 도와주시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클럽하우스 건립 문제에 대해 시장님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 주시겠다”라고 했었는데 올해 착공을 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인천의 기본 인프라가 잘 갖춰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언급을 했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시장님의 의지가 강하시다 보니 빠르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이런 것들이 갖춰지지 않다 보니 선수들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조금 덜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그게 우리가 부진했던 첫 번째 요소라고 보긴 힘들겠죠. 하지만 그런 점도 부진의 요소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기자회견에서 그런 말씀들을 드렸던 건 우리가 전반적으로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조금만 더 하자는 의미였습니다. 물론 감독이 한 팀에서 오래한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감독의 임기를 오래 가져가면서 감독의 색깔을 입히고 팀을 발전시킬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 나오다 보니 안타까운 게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래 있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다 같이 노력을 하고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매년 강등 싸움을 하지 않고, 또 감독과 대표가 바뀌지 않고 축구 철학을 공유해 이 팀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전달수 대표님의 존재가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표님에게 정말 감사하죠. 대표님이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한 시즌을 전쟁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일선에서 싸우는 역할입니다. 반면 대표님은 보급 역할을 해주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그런 역할들을 잘 해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돈이 많다고 해서 다 사비를 쓰는 건 아닙니다. 대표님이 사비를 쓰셨던 건 대표님께서 이 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쏟으신 거라고 저는 비유하고 싶습니다.

많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부분에 대해 대표님께 이야기를 하면 대표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더 요구했을 때 대표님이 응해주기도 하셨고 대표님께서 어떤 점이 필요한지 먼저 생각을 하시고 선수단에 물어보기도 하십니다. 대표님이 이 팀에 필요한 훌륭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않으신가 생각합니다.

보다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인천에 부임하신 후 최영근 코치에게 전술의 상당 부분을 일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국내축구에서 감독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코치에게 권한을 일임하는 건 쉽게 보기 힘든 장면입니다.
우리 최 코치의 장점이 그런 부분입니다. 최영근 코치와 제주에서 6개월간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최영근 코치가 프로에서 오랜 기간 코치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평가절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영근 코치는 여자축구, 고등학교, 일반인들 대상 성인팀 등 여러 팀들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주변 분들로부터 최영근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주에서 같이 하기도 했고요. 내가 전술적인 면을 스케치하면 최영근 코치가 조금 더 디테일하게 색깔을 입힐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믿고 맡겼습니다.

저는 다들 저마다 역할 분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할 분담이 없다고 하면 감독만 있으면 되지 코치는 있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다. 예를 들어 2군 코치는 2군에서 역할을 잘 맡고 있고 그런 점들이 우리 팀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큰 그림을 그리거나 전술을 짤 때도 코치들하고 상의를 합니다. 이 논의를 토대로 최영근 코치와 디테일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수들에게 전술적인 면을 이해시키는데 있어서 최영근 코치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 믿고 맡겼습니다.

