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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니어스 | 김현회 기자] 포항스틸러스 김광석은 왜 팬들에게 걸개를 내려달라고 부탁했을까.

포항스틸러스는 1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울산현대와 하나원큐 K리그1 2020 홈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에서 포항은 일류첸코와 팔로세비치가 각각 두 골씩을 기록하며 4-0 대승을 거뒀다. 물러설 수 없는 동해안 더비에서 승리를 따낸 포항은 이로써 울산현대와 전북현대의 우승 경쟁에 또 하나의 변수를 만들어냈다.

더비인 만큼 경기장 분위기는 뜨거웠다. 특히나 제한적 관중 입장이 재개된 뒤 열리는 첫 경기가 울산과의 맞대결이어서 팬들의 관심은 더 커졌다. 경기 전 포항 팬들은 라이벌인 울산을 향한 도발성 걸개도 내걸었다. ‘김태환 인성 문제있어?’ ‘울산은 2위 주의야’라는 걸개였다. 이 걸개는 포항 서포터스석 2층에 붙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끈 유튜브 영상 <가짜 사나이>에 나오는 유행어를 패러디한 것이다. 울산에서 거친 플레이를 펼치는 김태환을 저격하면서 울산의 우승 경쟁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팬들은 이 걸개를 전반 시작 전에 철거했다. 의외의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팬들이 이 걸개를 철거한 건 포항에서 전설을 쓰고 있는 수비수 김광석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김광석은 경기를 앞두고 이 걸개를 발견한 뒤 팬들에게 “이 걸개를 철거해 달라”는 손짓을 했고 팬들은 김광석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포항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의 요청을 거부할 팬들은 없었다. 김광석의 손짓으로 걸개가 철거되자 김광석은 팬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과연 김광석은 왜 이 걸개를 철거해 달라고 부탁했을까.

19일 <스포츠니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김광석은 “경기 전에 몸 풀 때도 이 걸개가 걸려 있는 걸 봤다”면서 “사실 이 걸개를 보면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오랜 만에 관중이 들어와서 지켜보는 경기이고 어린 팬들도 보고 있는데 이런 상대팀 비판 걸개가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울산에 가서 저런 상황이 되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도 들었다. 울산 선수들에게도 중요한 경기인데 굳이 상대팀 선수들을 향해 도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반전이 시작하기 전에 팬들에게 걸개를 철거해 달라고 손짓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광석은 그러면서 “상대팀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니 신사답지 않다고 느꼈다”면서 “제한적 관중 입장 허용으로 울산 팬들이 경기장에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경기장에 포항 팬들만 가득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상대를 비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안 좋은 걸 보여주기 보다는 좋은 걸 보여주는 게 모두를 위해서 낫다고 생각했다. 아마 몸을 풀면서 울산 선수들도 그 걸개를 봤을 거다. 그 이후에는 중계를 통해 다른 지역 사람들도 내용을 볼 거라고 생각했다. 포항 선수이기 이전에 K리그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좋게 좋게 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광석은 지난 해 울산과의 경기 후 프로축구연맹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김광석은 지난 해 10월 홈에서 울산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직후 울산 서포터스를 향해 도발하는 세리머니를 했고 이후 상대팀의 일부 팬들이 김광석의 가족 SNS까지 찾아가 공격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일로 김광석은 연맹으로부터 1000만 원의 제재금 징계를 받았다. 김광석으로서는 당시 사건이 선수로서의 자세를 다잡은 계기가 됐다.

그는 “나도 상대팀 팬들의 도발을 받아봤다”면서 “작년에는 여기에 대응하다가 징계도 받았다. 그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반성도 많이 하게 된 계기가 됐다. 라이벌전이라고 서로에게 도발할 수 있지만 그래도 코로나19 이후 오랜 만에 관중이 왔는데 상대팀 선수들을 욕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우리가 못할 때 우리 선수들을 욕 해달라. 나와 우리 선수들을 욕하면 ‘아 내가 못해서 욕을 먹는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메시지는 우리 선수들을 위해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광석은 그러면서도 이렇게 경기장에서 열정을 표현하는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물론 이런 걸개를 건 우리 팀 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라이벌전이고 꼭 이기길 바라는 마음에 팬들이 도발성 걸개를 걸었다고 생각한다. 울산한테는 절대 지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잘 안다. 그래도 상대팀에 대한 비난보다는 우리 선수들을 더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어제 경기에서도 경기장을 찾아 직접적으로 소리 치며 응원하지는 못했지만 박수를 보내주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광석은 라이벌인 울산에 미안한 마음도 덧붙였다. 김광석은 “라이벌전을 이겨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울산한테 미안한 마음도 있다”면서 “울산은 투자도 많이 했고 우승을 해야할 멤버들이다. 그런데 매번 우리한테 이렇게 한 번씩 패하면서 우승과 멀어지니 미안하고 안쓰럽다. 포항 선수로서는 이번 승리가 너무 좋지만 K리그를 보는 입장에서는 감정이 애매하다. 돈을 쓰는 팀이 우승해야 하는데 우리가 울산을 잡은 건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여러 기분이 교차하는 경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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