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장에서 드러난 모라이스의 ‘여유’와 김도훈의 ‘멘붕’


ⓒ프로축구연맹

[스포츠니어스 | 울산=김현회 기자]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장에서 양 팀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25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는 울산현대와 전북현대가 하나원큐 K리그1 2020 맞대결을 펼쳤다. 승점이 54점으로 같은 상황에서 다득점으로 1위와 2위에 올라있던 두 팀의 대결은 사실상의 올 시즌 K리그1 결승전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현대는 후반 바로우의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따내고 우승 가능성을 높였다. 전북은 이날 승리로 울산을 승점 3점차로 밀어내고 선두에 올랐다. 다가올 최종전에서 승리한다면 울산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짓는다.

반면 울산은 우승 가능성이 뚝 떨어졌다. 이날 경기 전까지 다득점에서 전북에 앞서 있었던 울산은 결국 패하면서 전북에 선두를 내줬다. 다가올 리그 최종전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고 전북이 패하길 기다려야 한다. 지난 포항전에서 0-4 대패를 당한 울산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또 다시 전북에 무너지고 말았다. 올 시즌 울산은 전북을 상대로 3전 전패를 당하면서 승점을 헌납했다. 울산으로서는 이날 패배가 최악의 결과다. 15년 만의 K리그 우승에서 점점 멀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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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 분위기를 알 수 있었던 두 감독의 기자회견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도 두 팀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 경기력이나 결과가 좋으면 기자회견장 분위기가 좋은 게 당연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을 경험하고서는 ‘경기 결과가 기자회견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기자회견을 비롯해 평소에 나오는 좋은 분위기가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울산은 경기에서도 전북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나온 두 팀의 분위기는 더더욱 그 격차가 느껴졌다.

여기서 먼저 말하고 싶은 건 어디까지나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결과가 전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이다. 이런 피할 수 없는 대결에서 패하고도 기분 좋을 팀은 없다. 하지만 기자회견장 분위기를 보면 팀내 상황이나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까지도 보인다. 매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울산과 그런 울산을 중요한 순간마다 잡으며 우승하는 전북의 차이는 기자회견 분위기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두 팀 감독 사정이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전북과 울산은 올 시즌 종료 후 두 감독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AFC 챔피언스리그와 FA컵 등의 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두 팀 다 감독과의 결별이 유력하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두 팀 감독의 모습은 확연히 달랐다. 먼저 모습을 보인 모라이스 감독은 여유 있게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기자회견은 단순히 기자들의 질문에만 답하는 게 아니라 선수와 코칭스태프, 팬들, 모기업, 상대팀, 더 나아가 계약 종료를 앞둔 상황에서는 다른 모든 팀의 고위층에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다. 모라이스 감독은 이 자리에서 할 걸 다했다. 선수들을 칭찬하며 사기를 올린 정도가 아니라 물리치료를 담당하는 트레이너의 이름까지 일일이 열거하며 팀의 사기를 북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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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와 코칭스태프, 모기업까지 언급한 모라이스
전북은 바로우가 부상을 당해 이번 경기 출장이 불투명했지만 트레이너들이 포기하지 않고 그를 치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라이스 감독은 기자회견장에서 묻지도 않은 질문에 “오늘 경기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바로우가 경미한 부상이 있어서 울산전 출장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치료실에 있는 네 명의 트레이너가 사흘 동안 치료와 재활을 위해 노력했다. 그 덕분에 경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트레이너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그러면서 트레이너의 이름을 모두 전했다. 결승골을 넣은 바로우를 칭찬하면서 그가 경기에 나올 수 있도록 도운 스태프들까지 언급하는 여유였다. 이날 경기 ‘최고의 순간’은 바로우의 득점보다 이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모라이스 감독은 전북만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모기업 이야기를 꺼냈다. 감독이 선수만 기용하는 직업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사회생활도 해야하는 직업임을 떠올려 봤을 때 그는 ‘사회생활 만렙’이었다. 모라이스 감독은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1위 팀 선수들이 가져야 하는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모기업인 현대자동차도 항상 좋을 때나 안 좋을 때나 발전하려는 모습이다. 축구단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노력하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부분이 선수들이 힘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답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의 답변이었다. 옆에 있던 전북 통역사는 “오늘 감독님이 경기 전에 선수들에게 주문한 건 10초 정도였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믿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어 모라이스 감독이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간 뒤 김도훈 감독이 들어왔다. 워낙 중요한 경기에서 패한 상황이라 분위기가 침울했다. 어느 정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김도훈 감독은 너무할 정도로 성의가 없었다. 질문의 길이보다 답변의 길이가 더 짧을 정도였다. 아무리 패한 경기여도 조금은 더 성의가 있었으면 어떨까 싶었다. “전북한테 올 시즌 계속 무너졌다. 이런 상황이 FA컵 결승전에도 악영향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라고 묻는 질문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다시 준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짧게 말했다. 김도훈 감독은 계속 이런 식으로 질문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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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답 방어’하다 결국 공격 당한 김도훈
이어 “오늘 설영우를 선발로 투입했다. 의도는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날 김도훈 감독은 오른쪽 측면에 김태환을 대신해 설영우를 투입했고 당연히 이 의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설영우의 수비력이 팀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부분을 살리기 위해서 투입했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오늘 경기 결과를 떠나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도 “경기 내용은 잘 나왔다.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건 잘 했다”고 단답을 이어갔다. 요리 찌르고 저리 찔러도 성의 없이 피해만 가는 상황이 이어졌다.