사실 감독님 부임 이전 인천은 올 시즌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감독님이 부임하신 이후엔 스리백이 고정됐고 스리백의 주전 선수들 역시 정해졌습니다.
프로 무대에서 (선수들의) 단점을 고치기 위해선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 고쳐지지도 않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팀에 왔을 때 좋은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포백과 스리백을 다 준비했던 팀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오반석, 김성주, 김호남, 아길라르, 양준아까지 경기에 많이 나왔던 선수들 중에 저와 제주에서 함께한 선수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함께한 경험은 없지만 무고사도 있었습니다. 그 조합을 믿고 변화를 주지 않고 갈 수 있었습니다. 선수들의 장점을 조금 더 잘 살리려고 했습니다. 서로의 단점을 커버해줄 수 있는 부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김)준엽이는 공격적 성향이 강한 선수인데 (김)연수는 수비적인 측면에서 커버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선수입니다. 또 초반에는 (김)성주가 경기에 나왔는데 성주가 공격적으로 가면 (오)반석이가 수비적인 능력이 좋으니 커버를 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을 보며 조합을 끌고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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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반석이 제주 시절에는 감독님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까지 승선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엔 제주를 떠나 여러 팀(알와슬, 무앙통, 전북현대)에서 경기에 많이 나서지 못했습니다. 
제가 인천에 부임하기 전에 반석이가 인천으로 왔는데 반석이가 인천으로 임대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우려했던 부분이 ‘전반기에 경기를 많이 나가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상이 있어서 훈련도 많이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석이가 임대를 가서도 부상에 시달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공교롭게 반석이가 임대를 온 이후에 저도 여기에 오게 됐는데 사실 반석이는 많은 훈련보다는 경기와 회복에 중점을 둬야 하는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부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워낙 자기관리를 잘하는 친구라 딱히 주문한 건 없습니다. 제주에서 함께하며 잘 알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부상이 문제였는데 사실 반석이가 부상이 있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훈련을 하지 못하고 경기에 나가야 했는데 본인이 더 치료를 받고 자기관리를 해서 부상을 참고 경기에 나갔습니다. 이 부분이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습니다. 반석이에게 특별히 주문한 건 없습니다. 반석이를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항상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훈련 시간이 많지 않았더라도 믿고 경기에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오반석의 특징 중 하나는 오른발잡이인데 왼쪽 센터백 자리에 주로 서고 왼발도 능숙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왼발잡이 센터백이 희소성이 있다 보니 왼발잡이가 왼쪽 센터백을 보는 경우가 많이 없습니다. 오반석 선수는 왼쪽 센터백과 오른쪽 센터백에 다 설 수 있는 선수입니다. 사실 오른쪽에만 서는 선수가 왼쪽으로 오면 빌드업이나 위치 선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반석이는 제주 시절부터 왼쪽에 섰습니다. 시간이 거듭되며 반석이도 왼쪽 센터백 자리에서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반석이의 그런 능력들이 팀에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잔류에 있어서 주장인 김도혁도 굉장히 큰 공헌을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감독님 부임 전에는 올 시즌에 김도혁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김도혁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따로 주문한 건 특별히 없습니다. 다른 모든 선수들이 그렇듯 김도혁 선수의 장점을 살리고 또 도혁이와 다른 선수들의 조화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김도혁도 많은 이야기가 필요 없는 선수입니다. 자기관리와 멘탈이 좋고 기술까지 좋은 선수입니다. 따로 특별히 주문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경기 양상에 따라 공격적으로 주문을 하거나 “수비적으로 조금 더 해달라”라고 주문할 수는 있었겠지만 더 많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혁이도 경기력이 좋았지만 아길라르와 무고사도 제가 생각했을 때 수비적인 면에서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두 선수가 이전보다 수비 가담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도혁이, (김)준범이, (지)언학이, (송)시우, (문)지환이 등 미드필더 선수들과 윙백 선수들이 좌우로 슬라이딩도 많이 하고 하면서 수비에서 많은 역할을 해줬습니다. 이 선수들이 많이 뛰어줬기에 본인들 경기력도 올라오고 또 자신감도 생겼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이 계시던 제주 시절에도 그랬지만 아길라르의 단점으로 늘 지적됐던 부분이 상대적으로 수비가 아쉽다는 겁니다. 혹여 아길라르의 수비 가담 부족 문제에 대해 다른 인천 선수들이 불만을 표출하지는 않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제주에서 나오고 난 이후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제주에 있을 때도 그런 이야기들이 있긴 했습니다. 팀의 색깔과 관련된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는 선수들이 공을 주고 받고 같이 뛰고 함께 수비를 하고 공격을 하는 그런 축구를 했었는데 아길라르는 공 소유를 많이 하고 템포를 느리게 가져가는 선수였기 때문에 패스 타이밍이 늦어지는 성향이 있었습니다. 또 수비를 많이 하지 않다 보니까 나머지 선수들과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인천에 제가 왔을 때만 해도 팀의 점유율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10초 정도밖에 공을 소유하지 못하고 1분 이상 공을 빼앗으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반에는 버틸 수가 있지만 후반에는 공을 뺏으러 다니며 체력적으로 다운이 될 수밖에 없죠. 후반 60분이나 70분 정도에 문제가 야기될 수 있었죠. 그래서 아길라르에게 조금 프리롤로 면책권을 주고 선수들도 그런 부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다행히 이 선수들이 한 발짝 더 뛰면서 믿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아길라르를 믿었고 이렇게 선수들을 믿고 경기에 내보냈던 게 선수들이 서로 힘을 내게 하는 시너지 효과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인천 입장에서 아길라르만큼이나 중요했던 선수가 무고사입니다. 하지만 시즌 막판 몬테네그로대표팀에서 무고사의 대표팀 차출을 두 번이나 요구하며 사실 인천 입장에선 아찔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무고사가 대표팀에 가지 않으면 최고인데 가게 되면 보내줘야 하는, 제도상 바꿀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무고사가 대표팀에 가지 않은 게 우리 인천으로서는 행운이었습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잃은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코로나19가 없고 무고사가 대표팀에 차출되었다면 그게 맞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게 제 큰 바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고 무고사가 대표팀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고사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넘치는 선수입니다. 무고사의 그런 점들이 팀을 건강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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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사, 아길라르와 평소에 대화는 자주 나누시는 편이신가요?
경기 전날이나 그럴 때 두 선수에게 “우리가 이런 전략으로 이번 경기를 가려고 하는데 너희들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이야기를 하며 소통을 했습니다. 두 선수가 본인들의 색깔을 고수할 수 있는데 제가 요청을 한 부분에 대해 들어줬고 그런 것들이 좋았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하면 두 선수가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감독님이 요구하신 부분들을 하겠습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감독이 요구하는 부분을 믿고 따라오려고 했던 두 선수의 모습을 높이 평가합니다.

