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차기석 “마음의 빚, 다 갚기 전엔 무너질 수 없어”


차기석 코치가 스포츠니어스와 단독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스포츠니어스

[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한 전직 축구선수의 소식이 최근 SNS를 통해 전해졌다. 2000년대 초반 청소년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한국 축구 대표팀 골문을 10년 이상은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그는 이후 만성 신부전증으로 신장 이식을 받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후 K3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최근 SNS를 통해 알려진 그의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다. 그가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소식이었다. 그의 이름은 차기석이다.

차기석은 만성 신부전증, 버거씨병, 다발성 근염 등이 겹쳐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소식과 함께 발가락이 괴사돼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전해졌다. 축구팬들과 동료들, K리그 심판, 프로축구연맹 등에서 십시일반 성금을 모았고 차기석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평소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꺼리던 차기석은 “이들에게 꼭 고마움을 전해야 한다”며 지난 14일 <스포츠니어스>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그의 자택으로 향하자 한 달 전 양 다리를 절단한 차기석은 휠체어를 탄 채 용기를 내 얼굴을 마주했다.

차기석 코치는 양 다리를 절단한 뒤 재활에 몰두하고 있다. ⓒ스포츠니어스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이렇게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는 건 진짜 오랜 만이네요. 원래 인터뷰 기피증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겁나해서 현역 시절에도 인터뷰를 잘 안 했어요. 성격이 굳이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해서 제 이름이 기사로 올라가는 것도 별로 반기지 않았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수술하고 재활하는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누구 앞에 나타나는 게 싫어서 숨어 다니고 그랬죠. 그런데 이렇게 용기를 내 휠체어에 탄 제 모습을 오늘 인터뷰로 공개하게 됐네요.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뭐라고 해야하죠? 전 축구선수? 전 축구코치라고 해야 하나요? 정확한 제 직업을 모르겠어요. 그래도 전 축구코치가 낫겠네요. 다시 인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축구코치 차기석입니다. 제 소식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고 정확한 제 상황도 말씀드리고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고자 이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요새 어떻게 지내시나요.
두 다리를 절단했고 계속 병원에 있다가 한 달 전에 퇴원을 했습니다. 주로 요새는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봐요. 거의 누워 있죠. 그러다가 메디슨볼로 운동도 좀 하고 튜브 운동도 좀 합니다. 거의 아기들이 어렸을 때 누워 있다가 뒤집기를 하는 수준이라고 보시면 돼요. 아직 의족을 달지는 못했습니다. 수술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요새는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고 있어요. 이틀에 한 번씩 여기 경기도 남양주 집에서 회기동에 있는 경희의료원으로 갑니다. 투석도 하고 절단한 다리 부위도 소독하고 있어요. 절단 부위가 잘 아무는지 확인하는 단계죠.

정확히 어떤 병명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갑자기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고 해 놀랐습니다.
작년 6월에 처음 아팠어요. 신장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한 달 뒤에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간도 안 좋다고 하는 거예요. 잘 걷지도 못하고 넘어지는 상황이었는데 포항에 계신 부모님께 6~7개월 동안 말씀드리지 않고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죠. 부모님이 나중에 알고 나신 뒤에는 어느 정도 회복도 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팔 혈관이 막혀서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발도 너무 아픈 거예요. CT와 초음파 촬영을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 발에 물집이 잡히고 통증이 극심해 지더라고요. 버거씨병이라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생소하지 않은 병명입니다.
발에 작은 상처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발단이 됐어요. 상처가 나면 피가 바깥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이 병은 자꾸 피가 몸쪽으로 도는 병이에요. 처음에는 발가락부터 시작해서 발등과 발목, 아킬레스건까지 다 괴사가 진행됐고 결국 양쪽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다발성 근염이라는 희귀병도 앓고 있습니다. 다발성 근염은 전신적인 결합조직 질환으로 근육의 염증과 퇴행성 변화를 특징으로 합니다. 결과적으로 전신적으로 쇠약해지고 근육의 위축이 생깁니다.

차기석 코치는 현역 시절 대한민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골키퍼였다. ⓒ부천FC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축구선수에게 다리 절단은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감히 그 심정을 상상도 할 수 없네요.
처음에는 발목까지만 절단하는 줄 알았는데 그쪽으로 피가 안 통했습니다. 피가 안 통하면 잘라봐야 의미가 없거든요. 다시 잘라야 해요. 그래서 무릎 밑까지 양쪽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는데 수술할 때 많이 위험했어요. 제가 2005년에 신장이식을 해면서 배를 갈랐는데 그때 통증은 가려운 수준의 통증이었죠. 이번에 투병을 하면서 통증이 너무 심해서 쇼크가 왔어요. 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러면서 심장에 스텐트 두 개를 박았습니다. 앞으로 스텐트를 두 개 더 박아야 하는데 지금은 몸이 수술을 받을 상황이 아니라 미뤄놓았어요.