“우승 가능성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각오를 말해달라”는 질문에도 “우리가 이기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기기 위해서 잘 준비하겠다”고 형식적인 답변만 짧게 했다. 이런 의미 없는 질문과 답변이 몇 차례 오가면서 이 상황을 노트북으로 타이핑하며 좀 화가 났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현장에 있던 취재진 대부분이 느낀 감정이었을 것이다. 패배한 팀의 상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K리그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가 끝난 뒤 약 30여 명 가까운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성의 없는 답변만 나오는 건 감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한 기자에게서 공격적인 질문이 나왔다. 이날 울산현대 측은 많은 취재진이 모일 것을 대비해 평소에는 준비하지 않던 마이크를 준비했다. 이 기자는 마이크를 잡고 김도훈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구단에서 많은 투자를 했고 울산이 올해에는 압도적인 우승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을 많은 전문가들이 했다. 그런데 가능성이 낮아졌다. 2년 연속 이런 일이 벌어졌다. 외람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울산을 이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일순간 기자회견장에 정적이 흘렀고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모라이스의 ‘여유’와 김도훈의 ‘멘붕’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이후에도 말이 많다. 감독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고 너무 무례했다는 반응이 있기도 하고 이 정도 질문은 팬들 입장에서도 꼭 묻고 싶은 속 시원한 질문이었다는 반응도 있다. 예의와 격식을 따지자면 무례할 수도 있지만 주제 무리뉴 감독과 기자들의 설전을 보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도훈 감독은 이 질문에 불쾌한 감정을 팍 드러냈다. 그는 “무슨 답을 원하나”라면서 “지도자로서의 내 능력은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다. 도전하고 준비하고 다음 경기 준비하면서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살아간다. 지도자를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그런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틀린 답변은 아니고 이 질문을 무례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질문이 나오기까지의 답답했던 질문과 답변 과정을 따져보면 이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도훈 감독은 이후 질문에도 형식적인 답변만 내놓은 채 인사도 없이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다. 인사를 하고 말고, 받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감독은 기자회견 후 간단한 목례 정도는 하고 기자들도 이에 목례로 화답하는 게 보통이다. 김도훈 감독도 이전 기자회견에서는 가벼운 목례 정도는 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날 기자회견 후 기자회견장 문도 닫지 않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 뒤를 울산현대 홍보팀 관계자가 뒤따랐다.

경기 결과가 큰 영향을 끼쳤겠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보여준 두 감독의 ‘멘탈 대결’에서도 모라이스 감독이 완승을 거뒀다. 모라이스 감독은 선수와 코칭스태프, 모기업까지 언급하며 여러 사람에게 공을 돌렸지만 김도훈 감독은 ‘멘붕’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쯤 되면 경기 결과가 기자회견에 영향을 끼친다기보다는 이런 분위기가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두 팀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랐다. 승점 3점차 이상의 분위기 차이가 느껴지는 기자회견이었다. 아직 올 시즌이 다 끝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기자회견장 분위기만 보면 울산이 이 불리한 조건을 뒤집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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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분위기 대변한 홍정호의 마지막 답변
양 팀 감독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는 전북 홍정호가 이날 수훈선수로 기자회견에 임했다. 홍정호도 기자회견장에서 ‘베스트 컨디션’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자신감을 어필했고 경기에는 나오지도 않은 이동국까지 언급하며 팀의 좋은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북의 우승 DNA’ 이야기까지 꺼냈다. 그는 “주니오에게는 미안하지만 주니오는 잘 막을 자신이 있었다”면서 “우리 팀은 내가 봐도 신기하다.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는 꼭 이긴다. 전북 DNA다. 이건 가운데서 잘 이끌어 주는 (이)동국의 형의 존재가 크다”고 공을 돌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한 기자회견이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날 홍정호의 수비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이날 경기에서 전북은 전반 구스타보가 페널티킥을 놓치면서 쉽게 끌고 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풀어나갔다. 하지만 홍정호는 “전반전에 구스타보가 페널티킥 놓치고 나서 어떤 대화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경기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부분이다. 넣었으면 오히려 안 좋았을 것이다. 그 골이 들어가면 우리가 수비적으로 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나왔을 것“이라고 답했다. 페널티킥을 넣었으면 오히려 더 경기가 꼬였을 것이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골을 넣어야 이기는 축구에서 골을 넣었다고 경기가 꼬이지는 않는다. 이게 홍정호의 진심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발언은 현재 전북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 준다. 이 승리에 여기저기 공을 돌리는 모라이스 감독과 페널티킥을 실축한 동료를 과할 정도로 보호하는 선수의 모습은 이 팀이 왜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발휘하며 늘 우승 트로피를 품는지 보여준 대목이다. 여기에 비해 김도훈 감독의 기자회견은 울산의 분위기를 전하는 것 같아 더 극적으로 비교가 된다. 경기 결과가 전북의 1-0 승리였다면 기자회견장 분위기는 3-0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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