지금까지는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했는데 감독님의 선수 시절과 관련해서도 여쭙고 싶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2001년을 끝으로 은퇴를 하셨다가 2003년에 전북에서 플레잉코치로 무려 31경기에 나서셨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이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싶습니다.
부천SK에서 2001년을 끝으로 은퇴하고 2002년에 코치 신분으로 전북에 갔습니다. 사실 코치로 가며 많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더 못하는 것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떨어져서 선수 생활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구단이 방출해서 선수 생활을 더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선수로서 절정기였는데 은사님이 코치직을 권유해서 일찍 선수 생활을 접게 됐습니다. 팀에서도 선수 생활을 더 해주길 바랐는데 어렵게 지도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쉽게 선수 생활을 접다 보니 선수를 더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더군다나 2002년에 월드컵 붐이 일지 않았습니까. 2002 월드컵을 겪으며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은퇴를 한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은퇴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은퇴를 했기에 다시 선수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제 의사가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선수로 복귀하게 되셨나요?
우리가 2003시즌을 준비하면서 터키로 전지훈련을 갔습니다. 그때 국내에서 24~25명의 선수가 전지훈련에 갔고 브라질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합류하며 총 27~28명의 선수들이 전지훈련장에 모였습니다. 터키에 가고 나서 한 이틀 후에 A팀과 B팀 두 팀의 연습 경기가 잡혔습니다. 그런데 재활을 하는 부상자들이 있어서 필드 플레이어를 빼면 딱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최소 정원 숫자 정도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최진철 선수가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하며 독일로 수술을 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돼서 더더욱 선수 숫자가 안 나왔습니다. 또 지금 한남대 코치로 있는 박규선 선수가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죠. 박규선이 있던 오른쪽 풀백 자리에 빈 자리가 생기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맞물렸습니다.

사실 전북에서 1년 동안(2002년) 코치로 있으면서 선수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여름 이적시장 때를 포함해 몇 차례 감독님에게 현역 복귀에 대한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 됐죠. 제가 선수를 하게 되면 전북이 부천SK에 이적료를 물어줘야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02년 여름에는 선수 복귀가 무산됐는데 2003 시즌을 준비하며 진철이가 부상을 당했고 필드 플레이어가 19명밖에 안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때는 한창 체력 관리도 잘했던 때였습니다. 결국 연습 경기가 두 경기 있었는데 인원이 부족하니까 제가 들어가서 자리를 메웠죠.

그때 중앙 수비수를 보기도 했고 풀백 자리에 서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유럽 팀들의 스카우터들이 우스갯소리로 “저 선수는 누구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그만큼 컨디션이 괜찮았던 거 아니겠습니까. 감독님과 구단에서 “성환이가 반 시즌 정도만 소화하면 올해 팀이 할 수 있겠다”라는 판단을 내리셨고 그렇게 2003년에 플레잉코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플레잉코치임에도 2003년도에 굉장히 많은 경기(리그 31경기)를 뛰셨습니다.
그렇죠. 2002년 한 해를 쉬었는데 한 달 반에서 두 달을 준비하고 3월에 바로 시즌에 들어갔습니다. 시즌의 절반 정도만 소화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35경기 중에 31경기인가 32경기를 뛰었죠.