정말 고생이 많으셨네요.
폐도 안 좋고 폐렴이 와서 다리 절단 수술을 할 때 정말 위험했습니다. 왼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하고 오른쪽 다리 절단 수술을 하는데 수술 일정이 세 번이나 미뤄졌어요. 수술 날짜를 잡아놨는데 폐렴이 와서 수술을 미루고 심장이 안 좋아서 또 미뤘죠. 혈관이 석회화돼서 부러졌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지금 이렇게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인터뷰하는 것도 믿기지 않아요. 병원에 있을 땐 다시 이렇게 집으로 온다는 걸 상상도 못 해봤거든요. 이제 겨우 회복 단계입니다. 퇴원한지 이제 막 한 달 정도 됐어요.

몸은 많이 좋아지셨나요.
처음 3개월 동안은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어요. 다 토했거든요. 그런데 병원장님께서 “수술하기 전 며칠만이라도 집에 가서 맛있는 걸 좀 먹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집에 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집에서 밥을 잘 먹으니 몸에 좋은 영향이 많이 간 것 같더라고요. 수치도 올라가서 수술하고 추석 때 다시 퇴원해서 집에서 수술 준비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제는 병원은 이틀에 한 번만 가요. 많이 나아진 거죠.

2005년 만성 신부전증으로 신장이식 수술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지금의 투병이 과거 병력과 관계가 있는 건가요.
연관성이 있을 겁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운이 참 없죠. 저한테 온 이번 희귀병 두 가지는 남성보다는 여성 분들한테 더 자주 오는 희귀병이래요. 여성 분이 70%의 비율이랍니다. 그런데 제가 걸렸어요. 저한테 여성 호르몬이 많은가봐요. 고등학교 때 같이 운동했던 친구 중에는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에 폐암 수술을 받은 친구도 있어요. 특별히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정말 신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지난 6월 SNS를 통해 투병 사실이 알려졌고 많은 축구 팬들과 동료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았습니다. 알고 계셨나요.
그때가 제가 심장에 스텐트를 박고 의식이 없을 때였어요. 사흘 동안 사경을 헤맸습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어머니와 친구가 이야기를 해줘서 알았어요. 심장 박동수가 40 아래로 내려가면 기계를 달거나 뇌사 판정을 내려야 한대요. 그런데 제가 그 지경까지 가서 어머니가 장기기증 사인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날 밤까지만 지켜보자고 했는데 겨우 깨어났습니다. 그때 SNS를 통해 저를 돕겠다는 고마운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기사로도 나왔어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든 과정을 거치셨네요.
괴사 통증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수 없이 썼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웠거든요. 나중에는 모르핀도 안 듣더라고요. 이를 계속 악 물다보니까 치아가 8개나 부러졌어요. 너무 아파서 우는데 어머니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옆에서 괴로워하셨죠.

절단 장애를 갖게 되는 분들은 이걸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갑자기 사고로 다리를 절단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는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발가락 세 개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후에 발목까지 절단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는 무릎 밑에까지 절단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건 정말 못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준비할 시간도 있었고 다리를 절단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있었죠. 저는 제일 싫어하는 게 어떤 일도 못 찾고 빈둥대는 사람들이에요.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한다고 믿었어요. 물론 양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의 마음은 지금도 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죠.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다리가 이렇게 안 됐으면 절대 인터뷰 안 했을 겁니다. 이런 걸 보여주기가 싫고 이런 걸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더더욱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장애를 받아들여야 하고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죠. 그래서 마음을 열게 됐어요.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많은 생각을 합니다. 책도 내보고 강의도 해보자. 쉬운 무대가 아니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장애인 올림픽에도 나가보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래 농구도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스포츠가 없어요. 다리가 이렇게 되고도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니 그 전에 걱정했던 건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차기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아시안컵 명단에 들었고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PSV 에인트호벤에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중계 방송 화면 캡처

책을 쓰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제가 학창시절 축구를 하면서부터도 일이 많았어요. 포철중학교에서 서울로 전학 오는 과정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어릴 때부터 대표팀에 오가니 탄탄대로를 걸었겠구나라면서 저를 엘리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잡초처럼 올라갔어요. 원래 대표팀 주전급 선수들은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만 딱 소집이 되고 테스트 때는 안 오지만 저는 모든 대표팀 소집을 다 갔어요. 가서 실수하고 그러면 중학교 때 감독님한테 몇 대 맞고 혼나기도 많이 했죠. 감독님이 직접 태워서 숙소로 오는 내내 졸려 죽겠는데 좋은 말로 피드백, 안 좋은 말로 잔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무식하게 운동한 적도 많아요. 선수 시절에 잡초 같았던 이야기를 책에 담고 싶어요.

요새 어린 친구들은 차기석 코치님의 현역 시절을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어떤 선수였는지 소개 좀 해주세요.
별명이 괴물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경기에 나가면 교장선생님이 저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경기 결과를 직접 확인할 정도였어요. 어디 시합을 하러 가면 일단 선수들이 다 저를 보고 쫄았죠. 한 번은 고등학교 때 어느 대회에 나가 4강전을 하는데 경기 전에 화장실에서 상대편 주장을 만났어요. 우리 팀 1학년 한 명하고 상대팀 1학년 한 명, 이렇게 넷이 화장실에서 마주쳤고 분위기도 싸늘했죠. 그런데 나중에 상대팀 1학년이 우리 1학년한테 한 이야기가 “그날 화장실에서 기석이 형 보고 포스에 눌려서 졌다고 생각했다”는 거였어요. 그때 제가 무게감이 좀 있었거든요.

저도 그 시절 축구를 좋아해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누가 보면 저한테 ‘재능충’이라고 해요. 재능이 있었다는 건 인정하는데 저는 노력도 많이 했고 운도 좋았어요. 제가 성인 무대에서 기대 만큼 활약하지 못했지만 저는 현역 시절을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포기해 본 적이 없거든요. 성공의 기준이 도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과정에서 포기해 본 적이 없으니 성공한 선수였죠.

현역 시절 얼마나 어마어마한 선수였는지 본인 입으로 말씀 좀 해주세요.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기에 출장했어요. 우리 팀은 제가 못하면 안 되는 팀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체고를 다녔는데 우리 팀 전력이 약했어요. 제가 경기에서 한 골 먹으면 지는 거고 한 골도 먹지 않고 0-0으로 승부차기에 가면 이긴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죠. 그래서 그 한 골이 중요했고 압박감도 컸어요. 그리고 그때는 못하면 정말 맞아죽으니까 더 열심히 했죠. 한 골 먹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죽기살기로 막았어요. 한 번 막고 중심이 무너져 있어서 팔이 안 나가면 얼굴로도 막고 그랬어요.

차세대 대표팀 골키퍼로 많은 기대를 받았잖아요. 당시 활약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갈 때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우리가 16년 만에 우승을 했어요. 양동현, 이강진, 백승민 등이 잘했죠. 지금 생각해 보니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늙어서 다 은퇴를 했네요. 그때 윤덕여 감독님이 팀을 이끌고 우승했는데 제가 긴장을 해서 껌을 씹고 있었거든요. 축구하면서 처음 경험한 우승이었는데 우승 세리머니하고 좋아하는데 전광판에 제 이름이 떴어요. 저는 ‘골키퍼상인가보다’하고 긴장해서 껌도 못 뱉고 질겅질겅 껌을 씹으면서 상을 받으러 올라갔어요. 그런데 그게 대회 MVP였어요. 그게 중계로 나가서 건방지다는 소리를 좀 들었죠. 지금와서 오해를 풀자면 처음 해본 우승이라 긴장해서 그랬던 겁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인 대표팀에까지 뽑혔어요. 그때가 2004년 아시안컵 때였죠.

고등학교 3학년 골키퍼를 성인 대표팀에 뽑았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네요. 단순히 평가전도 아니고 아시안컵이었는데요.
그때 기량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형들을 보면서도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 생각해도 웃긴 건 제가 본프레레 감독을 찾아가서 면담을 요청했다는 거죠. 대표팀에는 (이)운재 형하고 (김)용대 형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인 제가 “어떻게 하면 경기에 나갈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한 경기만 내보내주면 잘할 수 있었는데 감독님께서는 “아직 어리니까 더 기다리라”고 하셨죠. 저는 그게 불만일 정도로 욕심이 많았어요.