그러나 2003시즌을 끝으로는 축구화를 벗으셨습니다.
그렇죠. 사실 플레잉코치가 힘들더라고요. 31~32경기를 뛰면서 잘하는 경기도 있고 못했던 경기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잘하는 경기를 끝내고 나서는 선수들에게도 가도, 코칭스태프들이 있는 미팅 룸에 들어가서도 떳떳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1년을 쉬다 보니 경기 감각이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잔부상도 있다 보니 경기력이 많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기거나 잘할 때야 좋지만 경기력이 안 좋을 땐 선수들에게 가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코칭스태프가 있는 미팅룸에 가기도 미안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원래는 한 시즌을 더 선수로 하고 싶었습니다. 감독님에게 “코치와 선수 둘 다 하기에는 미안하니 코치가 아닌 선수를 해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이 “코치를 해라”라고 만류하셨고 그렇게 1년 잠깐 플레잉코치를 하고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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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은퇴 이후 몸 관리에 신경쓰셨던 이유가 선수 복귀를 염두에 두고 그러셨던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운동을 좋아했고 당시에 워낙 체력이 좋기도 했습니다. 술 담배를 안 했어요. 그렇게 관리를 하다 보니 1년을 쉬었지만 노화 속도가 더뎠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당시에 체력적으로는 정말 좋았습니다. 부상도 없었고 1년을 쉬더라도 그냥 쉰 게 아니라 훈련 때 선수가 한 명 부족하면 들어가서 서브 역할도 하고 했었죠.

그냥 넋 놓고 쉰 게 아니라 근력 운동도 하고 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운동으로 풀고 했었습니다. 하고 싶은 열망이 간절하니 그게 이루어지더군요. 솔직히 나는 2001년을 기점으로 제 선수 생활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2002년에 월드컵 바람이 부니 정말 축구를 하고 싶어죽겠더라고요. 그런데 2003 시즌을 준비하며 전지훈련에서 자연스럽게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때 전북은 지금 전북과 위상이 상당히 달랐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어렵고 열악했죠. 2005년에 최강희 감독님이 부임하시면서 차츰 발전을 해서 지금의 전북현대가 된 겁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지방에 있고 투자 규모나 인프라도 수도권에 있는 팀들보다는 많이 열악했습니다. 트럭과 버스를 만드는 현대 상용차 공장 옆에 현대차 직원 분들 사택이 있었는데 사택 위층 라인을 클럽하우스로 썼었죠. 클럽하우스나 훈련장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전북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겁니다.

충분히 뛸 수 있는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셨기 때문에 지금 베테랑 선수들을 볼 때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나실 것 같습니다.
팀에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베테랑 선수들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 팀에는 어린 선수들, 중간 선수들, 고참 선수들이 있습니다. 모든 선수들의 조화가 잘 맞아떨어져야 경기력이나 성적이 나옵니다. 젊은 선수들만 있는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나이 있는 고참들만 있어도 잘 되는 게 아닙니다. 조화라고 생각합니다.

원팀의 중요한 요소는 역시 단합인데 그런 면에서 감독님께선 규율을 강하게 가져가시는지, 아니면 선수들에게 부드럽게 하시는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사실 지도자 초창기 때는 원칙만 고수했었습니다. 누군가 저를 두고 “FM이다”라고 할 정도로 원칙만 고수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 흐름에 쫓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게 됐습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성을 가지고, 또 유연성을 발휘하며 원칙을 지킬 수 있는 그런 규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선수들이 생각할 때는 조금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편을 감수함으로 인해 팀이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선수도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제 기준에서 봤을 때 필요해서 규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가 팀을 위해서 규율을 만든다는 걸 선수들도 이해를 해줘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팀이 조금 더 건강해지고 좋은 위치에 가고 목표를 이룰 수 있는데 있어서 규율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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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올 시즌 인천 선수들이 기자회견에서 감독님의 카리스마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꽤나 많습니다. 저 역시 감독님과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 앉으니 카리스마가 느껴지십니다.
선수들 본인들도 느끼는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아무리 이야기를 하더라도 선수들 본인들이 저를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죠. 선수들이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러나?(웃음). 본인들이 잘못한 게 많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웃음). 평소에 선수들과 소통을 많이 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정말 세심하게 소통을 하고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소통은 선수 운영의 키워드 중 하나기 때문에 선수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처음 저를 대하는 분들도 “다가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저 역시 편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긴 합니다. 그래도 조금 더 얼굴을 트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보여지는 것만큼 대화하기 불편한 사람도 아닙니다. 모르겠습니다. 지도자를 하다 보면 기자님께서 말씀하신 카리스마가 없는 거보단 있는 게 좋겠죠. 편하면서도 적절한 그런 것들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선수들이 불편하게 생각하는데 저도 다가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선수들도 알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이 부임하신 후 눈에 띄는 특징은 현장에 정장보다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오신다는 겁니다.
제주에서는 정장을 많이 입었습니다. 음. 생각의 차이인 것 같아요. 여기선 팀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정장을 입었다고 해서 선수들과 함께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조금 어려운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선수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비를 피해 벤치에 앉아 있는 성격도 아닙니다.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트레이닝복을 입었습니다. 내년에도 그럴 생각입니다. 시즌 초나 시즌 말에 팬들께 인사드리는 자리라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트레이닝복을 입었을 때 선수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편안합니다.