정말 당돌한 선수였네요.
그때 (차)두리 형하고 같은 방을 썼는데 주로 경기에 나가는 형들 위주로 회복 훈련을 해서 저는 경기에 안 나가니까 살만 찌는 거예요. 그래서 혼자 나가서 매일 줄넘기하고 그랬어요. 그 대회에서는 경기에는 못 나가고 운동만 하다가 우리가 8강에서 이란을 만나 3-4로 졌어요. 진규 형이 이란에 손가락으로 욕을 날린 경기였죠. 제가 그 바로 앞에 있었는데 ‘저 형이 이제 정말 미쳤구나’ 싶었어요.

저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2005년 세계청소년선수권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주전 골키퍼였잖아요.
그때 19세 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우승했어요. (김)진규형, (김)승용이 형, (박)주영이 형, (이)근호 형, (백)지훈이 형 사이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그때 제일 어렸던 게 (신)영록이였고 저도 형들 사이에 껴 있었죠. 그때 아시아에서 우승하고 네덜란드에 가서 명승부가 하나 만들어졌잖아요. 제가 이상한 짓을 하나 하는 바람에 나이지리아를 간신히 이겼어요. 그때 진짜 간절하게 뛰었고 엄청 울었어요.

그 나이지리아전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실수로 한 골을 먼저 내준 뒤 후반 종료 직전 박주영과 백지훈이 연속골을 넣어 이겼던 경기잖아요. 군대에서 새벽에 봤습니다.
우리 조가 워낙 힘들었어요. 브라질과 스위스, 나이지리아가 한 조였는데 스위스에는 필립 센데로스와 요한 주루가 있었고 나이지리아에는 존 오비 미켈이 있었습니다. 우리 앞 경기였던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에서는 누가 나와서 엄청 잘했는데 그게 리오넬 메시였어요. 그때 제가 결정적인 실수를 했지만 동료들이 극적인 골을 만들어 내서 겨우 살았죠.

차기석은 2005년 청소년월드컵 시절 나이지리아전 명승부의 주역이기도 했다. ⓒ중계 방송 화면 캡처

요새 자주 만나는 친구 있나요?
이강진을 자주 만나요. 이름을 이우진으로 바꿨죠. 집이 바로 옆이라 놀러와요. 1986년생 모임도 있고 형들과도 가끔씩 연락해요. 지도자가 된 진규형하고도 가끔 연락을 주고 받아요.

김진규 코치는 요새 살이 많이 쪘던데요.
관리를 안 하니까 그렇죠.

요새 축구는 자주 보시나요?
지금은 프리미어리그가 하는 지도 잘 몰라요. 지금은 축구에 관해서는 좀 쉬고 싶어요. 제가 작년 6월부터 아팠는데 그 전에는 부천FC 유소년 팀에 있었거든요. 골키퍼 육성 시스템을 팀에 구축하고 싶어서 많이 노력했는데 안 됐어요. 결국에는 그걸 성공하지 못하고 나와서 아쉬워요. 12세 선수부터 18세 선수까지 골키퍼 합동 훈련도 정기적으로 하고 유소년 선수들이 프로 선수들의 훈련을 참관하는 것도 추진했는데 결국 딱 한 번 성사시키고 이후에는 정착이 안 됐습니다. 구축하고 싶은 시스템을 달성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있었고 지금은 축구에 관해서는 잠시 쉬고 있어요.

몸이 다소 불편해졌지만 그래도 축구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골키퍼 코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이론을 전수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훈련 때 선수들에게 공을 차주고 하는 건 동료들이 할 수도 있어요. 유소년들을 지도하면서 풀리지 않는 숙제도 있었고 뭔가 만족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어요. 지금은 몸이 불편해졌지만 선수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역할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특히나 어린 선수들의 심리 치료에 관심이 많아요.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 연세대학교와 부천FC 유소년 팀에서 지도자로 활약한 경험도 책에 담으면 좋겠네요.
무거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최근에 운동선수가 고인이 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잖아요.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가 갑니다. 저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안 해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제가 제자들에게 뱉은 말 때문이에요. 제가 연세대 시절 선수들에게 늘 “포기하지 마라. 포기하면 그 순간 끝이다”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때 제자들이 저한테 이야기해요. “선생님, 그때 그 말 지켜주세요. 포기하지 마세요”라고요. 제가 그 말을 지키지 못하면 부끄러워지잖아요. 제가 원래 말을 뱉어놓고 지키는 스타일인데 그러다보니 책을 쓰게 되면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면서 저도 그 말을 꼭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특별히 생각하고 계시는 강의도 있으신가요.
제가 원래 대학원을 다녔었어요. 스포츠심리학에 1,2년 정도 깊게 빠진 적이 있는데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어린 선수들에게 운동 심리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프로 선수들은 심리적인 압박감이 정말 큰데 제가 그런 분야에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청소년 대회에 나가면 선수들이 그렇게 잘하는데 1년만 지나면 세계 무대와 격차가 생겨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노는 언니’에서 박세리 감독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외국인 감독들은 완성이 될 때까지 선수를 기다려주는데 우리나라는 ‘지금’과 ‘빨리’를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이 빨리 진다”고 표현을 했는데 거기에 저도 공감을 합니다. 선수들의 심리를 치료하는 쪽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요.