여담이지만 트레이닝 복을 입으셨을 때 요즘 말로 ‘핏’이 좋으십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원래 골프를 좋아하지만 지금 팀 사정이나 여러가지 정황상 골프를 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풉니다. 하지만 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하루가 피곤해져 일에 집중을 못하다 보니 요즘은 운동을 많이 못합니다. 체력적인 부분도 그렇고 생각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내서라도, 건강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여건만 되고 시간만 되면 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인천에 있는 축구 동호회에 나가고 싶기도 합니다. 운동을 많이 하려고 하지만 코로나19 상황도 있기 때문에 방역 지침을 준수하며 자기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건강도 지키고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얼마전 인천 구단 자체 라이브 방송에서 팬들과 소통하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는 그런 걸 정말 싫어합니다. 분명히 팬들과 소통을 해야 하는 건 알지만 제 개인적인 성향 때문에 싫어하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자리는 마다하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거나 전화로 감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자리를 통해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또 소통해야 합니다. 불편한 자리지만 기꺼이 응했습니다. ‘당연히 방송에 나가야 한다’라고 생각했죠. 그 자리를 빌어서 팬들에게 다시 감사의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팬들과 같이 하는 자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되게 편하고 좋더라고요.

ⓒ 한국프로축구연맹

다시 올 시즌 이야기로 돌아와보고 싶습니다. 감독님께선 올 시즌 ‘잔류를 할 수 있겠다’라고 언제 확신을 하시게 됐나요?
선수들도 다 다를 겁니다. 조직 구성원들 중에서는 마지막 홈경기였던 부산전을 이기고 잔류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파이널 라운드에 돌입하기 전에 최대한 승점 차를 좁히는 게 1차적 목표였습니다. 잔류의 확신은 성남전 6-0 대승 이후 가졌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나중에 다득점 1점을 가지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승점 차를 좁혀놨으니 승점은 따라갈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다득점으로는 쫓아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성남전에서 승점도 따고 다득점이라는 결과도 얻었습니다. 순위도 바뀌었죠. 성남전에서 잔류의 희망과 가능성을 많이 가지게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홈 마지막 경기였던 부산전에선 굉장히 많은 관중들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올 시즌이 무관중이 아니라 유관중 경기였으면 우리가 적어도 마지막까지 이렇게 강등권 싸움을 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부진할 때 홈팬들이 따끔한 질책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팀에 대한 애정이고 관심이고 사랑입니다. 팬들이 걸개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부산전은 저 역시도 1주일간 경기를 준비하며 정말 힘든 한 주를 보냈습니다. 만약 부산에 지면 홈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강등이라는 수모를 함께 겪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길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관중 경기였으면 부산전에서 승리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홈팬들의 응원이 많은 힘이 됐습니다.

시즌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아직 섣부른 질문일 수는 있습니다만 혹시 감독님께선 내년 시즌 어느 정도의 목표를 잡고 시즌을 준비하실 계획이십니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목표를 크게 잡아야 합니다. 물론 가능성 있는 목표여야죠. 현실성이 없는 목표는 목표가 아닙니다. 현실 가능한 선에서 목표를 크게 잡아야 그에 버금 가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제 자신을 독려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과 잘 구성을 하고 이번 겨울에 제대로 한 번 땀을 흘려본다고 하면 파이널A라는 목표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팬 여러분들께서도 마지막 다섯 경기를 편하게 보시고, 우리 선수들도 부담 없이 축구를 하는 그런 상황을 만들었으면 하는 게 제 개인적인 목표고 바람입니다.

올 한 해 고생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천 팬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로 모든 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이 되어서 내년 시즌에는 팬들과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 시즌 우리 선수들에게 많은 어려움과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팬들께서도 인천을 바라보며 안타깝고 힘들어하셨을 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우리가 조금 더 잘 준비를 해서 힘든 시간을 만들지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오늘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독님.
사실 잔류라는 목표를 이뤄내긴 했지만 축하받는 게 조금 그렇긴 하더라고요. 지금은 수고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축하는 나중에 우리가 파이널A나 조금 더 좋은 위치에 갔을 때 받고 싶습니다.

선수들과 팬들, 그리고 구단 프런트마저 포기했던 그 순간 조성환 감독은 인천에 부임해 결국 생존이라는 목표를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조성환 감독은 겸손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성환 감독은 잔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들떠선 안된다. 축하는 나중에 받겠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과연 다시 한 번 극적으로 K리그1에 생존한 인천은 내년 시즌에는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조성환 감독과 인천의 2021시즌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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