누구보다도 차기석 코치가 하는 말이라면 선수들에게 더 큰 공감이 되겠군요.
저는 고등학교 때 딱 이틀을 쉬었어요. 대표팀 경기가 끝난 뒤 공항에 도착하면 학교 축구부 감독님이 공항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바로 태우고 효창으로 가서 서울시 대회에 나가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선수가 더 성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수들의 심리 치료를 돕고 싶어요. 우리나라에는 이런 전문가가 아직 없고 골키퍼 심리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도 부족합니다. 큰 대회에서 실수를 하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달래주는 정도잖아요.

지금껏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감이 가네요.
프로에서는 경기력이 부족하면 돈을 못 받거나 경기에 못 나가면 그만이지만 어린 선수들은 한 번 실수를 하면 애들 눈치 보고 부모님들 눈치보고 감독님한테는 맞기도 합니다. 이런 걸 어루만져줄 사람이 필요한데 제가 그런 쪽으로 공부를 해서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역시나 제일 큰 꿈은 장애인 올림픽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차기석의 투병 이후 많은 이들이 이렇게 응원을 보냈다. ⓒ프로축구연맹

혹시 생각하고 있는 종목이 있으신가요.
아직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지식은 많이 없어요. 그런데 좀 찾아보니 축구는 시각 장애인 분들이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고 원래는 농구나 배구 쪽으로 생각해 봤는데 영상을 검색해 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닌 거예요. 아직은 휠체어를 끄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좀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펜싱은 어떨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휠체어 펜싱 종목이 있더라고요.

차기석 코치님 피지컬이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그런가요. 요새 심심하면 휠체어 펜싱 영상을 자주 찾아보고 있어요. 자꾸 보다보니 저도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제가 희망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해서 살다보면 누군가 저를 보면서 또 희망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도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으니 낫다고 생각해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무기력증이 심한데 이걸 극복할 수 있으려면 그래도 뭔가 목표를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생의 목표가 새롭게 생겼군요.
저는 다리를 절단하고 나서 목욕을 한 번도 못했어요. 두려웠습니다. 가슴에도 관이 연결돼 있고 다리도 이러니 걷지도 못해서 목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목욕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후부터는 제가 장애인들이 쓸 수 있는 목욕 장비를 검색해서 찾기 시작했어요. 장비를 갖춘 이후에는 ‘이렇게 이렇게 목욕을 해야겠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반복했고 결국 목욕에 성공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도 자꾸 뭔가를 해야겠다고 목표를 정하면 해낼 수 있는데 단지 그게 두려운 거였어요. 요즘은 무릎을 꿇고 섭니다. ‘아, 이게 되는구나. 자꾸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머니도 그 모습을 보고 놀라셨어요.

투병하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응원을 보냈어요. 이런 응원이 힘이 됐나요?
물론이죠. 처음에는 초등학교 동창이 팔찌를 제작해서 선수들에게 나눠주면서 저를 위해 기부해 달라고 시작했어요. 병원비가 워낙 많이 드는데 혼자 힘으로는 도울 수 없으니까 제 소식을 주변에 더 알리자고 해서 시작한 일이죠. 이후에 제 투병 사실이 많이 알려져서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이건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너무 감동이었어요. 모르시는 분들이 저에게 후원금을 정말 많이 보내주셨어요. 딱 봐도 어린 친구들 같은데 5천 원씩, 1만 원씩 보내주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어떤 분은 지금도 일주일에 꼭 3~5만원 씩을 보내줘요. 그 분을 언젠가는 한 번 뵙고 싶어요. K리그 서포터스도 후원금을 보내주셨어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한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이다보니 힘들면 안 좋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런 안 좋은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많은 빚을 져 놓고 세상을 등지고 가는 건 말이 안 되죠. 제가 빨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그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안 좋은 생각은 절대 하지도 못하죠.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절 응원하고 있으니 반드시 이겨내야 해요.

아직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이겨내고 있으셔서 감사드립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을 두 시간에 한 번씩 먹어도 계속 아팠어요. 너무 아파서 누울 수도 없이 사흘 동안 앉아서 잠도 못자고 고통스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까’ 생각했어요. 정말 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를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어요. 저에게는 생명의 은인 같은 분들이죠. 언젠가는 그 분들에게 다 갚아야 해요. 지금도 저에게 후원해 주신 분들의 이름을 다 가지고 있어요.

존경스럽습니다.
제가 아까 말한 것처럼 말을 뱉고 나서 지키는 스타일이에요. 책이건 강연이건 제가 수입을 얻으면 반은 무조건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서 후원하고 싶어요. 이번에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누군가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아프신 분들이 무기력하게 집에서만 누워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검색해 보니 다리 절단 장애가 있어도 의족으로 된 스키도 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의족이 1억 5천만 원이래요. 일단 그건 나중에 하더라도 좀 더 장비가 저렴한 하계 스포츠부터 해보려고요. 자꾸 도전할 거고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차기석의 현역 시절 모습. ⓒ부천FC

요새 인생의 재미나 활력이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사실 재미있을 게 없죠. 삶의 목적도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다리가 어느 날 이렇게 됐는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상일 수는 없어요. 그런데 행복이라는 게 별 게 있나 싶기도 해요. 주변에 “너는 언제 가장 길게 행복했어?”라고 물어보면 “잠깐 잠깐 행복했어요”라고 답하더라고요. 행복은 잠깐잠깐 오는 거 같아요. 축구를 하면서도 오늘 우승하면 세상을 다 가진 거처럼 행복했는데 다음 날이면 다시 다음 우승을 위해 준비해야 해요. 작은 행복들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행복이 요즘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는 행복할 게 하나도 없긴 해요. 불평불만만 가질 수도 있어요. 누워 있으니까 다 싫고 그럴 때도 있는데 그래도 어느 하나 행복한 순간을 찾으려고 하다보면 의미부여가 됩니다. 제가 스스로 행복을 찾으려고 해요.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해도 순간순간 행복한 거고 제가 원래 잠을 잘 못 자는데 잠을 좀 잘 자면 그것도 행복하죠.

작은 행복을 찾고 계시군요.
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에서 운동을 하며 부모님과 따로 살았는데 부모님과 같이 식탁에 둘러 앉아 같이 밥만 먹어도 행복해요. 아버지가 포항에 계시는데 어제는 올라오셔서 같이 있다가 밥을 먹고 내려가셨어요. 그런 게 행복 아닐까요. 오늘 이런 작은 행복을 10번 느꼈으면 내일은 11번 행복하고 싶어요. 그러면 인생 전체가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차기석 코치는 이제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다. ⓒ스포츠니어스

어렵게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나요.
제가 신장만 망가져서 수술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반대로 어떤 분들은 제가 지금도 위급해서 중환자실에 누워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 제 상황을 정확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한 뒤 처음에는 말도 어눌했고 손도 잘 못 움직였어요. 너무 오래 의식이 없었고 약만 먹고 밥도 못 먹고 진통제만 맞아서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어요. 이제 한두 달 후면 의족을 차고 조금 더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희망으로 살고 있어요.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용기를 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관심 가져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정말 위험한 순간은 많이 넘겼는데 아직 수술이 두세 번 남긴 했어요. 그저께도 수술을 한 번 했어야 했는데 너무 연달아 수술을 하다보니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서 미뤄놨습니다. 수술하고 나면 더 회복할 수 있습니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으셨는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서 제가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걸 돌려드리고 싶어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 상황이 좋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나쁜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제가 직접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아프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제발요. 너무 끔찍한 시간들이었어요.

차기석 코치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그는 삶의 의지가 확고했다. 누군가는 지금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가 약속한 것처럼 응원을 보낸 많은 이들에게 하나 하나 진 마음의 빚을 갚아나가며 웃는 날이 오길 기원한다. 숱한 좌절과 고통에도 다시 일어선 그가 이제는 진심으로 행복하길 응원한다.

*차기석 코치의 후원 계좌를 안내해 드립니다. ‘신한은행 110445512631 차기석’의 계좌를 통해 차기석 코치를 후원해 주세요. 또한 차기석 코치의 강연 등 문의는 아래 이메일로 해주시면 연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츠니어스>는 이와 관련해 금전적으로 어떠한 이득도 취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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